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효하는 1920년대 – 아르데코 건축과 디자인

Art Deco : Post-modern or Zeit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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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부르크-화이트(Margaret Bourke-White)가 1931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로 찍은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사진 © 199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아르데코 열풍 – 포스트모던인가, 시대정신인가? 신비와 우수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Greta Garbo). 이제는 미국 영화사의 전설적인 우상이 되어버린 1920-30년대 헐리우드 은막의 스타 진저 로저스 (Ginger Rogers)와 프레드 에스테어 (Fred Astaire). 지금까지도 마천루의 고향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며 그 자태를 과시하고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과 크라이슬러 빌딩 (Chrysler Building).

멋쟁이 댄디들이 호화로운 레스토랑 바에서 식사 전에 홀짝거리기 좋아하는 마르티니 (Martini) 칵테일. 자욱한 담배 연기 가득한 재즈 바를 그득이 메우고 있는 세련된 차림의 남녀와 그들을 흥겹게 해주는 듀크 엘링튼풍의 스윙 재즈 음악. 파리와 뉴욕을 이은 노르망디 (Normandie) 초호화 유람선 안팎을 장식한 호화찬연한 인테리어 스타일 – 아르데코 미술이 21세기의 현재에 와서도 일반인들의 뇌리에 각인해 놓은 불멸의 아이콘들이다.

새롭게 불어닥치고 있는 아르데코 미술 열풍
 요즘 [2003-5년] 아르데코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흔히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20세기 모더니즘 계열 과 최근들어 업계와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현대 건축 및 디자인 계열의 작품들이 몇몇 유명한 거장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어왔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아르데코 (Art Deco)가 새로운 빛을 받으며 이 분야와 대중들 사이에서 때아닌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데코를 둘러싸고 불어닥친 후끈한 열기는 최근 서구 미술계와 미술 시장가에서도 최근 한 두 해 사이에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같은 결과는 지난 한 두해부터 크리스티 (Christie’s)나 소더비 (Sotheby’s) 같은 국제적인 미술 경매시장과 국제박람회 행사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시작한 아르데코 미술품 매출 성장과 선호도 상승도 한 몫을 하고 있지만, 보다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대형 박물관들이 선보이는 특별전시회를 통해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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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출시된 오번(Auburn) 851 스피드스터 컨버터블(디자인: Gordon Buehrig, 크기: 154.9 x 198.1 x 523.2 cm, 1927.8 kg (61 x 78 x 206 in., 4250 lb.) Michael G. Tillson III Photograph © Michael Furman.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제작년 봄철,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 Albert Museum, London)에서는 사상 최초로 대규모의 『아르데코: 1910-1939』 종합전(2003년 3월 27-7월20일)이 열려서 언론계의 관심은 물론 일반 대중에 대한 아르데코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는데 기여했다.

영국인들에게 아르데코 미학에 새로운 미각을 일깨워준 이 전시는 이어서 2004년 내내 캐나다 온타리오 (Royal Ontario Museum), 미국 샌프란시스코 (California Palace of the Legion of Honor in San Francisco), 그리고 보스턴 (Museum of Fine Arts in Boston, 2004년 8월22일-2005년 1월9일)으로 차례로 옮겨져서 미국의 박물관 관람객들을 잔뜩 매료시겼다. 이 블럭버스터 순회전은 곧 내년초 (2006년)부터 일본으로 옮겨져 아르데코의 열풍적인 행진을 계속할 예정이다.

가장 성공한 글로벌 예술양식 아르데코 미술에 대한 미술계와 대중의 관심은 분명 1930년대말 이 양식이 자취를 감추고 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다. 아르데코 양식이란 무엇이길래 최근 미술시장과 이 시대를 사는 대중 관람객들을 그토록 흥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르데코는 20세기 초엽,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1910년경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까지 약 30년 가까이 동안  전세계로 펼쳐진 가장 글로벌적 예술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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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120 플리트 거리 (120 Fleet Street) 상에 위치한 데일리 익스프레스 신문사 건물은 1932년에 설계된 영국에서 가장 아르데코 다운 건축디자인의 예다.

헌데 아르데코 양식을 미학적인 측면에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여간 난감한 면이 없질 않다. 제작년 런던 빅토니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개관한 『아르데코:1910-1939』 종합전을 보고난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紙의 미술 평론가 브라이언 시웰도 ‚아르데코 양식을 정의한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나비 십 여마리를 핀 하나로 뚫어 고정하려드는 격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만큼 아르데코 양식은 일목요연하고 간략한 단어와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복잡다채롭기도 하고 또 일관성이 부족한 두리뭉실한 양식임을 의미한다.

