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모더니즘의 거장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과 디자인

BRUNO MATHSSON

bm_reportage_070018_sm-223x300
1970년대의 브루노 매트손의 작업 모습.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20세기 스웨덴이 낳은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 브루노 마트손이 건축디자이너로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소개되어 서구 모더니즘 건축 디자인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평가받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디자인 여정 동안 마트손이 이룩했던 디자인 작업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항상 최첨단을 시험하는 혁신의 가도를 주도했지만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 더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는 시공을 뛰넘는 모더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1970년대에 서구 근대 디자인사에 기여한 그의 작품 세계를 기리는 뉴욕 근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서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기하여 『뉴욕 타임즈』 지가 “브루노가 우리 미국인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돌아왔다!”라며 반가워했을 정도로 브루노 마트손이 그의 모국인 스웨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국제 근대 디자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북유럽 목공예 전통과 모더니즘의 혁신주의의 만남
4대째 캐비넷을 만드는 목가구공 카를 마트손 (Karl Mathsson)의 아들로 태어난 브루노 마트손 (Bruno Mathsson, * 1907년 – ✝ 1988년 )도 타고난 목공장이였다. 예로부터 목공예로 잘 알려져서 지금도 디자인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베르나모 (Värnamo)에서 태어난 그는 스웨덴 남부 지방의 자연을 벗한 나무 소재와 친숙한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목공예 전통을 어릴적부터 깊이 호흡하며 목공예에 관한 세세한 노하우와 기법을 익혔다.

gräsh_070018_sm-212x300
메뚜기 의자, 1931년 작품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 기간 동안 전유럽을 뒤흔들고 있던 기능주의 모더니즘 미학에 깊이 매료된 그는 당시 구할 수 있었던 문헌들과 정간물을 탐독하며 모더니즘과 기능주의 이론을 독학으로 섭렵했다.

그렇게 해선 탄생한 브루노 마트손의 디자인 명작 제1호는 그가 1930년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를 방문하고 한껏 영감을 얻어 말 안장 모양으로 디자인 한 1931년작 일명 “메뚜기 의자 (Gräshoppan)”였다.

“메뚜기 의자”는 그의 고향에 있는 베르나모 병원의 접수실 공간용 의자로 설치되었는데 그의 혁신성은 당시의 스웨덴인들의 눈에 낯설어 보인 나머지 기괴하고 흉칙스러워 보인다는 불평을 받고는 창고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그같은 미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더 의욕을 느꼈던 그는 목재를 가열하여 굽히는 기법 (이 기법은 이웃나라인 핀란드에서 알바 알토가 이미 1920년대에 실험했다.)을 활용하여 등받이가 있는 긴 안락의자 시리즈를 계속해서 실험했다.

그 결과 1937년 파리 박람회에서 그의 작품들은 대륙권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온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게 되었고 급기야 뉴욕 근대 미술관으로부터 방문객용 의자를 디자인해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공의 유기적인 융합
브루노 마트손 디자인의 핵심어는 자연과 디자인을 연결하는 인체공학적 해법, 공간적 사고, 그리고 건축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관심사가 그랬듯이 그 역시 가구, 인테리어, 건물 디자인 상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정한 문제점을 규명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86-5_sm-297x300
프뢰자쿨 자택의 거실 광경 (Sitting-room in Frösakull).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새로운 생활 환경, 근대적인 라이프스타일, 과학기술의 진보에 걸맞는 새로운 표현 언어를 찾기를 원했던 그는 그래서 건축 외부와 실내 공간 및 개별 가구 아이템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총체적인 공간을 실험했다. 자연과 잘 조율되는 날렵하고 유기적인 가구 형태는 프뢰자쿨 (Frösakull)에 지은 주말 별장의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양차 대전과 파시즘의 대두 등 격동과 소용돌이의 근대사를 거쳐 오는 가운데 브루노 마테손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랑스러운 모더니스트이자 국제주의자 (internationalist)였다. 그의 국제주의적 활동 반경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에서 한창 전개되던 공공 주택 사업과 미래지향적 비젼과 관련하여 상당수 미국과 함께 이루어졌다.

특히 1940년대에 뉴욕 근대 미술관의 에드가 카우프만 큐레이터의 주선으로 아내 카린과 함께 한 기나긴 미국 여행 동안에 브루노 마트손은  전후 시대 미국 건축과 디자인의 개척자 찰스 이임즈 (Charles Eames), 나치의 예술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온 독일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뉴욕의 고급 사무용 가구 생산업체 크놀 (Knoll), 그리고 미국의 거장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라이트 (Frank Lloyd Wright) 같은 건축디자인계의 거물인사들과 친분을 구축하는 행운도 맞았다.

