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추상미술의 근원은?

서평

『미술과 우상: 우상숭배, 우상파괴, 유태인 미술』의 역자 후기 중에서

유태인 미술 – 분명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서구의 일반인과 미술 연구자들에게도 퍽 생소한 미술 개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유태인 민족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우 유태인 미술은 차치하고라도 유태민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지극히 부족하다.

다만,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성서를 통해서 유태 종교 및 그 신자인 유태인 민족의 역사와 자신들과의 신앙적 차이점을 익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의『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샤일록처럼 유태인이 등장하는 여러 서양 고전문학 작품들에서는 곧잘 유태인은 이재에 머리가 밝지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교활한 근성을 지닌 민족으로 묘사됨으로써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품성좋은 기독교 유럽인에 대한 상대적 전형으로 제시되곤 했다.

유태인 미술이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을 뜻할까? 이 책의 저자인 앤소니 줄리어스가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유태 민족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성서 십계명 제2조항을 원칙으로 삼아 미술 행위를 철저히 금하였다. 근대기 이전기까지 기독교 유럽 세계에서 유태인 출신의 미술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근ㆍ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유태 민족이 거쳤던 박해와 이산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또 종교 예배를 위한 수공예 기술 이상의 그 어떤 미술 창작 활동을 금했던 유대교 교리를 주지해 볼 때, 저자의 ‚유태인 미술’ 범주 선언은 자의적인 구석이 느껴지는 데가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유태민족은 유태적 미술이라고 칭할 만한 미술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특성과 재능을 시각예술로 승화한 유태인 고유의 미술을 구축해야 한다“고 저자 줄리어스는 주장한다.

한편 서구 20세기 근ㆍ현대 미술계서 유태인들의 활동은 전에 없이 활발했다. 특히 19-20세기 전환기부터 부르주아 및 사회 상류층 유태인들은 미술 후원가로도 큰 활약을 하며 신시대 미적 취향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빈 모더니즘기의 대표적인 화가인 클림트(Gustav Klimt),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실레(Egon Schiele)는 알마 말러-베르펠(Alma Mahler-Werfel),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 데이지 헬만(Daisy Hellman) 같은 오트-부르조아지 유태인 여성후원자들의 주문과 재정 후원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명화들을 완성했다.

그런가 하면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빈에서 살면서 화가 지망생이던 청년시절 히틀러는 한 유태인 교수가 퇴짜를 놓아 미술학교 진학시험에 낙방한 이후로 유태계 이민자들이 사회 곳곳의 요직과 창작업에 포진해 있음을 발견하고 유태인에 대한 혐오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히틀러를 포함한 빈 근대 세기전환기의 보수 카톨릭과 우익 정치 세력이 빈 근대미술을 퇴폐미술(degenerate art)로 낙인하고 체계적인 파괴와 압수를 자행했던 것도 유태인들이 근대기 퇴폐미술을 조장하고 장려했다고 여겼던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제 3제국 정권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유태인 문화계 종사자들이 영국과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그로 인해 런던과 특히 뉴욕의 문화계가 살찌워진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 이후 미술계 중심축이 유럽에서 뉴욕으로 이동해 갔으며 그 후로 전에 없이 많은 수의 유태인 출신 미술가들이 탄생해 근ㆍ현대 미술사의 대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 유태인 옹호주의자들과 유태인 혐오자들이 한데 입을 모아 특히 20세기 추상 미술은 근본적으로 유태인 미학이라고 주장했던 것도 바로 그 같은 전례 없는 현상을 해명하려던 시도였다.

이 책에서 저자 줄리어스 역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20세기 미술에서 유태인 미술가의 범람 현상을 그 같은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태계 근ㆍ현대 미술가들은 유태인 미학이 아닌 기독교 문화에 철저히 동화된 개인들로서 기독교적 미학 원리에 입각한 미술을 창조했을 뿐이며 따라서 20세기 미술은 전혀 유태인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줄리어스의 그 같은 입장은 위대한 유태계 미술사학자인 고(故) 에른스트 곰브리히(Ernst Gombrich) 경의 시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19-20세기 전환기에 비엔나 정치문화사 분야의 개척자인 역사학자 칼 쇼스케(Carl E. Schorske)는 이미 1960년대에 “동유럽에서 이민 온 유태 민족은 오스트리아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으로서 가톨릭교로 개종하고 유럽 문화로 개화했다.“고 쓴 바 있다. 이어 1990년대에 스티븐 벨러(Steven Beller)는 특히 비엔나 모더니즘을 주도한 과학자, 철학자, 문장가 및 대문호, 작곡가, 문화계 후원자들이 유태인 후손들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세기 전환기의 비엔나 문화는 유태인적 취향을 반영한 사실상 유태인 문화“였다고 했다.

이에 반박해 1996년 11월, 런던 오스트리아 문화원 주최 오스트리아-유태인 문화 페스티벌에서 ’1900년대경 비엔나와 유태인 문화의 연관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곰브리히 경은 “비엔나를 포함하여 유럽에 흩어진 유태인들은 배경 국가의 종교와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유럽인들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창조하고 후원한 미술은 유럽 미술이지 유태인 미술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유태민족과 그들의 정체성 문제는 이산과 박해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이며 미술 분야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 앤소니 줄리어스의 본 저서는 기존의 미술사에서 유태인 미술을 발굴하고 기존 미술 작품을 통해서 유태인 미술을 정의하고 규정하지 않는다.

julius_t&h그 대신 그는 유대교와 그로부터 추출한 정신과 사고방식을 시각예술로 전환시킨 유태인 고유의 미술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유럽 문화에 완전 동화된 영국계 유태인 후손의 시각과 변호사 다운 탄탄한 논리전개 방식 및 언변력과 미술사적 통찰력은 흥미로운 책 읽기 경험을 선사하리라고 믿는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결코 쉽지 않은 국내 미술 전문 출판업의 환경에서도 역자에게 본 저서를 번역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역자의 번역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시고 수 차례의 고된 편집을 책임져 주신 박은영 편집자님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2003년 여름 빈에서 박진아.

필자 앤소니 줄리어스(Anthony Julius)는 영국계 유태인으로 미술문화 전반에 대한 활발한 저술 및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직 변호사로 현재는 런던 소재 법률사무소 미쉬콘 데 레야에서 명예훼손 및 상업위반법 전문 변호인으로 일하고 있다. 고(故) 다이애너 비의 이혼소송 건과 홀로코스트 부정자 데이비드 어빙을 상대로 한 립스타트 교수와 펭귄 출판사 간의 명예훼손 건을 책임져 영국 법조계의 스타 변호사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영국 유명 일간지『가디언』(The Guardian) 등을 통해서 유태민족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문제와 관련한 기고활동도 겸하고 있다. 본 저서 『유태인 미술과 우상숭배』(Idolizing Pictures : Idolatry, Iconoclasm and Jewish Art, 2000) 외에도, 최근 20세기에 걸쳐  전통미술의 규범과 관객의 상식에 도전한 전복적인 미술을 정의하고 이를 분석한 책 『발칙한 미술』(Transgression: The Offences of Art, 2002)을 출간해 사회문화적으로 터부시되는 주제를 미술과 연관시켜 분석하는 미술평론가 겸 이론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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