파리를 출발로 유럽과 대서양 건너 미국, 중남미 멕시코, 중국 샹하이와 일본을 아우르며 돈많은 부유층부터 중산층 가정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시각 유행을 폭넓게 장악한 초막강의 국제 양식으로 출발했지만 곧 인류 디자인의 역사에서 가장 폭넓게 대중적 인기를 독차지했던 말하자면 가장 ‚민주적’인 디자인 양식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아르데코’라는 명칭이 처음 도래한 계기는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장식 미술 박람회 (Exposition des Arts Decoratifs)였다. 장식미술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아르 데코라티프 (Arts Decoratifs)’ 두 단어 앞자를 하나씩 따서 조합한 단어 아르데코 (Art Deco)를 미술 양식의 정식 명칭으로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60년대에나 와서였다. 아르데코는 20세기 전반을 통틀어서 최고의 폭넓은 대중적 인기와 보편성을 발휘한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가들에 의해서 한낱 깊이없고 절충적인 장식예술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다.

21세기로 회귀한 아르데코
 그렇다면 그런 아르데코가 요즘에 와서 유독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목을 독차지 하게 된 그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아, 호화, 이국성, 쾌락, 글래머 – 아르데코는 과거 1920-30년대에 맴돌던 오묘한 분위기와 감춰진 시대적 욕망을 영감으로 삼고서, 그로부터 근 100년이 흐른 오늘날 21세기라는 새옷으로 갈아입고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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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데코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 타마라 렘피카의 작품 『녹색 차림을 한 여인 (Jeune fille en vert)』 1927년경작.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Image © Kizette Foxhall – Licensed by Victoria de Lempicka/MMI. Photo courtesy of MMI, NYC.

아르데코가 처음 그 발아의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때는 1910년대경. 유럽의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바로 직전 격동기였다. 때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운동과 마티스의 야수주의 등을 비롯해서 철학적 사조(史潮)와 신근대적 사상(思想)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술 운동이 실험되고 있던 사상과 사조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아르데코는 여성에게 봉사하는 예술 양식 그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들떠있던 아르데코는 이른바 ‚포효하는 1920년대 (The Roaring Twenties)’에 접어들어서 부터야 비로소 ‚플래퍼(flapper)’로 불리는 신여성의 등장과 더불어 본격적인 대중적 유행의 대열에 끼어 들었다.

지금도 아르데코의 가장 상징적인 여성상의 전형은 플래퍼다. 플래퍼로 불린 여성들은 짧은 삼고 단발머리 스타일을 하고 말괄량이처럼 행동함으로써 여성스러움과 복종적 태도가 요구되던 전통적인 전근대적 가부장적 제도를 전격 거부하며 갇힌 가정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

예컨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여성인 여류화가 나혜석과 과거 교복시대에 여학생들의 헤어스타일을 장악했던 귀밑 길이의 단발머리도 바로 아르데코 시대의 플래퍼들이 근대기 일본을 통해서 우리 문화에 까지 남긴 유산중 하나였다. 일부 용감한 근대기 신여성은 남장을 하고 외출해 카페나 바 같은 공공 장소를 맘대로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고 칵테일을 마시며 사교활동을 만끽했다.

예컨대, 최근 아르데코풍 화가의 대명사로 떠오른 여류 화가 타마라 데 렘피카 (Tamara de Lempicka)는 그같은 신여성 사상과 실천을 온몸으로 실천한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으며, 그녀의 그림에는 남장을 한 여성이나 남성처럼 굵은 목덜미와 강인한 체격을 한 덩치 큰 여성들이 즐겨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흔히들 아르누보 (Art Nouveau) 는 여성적이지만, 아르데코는 남성적이라고 손쉽게 정의하곤 한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파리에서 등장한 자연적 모티프 및 유기적인 곡선 위주의 아르누보 운동과는 대조적이게, 아르데코는 직선을 위주로 생동감, 스피드, 유선형 (streamline)이 강조된 디자인이 주를 이루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7394resize아르데코는 남성적이라고 정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예술 유행양식이었다 해야 더 옳다. 특히 아르데코가 여성의 자유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게 된 진짜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전쟁과 징병으로 인해 남성 인구가 줄어듦자 자연히 과거 집안에 있던 여성의 사회참여가 중요해졌다.

전쟁은 여성들의 패션에도 영향을 끼쳤다. 군복용으로 쓰일 강한 소재의 직물이 군용 조달로 모조리 보내져 물량이 쪼들리자 어쩔수 없이 여성들은 실크, 레이욘, 무슬린 같이 얇고 하늘하늘한 대체 직물 소재를 패션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같은 패션 트렌드에 맞춰 티파니 같은 귀금속상은 보석류 대신 섬세한 의상에 어울리는 가벼우면서도 강한 플래티넘 같은 희귀금속 소재를 적극 도입해 장신구를 디자인해 유행시켰다.

