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과 도미넌트 디자인 사이의 관계

중국 전통 가구가 선사하는 근대적 순수 조형의 아름다움

PURE FORM- THE WAY OF THE CHINESE FURNITURE

디자인 배끼기인가 문화 전파인가?

독일에서는 벌써 올해로 28년째 매년초 2월에 디자인계 최대의 수치스러운 상으로 불리는 플라기아리우스 대상(Plagiarius Award)을 성황리에 거행해 오고 있다. 플라기아리우스 상은 명칭은 본래 라틴어로 ‚납치하다’ 또는 ‚훔치다’라는 의미의 고대 원어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표절’ 또는 ‚도용’이라는 뜻의 영문 어휘 플레이저리즘(plagiarism)에서 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플라기아리우스 상은 기존 업계가 창출한 기발한 혁신과 아이디어를 염치없이 배끼는 업체들을 적발하여 창피를 줌으로써 아이디어의 주인의 문화적 경제적 이득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벌써 십수년째 ‚치욕의 영광’을 대변하는 이 상을 최고 3순위를 휨쓸어 온 단골 수상자들은 중국이 차지해 왔다. 서구 시장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는 기존 제품을 가장 그럴듯 하게 본따서 다른 브랜드명을 달고 대량생산되어 훨씬 싼 가격으로 유통시키고 동시에 이른바 ‚오리지널’ 원제품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짝퉁’과 ‚해적’ 상품들로 서구 제품 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들 때문에 구미 제품 업체들과 경제계는 원성을 높이고 있다.

18세기경 중국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2단식 소선반. Photo: Lorenzo Trento.

동서양, 그보다 오랜 문물 교류의 역사
하지만 고래로 부터 인류 문명을 가능케 했던 문물의 전파(cultural transfer)와 이동(migration)이라는 역사와 문명의 발전 원리를 들여다 본다면 이 골칫거리 표절 행위는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외부 문물을 받아들는 과정에서 널리 행해졌던 문화 발전의 기본 요건이었다.

지금부터 300여년전인 1699년 신년 전야에 프랑스 왕실에서는 다가올 그 이듬해인 1700년도를 ‚중국 축제의 해’라고 지정하고 중국에서 건너온 온갖 진기하고 이국적인 문물을 소개하는 ‚차이나 갈라(China Gala)’ 파티를 열었다. 때는 이미 16세기 부터 페르시아만을 거쳐 개발된 무역로와 급증한 무역거래로 유럽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 아시아의 문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고 있던 참이었다.

호화 장황한 바로크 양식과 왕실과 귀족이 중심이 된 궁정 문화 속에서 계몽주의 철학 사상이 한창 꽃피고 있던 유럽에서 시노아세리(chinoiserie)는 17-18세기 ‚중국풍(China mod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귀족들의 옷차림과 왕실의 실내 장식, 심지어는 살롱 손님들의 대화 주제로 높이 유행했다. 귀족들의 호화방탕한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린 유명한 바로크와 로코코 화가 프랑소아 부셰(Francois Boucher)와 앙트완느 와토(Antoine Watteau)도 중국 건축과 장식예술에서 영감받은 화려한 비단 직물, 타피스트리, 가구, 벽장식이 들어간 풍경화와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 동서양 간의 문화적 교류는 이미 고대 로마와 중국 사이에 형성된 무역 통로인 실크 로드(Silk Road)를 통해서 이루어 졌고, 이어서 16세기에 어떨결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원래는 바다 항해로를 통해서 진기한 금은보배와 비단과 향료가 넘친다는 중국에 도달할 기대로 아시아를 향해 돛을 올렸다지 않는가.

특히 유럽의 대중국 무역 제한이 크게 완화된 17세기부터 중국산 제품들이 유럽으로 물밀듯 수입되어 왔는데, 바로 이 시기를 계기로 해서 중국에서 만들어진 옻칠입힌 진품 목가구품들과 도자기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정교하고 화려한 중국풍 가구와 직물 및 장식품으로 치장된 로코코 시대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15세가 거주하던 베르사이유 궁전 실내 장식 이외에도, 영국의 앤 여왕 의자를 비롯한 중국풍 치펜데일(Chinese Chippendale) 양식 가구,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의 황제복에 장황하게 수놓인 정교한 자수 문양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중국풍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행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피었다 지는 덧없는 것인 법인지라 19세기 중엽이 되자 중국풍은 본토 청나라의 쇄락과 더불어서 어느새 유럽에서 한물간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자리를 대신해 일본풍이 유럽인들의 시각적 영감을 제공해준 원천이 되었는데, 이때 등장한 일본문물에 대한 유행 즉 자포니즘(Japonisme)은 중국 청나라가 기울고 일본 제국이 강제로 유럽에 무역개방을 하게 된 당시의 정치적 정세와도 깊이 맞물려 초래된 결과였다.

