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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행복의 건축

Lelé – Architect of Health and Happiness

브라질의 유토피아를 설계한 건축가 – 렐레

Lele_The Sao Jose de Ribamar Chapel_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렐레(Lelé) 《사웅 호제 데 리바마르 예배당(Sao Jose de Ribamar Chapel)》 Photo: 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from the publication: João Filgueiras Lima – Lelé, Publisher: Blau.

2012년은 건축의 거장 오스카 니마이어와 더불어서 20세기 브라질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 대가의 한 사람인 렐레 (본명은 조아우 필구에이라스(João Filgueiras Lima)가 건축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지 50년이 되는 해. 네덜란드 건축 연구소(The Netherlands Architecture Institute, 이하 NAI)에서는 2012년 10월26일부터 2013년 2월3일까지 건축가 렐레의 사회참여주의 건축 세계를 조망해 본다.

건축계에서 렐레(Lelé)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필구에이라스는 리오 데자네이로에서 미술 공부를 마친 직후 1950년대부터 건축계에 첫 명함을 내밀었다. 때는 건축가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행운의 호기로 사민주의파 브라질 정부가 수도 브라질리아를 새로 건설하기 시작할 1950년대 말엽이었다.

Lele_Portuguese Association in Brasilia_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브라질리아에 있는 《포르투갈인 협회 건물(Portuguese Association) Photo: 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from the publication: João Filgueiras Lima – Lelé, Publisher: Blau.

초창기 순수미술을 공부하면서 배운 그림그리기 재주 덕분에 브라질 퇴직연금연구소(IAP) 설계작업 제도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후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 렐레는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작업하면서 디스브라베-볼크스바겐 자동차 본부, 코디페-메르체데스 벤츠 자동차 공장의 건축 설계를 담당해 브라질리아에 유치시켜서 유명해졌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그의 명성이 해외로 알려지면서 국제 건축계에서도 본격적인 이력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의 건축에 나타난 특유의 미래주의적인 미학과 유토피아적 비젼 덕분에 특히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들로부터 건축 설계 요청을 다수 받기도 했다.

당시 브라질의 한정된 자원과 예산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 안목과 드높은 목표달성을 추구했던 야심찬 쿠비체크 대통령 (Juscelino Kubitschek de Oliveira)로부터 새 수도 브라질리아를 이상적인 유토피아 도시로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고, 렐레는 동시대 동료들인 그 전설적 브라질 출신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 (Oscar Niemeyer)와 도시 토목 지휘자 루치오 코스타 (Lucio Costa)와 나란히 거창한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유토피아 도시 브라질리아 건설에 기여했다.

Personal - Lele and Oscar Niemeyer

렐레(왼쪽)와 동료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오른쪽). Photo: 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from the publication: João Filgueiras Lima – Lelé, Publisher: Blau.

이 시대 브라질 건축에 기여한 렐레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이라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철근 콘크리트 자재를 잘 활용할 줄 안 시공적 안목과 산업시대 공산 제품을 짧은 시간 내에 대량생산해 낼 수 있도록 설계한 저렴하고 획기적인 공장 생산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컨데, 콘크리트는 철근과 주형만 있으면 그 어떤 기상천외한 형태의 건물이라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조형적 융통성 때문에 렐레를 포함한 전세계 수많은 20세기 건축가들이 가장 널리 활용하고 정통했던 건축용 재료다. 그런가하면 태양이 강렬하고 일조량이 많은 천혜의 날씨 조건을 자랑하는 브라질의 환경 덕분에 자칫 칙칙하고 무정해 보이기 쉬운 콘크리트 건축물은 태양 아래 미묘한 명암의 댄스를 추며 형태와 질감 면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건축 자재 활용과 시공방식은 비용 절감 면에서나 환경보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오늘날, 건축계에서 렐레의 브라질리아 건설기의 건축 사례들은 반 세기가 지난 요즘에 와서도 현대 건축가들에게 탁월한 건축가는 재료와 시스템 분야까지 정통한 후 건축 설계에 응용할 줄 아는 자임을 다그친다.

Personal - Lele at work

시공 현장에서 작업중인 렐레(가운데)의 모습. Photo: Instituto Lina Bo e P. M. Bardi, from the publication: João Filgueiras Lima – Lelé, Publisher: Blau.

