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속에 나타난 하렘 세상

하렘 미술을 통해 본 근동이 간직한 숨은 비밀의 세계!

HAREM – SECRET OF THE ORIENT

서양 화가들에 의해 미화된 신비와 환상 속의 하렘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 『하렘 – 오리엔트의 신비(Harem – Secret of the Orient)』를 소개한다.

haute1005_3이슬람관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 천만리 푹 빠져들 것 같은 푹신한 비단천들로 장식된 실내 공간,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정교하고 절면한 패턴으로 가득한 울긋불긋한 양탄자, 속살을 내보이는 투명한 천 조각으로 알몸을 감씬 채 상아 같이 흰 피부를 살포시 내보이는 젋고 아름다운 여인네들과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오가며 시중을 드는 짙은 피부와 현란한 옷차림의 남자 고위 환관들과 하인들 …. 금남(禁男)의 집이자 술탄 황제가 거느리는 수천 명의 아내와 첩들이 속세의 거친 세계로부터 피해 사는 신비의 궁전, 그리고 술탄과 애첩들과 환관들이 벌이는 권모술수의 미궁이 바로 ‘하렘’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동화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이국주의와 환상의 세계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부일처 가족제도와 개인주의가 일반화된 요즘에 와서 하렘에서 행해지던 일부다처제와 여성 노예들의 감금 생활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신랄하게 질타받을 것이 분명하다.

약 1년 전인 작년 11월 초,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한 거리에서 영화감독 겸 비평가인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가 환한 대낮에 한 젊은 이슬람교 광신자 남성의 손에 살해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 유명한 표현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형 테오 반 고흐의 아들이던 47세의 테오 반 고흐는 이슬람교와 여성억압적 문화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반 이슬람주의자 겸 우익 정당 지지자로서 사회적 물의와 논쟁을 몰고 다닌 논란의 인물이었다.

그가 피살되기 직전, 막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 『복종(Submission)』(2004년 제작)은 정략결혼을 피해서 회교권 북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네덜란드도 도망쳐온 매혹적인 여인이자 반 고흐 감독이 흠모했던 여인 아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가 주연을 맡았다. 강제로 결혼하여 남편과 삼촌으로부터 강간과 폭행을 당하는 한 이슬람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이슬람교에 대한 모욕이라며 전 세계 이슬람 교도들의 원성을 모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요즘은 유럽 어디를 가나 전통 아랍식 차도르와 두건차림을 한 터키 및 여타 아랍국가 여성 이민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오랜 종교적 경쟁 상대인 기독교 공동체와 자유에 기반한 개인주의를 추구한다고 자처하는 유럽 사회 내에서는 아랍권 여성들의 옷차림을 두고 개인의 종교적 자유의 표현이냐 아니면 퇴행적인 이슬람교와 억압된 여성의 상징이냐라는 뜨거운 논쟁을 넘어서 사회문제로 번진 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최근 현대 서양 미술계에서 아랍권 여성들의 정체성과 위상을 주제로 비판적인 의문을 제기해온 이라크 출신의 여성 사진작가 시린 네샷(Shirin Neshat)의 주장도 이슬람교의 여성문제에 관한 한 유럽인들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인도하는 신비와 쾌락의 세계 반면 유럽인들의 뇌리 한구석에는 아랍 여성에 대한 성적 관능과 신비에 대한 동경의식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오리엔트 즉 ‘근동 세계의 신비’라 하면 유럽인들은 우선 하렘의 시비롭고 화려한 실내 분위기와 관능적인 자태의 여성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하렘은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인들 특히 유럽 남성들 사이에서 근동 세계 신비의 절정으로 여겨지곤 했는데, 그 흔적은 18-19세기의 유명한 낭만주의 화가들이 그토록 화폭에 즐겨 담았던 상앗빛 살결의 누드 노예 여인들과 오달리스크상(Odalisques)에서 찾아볼 수 있다.

haute1005_2전통적으로 서양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던 하렘은 호화찬란한 치장, 전 세계에서 데려온 듯 각양각색의 피부색과 미색을 뽐내는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때때로 조심스럽게 주변에 등장하는 흑인 하인들과 내시들이 관능과 신비감을 묘하게 한층 더 고조시키는 환상의 공간이라고 상상되어 왔다.