19세기 후반부터 갑자기 유럽 곳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공예와 미술의 수준은 예술적으로나 기술적 완성도에서 보나 서양의 그것에 비해도 견줄만 한 우수한 것이며 수공예적 기술적으로도 본받을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매료될 만한 격조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고 여겨졌다. 그 반면, 중국 예술과 공예품들은 일본 공예품에 비해서 질이 떨어지고 예술적으로도 수준이 낮은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엽 유럽 곳곳에서 모더니즘의 전신(展身) 격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나 유겐스틸(Jugendstil) 같은 곡선위주의 여성적인 장식 미술 경향도 바로 자포니즘의 자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류(日流) 열풍은 얼마가지 못하고 양차 대전 사이기가 되자 다시 중국에게 대세를 넘겨 주었는데, 예컨대 거창하고 화려하면서도 절충적인 미술공예 양식인 아르데코 양식(Art Deco)은 중국 황실풍 가구와 실내장식에서 다분히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중국의 명청대 가구에서 영감을 받아서 독일의 가구 디자이너인 하랄트 로트(Harald Roth)가 1958년에 디자인한 ‘만다린(Madarin)’ 책상. Photo: Alexander Laurenzo.

더 나아가서, 서구 예술사에서 가장 전격적인 파격과 혁신의 신세기를 고했다고 평가되는 20세기 모더니즘이 발생하게 된 배후에는 알고보면 중국과 일본을 나눌 것 없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국적 문물 미학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모더니즘이 유럽의 기존 미술 양식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고전주의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양식으로 태어나는데에는 이국적인 외국 문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원시 조각과 일본의 유키요예 같은 판화 미술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예컨대 피카소의 그림이나 조각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거칠고 무시무시한 가면같은 이미지는 아프리카 미술에서, 인상주의와 고갱의 그림에 등장하는 파격적인 구도법과 대담한 색채 감각도 일본풍에서 빌어 온 것이었다.

단순간결한 스타일과 실용성과 견고함을 기초 디자인 철학으로 작업하던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중국의 전통 가구는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고 전해지며, 20세기 모더니즘의 산실인 독일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학교에서도 명청 시대 가구가 지닌 미니멀한 단순미와 뛰어난 수공예 기술을 본받아 그들의 바우하우스 이상과 미학에 반영시켰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유럽은 일찍부터 아주 최근까지 중국의 문물과 디자인에서 영향 받았던 것을 넘어 저작권료도 지불하지 않고 빌려온 셈이 된다.

안타깝게도 중국의 고도로 세련된 가구 디자인 공예와 수공예 정신은 1930년대부터 전세계 가구 생산 공정에 널리 도입되기 시작한 합성 래커로 인해서 중국 전통 가구 본유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상실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그나마의 문화 유산 전통도 다수가 손실되었다. 전제주의를 경험한 국가들(예컨대 러시아, 독일, 캄보디아 등)의 경우가 그렇듯, 중국 또한 공산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자국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파괴했음은 참 아쉽다.

1950년대부터는 뉴욕에서 중국 고급 황실 전통 가구 취급하던 드러먼드(Drummond) 가구점을 비롯해서 서구 유명 박물관들과 개인 소장자들의 손을 거쳐 구입된 소장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도 옛 중국 전통 고가구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는 있다. 그같은 예로 지난 10월 19일부터 독일 뮌헨에 있는 피나코텍 모데른(Pinakothek Moderne) 미술관에서는 최근 유럽을 뒤흔들고 있는 중국의 물결 속에서 중국과 유럽의 문물 교류를 짚어볼 수 있는 전시회 <순수 형태 – 고전 중국 가구(Pure Form – Classical Chinese Furniture)>가 계속되고 있다.

기둥이 6개 있는 닫집식 침대를 앞면에서 본 모습. 16세기말과 17세기초엽 중국 명나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Photo: Lorenzo Trento.

