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달 아래 아랍인들의 삶과 공간

LIVING UNDER THE CRESCENT MOON – Domestic Culture in the Arab World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카스바 (Casbah of Algiers)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인간이 필수 요소들과 욕망에 대한 무한한 감수성이 한 편의 건축물에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 르 코르뷔지에가 아랍 건축과 실내 장식에 대해 언급한 말.

사유, 자기성찰, 명상의 공간으로서의 아랍 건축과 실내 디자인

근대 휴머니즘 건축적 이상과 고결한 영혼성을 건축작품으로 구현했던 20세기 거장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는 일찌기 근동 아랍 세계의 건축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갖고 있어서 그로부터 많은 정신적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발자욱을 따라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건축가들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아랍권의 문화와 공간 미학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승화시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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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타니아 유목민들의 전통 실내 장식. Photo: Deidi von Schaewen.

최근 아랍권 세계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도와 지식이 대중 매체를 통한 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정치적 사회적 쟁점들로 인해서 가려지고 제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랍 세계의 가정내 문화와 실내 공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랍인들이 수천년 넘게 다듬어 온 공간 철학과 그들만의 명상적이고 자기성찰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게 된다.

스페인의 이베리안 반도와 닿을듯 말듯 북아프리카의 맨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모로코에서부터 지중해를 동쪽으로 가로질러 자리잡고 있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 시리아, 그리고 이웃 아라비안 반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찬란한 과거를 보낸 아랍 세계의 건축과 실내장식의 미학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투아레그족 (베르베르 (Berber)어를 쓰는 사하라의 이슬람 유목민)이나 베두인 (Bedouin) 유목 방랑자들이 이어왔던 유목민 텐트 건축에서 부터 정착 문명을 이룩한 모로코 원주민들의 카스바에 남아있는 고대식 정착 생활상은 물론이려니와, 마라케시, 다마스쿠스, 카이로 같은 고대 대도시 구석구석에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채 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안뜰식 저택 건물들에서 부터 하싼 파디 (Hassan Fathy), 엘리에 무얄 (Elie Mouyal), 압델와헤드 엘-와킬 (Abdelwahed El-Wakil) 등과 같은 20세기 아랍 건축가들의 현대식 건축물들에 이르기까지 아랍세계는 과거와 현대를 가로지며 아랍인들은 물론 전세계 모든이들에게 전통 아랍적 건축적 풍미와 생활 공간의 향취를 발휘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과거로부터 빌려 온 것들을 새 시대에 맞는 독특한 양식과 생활 방식에 따라 독자적으로 재창조하여 구축된다. 그리고 아랍 세계에서 고안되고 지어진 그 모든 찬란한 건축적 유산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신앙에 기초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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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있는 모리스 바르사노 빌라 (Villa Maurice Varsano, Casablanca) 1954년. 볼프강 에베르트 (Wolfgang Ewerth) 설계. Photo: Marc Lacroix.

아랍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건축사적 대작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살았다는 기원전 7세기에 재건되었다는 메카 (Mecca) 대신전으로 꼽히는데, 당시 이 건축물의 건설에 응용되었던 고대 그리스식 건축양식과 비잔틴식 돔을 사용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알려진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 있는 신비의 알함브라 (Alhambra) 궁전은 가공할 만한 육중함을 자랑하는 성벽 외에도 숨을 앗아갈 만큼 장황화려한 세공 기술과 디자인, 공간-빛-물의 절묘한 조화와 응용, 화려한 색상과 배색을 자랑하는 기하학적 패턴의 타일과 벽마감 장식, 정교하게 설계된 정원과 외부로부터 차단된 신비와 환상의 객실 공간이 포함되어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이슬람식 건축 및 실내장식의 백미이자 고전 유럽 건축과 조경의 원천적 교과서라고 인정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아랍 문화권의 전통적인 건축 실내 공간과 사적 생활 환경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어 본 현대인들 사이에서 조차도 실제 아랍 문화권의 실내 생활 환경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전세계 그 어떤 문화권에 비해서 아랍 세계의 실내 공간은 외부의 이방인들로부터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여긴 전통 때문에 매우 사적인 영역 (private sphere)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옛 터어키 오토만 제국시절 술탄의 사적 주거 공간이자 그의 가족과 수많은 아내들과 첩들이 모여 살았다는 하렘 (Harem)*은 외부 환경이나 방문객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한 단절과 고립된 공간으로서 19세기 유럽인들의 머리속에 아랍문화의 관능적 신비와 이국주의에 대한 영감을 잔뜩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아랍권 사람들은 건축물과 실내 장식을 통해서 어떤 일상 생활을 발전시켜 왔을까? 그리고 그들이 건축물과 실내 장식에 활용한 장식과 상징과 색상은 어떤 문화적 종교적 이념적 의미와 정체성을 띠고 있을까? 아랍 건축의 황금기는 기원전7세기에 시작된 후 그로부터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아랍의 건축과 미술은 고도의 수학적 진보를 반영하는 기하학성과 추상성을 일관적으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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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전통 커피주전자.

이슬람교가 철저한 일신주의를 고집한 신앙이었던 만큼 하늘 아래와 땅 위의 그 어떤 살아있는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예술로 재현하는 것은 종교적 원칙상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예술가들은 이른바 아라베스크 (Arabesque)로 불리는 엉키고 설킨 난해한 식물 문양과 추상화된 패턴 만을 사용하도록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랍권에서는 예술과 공예, 예술가와 장인은 동등한 지위를 누렸으며 그로 인해서 목공예, 직조, 상아 조각, 유리 세공, 도자기, 카페트 직조, 금은 세공 등 같은 공예 기술이 고도로 발전했다. 아랍 문화의 건축과 도자기, 직물, 가내용 소도구 등 실내 장식에서 엿보이는 공간 연출법에서 발견되는 고도로 세련된 세공 기술과 정제된 감각성 (sensuality)은 아랍 문화의 예술과 공예의 일치를 가르친 이슬람 신앙에 비롯된 셈이다.

서구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물견은 아랍 세계 또한 피할 수 없는 전통의 붕괴와 생활 공간의 급격한 현대화를 경험해 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슬람 종교를 신앙과 생활의 기초로 삼아 생활하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아랍계 사람들에게 건축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보호와 방어를 위한 보금자리이며 실내 공간은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사적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방 세계 아랍인들은자기의 집에 초대되어 방문한 손님을 깍뜻하고 관대하게 대접할 줄 아는 후한 손님맞이 정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고 있으니, 그들의 가정은 ‚허용됨’ 혹은 ‚할랄 (halal)’과 ‚금지의’ 혹은 ‚하람 (haram)’ 사이의 경계 구역이자 외부 세계로부터 가족을 보호해 주는 여유와 재충전의 공간이다. Photos Courtesy : The Vitra Design Museum. From the exhibition『Living under the Crescent Moon : Domestic Culture in the Arab World』2007년 2월23일- 2008년 8월31일까지.

* 카스바 (Casbah 또는 Kasbah)란 알제리 북부 지방의 원주민이 사는 고대 시가지.
* 하렘 (Harem)은 회교권에서 여성들만 모여 살던 규방 또는 이교가 철저히 금지된 성역(聖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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