오늘날에 와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성적 자유를 이룩했다고 하는 구미 서구 사회도 실은 엄격한 규율과 신체적 억압이 심했던 기독교적 사회 제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에 불과했으니 당시 유럽인들에게 하렘의 세계는 억눌려 있던 욕망과 환상이 가능한 별천지라고 여겨졌으리라 짐작이 가고도 남을 만하다.

유럽에서 근동 오리엔트 세계와 그 이국적 매력에 잔뜩 심취해 있던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들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외젠느 들라크르와, 장-레온 제롬 등은 하나같이 하렘의 여성들을 술탄 황제의 명이라면 언제든지 떠받들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는 나른한 시선과 고요하고 잔잔한 성(性)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20세기 서양 근대 미술의 두 거장이자 ‘생의 즐거움(joie de vivre)’을 거침없이 표현하길 즐겼던 피카소와 마티스도 신비와 관능의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렘 여성의 잔잔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빌려 그렸다.

그런가 하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근대기 파리의 화가들은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파리 도시로 잔뜩 모여들었던 프랑스의 매춘 여성들을 하렘의 노예 여성과 오달리스크의 이미지를 빌려서 화폭으로 옮겼는데, 특히 마네의 『올랭피아』는 지금도 끊임없이 미술사에서 여러모로 다양한 시각과 이론에 입각해 해석될 수 있는 의미들을 담고 있는 문제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이웃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독교권 유럽대륙 국가들과 이슬람권 아랍 국가들은 과거 2천 년의 긴 세월을 넘어서 오늘날까지도 종교적, 문화적 갈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돕기 위한 시도록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미 2년 정도 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하렘 판타지와 신여성(Harem Fantasies and the New Scheherazades)』 展이 열렸다. 이 전시는 그동안 서양인들의 상상 속에서 잠자고 있떤 신비와 관능의 하렘의 미이지와는 달리 하렘 속의 여성들의 현실은 매우 다르다며 유럽 사회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하렘의 신화를 일깨웠다.

그런가 하면 과거 수백 년 동안 유럽 남성들의 눈에 비친 신비로운 에로티시즘과 환상의 상징으로서의 이슬람계 여성들의 모습이 서양 미술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왔는가를 고찰해보는 전시가 오스트리아 이더외스터라이히주의 중세 수도 크렘스(Krems)에서 계속되고 있어 미술 관객들은 물론 문화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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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 여성을 위한 천국 아니면 감옥 그렇다면 그토록 서양인과 서양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간딜여온 하렘이란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하렘(harem)이란 본래 아랍어 하람(haram)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하렘은 ‘허용된다’는 의미의 ‘할랄(halal)‘이라는 어휘와 정반대의 의미로 ‘금제된(illicit)’ 즉, ‘종교적 율법이 금하는(forbid) 것’을 뜻한다.

이슬람교의 엄격한 교리와 규율을 중심으로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가족 구조와 권력 관계를 발달시켜온 터키 오토만 제국(Ottoman Empire)과 그를 둘러싼 주변 아랍 세계에서 여성을 남성의 감정과 이성을 교란시키고 방해하는 유혹적인 존재이므로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존재이자 외부 세상에 함부로 노출시켜서는 안될 대상으로 여겨져왔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옷차림과 행동을 통제하고 사적 공간으로 활동 반경을 그토록 제한하는 문화를 제도화한 것도 여기에서 연유했다.

하렘은 무슬림에서 여성들이 모여 사는 구역을 일컫는 말인데,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세랄료 하렘 즉, 옛 터키의 오토만 제국 황제의 궁전 안에 있던 황실 여성 거주 생활 구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신과 다름없는 근접 불가능한 절대적 권위를 누렸던 오토만 제국의 황제 술탄은 정치적인 조언자 역할을 하던 친어머니 발리데 술탄을 위시로하여 술탄이 가장 아끼는 애첩들인 하세키스와 그 외에 그의 명에 따라 침실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반 첩들, 그리고 술탄과 그 모든 첩들 사이에서 태어난 술탄의 딸들인 술타나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가부장 가족 제도의 우두머리였다.