예컨데, 콘크리트는 철근과 주형만 있으면 그 어떤 기상천외한 형태의 건물이라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조형적 융통성 때문에 렐레를 포함한 전세계 수많은 20세기 건축가들이 가장 널리 활용하고 정통했던 건축용 재료다.

그런가하면 태양이 강렬하고 일조량이 많은 천혜의 날씨 조건을 자랑하는 브라질의 환경 덕분에 자칫 칙칙하고 무정해 보이기 쉬운 콘크리트 건축물은 태양 아래 미묘한 명암의 댄스를 추며 형태와 질감 면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또 이 때 그가 디자인한 공장 생산 시스템은 급속한 산업 성장에 한창이던 당시 브라질 경제에 기여했다는 점일테다. 렐레가 1980년대에 와서 집중적으로 건설한 공장들 중에서도 특히 리오데자네이로에 있는 “학교 공장”에서는 학교 설비에 쓰일 책상, 걸상, 학교 장비, 문구용품 등 교육에 필요한 각종 제품들을, 또 살바도르에 건설한 “도시용 장비 공장”에서는 계단, 난간, 배수구, 걸상, 도로표지판 같이 신개발될 도시와 건물에 두루 사용되는 필수 장비들을 대량 생산 해냈다.

특히 건축계에서는 그가 발명한 새로운 생산방식 설계가 브라질 생산력 증대와 경제 발전에 끼친 유익한 영향 말고도 그가 설계한 공장 건물 시공방식과 에너지 절감식 설계법을 혜안적인 사례로 꼽는다. 예컨대, 건축 자재나 재료를 건설 현장으로 한결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운송하고 재가공에 편리하도록, 렐레는 재료 연구 끝에 무게가 훨씬 가벼운 배합 모르타르재(reinforced mortar)를 개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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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레가 설계한 사라 쿠비체크 병 리오데자네이로 분원 건물. Photo: Nelson Kon, from the publication: A arquitetura de Lelé: fábrica e invencão, Publisher: Imprensa Oficial.

일명 ‘건강과 행복의 건축가’로도 불렸던 렐레는 건축가로 활동하는 동안 주로 정부 주도의 건축 및 도시설계 사업 프로젝트라는 막중한 과제가 주어졌던 이유로 해서 어떻게하면 건축을 통해서 브라질이 당면한 사회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를 화두로 한 기능성 위주의 건설과 시공 실무를 해왔다.

렐레는 인간의 행복과 건강을 증진시키고 싶은 강한 욕망을 원동력 삼아 설계에 임했던 인간중심적 건축을 창조하고 싶어했다. 브라질 특유의 빈민 거주형태로서 악명높은 파벨라로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고안해 디자인된 보행통로 라든가 치유를 도모하는 병원 건축물은 그같은 좋은 예다.

1980년대, 렐레는 환자들의 쾌속 회복을 돕기 위해 브라질 여러 도시에 분설된 사라 쿠비체크 정형과 전문병원(Sarah Kubitschek Hospitals) 건물에마다 수준높은 통기 시스템과 자연광 조명 시설을 구축해 이후 브라질 전역에 두루 새로 지어진 행정사무소나 보건소 시공의 모범이 되었다. All Photos Courtesy: The Netherlands Architecture Institute, Amsterdam.

일석이조 – 과거의 舊物을 시대에 맞는 新 거주공동체로 고쳐 쓰는 방법

GASOMETER CITY VIENNA

新舊의 조화로운 共存 – 현대 건축으로 다시 태어난 빈의 가조메터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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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위펭에 있는 초기 근대식 가스 저장 탱크의 모습. Photo © Harald Finster.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새로운 건축물 프로젝트가 홍수를 이루었던 지난 십 수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부동산 개발 업계에 이르기까지 헌 건물을 허물어 없애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 관례가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각 문화 발전과 경제 활성은 반드시 과거를 파괴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과거의 물적 유산을 잘 보존하되동시에 이것을 현대적으로 계승,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문화 발전의 중요한 척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요리, 수돗 꼭지에서 나오는 온수, 겨울철 집안 난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스 에너지를 항상 사용하고 있지요. 요즘 같이 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가스는 보통 지하 저장고나 첨단 암염 동굴에 묻어 보관 관리되기 때문에 여간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스는 지상에 지어진 원통형 저장탱크에 저장되었습니다.

