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새 화랑가

Berlin Art Scene

베를린 현대 미술의 미래가 숨쉬고 있는 곳 – 베를린 미테 화랑가

요즘 미술계 동향을 좀 아는 사람한테 오늘날 독일에서 현대 미술의 중심이 어디냐고 물으면 베를린에 가보라고 할 것이다. 1989년 동서독의 통일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나서 지난 199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베를린은 독일의 새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베를린의 현대 미술 화랑가는 옛 동베를린이 있던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베를린-미테 Berlin-Mitte (‚미테’는 중심이라는 뜻)로 불리는 이 구역은 동서독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동베를린 소속이다가 베를린의 새 미술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그 보다 이전인 19세기에는 가난한 베를린 시민들이나 유태인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던 보잘것 없는 빈민 거주 구역에 불과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마자 하케셴 마르크트 (Hackeschen Markt) 재래시장에는 러시아에서 온 암거래 상인들이 어슬렁거리는 풍경만이 을씨년스러웠다.

augustrasse
현대 미술의 중심지 베를린 미테 구역의 아우구스트스트라쎄 거리 Photo: Stella Hoepner-Filies.

‚언제나 건설중인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베를린은 2차대전 종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하나의 독일이 동과 서로 분열된채 갈등하던 정치적 회색 지대였다. 유럽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뚜렷한 4계절 기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회색 하늘 아래 지금도 도시 여기저기에 잔존하는 고풍스런운 역사적 건축물들과 현대식 첨단 건축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들어차 있는 수도 베를린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현대 미술계에 새로 데뷔한 미술의 중심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싼 이 지역의 지가 때문에 옛 서독 지방과 서베를린에 있던 사설 화랑들이 속속 이곳 베를린-미테로 이주해 오거나 새 화랑들이 문을 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젊은 미술인들도 임대료와 생활비가 여타 미술 중심 도시에 비해서 저렴하고 화랑이 모여 있다는 입지 조건 때문에 이곳 베를린-미테로 속속 뒤따라 이사를 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미술인들 말고도 유럽 다른 나라와 미국을 뒤로 하고 베를린으로 이주해 와 활동하는 신세대 미술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을 이 동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마주치는 일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에 뉴욕, 영국에 런던이 있다면 독일에는 베를린이 있다고 떵떵댈만큼 베를린은 국제적인 미술의 중심 도시임을 자부한다. 특히 아우구스트스트라세 거리(Auguststrasse)는 현대 미술계에서 이미 궤도에 오른 기성 유명 미술인이나 미술계 스타를 꿈구는 미술가 지망생 할 것없이 한 번쯤은 포트폴리오를 선보이기 위해 혹은 다른 미술가들의 전시회를 구경하러 오가게 되는 꿈의 거리이다.

베를린 화랑업계의 전설적인 인물 게르트 해리 륍케 (Gerd Harry Luebke – 최근 초호가를 누리고 있는 동독 출신 화가 네오 라우흐를 발굴한 인물)가 운영하는 갤러리 아이겐+아트 (Galerie EIGEN+ART)는 본래 1980년대초에 옛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운영해 오던 같은 이름의 화랑의 분신이다. 영국의 개념주의 미술을 즐겨 다루며 후원하는 쉬퍼 & 크로메 갤러리 (Galerie Schipper & Krome), 영국 팝아트와 독일출신의 거물급 화가 알렉스 카츠를 대표하는 바바라 툼 갤러리 (Galerie Barbara Thumm) 등은 국제급 해외 미술과 독일의 미술이 한자리에 만나는 곳이다.

급박하게 변화하는 사설 현대 미술 화랑들의 숨가쁜 행진에서 잠시 물러서서 베를린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품들이나 논리정연하게 기획된 특별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직물업계의 갑부인 에리카와 롤프 호프만 부부가 설립한 잠룽 호프만  (Sammlung Hoffmann) 현대 미술 컬렉션은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지그마르 폴케 (Sigmar Polke),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등 독일과 미국의 대표적 거물급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잠룽 호프만이 있는 건물 아래층에는 갤러리 컨템포러리 파인 아츠 (Galerie Contemporary Fine Arts)는 고급 주택가가 모여 있는 샬로텐부르크  (Charlottenburg)에서 이곳 미테로 이전해 온 현대 미술 전시장이다.

베를린-미테 말고도 지금은 터어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크로이츠베르크 (Kreuzberg) 구역 사이에 위치한 침머스트라세 (Zimmerstrasse) 거리도 90년대 중엽부터 사설 화랑들이 속속 들어차 있는 거리이다. 쾰른에서 온 국제 현대미술 전문 화랑 막스 헤츨 갤러리 (Galerie Max Hetzel), 뉴욕 첼시 화랑가와 베를린을 오가며 분주하게 운영되는 디일 갤러리 (Galerie Diehl), 대대로 내려오는 화랑 가문이 운영하는 콜로스터펠데 갤러리 (Galerie Klosterfelde)도 베를린 현대 미술를 이끄는 주요 플레이어들이다.

하루해가 저물고 해가 뉘엿뉘엿해 지는 저녁 시간 6시 이후 경이면 베를린-미테 구역에서는 거의 매일 화랑과 전시장 여기저기서 전시 오프닝 파티가 열린다. 그러나 어느 화랑에 가나 어쩔수 없이 화랑에서 전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작가의 수 보다는 다른 작가의 전시회에 가서 남들이 어떤 작품을 하는지 확인하며 자신의 네트워킹 기회를 잡으러 가는 무명 작가들의 수가 훨씬 많다. 오늘도 꿈을 잔뜩 안고 재능을 펼쳐 보이고 싶은 열망에 찬 미술인들은 베를린-미테 화랑가를 오가고 있다.

* 이 글은 본래 NOBLESSE 2005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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