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즈

VELÁZQUEZ IN VIENNA

작년 2014년 10월 말 비엔나의 미술사박물관에서는 바로크 시대 스페인 궁중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즈 전을 열어 스페인 합스부르크 황실가 가족들의 모습을 초상화로 다시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오늘날 대중 미술사 서적 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던 화가 겸 거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디에고 벨라스케즈. 19세기말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벨라스케즈를 가리켜 ‘화가중의 화가(painter of painters)’라며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라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재조명 받기 전까지 실은 서양 미술사에서 오래 잊혀져 있던 유럽 역사 속 궁중화가중 일인에 불과했다.

Workshop of Diego Velázquez 『King Philip IV of Spain』 c. 1653–1656/59, Oil on canvas, 47 x 37,5 cm ©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디에고 벨라스케즈 아텔리에에서 화가와 조수들이 합작해 완성한 펠리페 4세의 초상. Workshop of Diego Velázquez 『King Philip IV of Spain』 c. 1653–1656/59, Oil on canvas, 47 x 37,5 cm ©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20세기 근대주의 대두 이전까지 절대주의 귀족주의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미술을 포함해 각족 공예, 음악, 문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창조 예술 분야에서 먹고 살아야 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 사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귀족집안, 왕가, 황실, 교회에 전속돼 권력자를 섬기며 작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영예스럽고 안정된 생계 수단이었다.

천재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서로 경쟁하며 메디치 가문의 건축가, 화가, 조각가로 활동했고, 모차르트가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올라와 합스부르크 황실 음악가가 되길 그토록 갈망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유럽이 배출한 걸출한 천재 예술가들은 소명적으로는 신이 내려준 재능을 한껏 발휘해 천상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구현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데 혼신을 바친 위대한 창조가들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생활인이었기 때문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y Velázquez, 1599-1660)는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태생이나 포르투갈에서 이민온 유태인계 포르투갈 부모 밑에서 카톨릭 교회 세례를 받았으며 소귀족 출신이었던 이유로 해서 벨라스케즈는 당시 스페인을 한바탕 공포로 휘몰아 넣었던 스페인 종교 재판으로부터 수난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유복한 환경에서 일찍이 갓 열 살이 넘은 나이로 철학책을 보고 화가 프란치스코 파체코(Pacheco) 수하에서 그림그리기를 공부하며 화가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

Diego Velázquez 『The Waterseller』 c. 1622, Oil on canvas, 107,7 x 83,3 cm © London, Apsley House, The Wellington Collection English Heritage

벨라스케즈의 초기 작품 『물장수』는 허름한 연인숙, 주점, 주방 풍경을 묘사한 보데고네스 장르의 그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당시 로마에서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 화가 카라바죠의 영향이 엿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Waterseller』 c. 1622, Oil on canvas, 107,7 x 83,3 cm © London, Apsley House, The Wellington Collection English Heritage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 했듯, 스승 프랑치스코 파체코 보다 그림그리는 재능이 한층 특출났던 갓 스무살 넘긴 젊은 벨라스케즈는 스승의 딸 후아나와 결혼하자 마자 그 연줄로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산티아고 교회를 거쳐 곧바로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궁중으로 그 이름이 알려졌다. 때는 마침 1922년 겨울, 합스부르크 왕가 필리페 3세와 4세가 가장 아꼈다던 왕실전속화가 로드리고 데 빌란드란도가 세상을 떠서 그 자리를 메꿀 새 궁중화가 물색작업이 한창이던 시기. 절묘한 시운과 스승이자 장인 파체코의 연줄의 축복을 한껏 받고 24세의 디에고 벨라스케즈는 초봉 50 두카트(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00-250 만원) 받는 궁중전속화가로 전격 발탁된 이후 예순살로 세상을 뜰 때까지 40년 넘게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왕실에서 궁중화가로 한평생을 봉사했다.