유럽의 옛 여러 도시에서 원통형 모양으로 된 가스저장탱크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한창이던 유럽 풍경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었습니다. 특히나 19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에는 런던을 비롯해서 맨체스터, 쉐필드, 뉴카슬 등 같은 옛 산업도시들에서는 과거 빅토리아 시대풍 분위기를 담고 있는 가조메터 즉, 가스저장탱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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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빈 가조메터 옛 가스 저장소. 빈-지머링(Wien-Simmering)에 위치한 이 가스 저장소를 석탄을 연소시켜 추출한 가스를 보관했다. 1896년에 지어져 이 도시 전체에 가스를 공급해 왔으나 1999-2001년 지역 재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철폐되어 주상복합형 아파트로 재탄생했다.

이를 본따서 대륙권 유럽 여러 산업 도시들도 앞다투어 둥근 원통형 가조메터를 지어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급증하는 가스 수요에 부응해야 했습니다. 경우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빈 도시 정부는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886년, 급속화된 빈의 도시 개발 정책과 부동산 붐으로 인해서 가스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국식 가스저장탱크 4대를 짓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것이 지금 빈 제11번 지머링(Simmering) 구의 명물이 되어 건축애호가들과 문화순례자들의 발길을 잡고 있는 가조메터(Gasometer)입니다. 아치형 창문과 좌우대칭적 균형감을 강조하여 적색 벽돌로 원통형으로 쌓아 올려서 르네상스풍 건축을 연상시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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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개봉된 영국 필름느와르 걸작 『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의 한 장면에 담긴 비엔나 밤 거리. 당시 비엔나 거리는 가스등으로 밝혔다.

지금도 빈 옛 거리 구석구석과 공원에 서 있는 가로등들은 본래 가스로 불을 밝혔던 가스등이었다고 합니다. 정사각형 돌로 깔린 보도 양 편에 가스등이 희미한 빛을 뿌리는 고즈넉한 거리 풍경 –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을 내던 가스등 만이 연출할 수 있었던 낭만도 가스 연료 덕분이었습니다.

고체, 액체, 플라즈마와 더불어 4대 물리적 상태의 한 요소인 기체 형태의 자동차 연료와 가열용 연료인 가스(gas)는 본래 그리스어로 “혼란”이라는 뜻의 카오스(chaos)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럽의 19세기말 20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가스는 석탄을 태워 기체로 전환시켜 만들어 썼고, 지금처럼 천연 가스를 액체 상태로 보관하는 방식은 1970년대 이후에나 널리 일반화된 공법이었다고 합니다. 옛 가조메터들이 광산촌 근처에 지어졌던 이유도 바로 채굴해 낸 석탄을 바로 가스로 가공하는데 운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쪽에서 바라본 가조메터 A동.

하지만 가조메터가 현대 건축의 명소로 재탄생하게 된 때는 지난 2001년 10월. 과거 석탄을 태워 가스를 만들어 보관하는 구식 가스 저장소였던 비엔나의 가조메터는 쓸모가 없어졌고 급기야 1984년에 공식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축물이 도시에 기여한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외형을 참작하여 빈 도시 정부는 가조메터를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고 폐허 상태의 건물로 내버려두느니 주거용 아파트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여 현대적으로 재활용하자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쓸모가 없어지고 오래되었지만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옛 건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유용한 건축으로 재탄생 시킬 수 있을까요? 그 같은 고려에서 탄생한 재건축 사업이었던 만큼 빈 정부는 이 사업에 매우 큰 기대와 자부심을 갖고 임했다고 합니다.

비엔나의 가조메터를 아파트로 개조하는 재건축 사업은 역사의 흔적, 건축 예술, 도시 설계라는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한데 아울러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키는 자못 진지한 정책 사안이었던 때문이지요.가조메터를 구시대의 산물이자 매연의 주범이라 하여 지난 1999년부터 10년 단계적인 철거 계획을 수립하고 하나씩 철거한 영국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입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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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조메터 아파트 주변과 부대시설이 있는 풍경. 오른편 삼각형 모양의 지붕의 적벽돌 건물은 과거 가스저장소 관리소, 오른쪽의 돔 지붕이 있는 탑은 관재탑. 뒤로 보이는 높이 솟아 있는 굴뚝과 설비 시설은 과거의 산업화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현재는 그 자리에 주로 사무실, 레스토랑, 카페, 클럽 등 업무와 사교 활동용 시설들로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조메터 아파트는 2001년 10월에 공식 개장을 했지만 잔뜩 들떠 있던 입주자들은 그 보다 반 년 전인 5월부터 미리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가조메터 시티(Gasometer City) 개발 사업 덕분에 가조메터는 현재 주거용 초현대식 아파트, 쇼핑 센터,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모여 있는 자족적인 소형 신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P1030545sm1995년 착수된 가조메터 재건축 사업에 초대된 건축가(팀)은 모두 넷.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이 가조메터 건물 A, 오스트리아의 코옵힘멀블라우(CoopHimmelb(l)au)가 건물 B, 만프레드 베도른(Manfred Wehdorn)이 건물 C, 빌헬름 홀츠바우어(Wilhelm Holzbauer)가 건물 D를 각각 맡아서 2001년에 완공을 마쳤습니다.

