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파는 여인

Vincenzo Campi,  The Fruit seller, 1580. 143 x 213 cm, Collection: Pinacoteca di Brera, Milan.

한 젊은 여인네가 바구니와 양재기에 갖가지 과일과 채소를 그득하게 담아 놓고 앉아 있다. 과일을 파는 이 여인은 한 손으로는 치마폭 한가득한 복숭아 무더기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갓 따온 알알이 무성한 포도송이를 들어 구경온 장터 손님을 맞이한다. ‘오늘 밭에서 따온 포도랍니다. 사가시겠어요?” 포도송이는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이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어느새 450년 전 유럽 어느 시골 과일장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손님이 된 관객은 보기좋게 먹음직스런 제철 채소와 과일을 잔뜩 골라담아 이 젊은 과일장수와 활기 넘치고 재미난 한판 가격 흥정을 벌일 것만 같다.

이 그림은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 빈첸초 캄피(Vincenzo Campi)가 그린 『과일장수(The Fruit Seller)』라는 제목의 풍속화다. 이 그림이 그려진 해는 1580년. 그러니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가 최고 절정을 달한 후 고전주의 규범에 대한 회의, 피로, 반발의식이 일탈적이고 비정형적인 매너리즘(Mannerism) 양식으로 변질되며 다가올 바로크 시대를 준비하던 때다. 미술사에서 캄피의 장터 풍속화는 ‘이탈리아 사실주의’로 불리며,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총체적으로 버무려진 이탈리아식 ‘풍속화’ 장르의 시초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거장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엠마오의 저녁식사⟩(1601년) 속의 과일 바구니는 17세기 서양미술사에서 정물화(still-life)라는 독립된 새 회화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결정적 한 수가 됐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1년, 캔버스에 유채, 141cm × 196.2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1570년대부터 1580년에 걸친 약 10년 동안 북(北)이탈리아의 두 고도(古都) 크레모나와 볼로냐에서는 장터와 식재료를 묘사한 풍속화(genre painting)가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빈첸초 캄피의 『과일장수』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시의 부유한 푸거(Fugger) 가문의 의뢰를 받아 완성된 총 5편의 장터 그림(어물전 광경 세 편과 푸줏간 광경 한 편 포함) 연작 가운데 채소과일상을 묘사한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무역과 금융업을 했던 푸거 가문은 당시 두 선진 무역도시이던 암스테르담과 안트베르펜에서 유행하던 풍속화를 보고와 화가에게 유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캄피는 아파이타티 은행가 가문이 안트베르펜에서 구입해 온 두 네덜란드 풍속화가 –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과 요아힘 베케라르(Joachim Beuckelaer) – 의 ‘네덜란드 사실주의’풍 장터그림과 주방풍경화 소장품을 보고 재해석하여 이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사실주의는 천상에나 있을 법한 완벽한 신(神)과 영웅(英雄) 알레고리와 종교화에서 눈을 돌려 평범한 서민과 일하는 백성들을 그림 속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그림 속의 과일장수가 입은 드레스는 16세기 후반기 유럽의 일하는 여성들이 입던 전형적인 평상복이다. 목이 깊이 파인 흰 마직 상의 위에 노랑색 앞트임 드레스를 입고 허리춤에 녹색 앞치마를 둘렀다. 드레스 어깨띠에 달린 빨강색 리본이 시사하듯 당시 드레스에는 용도와 경우에 따라 소매를 달았다 뗏다 할 수 있었는데, 오늘 이 여인은 민소매 드레스 차림새로 장사를 나왔다. 격식을 차려 치장하기 보단 활동성과 편안함이 우선된 실용적 차림을 해야하는 육체노동을 하는 신분의 여인임을 암시한다.

좀 더 눈여겨 보면 그녀의 차림에는 제법 맵시 부린 구석도 눈에 띈다. 대담한 주름 칼라가 달린 흰색 리넨 상의, 칼라와 소매단에 매칭해 박아넣은 레이스, 녹색 앞치마 자락에 황금실을 모방한 노랑 자수 패턴은 그당시에 유행하던 장식적 디테일이다. 주류 복식사가 지배계층 위주로 기록된 만큼 비지배층 인구의 복식문화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미비하지만, 적어도 캄피의 이 작품은 16세기 알프스 이북의 유럽 농군들의 패션을 통한 자의식 표현, 계급별 옷입기 규칙, 신분 구분 방식에 대한 인문학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과일장수의 등 뒤로 보이는 상상 속의 목가적 풍경을 병풍 삼아 농군들은 수확일로 분주하다. 실제로 16세기 유럽 대륙은 이른바 제1차 농업혁명을 맞아 비약적인 농업생산력 증가와 식량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시골의 귀족 지주와 농민, 도시 신흥중산층 할 것 없이 유럽인들은 드디어 풍년과 흉년을 오가는 기근과 식량부족의 위협과 불안에서 해방됐다. 농민은 신바람나 콧노래를 부르며 유쾌하게 일하고, 지배 계급은 안정된 권력체제와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신흥중산층 상인들은 사업 번성과 부의 축적을 거듭한 그야말로 왕성한 성장과 평화의 시절이었다.

16세기 평범한 유럽인들의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농민들은 과거의 거친 곡물과 콩과채소(legume) 위주의 거친 식생활에서 벗어나 육류와 생선을 구입해 섭취할 수 있게 됐다. 바다와 운하 등 해양교통수단의 발달, 물품 운송의 효율화, 활발한 국제무역으로 다양한 식재료가 거래됐다. 도시와 고을의 요지에는 시장이 들어섰고, 누구나 돈만 주면 원하는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먹거리 분배의 민주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북 이탈리아인들은 거침없는 부의 추구와 물적 풍족은 더 이상 기독교적 죄악이 아니라 현실적 ‘미덕’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아르첸과 베케라르가 그린 네덜란드 장터 풍경화들과는 대조적으로 캄피가 그린 장터 풍경에는 그 어떤 성서적 교훈이나 도덕적 훈계는 찾아볼 수 없다. 국제무역과 금융업으로 신흥상업계층이 무서운 속도로 부를 축적하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사이, 농민들은 채소와 과일 재배법 개선과 농산물 생산력 증가에 더 기여했고 지배층은 자연에 대한 관찰과 식물학 연구에 심취하며 다가올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에 토양을 마련했다. 역사학자들이 근대 유럽의 형성을 논할 때 16세기 유럽 농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다.

피테르 아르첸(Pieter Aertsen), ⟨시장 풍경⟩, 1569, 판넬에 유채, 83.5 cm × 16.95 cm. Hallwyl Museum

*이 글은 본래 농수산식품유통 공사 사내보 『aT』 2020년 3월 호 At the Playground | aT Gallery 칼럼에 실렸던 글의 편집되기 전 원문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