이 여행을 계기로 마트손은 지금도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해 준 일명 “유리 주택 디자인 (Glass House)”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실제로 마트손은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짧은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서 기후가 따뜻한 남유럽 포르투갈로 건너가서 유리로 된 자택을 직접 디자인하여 그곳에서 겨울을 보냈다.

bm_telefon_070018_sm-300x225
페르닐라 1 (Pernilla 1) 안락의자. 1943년 작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또 그는 개방적인 사고와 도전적인 창의력이 높은 인정을 받는 나라 덴마크를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흠모했던 그는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였던 피에트 하인 (Piet Hein)과 협동으로 그 유명한 “이클립스 테이블 (Eclipse table)”을 디자인했으며, 1970년대에는 일본과도 디자인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도 일본의 가구생산 업체인 히오스 (Hios )디자인 사의 라이센스로 가구 용품들이 생산판매되어 오고 있다.

그가 줄기차게 옹호해 온 이른바 “마트손의 궁극적 의자 문화 (ultimate sitting)” 철학은 그가 디자인한 의자와 테이블에 세심하게 고려된 곡선 감각에서 잘 반영되어 있다. 자연히 그는 현대인들이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공간을 위한 환경과 가구를 디자인하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누운 자세로 일을 하면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일처리에 임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사무실이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당시의 노동 문화의 견지에서 볼 때 두 말 할 것 없는 혁신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1940년대 초엽에 차례로 선보인 “페르닐라 (Pernilla)” 의자 시리즈와 1960년대의 “젯슨 (Jetson)” 의자는 뒤로 누을 수 있는 긴 안락형 작업 의자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ANNIKA_brunomathsson_sm-300x300
1936년에 제작생산된 “아니카 (Annika)” 테이블.

주관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영리한 머리를 소유자 마트손은 단순하면서도 꼼꼼한 우아함이 돋보이는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함과 기능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은 유리 주택을 비롯한 50차례에 넘게 수행했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들과 나무를 가열하여 굽혀 만든 라미네이트 목재 가구 용품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가구 아이템들에 그는 여성의 이름을 달아주곤 했는데, 예컨대 에바 (Eva), 미나 (Mina), 미란다 (Miranda), 페르닐라 (Pernilla) 등은 각 의자 모델마다 지닌 독특한 개성을 한층 강조해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환경주의 미래를 위해 또다시 평가받는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 세계
마트손이 건축을 통해서 생전 자연과 인간 사이의시각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에 쏟은 열정은 지금도 미래의 건축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혜안을 제시해 준다. 최근들어 지속가능한 (sustainable) 환경친화적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는 젊은 세대의 전문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년 전에 마티슨의 철학과 건축 디자인에 응용했던 기법을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7445-DB4_sm-220x300
태뇌 (Tånnö)에 있는 브루노 마트손의 자택, 1964-65년. Photo: Åke E:son Lindman.

그는 미국 여행을 다녀 온 후 1950년대에 고향 메르나모의 한 가구 전시장에서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바닥 전기 히터가 설치된 콘크리트재 유리 주택을 지어 선보였었다. 그는 사방벽 중에서 한 면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나머시 세 면은 질소가 주입된 3중 유리창을 벽대신 설비해 넣는 마트손 고유의 “브로노 유리창 공법 (Brunopane)”을 선보이고 특허인가까지 받았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성향과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우수한 미하적 경제적 디자인 해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법은 안전상의 이유로 건축허가청의 관료적 난관에 부딛히곤 해서 결국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중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웁살라의 파르마시아 (Parmacia) 실내 장식(1973년), 단더리드의 핵가족용 주택(1955년), 쿵쇠르의 가족 주택(1954년), 브루노의 자택들에 간직된 다시금 자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환경친화성과 기법적 혁신성이 한데 융홥된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건축 디자인 50년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모색하는 보편적 건축 디자인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노 마트손 건축 디자인 (Bruno Mathsson – Designer and Architect)』 전시회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건축박물관 (Arketektumuseet)에서 [2006년] 2월9일부터 8월27일까지 전시된다. Photos courtesy Copyright © Arkitekturmuseet 2006.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