레저, 글래머, 럭셔리, 낙관주의 – 아르데코는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 오늘날 20세기 디자인 문화사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국제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는 아르데코 양식은 본디 유럽의 몰락해가는 구체제 귀족 후예들과 신흥 최고부유층들이 독점한 계급특권적이고 배타적인 엘리트주의 양식으로 출발했다. 아르데코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부유하고 지위높은 남녀들의 자유연애, 고급 술과 음식이 분수처럼 흐르는 사교 파티, 화려하고 번질거리는 고급 인테리어와 악세서리가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아르데코 유행의 주 애호가와 소비자는 여성들이었다. 신여성들은 자신이 상류부유층에 속하든 평범한 소시민 계층에 속하든 상관없이 화려하고 우아하며 쾌락적인 생활에 대한 집단적인 동경심을 맘속에 키우며 저마다 추구했다. 그런가하면 여성들 사이에서는 무성흑백영화에서 음행과 총천연색이 입혀진 헐리우드 시네마에 몰입하며 영화 속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판타시와 감상주의가 활개를 쳤다.

파리에서 코코 샤넬 (Coco Chanel)과 엘사 스키아파렐리 (Elsa Schiaparelli) 같은 오뜨꾸뛰르 패션 디자이너들은 뇌살적인 에로티즘을 자아내는 데카당트 (decadent)한 여성미를 추구했다. 근대의 남성들은 나날이 커져가는 여성들의 자아의식과 그에 못지 않게 당당하고 화려함에 경탄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느끼며 혼란스러워 했고, 이 시대의 불안감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으로 해명하려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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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알베르 라토 (Armand-Albert Rateau)가 디자인한 파리 바르베-드-주아 저택의 거실 실내 장식.

아르데코가 가장 잘 구현된 예를 들라고 한다면 인류 선박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람선으로 꼽히는 노르망디 호를 꼽는다. 1935년 처녀 항해로 파리 출항해 뉴욕에 입항 예정이던 초호화 대서양 횡단 유람선인 노르망디 호는 1925년 파리 국제 장식미술 박람회서 떠오른 아르데코의 수퍼스타 디자이너들의 최고 기량을 모조리 한 자리에 구현한 아르데코 양식의 결정판이었다.

목가구 디자인의 명인 룰만을 비롯해서 유리 장식은 르네 랄리크 (René Lalique – 오늘날 랄리크 (Lalique) 유리명품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실내 벽장식용 그림은 아르데코 화가 쟝 뒤파 (Jean Dupas)와 쟝 뒤낭 (Jean Dunand)이 담당했다.

극도의 호화와 화려의 뒤안길은 그 절정의 높이 만큼 심연의 무(無)로 사라지는 기구한 것이 만물만사의 이치던가. 노르망디호는 제2차 대전 동안 뉴욕 항구에 묶여 있다가 군함으로 개조공사되던 중 폭파사고로 산산조각나는 극적이고도 안타까운 운명을 맞고 끝내 소실되고 말아 오늘날에는 제모습을 다시 볼 길이 없다.

아르데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감적 원천 
아르누보의 정신은 비슷한 시대에 유럽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여타 주의와 사조들에 비하면 유독 더 남성적이지도 교조적이지도 않았다. 다른 예술 사조들이 선언문, 이념적 원리원칙과 도그마를 중심으로 발족∙운영되었던 반면, 아르데코는 어떤 특정의 조직화된 예술운동 세력도 아니었으며 체계적인 이념적 원칙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아르데코 양식은 절충적이다. 아르데코 양식을 한마디로 정연하게 정의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모더니즘과 아르데코는 동시대에 나란히 전개되던 시대적 트렌드였지만 서로를 등한시했다.