원목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되 목재의 특성과 가구의 기능을 우아하고 조화롭게 승화시킨 명청 시대의 중국 고가구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는 오늘날 미적 감수성과 유행에 민감하다고 자처하는 서구의 현대인들에게 일찌기 중국인들이 개척한 미니멀리즘을 새삼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 학자, 선비, 고관 귀족을 위해 만들어진 가구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고가구들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중국 명청(明淸) 시대의 것들로서 20세기에 와서 서양 모더니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계명으로 삼았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또는 „Less is more.“라는 슬로건을 수 백년을 앞서 예고한 대표작이다. 이미 11-13세기 송宋나라 시대부터 축적되어 온 전통 목공예 기술 덕택에 가능했던 이같은 기술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순한 완결미로 당시 명청 시대 도시 유지들과 갑부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놓고 살던 신분과시용 상징물이기도 했다.

본래 중국 가구 공예는 옻칠을 한 래커 퍼니쳐(lacquer furniture)로 더 일찌기 유명해졌지만 이번 전시에서 대거 전시되고 있는 전시품들은 대체로 지나친 목조각 재간이나 두터운 광택칠을 하지 않은 동남아시아産 경목(hardwood)을 소재로 한 격조높은 가구와 실내용품들이 주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구들에서 엿보이는 남다른 수공적인 특징은 매우 단단한 원목을 통채로 사용하여 일체의 금속못이나 보조적 연결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짜맞춤식으로 조립했다는 점이다. 흑색 옻칠된 상감세공된 가구나 진주 자개 가구가 화려한 장식성을 자랑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고전답습을 거울 삼아 문인 정치를 추구했던 명나라의 유한 계층 가정에서는 종이를 바른 나무 문짝, 비단 드리개, 찬연한 색채를 발하는 양탄자와 의자 덮개, 그리고 진한 자연색을 내뿜는 단조로운 무광택 목재 가구를 비대칭적으로 구성하여 배치하는 실내 장식이 널리 활용되었다.

이후 청나라에 접어 들면서 옻칠된 자개 가구가 재차 유행하기 시작하고 양식적으로도 원기왕성한 분위기를 띠게 되면서 명대에 이룩했던 절제미의 절정에 다소의 변화와 장식을 가하였다. 문인풍 공예를 선호하는 가구 애호가들이 청대 가구보다 명대의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은 바로 단순한 형태 속에 담긴 고결한 정신성의 상징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조들과는 달리 의자와 침대 생활을 했던 중국인들의 실내 환경을 받영하는 길게 누울 수 있는 안락 의자와 가리개식 6기둥식 침대 이외에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이동식 세숫대야 받침대와 초대형 원목을 잘라 이음없이 통판 테이블, 그리고 고관 선비나 학자들의 높은 정신 세계와 학식을 반영이라도 하듯 정갈한 자태의 책장, 선반, 간이 의자, 책상용 장식품은 예나 지금이나 주인의 고고한 학식과 정신성을 반영해 줄만한 정제된 고전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정육면체를 연상시키는 엄격하고 단조로운 형태적 특성 때문에 철학자 의자라고 불리는 이 가구는 18세기 청나라 시대 작품. Photo: Lorenzo Trento.

이 모든 전시품 중에서도 디자인사적 측면에서 유독 관심을 끄는 아이템은 둘말 할 것 없이 ‚모든 가구 디자이너의 영원한 도전거리’라는 별명으로도 통하는 의자가 아닐까 싶다. 가구사 전문가들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중국의 의자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게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이미 당나라 이전부터 의자 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인들은 이집트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등받이가 있거나 없는 엉덩이 좌석 달린 다리4개식 의자와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접개식 걸상 등 2가지 의자를 만들어 썼다. 이 두가지 의자들은 모두 이후 유럽으로 다시 건너가 등을 펴주도록 고안된 팔걸이가 높은 의자라든가 등받이 평평한 모양이 특징적인 영국 앤 여왕풍 의자 등 유럽 의자 디자인에 재차 영향을 주었다.

단순미에 대한 추구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거론된 공통 주제다. 지나친 소유로 부터 벗어나서 해방과 본질적 존재를 일깨워 주는 단순의 미학은 내적인 풍요와 철학적 관조를 선사해 준다. 현대인들은 끊이없이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환경 속에서도 항상 자신의 정신세계와 캐릭터를 미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가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같은 모색은 수백년전 중국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이 『순수 형태 -고전 중국 가구(Pure Form – Classical Chinese Furniture)』전은 뮌헨 피나코텍 모데른 박물관에서 내년 1월6일까지 계속된다. Pinakothek Moderne는 뮌헨 최대의 국립 박물관 단지가 모여있는 바러슈트라세 거리에(Barer Strasse) 위치해 있다. 사진 제공 Photos courtesy | 독일 뮌헨 피나코텍 모데른 미술관 (Pinakothek Moderne, München)

* 이 글은 본래 『오뜨』지 2005년 12월호 아트뉴스 컬럼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