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男女-相悅之詞

한 가정의 실내에 놓인 식탁 위에 꽃과 과일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진열돼있다. 식탁의 왼쪽 가장자리에 놓인 꽃병에는 튤립과 카네이션이 다른 봄철 꽃들과 함께 정갈히 꽂혀있고, 금박 식물문양 장식이 호사스런 꽃병은 유리공예로 유명했던 북이탈리아산 같다. 식탁 위에 즐비한 과실의 종류로 미루어 보건대 계절은 여름철이다. 이 그림이 완성된 곳은 오스트리아나 독일로 추정되는데, 바구니에 담긴 사과, 배, 살구, 포도는 토산품이고 전경에 놓인 무화과, 멜론, 귤, 레몬은 남유럽산 수입과실이다. 수입 신선과일은 부유한 가정에서 사먹는 고급 식재료 겸 실내장식품이었으나, 17세기 이후 집약재배 농경법과 활발한 국제무역 덕에 유럽인들은 다양한 이국적 농경작물에 접하게 됐다.

화면 왼켠의 ‘크라운유리’ 창문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결부된 고결과 신성함의 상징인 만큼 이 젊은 두 남녀는 경건하고 신앙심 두터운 부부로 보인다. 통상 서양미술의 장터 그림에 등장하는 과일은 여성, 채소는 남성에 대한 은유다. 이 그림 속 여주인공의 오른손에 닿을듯말듯 놓인 붉은색 과실은 피 즉, 에로티즘을 암시하고 왼손으로 가리키는 바구니 속 복숭아는 여성성을, 포도 송이는 자녀와 다산(多産)이라는 성서적 가르침을 상징한다. 한편 녹색 채소 – 완두콩깍지와 오이 – 는 남성의 상징이다. 포도주를 권하는 남편과 벌써 취기로 두 볼이 발그레해져 애써 몸을 가누는 아내 사이에는 사랑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간다.

게오르크 플레겔, <앵무새가 있는 정물>, 1630년경, 캔버스에 유채, 78x67cm. 소장: Alte Pinakothek

풍성한 과일과 채소를 사랑과 결부시킨 이 풍속화는 16세기 말경 독일의 정물화가 게오르크 플레겔(Georg Flegel, 1566-1638)이 그렸다. 유럽에서는 플레겔이 태어나기 전부터 과일과 채소를 둘러싼 열병이 번지고 있었다. 바로크 시대 귀족들은 대항해 시대 지리상 발견과 과학혁명에서 자극받아 자연 관찰과 과학적 사유에 심취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루돌프 2세는 예술과 자연과학의 열렬한 애호가여서 궁중화가 아르침볼도(Arcimboldo)에게 사시사철에 대한 알레고리 그림을 그리게 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한 섭리를 음미하며 다가올 계몽주의 사상과 근대과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게오르크 플레겔의 그림 세계는 그의 스승 루카스 반 발켄보르흐(Lucas van Valckenborch)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566년 지금의 체코공화국 모라비아 지방에서 한 구두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플레겔은 유난히 정물을 잘 그리는 손재주를 인정받아 발켄보르흐의 작업실에서 스승이 구성한 대형 장터, 만찬, 정원 캔버스 그림에 정물 요소를 채워넣는 조수로 일하며 기량을 연마했다. 오늘날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이 <과일, 야채가 놓인 식탁 앞 남녀> 회화를 가리켜서 종교적 교훈을 담은 풍경화와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마르텐 반 발켄보르흐(스승 루카스의 형)의 작품에 조수 시절의 플레겔이 정물((静物) 요소 제작에 기여한 두 화가의 협동작품이라 평가한다.

루카스 반 발켄보르흐(Lucas van Valckenborch), <잔치(Feast)>, 캔버스에 유채. Collection: Slezské zemské muzeum, Opava

바로크 미술은 그제까지 농산물에 대한 유럽인들의 고정관념에 대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생사를 가름하는 필수식량이자 종교적 신성함과 윤리적 미덕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과일과 채소는 16세기가 되자 탐하고픈 욕망의 대상 또는 에로티즘의 심벌로 탈바꿈했다. 장터 풍속화에 보면, 여성은 과일과 채소장수로, 남성은 피, 고깃덩어리, 강한 육체노동을 은유하는 건장하고 힘센 푸줏간 도살공 또는 고기장수로 묘사됐다. 17세기에 이르러 풍속화 속 남녀들은 잔치, 장터, 주방을 배경으로 풍성하게 진열된 고기, 야채, 과일, 빵과 단과자와 나란히 등장해 관객을 향해 ‘유혹의 응시’를 던지며 음식남녀상열지사(飮食男女相悅之詞)의 긴장감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로 접어들자 미술시장은 정물화가 플레겔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당시 중요한 미술시장의 중심도시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물화를 사걸고 싶어하는 부유층 고객수가 급증하자 그동안 한 폭의 역사화나 종교적 알레고리화에 구색맞추기 들러리 노릇을 하던 정물은 독자적 회화장르로 떨어져 나왔다. 스승 루카스 반 발켄보르흐의 작업실에서 독립해 나와 정물화 작업실을 개업한 이후 플레겔은 유독 탁월한 손재주를 요하는 꽃, 과일, 야채, 귀금속 끽연류, 식기, 골동품을 실물처럼 그려낸는 눈속임기법(trompe l’oeil)에 능한 정물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탁월한 기량과 상업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플레겔의 인생과 정물화 속에 담긴 교훈은 한결같았다. 그는 탐스러운 이국적 과일과 산해진미, 값비싼 은제 식기와 최신유행 유리와 도자품으로 보는 관객의 눈을 호사시키며 동시에 ‘바니타스(vanitas)’를 영혼의 미덕으로 삼으라고 상기시킨다 – ‘유한한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필연성을 잊지 말고 겸손하고 검소할지어다.’

*이 글은 본래 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 2020년 9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This column has been originally appeared in the September 2020 issue of aT, corporate journal published monthly by 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