« A동에 주거용 아파트, 사무실, 쇼핑몰 설계를 맡은 쟝 누벨의 디자인은 유리와 금속 골조를 한껏 활용한 천정 돔을 통해서 자연광이 최대한 들이치게 해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특징이지요.

그런가 하면, 코옵힘멀블라우가 설계를 맡은 B동은 삐죽삐죽하고 무너질 듯해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아슬아슬한 탈구성주의 스타일은 코업힘멀블라우의 트레이드마크로 특히 1980-90년대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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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담당 건축가들은 대체로 주거용 아파트 건물을 짓자는 설계계획안을 제시했지만 코옵힘멀블라우 팀은 가조메터 건물 외부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사무실 건물을 추가로 세우자는 안을 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서쪽 방향에 서 있는 코업힘멀블라우 설계 담당 B동 전면에는 20층짜리 초현대식 유리 금속 소재의 탈구성주의(De-constructive) 양식의 건물이 높게 서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 건축사무소 코업힘멀블라우가 설계한 B동 입구. 19세기풍 가스탱크 계량미터가 눈길을 끕니다. B동과 C동의 공공 공간과 쇼핑몰을 이어주는 연결 통로.

가조메터 아파트 4개 동은 모두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눈비 오는 날에도 물 한 방울에 젖지 않고 단지 곳곳을 누빌 수 있습니다. 아파트 건물 외부 입구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가스저장고 계량판은 디지틀 시대가 점령해 버린 오늘날 뜻하지 않게 아날로그 시대의 미학을 아련하게 자아내는 과거의 흔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 네 건물 맞은 편에 세워진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쇼핑몰 건물은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뤼디거 라이너(Rüdiger Lainer)가 설계했는데, 외부에서 느껴지는 기하학적이고 정결해 보이는 외모에 못지 않게 채색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빛으로 실내를 조명하는 인테리어 분위기가 매우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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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동 안에 있는 대형 영화관 입구 모습. 채색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일광이 찬란한 실내 조명 효과를 냅니다.

이 건물 안에는 초대형 영화관 외에도 식당가,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단지, 시립 자료실이 입주해 있어서 이른바 멀티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센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콘크리트 금속 유리를 주소재로 한 엔터테인먼트 센터는 건물 표면에 색유리로 마감하여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센터는 유리와 금속으로 된 공중 통로 다리를 통해서 가조메터 아파트 C동으로 곧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P1030531sm» 뤼디거 라이너가 설계한 엔터네인먼트 센터(일명 E동)의 동쪽 주차장 쪽 벽면의 모습. 자칫 척박해 보이기 쉬운 콘크리트 소재이지만 직접 보면 리듬감 있고 정갈한 배치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게 마감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의 가조메터 시티 찾아가는 법: 자동차로 남동쪽 방향 고속도로 A23번을 따라 가다가 상크트 마르크스(St Marx) 출구로 나와 가조메터 시티(Gasometer City) 표지판을 따라 가거나, 지하철(U-Bahn) 3호선 (U3) 가조메터(Gasometer)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주소: Guglgasse 6-14, A-1110 Wien.

※ 별도 명기된 이미지 외 모든 사진: 박진아. All photos by Jina Park, unless otherwise indicated.

*이 글과 사진들은 2007년 7월 LG 인테리어 웹진 지:인 http://www.z-in.co.kr/ 글로벌 인테리어 뉴스 컬럼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

 

독일 모더니즘 건축의 실용적 계승자

에곤 아이어만의 건축 세계

EGON EIERMANN

1958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독일관 건물 모습. Sep Ruf와 공동으로 설계 건축된 이 작품은 1956-58년 2년여에 걸쳐 건설되었다.