특히 모더니즘은 아르데코를 가리켜서 눈뜨고 봐줄수 없이 경박하며 앞뒤가릴줄 모르는 자기방종이라고 비난했다. 아르데코는 사람들이 쉽게 좋아하는 요소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자기것으로 취해 사용했지만 그 배경에는 아무런 내용 (substance)이나 본질 (essence)이 없이 텅빈 양식들의 표면적인 취합이었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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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크-에밀 륄만 (Jacques-Emile Ruhlmann)이 1919-23년경 디자인한 연꽃 경대 (Lotus dressing table) Victoria & Albert Museum, London © 2004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가장 ‚전통주의적인’ 아르데코 디자이너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쟈크-에밀 륄만의 18-19세기 귀족풍 가구 디자인은 바로 그같은 단적인 예이다. 그는 지독하게 희귀하기로 자자했던 에보니 흑목, 상아, 크롬 금속재, 거북이 등껍질 등 희소가치를 이유로 상류층 고객들이 선호하던 재료들만을 골라서 절묘한 가구들을 만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20년대에 파리의 최상위층 후원자들을 상대로 호화 가구 디자인 디자인을 맡았던 쟈크-에밀 룰만 (Jacques-Emile Ruhlmann)의 초호화판 실내장식용 목재 가구품들은 1925년도 파리 세계 장식미술 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된 이래 지금까지도 국제 미술품 경매장에서 작품당 수십만달러 대로 낙찰되어 나갈만큼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아르데코는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을 수반하는 모든 사상을 거부하고 과거 다양한 시대와 양식으로부터 추출한 여러 요소들을 뽑아 버무린 양식이라는 점에서 20세기 후반기 건축・디자인계를 강타했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론과 기법 면에서 유사하다.

아르데코 애호가들은 20세기초 건축과 디자인을 평정하다시피 한 모더니즘 세력을 아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더니즘이 불어제치던 이념적인 과격성과 관념적 난해성에 쉽게 동감하지 않았지만 시대적인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장식적 요소를 일체 제거하고 제품의 기능성만을 강조할 것을 설파한 모더니즘 미학을 그다지 달가와 않았던 아르데코 애호가들은 형태는 단순하게 유지하되 호사스럽고 이국적인 소재를 사용한다든가 부분적인 디테일 장식을 넣는 식으로 우회함으로써 모더니즘 시대 양식적 대세와 호사스런 장식성을 좋아하는 깊숙한 욕구를 적절하게 화해시켜 모더니즘 對 전통주의 간의 갈등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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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디자이너 클래리스 클리프(Clarice Cliff)가 1929-30년경 디자인한 햇살 꽃병 (Sunray vase), Manufactured by Arthur J. Wilkinson Ltd, Burslem, Victoria & Albert Museum, London.

포효하는 1920년대 (The Roaring 20s) 아르데코풍 스타일은 상류층 트렌드세터들의 선두적인 취향은 얼마 안가서 중산층과 일반 대중 사이에서 널리 추종하는 표본적인 모델이 되어 선망되받았다. 특히 1930년대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는 유리와 강철을 이용한 대형 건축물들과 유선형에 매끈한 재질을 소재로 대량생산된 일상용품들이 상품시장을 강타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 전성대를 맞았다.

193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르데코풍 건축물들도 별다른 신조나 사명감 같은 배경 의식 없이 속속 건설되기 시작했다. 뉴욕의 명물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포함한 당시 아르테코 건축물들은 대체로 재료면에서는 유리, 강철, 철근, 콘크리트 등을 사용해서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보듯 매끄럽고 번쩍거리는 표면 광채 효과를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았다.

모더니즘 건축과는 대조적으로 아르테코 건축물들은 대체적으로 유명한 개인 건축가들이 아닌 무명의 건설 엔지니어들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서 오늘날 건축 역사에서는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묘한 파생 건축 양식이 탄생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예나지금이나 아르데코 건축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도시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초고층 현대식 고층빌딩 스타일이 널리 일반화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1920-30년대 아르데코풍 도회 건축은 지금까지도 강력한 매력과 영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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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자이너 노먼 벨 게데스 (Norman Bel Geddes)가 1937년 디자인한 맨해튼 칵테일 세트 (Manhattan cocktail set)는 놋쇠에 크롬도금해 제작했다. Manufactured by Revere Copper & Brass Company, Rome,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John C. Waddell Collection, Gift of John C. Waddell, 1998. Photography © 2000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아르데코 시대는 상상만 해도 어딘가 모르게 화려하고 흥겹고 낙원같은 시대로 보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번 『아르데코』 전을 통해서 공개된 작품들을 보면 아르데코 시대는 매일밤 재즈 음악이 흐르는 캬바레에서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칵테일을 나눠 마시며 희희낙낙하는 화려한 시대였으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포효하는 1920년대’에 이어서 뉴욕 증권가과 전세계 경제를 암흑기로 몰아넣은 ‚배고픈 1930년대’ 대공황기가 계속되던 아르데코 시대에는 제2차 대전을 앞둔채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적 곤경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그같은 당시 현실 속에서 아르데코 양식이 건축, 패션, 디자인을 통해서 반영한 호화로움은 공허한 도피의식과 가식이었을까 아니면 조건없는 낙관주의였을까?

* 이 글은 본래 LG화학 발행 『공간사랑』 지 2005년 1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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