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즈댓걸?

Who’s That Girl? — Stories behind The Chocolate Girl by Jean-Étienne Liotard

쟝 리오타르의 초컬릿을 나르는 아가씨

얼굴에 홍조를 띤 건강하고 앳띤 아가씨가 도자기 찻잔과 유리 물잔이 담긴 쟁반을 나르고 있다. 겨자색 드레스에 흰 색의 긴 앞치마를 두르고 보헤미아풍 연분홍 두건을 쓴 이 아기씨는 귀족 집안의 안방 마님의 침실가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로 보인다. 선선한 대기 묘사와 유리 물잔에 비친 반영으로 미루어 보건대 하루중 이른해가 커다란 창문으로 들이치는 아침 시간. 시녀는 마님이 침상에서 조식으로 마시는 핫초컬릿을 대령중이다.

<초컬릿을 나르는 여인(The Chocolate Girl)>, 1744 – 1745년 경, 양피지에 파스텔, 825 X 525 mm. 소장: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쟁반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 진귀한 옻칠자개품이고 찻잔은 유럽 3대 명품 도자기중 하나라는 독일제 마이센 제품이다. 초컬릿잔 곁 은제 찻잔받침 접시에 곁들여 놓인 단과자 비스킷은 카카오 음료의 쌉싸름한 맛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도자컵에 고정된 금제 잔받침 손잡이(trembleuse)는 손떨림이 있는 사람이 침상에서도 음료를 흘리지 않고 안전하게 잔을 잡고 마실 수 있도록 고려한 식기 디자인이다.

<초컬릿을 나르는 여인>(1744년경 작)은 유화 그림이 대세를 이루던 18세기 유럽 미술계에서 몇 안되는 파스텔화의 명인으로 꼽히던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화가 장-에티엔 리오타르(Jean-Étienne Liotard, 1702–1789)의 작품이다. 당시 통상 18세기 중엽 유럽의 바로크풍 유화가 어두운 뒷 배경에 주인공을 조각처럼 입체감을 부각시킨 일명 ‘키아로스쿠로’란 강한 명암 대비 기법으로 그렸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은 파스텔 매체의 특성을 살려 단 한 조각의 음영 없이 화사하고 감미로운 로코코 미학을 표현했다. 안료와 점착제가 고농도로 배합된 우수한 품질의 프랑스제 라메종뒤파스텔의 파스텔을 사용한 덕분에 화가가 그림을 들고 잦은 유럽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있다.

<아침 식사(La Prima Colazione)>, 1754년, 양피지에 파스텔. 소장: Alte Pinakothek, Maxvorstadt, Germany

어느 미술관이나 관람객의 주목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표 소장품이 있다. 오늘날 <초컬릿을 나르는 여인>은 독일 드레스덴 고대거장회화관(Dresden Gemäldegalerie)을 찾는 감상객들의 주목과 흠모를 독차지하는 간판 소장품으로 유명하다. 1862년 미국의 초컬릿 회사인 베이커스 초컬릿(Baker’s Chocolate)의 브랜드 로고 디자인으로 채택되었느가 하면 네덜란드의 드로스테(Droste) 분말 코코아 포장용기 디자인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파스텔화’로 불리며 이름도 정체도 알수없는 이 담박순수한 젊은 시녀의 초상화가 그토록 대중을 매료시키는 것은 왜일까?

이 그림은 리오타르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집권기 합스부르크 황실의 궁중화가로서 1743~45년 동안 비엔나에서 머물며 작업하던 때에 완성됐다. 화가는 합스부르크 황실을 분주히 오가며 일하던 한 아름다운 조신(courtiers) 또는 시종의 모습에 반해서 이토록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초상화로 영원히 기록했던 것일까? 그럴 만도 하다. 과거 유럽의 궁중과 귀족 가정에서는 유난히 외모가 단정하고 태도가 조신한 젊은 여성이 마님의 내실 시종으로 일했다. 몇몇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 속의 시녀가 궁중에서 일하도록 내몰린 몰락한 하위귀족층 출신의 여인이라 추측한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도 농군의 드레스 차림으로 소녀시절 초상화를 그리게해 남겼을 만큼 그 당시 소박함과 목가적 낭만이 유행하던 때다.

리오타르의 초컬릿을 나르는 아가씨의 그림에서 영감 받아 사용된 미국 베이커스 초컬릿의 코코아 분말 포장 디자인.

훗날 이 그림은 낭만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영감이 되기도 했는데, 카페 종업원 아나 발타우프라는 젊은 여인이 초컬릿 숍을 드나들던 폰 디트리히스타인이라는 귀족 자제와 사랑에 빠져 가문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에 이른다는 줄거리로 유럽의 근대기를 예고했다. 그런가하면 이 그림은 19세기 영국으로 전해져 판화로 제작돼 팔렸는데, 판화 뒷면에 적힌 명문에 이 아가씨는 비엔나의 한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자 훗날 귀족가로 혼인한 본명 샬롯 밭타우프라는 여인이었다고 기록됐다.

Still Life: Tea Set; Jean-Étienne Liotard (Swiss, 1702 – 1789); about 1781–1783; Oil on canvas mounted on board; 37.8 × 51.6 cm (14 7/8 × 20 5/16 in.); 84.PA.57; No Copyright – United States (http://rightsstatements.org/vocab/NoC-US/1.0/)

초컬릿 주전자가 있는 아침식사 광경은 18~19세기 유럽 화가들이 즐겨 그린 정물화 속 소재중 하나였다. 카카오 열매를 곱게 갈아 설탕, 우유, 향신료를 첨가해 끓인 이 달콤쌉쌀한 맛의 이국적인 음료는 강장용 아침식사 또는 안정과 잠을 청하기 위한 저녁음료로 애용됐다. 차와 커피 보다 가격이 두 배 비싼 고급 음료였던 만큼 쇼콜라티에(Chocolatière)라 불린 고급 은제 또는 도자 주전자에 담아 따라 마시는 것이 예의였다. 당시 똑같이 쓴맛의 수입음료인 커피가 주로 유럽 이북부 개신교 국가에서 애용됐던 반면, 핫초컬릿은 17세기 스페인 항해가들이 남미 신대륙에서 서유럽으로 수입해 독점유통했다는 사실 때문에 카톨릭권 국가의 여유로운 생활과 고급스러움과 결부됐다.

19세기 산업혁명의 도래로 유압증기압착기술로 카카오콩에서 초컬릿을 대량 가공하는 기술이 개발되며 초컬릿 가격은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졌고, 분말형 코코아로 쉽게 핫초컬릿을 만들 수 있게되면서 쇼콜라티에 주전자 매출도 함께 감소했다. 초컬릿의 위력은 지금도 변함없다. 카카오 버터, 설탕, 바닐라 버터를 가미해 굳힌 초컬릿으로 변신하여 우리에게 아늑한 감미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젊은 네덜란드 여인(A Dutch Girl at Breakfast)>, 1756년 경, 캔버스에 유채, 48.6 cm X 39 cm. Collection: Rijksmuseum.

*이 글은 본래 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 2020년 10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This column has been originally appeared in the October 2020 issue of aT, corporate journal published monthly by 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