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도미술 시장 다이제스트

INDIAN ART NOW

인도 현대미술의 오늘과 내일

영원한 사랑과 로맨스의 아이콘 타지 마할. 대영제국으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킨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현대 인도 대중문화 현상이 된 발리우드 시네마 – 인도 하면 떠오르는 몇몇 대표적 전형 말고도 인도의 문화적 위상 증진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현대미술이다.

이미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온지 오래된 일본미술, 최근 십 여년 동안 경제 급성장과 함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이어서 인도의 현대미술은 요즘 구미권 컬렉터들 사이에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유망한 투자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 현대미술을 향해 강렬히 쏟아지는 국제 미술시장의 주목은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 성장국들의 일원으로 급성장한 경제력의 덕도 힘입은 때문이다.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2006년 작. Stainless steel
1066.8 x 1066.8 cm. 
Photo ©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블루칩 미술품은 이제 주식이나 채권에 버금가는 자산으로 인정받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투자 품목이기도 하지만 컬렉터의 남다른 감식안을 우아하게 뽐낼 수 있는 문화적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구미권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크리스티스나 소더비의 동남아시아 미술 경매 결과를 눈여겨 보도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 런던 프리즈 등 간판급 국제 현대미술 박람회에서는 최근 주가 높은 현대미술가들을 홍보하며 컬렉터들을 유혹한다. 예컨대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은 서구적인 감각과 최첨단 매체로 인도의 현모습을 조명하는 전략으로 구미 미술시장을 공략하며 한껏 주가를 높이는 작가들이다.

최근 몇 해에 걸쳐 크리스티스 경매소는 인도 현대미술 영역에서 최고의 경매실적을 올려왔고, 그 뒤를 소더비 경매소가 뒤따르고 있다. 2000년 인도 뭄바이 본사에서 창립된 후 현재 뉴욕, 런던, 델리 등 4도시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사프론아트(Saffronart)는 인증된 고급 인도 미술과 공예품을 인터넷상에서 거래하는 최대 규모의 온라인 경매소 겸 딜러로 유명하다. 사프론아트는 가장 최근인 9월말 가을철 정기 경매에서 원로 화가인 티옙 메타(Tyeb Mehta)의 회화작품을 미화 1백5십6만5천 달러(우리돈 약 18억5천여만 원)에 낙찰시켜 2008년 국제금융난 후로 잠시 침체되어 있던 인도미술 시장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다.

라빈더 레디(Ravinder Reddy) 
 1995-96년 작. 
Fiber glass, gold leaf, paint 
61 x 86,4 x 111,8 cm.
 Lekha and Anupam Poddar Collection 소장품. Photo courtesy: Daimelr Art Collection.

막불 피다 후사인(Maqbool Fida Husain)은 인도 근현대 미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국가대표급 원로 화가다. 1915년 생인 후사인은 일명 ‘인도의 피카소’ 또는 ‘인도의 워홀’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20세기 인도 미술계를 목도하며 70평생 활동한 다작가였다. 본래 영화극장 간판과 포스터를 그리던 간판쟁이 일을 하던중 미술의 세계로 입문한 그는 말년에 힌두교 다신들을 누드로 그렸다하여 과격 힌두교 신자들로부터 쫏겨 해외 망명생활을 하다가 올해 6월 런던에서 작고했다.

그렇다고 인도 미술가들이 후사인의 뒤를 이어 신성모독이나 사회적 터부에 도전하는 도발적 미술을 추구하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인도 미술가들은 주로 인도인들의 일상 풍속을 담은 풍경화나 역사적·종교적 사건을 다룬 기록성 강한 역사화를 주로 그려왔다.

그런 이유로 전세계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인도미술은 대체로 신비롭고 사색적인 미술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풍 구상화를 그린 시예드 하이더 라자(Syed Haider Raza), 인도 토속풍경을 그린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는 후사인과 더불어 인도 근대 미술계의 삼대구도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블루칩 원로 화가들이다.

21세기 현재, 인도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30-40대 미술인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창조적 화두이자 쟁점은 다름아닌 글로벌리즘(Globalism)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글로벌화의 물결을 타고, 인도는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 고속도로와 신도로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인간무리와 교통수단, 새로운 물적풍요와 그 뒤안길에 서려있는 수선스러움과 허탈감 – 글로벌화라는 열병에 들떠있는 오늘날 인도의 풍경은 급속한 산업화를 겪은 아시아인에게 보편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면이 있다.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2007-2008년 작. C-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Frith Street Gallery, London. 2008 © Dayanita Singh.

현대 인도 미술인들은 인도적 향취가 짙은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매체나 기법 면에서는 서구의 현대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젊은 세대 인도미술가들은 과거 선배 화가들이 갇혀있던 전통적 회화나 조각에서 벗어나서 초대형 설치, 멀티-스크린 비디오, 대규모로 확대한 총천연색 디지틀 사진,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결합한 혼합매체 등 매체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표현 방식을 구사한다. 구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복잡해진 글로벌 사회를 보다 절실히 표현하는데에 최첨단 시각매체가 더 유용하기 때문일테다.

주제 면에서도 나태한 컨셉츄얼 미술이나 가벼운 세태풍자나 논평에 안주하지 않는다. 최근 주목받는 현대 인도의 미술인들은 언뜻보기엔 전형적이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지언정 현대화 과정 속에서 인도인들이 경험하는 종교적, 경제적, 일상적인 혼돈과 갈등을 진지한 어조로 다루며 사색적 무게를 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예컨대 ‘인도의 데미언 허스트’라고 불리며 인도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는 광채가 화려한 일상용품을 활용한 대형 설치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경매장의 귀염둥이로 자리잡은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은 대형 사진작품을 통해서 빛과 초고속 스피드로 전율하며 변화·갈등하는 인도의 겉모습과 인간상을 포착한다.

또 그런가하면 한결 정치적·종교적 운을 띤 작품을 하는 작가들도 눈에 띄는데, 특히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인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는 멀티스크린 비디오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힌두교대 회교 사이 종교적 갈등을 다뤄 구미권에서 무게있는 작가로써 평가받고 있다.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 <수하물 찾기(Baggage Claim)> 2010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릭. Courtesy: Arndt Gallery, Berlin.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한 인도의 현대미술은 과연 창조성과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자칫 인도 미술은 몇몇 한정된 수의 미술인들이 서구 미술 시장에 의해 작위적으로 선정돼 ‘인도 브랜드’ 창출로 치중되는 아닐까? 장기적으로 예술적 생명력과 내공을 발휘하며 미술사에 남을 작가는 누구일까? – 이 모든 의문점은 역사의 시험대에 서있는 현대미술가라면 누구나 당면한 숙제일뿐 인도 미술 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의 현대 미술은 인도의 역동적인 경제성장 만큼이나 계속 진행중인 흥미로운 문화 프로젝트다.

국가는 경제가 번성하면 그에 준하는 미술이라는 유형 자산(tangible asset)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인도 현대미술이 구미 미술시장에서 관심을 끌게 된 배후에는 인도 산업계 갑부들과 30-50대전문직 중상층 해외파 인도인들이 주도된 미술 수집 트렌드 한 몫을 한다고 새프란아트는 집계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정신적 영혼적 풍요로움을 가장 잘 버무려 표현해 주는 재산 목록으로써 미술품만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경제력이 커지면 문화의 위력도 그에 비례해 커지는 것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지 2011년 11/12월호 (제17호) 188-189쪽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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