1958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독일관 건물 모습. Sep Ruf와 공동으로 설계 건축된 이 작품은 1956-58년 2년여에 걸쳐 건설되었다.

예나지금이나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맨 위의 사진]는 베를린을 찾은 방문객들이 건축 순례지 목록에서 빼놓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가 보고 가는 곳이다. 베를린이 오늘날 독일의 수도가 되기 직전까지, 프러시아 왕국의 빌헬름 황제의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해 지어진 이 교회는 바로 독일 바우하우스가 자랑하는 모더니즘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 1904-1970)의 역작이다.

올해[2004년]로  건축가 故 에곤 아이어만이 탄생한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베를린에 자리한 바우하우스 아르키브에서는 오는 5월16일까지 건축가가 남긴 여러편의 건축작품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자료들을 전시로 부친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독일 관할청 건물. Photo:  saai, J. Alexander Studio/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독일 관할청 건물. Photo: saai, J. Alexander Studio/

아이어만이 처음 국제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계기는 1958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를 통해서였다. 국제 건축 양식이 최고조의 인기를 누리며 전세계 대소도시에서 속속 번지며 지어올려지고 있던 1950년대말엽, 아이어만은 건축물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공공 정부 건축물 설계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담당했다.

미국 워싱턴DC의 독일 관할청, 독일 본의 국회의사당 타워(Langer Eugen), 프랑크푸르트의 네커만(Neckermann) 사의 우편주문 사무건물, 슈투트가르트의 IBM 사무실 건물, 올리베티(Olivetti) 전자회사 프랑크푸르트 지사 건물은 그같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서 미루어볼 수 있듯이 독일 건축가 아이어만의 전문 분야는 모더니즘 계열의 산업과 관련된 사무실 건물을 설계하는 일. 특히 그는 건물내 산업체들이 자사 임직원들을 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 외에도 기업의 제품들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전시할 수 있는 전시장과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독일 IBM 본부 건물. 1967-72년. Photo: saai, Horstheinz Neuendorff.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독일 IBM 본부 건물. 1967-72년. Photo: saai, Horstheinz Neuendorff.

유독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건축 언어는 정밀하고 단순하면서도 기능과 구조 면에서 군더더기 없는 분명함이라 평갑된다. 그래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가볍고 간결담백한 외관과 투명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건축 외에도 건축과 통일된 컨셉의 실내 장식 디자인에도 관여하면서 사무용 테이블, 의자, 계단, 옷걸이 등도 디자인해서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도 명품을 만들어냈다.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르히브(Bauhaus Archiv Berlin), 독일 칼스루헤 대학의 쉬드도이쳬스 건축 디자인 아르키브(saai)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건축 정신을 계승한 에곤 아이어만의 건축 작품 사진 전부와 스케치 및 청사진 등 그의 작업과 관련된 창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한자리에 선보인다.

* 이 글은 본래 LG 인테리어 사보 월간 『공간사랑』 지 2004년 3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건술중인 도시 베를린

BERLIN – CITY UNDER PERPETUAL CONTRUCTION

역사의 상처를 감싸안고 변화를 지속해 가는 도시 베를린의 건축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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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라이히스탁 독일 연방 국회의사당 건물중 영국의 거장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개조 설계를 맡아 완성된 천정 돔 © danda.

비행기편으로 베를린에 막 도착한 방문객은 우선 이 도시가 지닌 깊은 역사적 흔적을 느끼기 시작한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 Airport)은 독일 나치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어두운 독일 근현대 역사가 내리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채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서있다. 템펠호프 공항은 에른스트 자게비일 (Ernst Sagebiel)이 설계해 1937년 개항했다.

