코로나19 시대,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피곤한 몸과 공허한 마음과 피곤을 남기는 일(work). 고되고 따분한 노동일랑은 노예와 농군에게 맡기고 고매한 철학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취미생활로 인생을 보내야 한다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인과 유럽 귀족들의 생각처럼, 진정 일이란 가급적 하지 않고 살아도 좋을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일까? 아니면 유럽 중세인이나 르네상스인이 보았던 것처럼 거룩한 삶을 성취하기 위해 따라야할 지향(志向)점 또는 자유로운 개인의 순수한 표현일까? 아니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쾌락원리(Lustprinzip)가 이르듯, 일이란 그저 자연 속에 내던져진 나약하고 위태로운 인간이 적대적인 외부 환경에 저항하며 제한적이나마 문명을 창조하고 쾌락적 삶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깊숙한 무의식의 승화(昇華)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매일 아침 눈을 떠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일터로 향하는가? 재능을 발휘해 자아성취를 이루고 싶어서? 지금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로 계급상승을 하려고? 아니면 신이 내려준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고 생의 의미를 완성하고픈 소명의식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허나 그런 소수의 운 좋은 자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우리들은 그에 대한 질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지 않을까? 생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혹은 좋아하는 소일과 여가활동의 연장으로써 대다수의 우리는 일을 한다. 저마다 종사하는 직종과 다니는 직장이 다르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적어도 현대인이라면 좋든 싫든 평균 하루 24시간 중 너끈히 3분의 1 이상을 일에 할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성서의 창세기는 “인간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금단의 과실을 맛본 이후 그 죄로 낙원에서 쫓겨나 평생 고역을 하게 되었다”고 묘사하는 것으로써 인간과 일 사이 숙명적 관계를 성립시켰다. 구미권 문화에서 흉년이 든 해나 기근기에 소작농 농부들이 종종 지배자들의 과한 징세와 전쟁, 징집에 반발했을지언정 노동 그 자체는 자연 섭리로 겸허히 받아들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연에서 도시로 – 의식주를 위한 생활 터전의 대이동
20세기 이후 산업화, 경제성장, 꾸준한 인구성장세에 힘입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온 도시거주 인구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1세기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대도시들은 교외권과 위성 도시들까지 포섭해가며 초대형화 추세를 거듭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되었고, 복잡다단 해진 현대 문화 속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에 맞춰 다양하고 세분화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복잡화・다층화된 사회관계가 반영되어 경제적 수요・공급 법칙이 지배하는 소비경제 체제 속에서 인간은 본래 인간생활의 터전이던 자연에 안녕을 고하고 일상만사를 돈으로 사고팔아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도시 ‘소비경제’ 속의 무수한 부속부품과 톱니바퀴가 되어 맞물려 돌아간다. 그 속에서 돈은 긴요하고 유일한 교환수단이 되었다.
과거 전통 시대에 개인은 보통 태어난 고향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가업을 배워 가계를 이어받아 대가족 단위 안에서 생계를 꾸렸다. 가족 구성원은 자연을 터전 삼아 대대로 선조가 가르쳐준 지식과 지혜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수공예로 필요한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쓰며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골향민들과 빈민들이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민 와 정착하기 시작한 근대 산업혁명기는 급속한 도시화와 도시인구의 증가를 목도하며 인간이 일을 통해 얻는 의미(meaning)와 목적의식(purpose)에도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켰다. 20세기 후반기 대량생산・대량소비체제가 일상화된 이후, 인류는 생의 터전으로써 자연에 의존한 생산자(producer) 또는 제작자(maker)이기를 접고 돈과 소비가 지배하는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을 택했다. 돈만 지불하면 남들이 제공하는 모든 소비재, 재화, 용역은 사서 취할 수 있는 소비 대상이 되었으며, 소비행위로 만사를 해결하기 시작한 20세기인들은 드디어 ‘소비자(consumer)’라는 새 인류로 거듭났다.
근대 산업 디자인, 20세기식 인간의 일을 설계하다.