모든 궁중화가의 최우선 임무는 두 말 할 것 없이 왕과 왕가 가족과 친지들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다. 요즘과 달리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기 어렵던 과거, 스페인 마드리드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두 곳에서 2중 왕실을 거느렸었던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황실은 멀리 떨어져 있던 유럽의 두 수도 사이 가문 친지들의 모습을 수시로 초상화로 그려서 주고받는 것으로써 안부를 확인했고 차후 서로 결혼하게 될 어린 새 후손들의 모습을 미리 확인했다. 오늘날 벨라스케즈의 명작 알려져 있는 작품들 다수는 마드리드의 합스부르크 왕실 가족 초상화이고 그러하다보니 그의 대표작 다수는 스페인의 프라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Diego Velázquez 『Infante Baltasar Carlos with a Dwarf』 1631–1632, Oil on canvas, 128 x 101,9 cm © Boston, Museum of Fine Arts

펠리페 4세 왕과 이자벨 여왕 사이서 태어난 2살박이 발타자르 카를로스 왕자와 난장이 궁정광대가 있는 2인 초상화. 펠리페 4세는 이 귀한 아들 초상화를 벨라스케즈에게 특별히 맡겨 그렸는데 베네치아파 르네상스의 거장 화가 티치아노의 색감과 구도에서 영향받은 흔적이 뚜렸하다. Diego Velázquez 『Infante Baltasar Carlos with a Dwarf』 1631–1632, Oil on canvas, 128 x 101,9 cm © Boston, Museum of Fine Arts

지금도 비엔나 국립 미술사박물관에 남아있는 벨라스케즈의 합스부르크 왕가 초상화 작품들은 마드리드 왕실에서 선물로 보내왔던 가족 초상화들이다. 벨라스케즈를 궁중화가로 간택한 스페인의 펠리페 4세의 50대 초엽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비롯해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초상, 오늘날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펠리페 4세 왕의 딸 인판타 마가리타 공주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초상화 연작들중 네 편을 통해서 벨라스케즈는 왕실 내 신하들간의 권모술수, 30년 전쟁과 경쟁 권력들로부터의 도전과 위헙, 병약하던 어린 왕자와 공주들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호사롭게 잘 다듬어지고 차밍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으로 왕가 일가족과 친지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찬연하고 말끔하게 그려낸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 초상화들의 이면엔 이 가문에 드리워질 암울한 미래가 감쪽같이 감춰져 있다. 벨라스케즈의 고용자 겸 후원자이던 펠리페 4세는 실은 스페인 왕국 최후의 왕이된 비운의 인물이었다. 포르투갈이 스페인 영토에서 분리독립해 나가고,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저마다 세력을 키워가자 한때 유럽의 주도 세력이던 스페인 왕국은 점차 군사적, 외교적, 문화적 권력 무대에서 종결을 순간을 맞고 있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후계자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권력 분산을 막고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6백 여년 집권기 동안 가족친인척끼리만 결혼하는 근친혼인을 고집한 끝에 발생된 유전질환과 건강적 장애가 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엄격한 위계체제와 근엄한 분위기라 내리누르는 궁정에서 해소 역할을 했던 궁정 광대. 벨라스케즈의 눈에 비친 광대란 실없음, 어리석음, 광기를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Juan de Calabazas (Calabacillas)』 c. 1638, Oil on canvas, 106 x 83 cm © Madrid, Museo Nacional del Prado

엄격한 위계체제와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가 내리누르는 궁정에서 긴장 해소 역할을 담당했던 궁정 광대. 벨라스케즈의 눈에 비친 광대란 실없음, 어리석음, 광기를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Diego Velázquez 『The Buffoon Juan de Calabazas (Calabacillas)』 c. 1638, Oil on canvas, 106 x 83 cm © Madrid, Museo Nacional del Prado

마드리드 합스부르크 왕실 최후의 왕 펠리페 4세가 왕권 후계자 생산을 간절히 기다리며 새로 태어난 왕자와 공주들을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실로 혼인시켜 대권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펠리페 4세와 첫 아내 이자벨 여왕과 오랜 노력 끝에 탄생한 첫아들 발타자르 카를로스는 안타깝게도 16살 나던 해에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열 살 난 어린 소년의 발타자르 카를로스 초상화와 펠리페 4세가 간절히 기대했던 왕권후계자 아기 펠리페 프로스페로의 초상화는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실에 보내 결혼을 제안하기 위해 특별히 벨라스케스의 손으로 그려졌다.