히틀러의 뒤를 이은 대독일 지도자 겸 독일 공군 총사령관이던 헤르만 괴링 (Hermann Goering)이 총애하던 건축가 에리히 멘델존 (Erich Mendelshohn)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던 건축가 자게비일은 이 공항 설계를 통해서 나치 정권이 강요하던 극도로 경직된 양식을 극적으로 표현해 이후, 1980년대 베를린 시내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의 설계로 지어진 베를린 과학센터 (Wissenschaftzentrum)가 탄생하는데 모형이 되어준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놀랍게도 이 공항은 미국의 펜타곤 국방부 다음으로 큰 면적을 자랑하면서도 좁게 설계된 항공기 이착륙로 때문에 개인 출퇴근용 항공기 경유지로 이용되어 오기도 했다. 오늘날 베를린 시민들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부터 이 도시를 보호해 준 옛 베를린 에어리프트 (Berlin AirLift) 공군 기지로서의 이 공항을 민주주의의 수호지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한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베를린을 두고 „사랑과 웃음이 결여된 도시“라고 일컫는 것으로써 이 도시가 지닌 역사적 무게와 상처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 지난 일세기여 동안 베를린은 파란만장한 역사와 격변을 거쳐 온 가운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베를린이 흔히 „항상 공사중에 있는 (in progress)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려 온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만큼 독일은 물론 유럽의 역사적 변화가 이 도시의 건축물과 도시 설계에 끼친 영향을 숨가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은 베를린을 둘러싼 성문(城門) 출입구로서, 18세기말경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치하 동안 지어져 현재는 나폴레옹 정권에 대한 프러시아군의 승리와 독일 비더마이어 (Biedermeier) 시대의 영광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어 당당히 서있다.

시도때도 없이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그 유명한 포츠다머 플라츠 (Potsdamer Platz)는 두 말 할 것 없이 통일 독일의 새수도 베를린으로서의 상징물이다. 포츠다머 플라츠는 19세기 프러시아 정권기 특유의 도시 설계 의도와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재공사 당시 각종 전문 건축 인부들이 지하수 밑으로 잠수해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가 하면 공사 전용 철로를 설치하는 등 독일이 자랑하는 최첨단 현대 건축 설계 기술을 일축해 과시해 보여 화재를 모은 곳도 바로 이 포츠다머 플라츠였다.

베를린 시내 구석구석과 스카이라인은 18, 19세기의 건축적 유산과 20세기의 국제적 건축 양식을 골고루 구비하고 있다. 시당국은 일명 „비판적 도시 재거설 (critical reconstruction)“, „역사적 요소에 대한 고려 (respect for the historical substance)“라는 도시 건설 원칙에 입각해 도시가 지닌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적인 신건축 공사를 단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자랑해 왔다. 그같은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먼 포스터 (Sir Norman Foster) 경이 재디자인 개축한 라이히스탁 (Reichstag) 독일 연방 국회의사당 건물일 것이다.

90년대초, 크리스토 (Christo)가 라이히스톡 건물을 헝겊으로 포장하는 행위 미술을 전개했던 일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세계사 한가운데에 선 듯한 크나큰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본래 1894년 지어져 1933년의 화재 사건 (이로 인해 히틀러 나치 지도자는 한 번도 이곳에서 공식적인 집권을 해 보지 못했다), 1945년 2차대전중 소련군 침략 등을 거치는 등 격동의 독일 근현대사를 경험한 장소이기도 하다. 무려 4년에 걸쳐 완공된 라이히스탁은 현재 관광객들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어 그 유명한 노먼 포스터식 웅장한 풍의 유리 돔 천정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0세기 초엽부터 193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메트로폴리스 건설’을 겨냥한 중부 유럽 특유의 빽빽하고 밀도높은 건축 도시로서의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의 패전을 겪고난 이후 도시의 대부분은 폭격과 총알의 흔적만 남긴채 거의 폐허되다시피 했다. 1945년 제2차대전 종전을 끝으로 베를린이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뉜 후, 서베를린은 서방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 재건 노력을 통해서 전흔의 기억과 고통을 지우려는 몸부림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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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베스킨트가 1998년에 설계한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 © Jüdisches Museum Berlin Photo: Jens Ziehe.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친 냉전기 동안에는 정부 주도 도시 신건설 계획의 적극적인 추진하에 불도우저 바퀴흔적과 신축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가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은 루 리드 (Lou Reed)와 데이빗 보위 (David Bowie)를 앞세운 급진적 대중문화와 이어 히피문화의 중심지로 떠 오르면서 독일 전역의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든 희망과 해방의 도시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1989년, 동서독을 가로 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 진 이후 시정부가 주도한 도시 재건설 계획에 따라, 지난 10여년 동안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쿨투르포룸 (Kulturforum) 건물이 자리해 있는 도심 일대는 신소재 건축자재와 유리로 광채를 발하는 모던한 신주거지 및 사무용 건축 구역으로 탈바꿈 해 버렸다.