‘일하는 것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벌써부터 부자들이 더 독차지하려고 애썼을 것이다’라고 말한 영국의 노동당 정치가 브루스 그로컷(Bruce Grocott) 남작이 남긴 재담처럼, 과거 귀족과 재배계층은 육체적 고역을 피지배 계층에게 이전하고 노동하지 않고 사는 삶을 누렸다. 이어서 산업혁명기부터는 중산층 기업가들이 등장해 공장 대량생산 제조업 체제에 기초한 새 노동 질서 체계를 지휘하며 근현대인의 일 문화를 재편성했다. 그 결과 20세기는 시골 출신자를 도회 환경으로, 가정 실내와 가사에 갇혀 살던 여성을 사회라는 공공 영역으로 해방시킨(혹은 내몰은) 시대였다는 사실에서 경제적・사회적 차원의 과격한 변혁기였다.
서양식 근대 주방 디자인이 소개되기 전 과거, 주방이란 동・서양 할 것 없이 지금보다 한결 격하고 강도 높은 육체노동과 많은 수작업을 요했던 작업장(workshop)이었다. 권세와 지체 높은 집안에서 주방이란 힘세고 건장한 남녀 일꾼들이 가축을 도살하고 활활 타는 장작불로 강한 열을 내뿜는 돌 아궁이와 연기로 자욱한 곳에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각종 소음과 냄새가 진동하는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작업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핵가족 단위의 조촐한 농군의 가정에서 주방이란 집안 한 구석 장작불이 타는 벽난로에서 끼니를 마련하던 아낙네의 작업공간임과 동시에 집안 실내 난방을 해주던 화롯불이 있는 가족생활의 구심점(center point)이었다.
그러나 19세기-20세기 전환기, 도시에 거주하는 신흥부유층의 수가 늘고 이들이 전에 없이 위생과 깔끔한 생활환경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저택과 도시 아파트 공간의 주방의 구조도 전보다 편리하고 정결하게 정비되기 시작했다. 그같은 추세에서 착상을 얻어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바우하우스파 건축가 마가레테 슈테-리호츠키(Margarete Schütte-Lihotzky)는 프랑크푸르트 주방(Frankfurter Küche)을 디자인하여 면적이 한정된 대중용 아파트에 조립해 넣을 수 있는 붙박이식 주방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프랑크푸르트 주방의 탄생은 ‘모두를 위한 주방’ 또는 ‘주방의 민주화’ 시대를 선언함과 동시에 여성의 자리는 ‘아궁이 옆’이라 했던 전통의 굴레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획기적인 순간으로 근대 디자인사는 평가한다.
근대식 카페와 레스트랑 문화는 남성들도 갑갑한 집안 서재나 거실로부터 해방시켜줬다. 특히 개별 부엌이나 욕실 공간이 없이 작은 아파트에서 살던 도시 시민 특히 독신 남성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그 트렌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라는 문화제도가 정착하게 된 시초가 되었다. 도심으로 외출 나온 신사나 한량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단골 카페로 가 독서, 토론, 놀이, 담화를 하며 사업을 구상하고 여가를 보냈다. 예컨대 청년 레온 트로츠키는 19세기말 비엔나 도심의 카페 센트랄에서 시간을 보내며 러시아 10월 혁명을 구상했고, 프로이트는 연예인들로 북적댔던 카페 란트만에서 당대 유명인과 대화를 나눴으며, 당대 건축가와 미술가들은 카페 무제움에 모여들어 일과 사교생활을 겸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방에서 나온 여자, 주방으로 들어간 남자
20세기 후반기 현대인은 남녀 싱글・기혼자를 구분하지 않고 직장일과 가사에서 벗어나 여가와 사교활동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로 승격되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오늘날까지 현대사회는 더 이상 여성에게 결혼, 가사, 육아 같은 전통적인 임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일 = 생계를 위한 고된 노동’이라는 개념 대신 ‘일 = 사회생활을 통한 직위와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의 수단, 즉 ‘커리어(career)’ 개념으로 재단장하고 전에 없이 많은 여성 인구를 고등교육제도와 직업세계로 유인했다. 커리어를 쌓고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직급으로의 승진을 향해 열심히 일하는 경제활동인구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work life balance)이 깨지고 노동량 대비 휴식의 중요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과로로 인한 피로현상도 만성화되었다.
