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식사하기

프레데릭 코트먼 (Frederick George Cotman) 作 ⟨가족의 일원 (One of the Family)⟩ 1880년, 캔버스에 유채. Collection: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프레데릭 코트먼의 회화 ⟨가족의 일원(One of the Family)⟩은 다름아닌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백마를 가리킨다. 일가족이 모인 이 방에는 저녁 햇살의 따스하고 평화로운 빛이 감돈다. 화면 오른켠, 가장으로 보이는 흐뭇한 표정을 한 남성은 막 귀가해 옷걸이에 소지품을 걸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이 가족은 벌써 식사를 시작했다. 맏아들이 접시 위 파이를 자르고 할머니가 나눠줄 빵을 썰고 있는 사이, 안주인은 남편을 태우고 돌아온 흰 말에게 파이조각을 나눠준다. 안주인의 허벅지에 턱과 앞발을 얹고 먹이감을 기다리는 견공의 모습도 애교스럽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는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낭만주의 사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유럽인들의 상상력과 감성에 호소하던 시절. 낭만주의 사상은 동물을 막강한 위력을 지닌 대자연의 일부라 여기고 신성시 했고, 이를 반영해 미술가들도 동물을 숭고한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시켜 묘사하곤 했다. 이 그림 속의 흰말은 단순한 운송수단과 노역을 하는 유용한 가축임에 그치지 않고 이 가족의 생존과 안위와 함께 하며 존중받는 가족의 구성원이자 동반자로 묘사됐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무대는 런던에서 서쪽으로 기차로 약 한 시간 반 가량 여행하면 닿을 수 있는 헐리온템즈(Hurley-on-Thames)라는 작은 고을의 블랙보이스인(Black Boys Inn)이란 주막이다. 한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하는 이 주막 주인집 스트리트(Street)家 일가족의 소박하지만 단란한 식사시간을 묘사한 이 그림은 1880년 완성되자 마자 리버풀에 있는 워커미술갤러리에 매입됐고 그 후로 한 세기 넘도록 영국인들의 애상과 향수가 응축된 국민화로 사랑받았다. 이 장면이 자아내는 긍정적 세계관과 인간과 동물 간 진심 어린 동지애는 특히 산업혁명 통에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로 이주한 도시민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3대의 가족과 반려동물이 화목한 식사 의례는 당시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시민의 행복과 정의를 중시하며 제창했던 공화제 이념에 대한 시각화라 해도 좋다.

르누와르(Pierre-Auguste Renoir) 作 ⟨선상의 점심식사⟩, 1880-1881년, 캔버스에 유채. 소장: The Phillips Collection, New York

같은 시기, 영국 해협 건너편 프랑스 사회에서는 경제성장과 신흥중산층의 급부상에 힘입어 이른바 근대기 ‘부르주아 유토피아’ 시대가 개막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패망, 주변 유럽국들로부터의 외교적 고립, 나폴레옹 3세의 군국주의의 붕괴를 끝으로 정교분리(政敎分離),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공화주의 등 신시대적 이념들의 난립 속에서 드디어 프랑스는 ‘한 나라 한 문화’를 내세운 제3공화국 체제를 서서히 그러나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구체제의 붕괴 후 실직한 요리사들은 속속 파리 주변에 주방을 열고 신분과 부의 차별 없이 요리와 음료를 제공했는데, 이로해서 ‘레스토랑’이란 민주적 제도가 탄생했다. 파리의 레스토랑은 귀족, 갑부, 사교계 여성, 연예인부터 예술가와 평론가 등 문화계 인사와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팔꿈치를 스치며 어울리는 사교 살롱이자 무대가 됐다. 그같은 배경에서 1880년 무렵 완성된 르노아르 作 ⟨선상의 점심 식사⟩는 프랑스혁명 정신과 공화정 이념에 기초한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구호 하에 포용적 민주주의 시민사회로 완성된 근대 프랑스 사회를 은유한 한 폭의 시대적 초상이다.

근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파리 시내와 근교에 새 도로와 수로가 건설되고, 파리의 시민들 사이에서 센느강 주변 주말 피크닉이 유행했다. ⟨선상의 점심 식사⟩는 화가가 보트 타기와 야외 피크닉을 하러 즐겨 들렀던 교외 마을 샤투(Chatou)의 메종 푸르네즈(Maison Fournaise) 레스토랑이 배경이다. 그림 속 인물들도 화가와 친분 있던 동시대 인사들이다.

왼쪽 흰 무소매 셔츠를 입고 배 난간에 기댄 남성은 이 배와 레스토랑 주인이자 화가의 친척 알퐁스 푸르네즈다. 난간에 한 팔을 걸친채 턱을 괸 알퐁스의 딸 알퐁신느는 식민 베트남 사이공 시장을 지내고 은퇴한 바르비에 남작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화면 하단 오른편에 흰 무소매 셔츠와 밀집모자 차림의 남성은 동시대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 옆 미색 외투를 입은 댄디 평론가 안토니오 마졸로가 여배우 앙젤르 르고와 담소하고 있다. 저 뒷켠에는 감청색 정장과 톱햇 모자를 쓴 갑부출신의 아마추어 미술평론가 샤를르 에프루시가 젊은 시인 쥘르 라포르그와의 대화에 심취해있다.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보트 파티의 주인공은 단연 애견을 희롱하고 있는 감청색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다. 재봉사 출신의 모델 알리느 샤리고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화가와 곧 결혼을 앞둔 르노아르의 약혼녀다.

태곳적부터 인류는 시대와 대륙을 가로지르며 가족, 연인, 공동체 구성원, 반려동물과 한 자리에 모여 음식 나눠 먹는 의식(ritual)을 통해서 인간은 우정을 키우고 구애를 하며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소망과 축복을 기원했다. 음식은 생존을 위해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생물학적 경험인 동시에 공동채 간 애정을 표현하고 결의를 다지며 대화를 교환하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활동이다. 코트먼과 르누와르의 두 작품은 1인 가구 증가, 바쁜 라이프스타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회적 식사하기의 즐거움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외로운 현대인의 삶을 숙고해 보라 재촉한다.

르누와르 <포르네즈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식사(Lunch at the Restaurant Fournaise)>, 1879년 경, 캔버스에 유채. 소장: Art Institute of Chicago

*이 글은 본래 농수산식품유통 공사 사내보 『aT』 2020년 6월 호 At the Playground | aT Gallery 칼럼에 실렸던 글의 편집되기 전 원문임을 밝혀둡니다. This column has been originally appeared in the June 2020 issue of aT, corporate journal published monthly by 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