건축가 조세프 조반니니 (Joseph Giovannini)는 한때 베를린의 도시 설계 및 건축 지침을 두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들의 이름을 내세운 도시 미화 작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여년에 걸쳐 베를린를 메운 건축물들을 설계한 국제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하나둘 거명하다 보면 어딘가 수긍이 갈 정도로 그 목록은 제법 화려하다.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이 담긴 건축물들도 자연스럽게 나란히 발견되곤 한다. 베를린 올림픽을 거행했던 베르너 마르흐 (Werner March)의 나치 올림픽 경기장은 지금도 옛 스와스티카 장식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보존되어 있다.이 경기장 바로 근처에는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설계한 위니뜨 다비따시옹 (Unite D’Habitation) 아파트 단지와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90년대 중반의 자하 하디드 (Zaha Hadid) 초기작으로 꼽히는 강철 구조의 아파트 건물이 스트레세만스트라세 거리상에 숨은듯 서있다.

베를린를 통틀어 가장 기이한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은 현재 베를린 주식거래소로 활용되고 있는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하우스 (Ludwig Erhard Haus). 니콜라스 그림쇼 (Nicolas Grimshaw)가 설계한 이 건물은 삐죽삐죽한 형태의 알루미늄 자재를 사용해 강렬한 표현성을 강조한 첨단 하이테크 빌딩으로서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아르마딜로 (Armadillo)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포츠다머 플라츠 마스터 플랜을 맡은 렌쪼 피아노 (Renzo Piano)를 비롯해서 리쳐드 로저스 (Richard Rogers), 헬뭇 얀 (Helmut Jahn), 한스 콜호프 (Hans Kollhoff) 등 포츠다머 플라츠 주변에 자리한 사무실, 상점, 아파트 건물들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들은 가히 내노라할 만하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위치한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쟝 누벨 (Jean Nouvel)이, 브란덴부르크 문 뒤켠 파리저 플라츠 상에 있는 DC 은행 (DC Bank)은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가, 트라이앵글 오피스 및 아파트 건물은 요제프 파울 클라이후스 (Joseph Paul Kleihues),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마우어슈트라세, 크라우젠슈트라세의 건물들은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이 각각 담당했으며, 이탈리아의 알도 로시 (Aldo Rossi)도 그 주변 주거용 아파트 건물 설계를 책임진 바 있다. 콜호프와 머피/얀 설계팀이 설계한 머피/양 타워 (Murphy/Jahn Tower)는 일명 소니 센터 (Sony Center)로도 불리는 초대형 유리 건물로서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건축적 자랑거리로 꼽힌다.

그 같은 베를린 도심에서 벗어나 자리한 유태인 박물관 (Jewish Museum)은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ebeskind) 설계로 작년에 완공되어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유태인 박물관은 여러개의 타워식 건물들로 둘러 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자우어브루흐 허튼 (Sauerbruch Hutton)설계팀의 GSW 에코 타워 (GSW eco-tower)로 독일과 영국의 건축 전통의 특유한 어우러짐을 선사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동서독의 통일 이후로 이 도시를 가로 막고 섰던 장벽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 위에 장벽이 서 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던 흔적이 이따금씩 보이지만 장벽의 물리적 존재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동서독 간의 심리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격차는 통일 이후로 그다지 완화되지 못했음을 베를린의 옛동독 구역에 발을 디딛는 자라면 느낄 수 있다. 신고 (新古) 건축물들이 뒤섞여 한데 녹아들어 있는 서베를린과는 대조적으로 동베를린에서는 지금도 옛 나치식 건물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곤 한다.

슐로스플라츠 (Schlossplatz)에 1967년 세워진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 (Palast der Republik: 공화국의 궁전이라는 의미) 동독 국회의사당 (Parliament) 본부는 하얀색 대리석과 동(銅)과 유리가 부서진채 그대로 방치되어 빈 건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서독에서는 이미 오래전 폐기해 버린 노랑색 거리 전차가 지금도 동부 베를린의 한산한 거리를 운행하는 모습과 서늘한 시민들의 표정에서 공산주의가 지배하던 옛동독의 과거상을 엿보게 해 준다.

* 이 글은 본래 『ASIANA』 아시아나 항공 기내지 2003년 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