집 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진 현대인
우리는 왜 일하기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주장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은 오늘날 블루칼라 노동자의 행복을 빼앗아간 결정적인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18세기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인간은 본성을 게으르게 타고 났기 때문에 공장에서 고되고 무의미한 하루 일에 대한 댓가로써 일당 급료를 받는 ‘보상’체계로 노동하도록 자극하고 유도하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근대적 공장 생산체제와 산업혁명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폈다. 스미스의 그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은 20세기 전반기로 이어지며 미국에서 테일러리즘으로 대변되는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공장 노동체제를 양산시켰고, 또 역으로 그같은 무의미하고 반복된 노동은 그에 준하는 멍하고 공허한 산업 노동자를 양산했다는게 슈워츠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사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육체 노동자보다 만족스러운 직장생활과 목적의식을 만끽하며 일할까? 정해진 업무 속에서도 새로운 전문지식을 배워 넓히고, 상사와 동료의 인정을 받으며, 능력과 잠재력을 발휘하며 정기적인 임금상승과 승진으로 보상을 받는 것이 사무직 노동자에게 약속된 댓가이자 보람이라고 할 때, 과연 오늘날 그 많은 직장 사무실은 그같은 기능을 다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다수의 기업과 사무실 일터에서 직장 상사들은 경영 합리화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들어 직원들에게 수치화된 실적을 강요하고 과중한 스트레스와 과잉경쟁을 조장하여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창의력과 의욕을 독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에 와서 일의 문화와 직장 공간은 다시 한 번 심오한 변화를 겪고 있다. 컴퓨터가 타자기를 밀쳐내고 사무 필수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며, 전화 대신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시스템과 개인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분량과 속도로 정보와 자료를 즉시 교환・전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직원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봐야 한다는 관념도 서서히 붕괴하고 있는데, 예컨대 약 10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기업과 직종은 이미 재택 근무나 외지 근무 문화로 사업운영비와 인건비를 절감해오고 있다. 전 근대기 전통시대의 일을 하는 공간이 자연, 가내 공방, 집안 부엌과 서재였고 20세기의 전형적인 일터가 공장과 사무실이었다 한다면, 21세기 오피스는 인터넷망이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개인 통신기기를 가진 자가 머무는 ‘모든(ubiquitous) 장소’가 되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하는 방법만 아는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만 하지 못하며, 좋아서 하는 자는 즐기면서 하는 사람만 하지 못하다”고 공자가 한 옛말이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법으로 공자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러면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제시했다.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어차피 인생의 대부분은 일로 채워질테니 기왕이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한 조언과 통하는 면이 있다.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억지로 일하는 사람보다 더 우수하고 완성도 높은 성과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인간이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순간에 느끼는 정신적 만족감을 ‘몰입(flow)’이라는 경지로 정의하여 인간이 느끼는 행복도는 일에 대한 집요함과 정통한 숙련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입증했다. 그래서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자는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일과 중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자꾸만 길어지는 오늘날,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의 인간은 보다 적게 일하고 보다 많은 시간을 휴식과 여가로 보내게 될 것이라 꿈꿨던 과거 한 때의 막연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조만간 현실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25-50세 연령대, 직업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남성 생산가능인구의 고용률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공장 폐쇄나 탈산업화로 대규모 실직된 노동자들의 자살, 약물중독, 우울증, 폭력 및 범죄가 증가함은 자명한 통계적 사실이다. 경제침체로 인한 실직과 경제적 압박은 곧바로 과거 예의 바르고 섬세했던 사회조직에 균열을 만들고 시민의식과 사회질서를 파괴시켜 사회동요로 이어진다는 사회학적 진리를 모든 정치가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유독 최근 현대인은 하루가 무섭게 발전하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술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무장한 로보트 군단이 인간의 능력과 직장을 빼앗아갈 날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류의 존재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그같은 디스토피아적 비전은 과거에도 있었다. 일찍이 19세기 영국 산업혁명기 공방장인들은 공장식 대량생산 체제를 보고 기계에서 공포감을 느꼈고, 이어서 1920-30년대 세계 경제대공황기 과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백 년 후 로봇이 인간 대신 일하는 공장을 예측했다.
조지 오웰이 그의 자전적 경험을 쓴 책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1933년)에서 무위(無爲)는 인간에게 가장 해악한 상태이며 인간은 본유적으로 자선이 아닌 스스로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영위하고 싶어하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일은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에게는 생의 의미와 목적의식을 부여해주고 사회에는 세상이 돌아가게 돕는 윤활유이자 직업공동체 사이를 이어주는 사회결속제(social glue)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래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인문 포털 인문360 2017년 3월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 인문360°에서 박진아의 칼럼 더 보기 (2016~2017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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