술탄 황제의 신변적 안전과 그를 향한 충성심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가장 능력있는 술탄 후계자 선별을 위한 생물학적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이러한 제도가 필요했으며 한 명의 술탄이 아내와 첩을 많이 거느리는 것은 곧 술탄 황제의 막대한 권력 과시의 수단이기도 했다. 술탄의 시중을 드는 그 모든 수많은 여성들은 술탄 개인의 상대인 만큼 독점적인 소유였기 때문에 그들만을 따로 수용하는 주거시설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렘이다.

기독교 성서에서도 입증된 바 있듯이 ‘금단의 사과’는 더 보기 좋고 맛좋은 법일까. 하렘의 여성들은 술탄은 물론 멀리 유럽까지 이르는 외부 남성들 사이에서도 접근이 불가능한 성적 쾌락의 대상이자 갇힌 하렘 생활에 만족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의 대명사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피 궁전에는 과거 하렘의 여성 노예들과 첩들 그리고 환관들이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된 채 살았던 당신의 광경을 볼 수 있도록 보존해놓았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과거 이슬람 가부장제가 공간의 분리를 통해서 여성들을 통제했는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이슬람 문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럽 남성들 사이에서 뿔리내린 하렘 여성들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는 18세기 초 프랑스 문필가인 장-앙트완느 걀랑이 최초로 번역한 『천일야화』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터키를 비롯한 근동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일야화』는 아랍권에서 이미 12-13세기부터 문자로 전파된 아랍문학의 고전서였지만 그롭터 60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유럽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1804년 아라비아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걀랑의 유럽 초판 『천일야화 』는 내용이나 문체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서였다기 보다는 번역자의 개인적 상상력과 다수 유럽인들이 아랍 문화에 대해 품었던 환상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각색된 판다지에 더 가까웠다.

본래 『천일야화』의 영웅적 여주인공인 세헤라자데와 그녀의 하렘 탈출기 및 해방 이야기를 인용하며 하렘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성적 환락과 쾌락의 천국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복종과 신체적 자유를 억누른 억압의 공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렘에 정착하게 된 그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터키와 아랍권 국가들을 포함해서 독일, 헝가리,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과 같은 유럽권에서 노예로 팔려 온 각지의 미색들이었던 만큼 하렘 여성들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놀라운 방중술을 겸비한 오달리스크 즉, 백인 첩 노예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서양 화가들에 의해서 하렘의 노예들과 첩들은 조용히 길게 누워 있거나 나른하게 서 있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그녀들의 일상생활은 그다지 한가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렘의 여성들은 술탄의 쾌락 시중을 드는 일 말고도 틈틈이 하렘 정원이나 베란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악기 다루는 법을 익히고, 체스 실력을 연마하고, 시를 짓고 낭송하는 등 지적이고 정서적인 훈련을 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양의 한중일의 기생들이 주인과 자리를 고객과 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서 방중술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예기(藝技)를 두루 훈련했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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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양 화가들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하렘 여성들의 모습은 그보다 한결 한가롭고 감미롭다.

술탄의 침실 시중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기는 여성들은 흔히 하늘하늘한 의상에 배꼽을 드러낸 채 하렘춤을 추고나, 물파이프인 후카를 피우거나, 무위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는데, 무엇보다도 서양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장면은 하렘 여성들의 목욕 장면이었을 것이다.

누드의 여성들을 한 화면에 잔뜩 보여주기 위해서는 목욕 장면만큼 안성맞춤인 주제는 또 었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심지어 페링 아이젠후트의 그림 『체벌받기 직전』에 등장하는 여성 노예들은 처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와 안락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거친 외부 세상에 비하면 어느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안락하고 평온할 듯한 하렘도 완벽한 천국은 아니었다. 술탄의 환심과 특혜를 사기 위해 경쟁하고 투기하는 첩들 간의 모략과 난투극은 성 노예들과 애첩들뿐만 아니라 첩첩산중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하렘 내의 남자 환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분명 서양 화가들의 상상 속의 하렘이 현실 속의 하렘보다 아름답고 안락했을 것이다.

하렘 여성들의 생활상과 사회에 관한 일반인들의 계몽된 관심을 자아내는 동시에 서양 화가들에 의해 미화된 신비와 환상 속의 하렘을 경험해볼 수 있는 이번 전시 『하렘 – 오린엔트의 신비 』 전은 오는 11월13일까지 계속된다.

*이 글은 본래 『HAUTE』 지 2005년 10월호 아트뉴스 컬럼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