발타자르 카를로스의 누이이자 첫 딸 마리아 테레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결혼시키는 것으로서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을 잠재웠다. 펠리페 4세의 둘째 부인 마리아나 여왕과 낳은 인판타 마가리타의 2세, 5세, 8세 때의 초상화들은 장차 레오폴트 1세 황제가 될 비엔나 합스부르크 황태자에게 일찍부터 결혼을 제안하기 위해 보낸 맞선용 초상화였다.

번뜩이는 독창성과 독특한 스타일이 폭발했던 17세기 유럽문화 황금기 바로크 시대, 궁중화가 벨라스케즈는 과연 회화를 재정의한 거장 화가의 대열에 설 만한가? 비슷한 시기 로마에서 활동한 카라바죠의 격정과 파격적인 시각, 스페인 출신의 바로크 거장 주르바란의 강렬한 영혼성, 인간조건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의 깊이와 승화력, 베르메르의 고요하고 잠잠하되 애상적 시적 감성은 벨라스케즈의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허나 초기 시절 그가 즐겨 그렸던 ‘보데고네스(bodegones)’ 혹은 주방 정물화 그림들 중에서 『물장수(Waterseller)』 에 나타난 대담한 화면 구도라든가 유럽 미술사상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 여성 누드라 불리는 『화장하는 비너스(일명 로커비 비너스)』 같은 작품은 마네 같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화면구성법을 구축하는데 영감을 주었을 만하다. 그런가하면 20세기 영국서 프란시스 베이컨은 벨라스케즈의 초상화 속 숨막히는 격식을 표현주의로 재해석해 초상 속 모델들을 해방시켰다.

Diego Velázquez 『Infanta margarIta』 (1651–1673) In a WhIte dress, c. 1656.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다섯살난 마가리타 공주. 이 초상화는 비엔나 합스부르크 황실에 사시는 할아버지 페르디난트 3세 황제께서 보시라고 보내진 손녀 초상화였다. 거울에 반사되어 반대방향으로 서 있는 이 모습은 『시녀들』 그림에 재활용되었다. Diego Velázquez 『Infanta MargarIta』 (1651–1673) In a WhIte dress, c. 1656.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궁중화가 벨라스케즈의 평생 목표는 왕실 위계 속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작위를 받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독이 베네치아파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를 깊이 흠모했는데 특히 티치아노가 평생공로를 인정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스페인 왕 카를 5세로부터 작위 수여받은 것을 부러워했다. 실제로 벨라스케즈는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659년 필립 4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고, 그 흔적은 그 유명한 그림 『시녀들(Las Meninas)』(프라도 박물관 소장)에 빼곡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화가 자신의 자화상에 빨강색 십자가로 기록되어 있다.

미셸 푸코의 책 『사물의 질서(Les Mots et Les Choses)』(1966년) 서론의 상세한 분석대상이 된 이래 무수한 학자들 사이의 논쟁의 주제가 된 그림 『시녀들』은 궁중화가로서 성취감에 찬 디에고 벨라스케즈의 자족한 자아를 한 폭의 그림으로 옮겨놓은 자랑스런 최종 이력서였다. 커리어리스트 디에고 벨라스케즈는 더도덜도 아닌 궁중 화가였고, 그의 그림은 오로지 그의 후원자 만을 위한 것이었다. 《벨라스케즈》 전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에서 2014년 10월28일부터 2015년 2월15일까지 열린다. Images courtesy: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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