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는 왜 두 얼굴을 가졌을까?

Janus – The Two-faced God

한 해를 시작하는 관문 – 1월

1월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양력 달력에서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달(month)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의 기원전 153년까지 로마인들은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을 3월(March)로 쳤다고 한다. 기원전 153년은 그제까지 로마제국의 국교이던 다신교(Paganism)를 폐지하고 기독교(Christianity)를 공식 국교로 개정한 해다. 3월은 로물루스의 아버지라 믿어졌던 로마 신화 속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 봉헌된 달이자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153년, 로마는 겨울철 제2차 셀티베리아 반란으로 스페인과 힘겨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Quintus Fulvius Nobilius)는 3월 중순 이전까지 중대한 군사 작전 수행을 단행하기 위해 그 해 새해 첫 달을 3월에서 1월 1일로 임시 변경하고 집정관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기원전 45년, 로마 제국의 독재자 줄리우스 시저는 로마 달력 개혁을 단행해 한 해의 첫 달을 1월달로 옮기고 1월 1일(New Year’s Day)을 공휴일로 제정했다.

로마왕국의 로마시민들은 에스루리아인들의 문화를 이어받아 생활했는데 달력체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인들은 전설적인 초기 로마시대의 건립자 로물루스(Romulus)가 정했던 그대로 1년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 개월로 나누어 쇴다. 10개월중에서 6개월은 30일, 4개월은 31일이 있었고, 1년은 총 304일로 구성됐다. 1년중 한겨울철이 계속되는 약 2달(지금의 1월과 2월) 동안은 가을과 이듬해 봄 사이에 낀 모종의 공백기, 즉 없는 세월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기원전 8세기, 전설적인 고대 로마공화국의 두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는 이 50여 일을 헤아리는 한겨울철 공백기에 이름을 붙여주자고 제안했다. 그는 30일 있는 다른 달들로부터 하루씩 빼와 도합 56일을 만든 후 이를 두 개월로 나누어 1년 달력 속으로 끼워 넣었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 탄생한 달 둘이 바로 1월(January)과 2월(February)이다.

이어서 기원전 7세기, 에트루리아 출신의 로마공화국의 5번째 왕 루시우스 타르키니우스 프리스쿠스(Lucius Tarquinius Priscus)는 고대 로마의 신(神) 야누스(Janus)의 이름에서 따와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달을 ‘재뉴어리(January)’라 이름했다. 게다가 1월 9일은 고대 로마인들이 매년 겨울철마다 ‘관문의 신’ 더 나아가 의미적으로 ‘세상만사의 모든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신 야누스를 기리며 거행하던 아고니움(Agonium)이라는 축제가 있는 달이라는 점에서 재뉴어리는 1월에 더없이 적합한 달명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헤이스 스컬러드(Howard Hayes Scullard)는 재뉴어리가 고대 로마신화의 주노(Juno) 여신 – 쥬피터의 아내이자 결혼한 여성의 수호신 – 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1월을 칭하는 ‘재뉴어리’는 야누스에서, 6월을 뜻하는 ‘쥰’(June)은 주노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대체로 지배적이다.

전통적 고대 로마 달력은 1년 일수가 355일과 365일 사이 오차가 있는 태음력(太陰曆, Lunar calendar) 역법 체계였다. 다신교 문화였던 고대 로마 사회 속의 시민들이 독실히 숭배해 마지않던 숫자와 관련된 미신의식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보다 잘 반영하는 달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로마의 행정가들은 4년에 한 번씩 2월을 윤달로 끼워넣어 1년 평균 약 365일(보다 정확하게는 365¼일)이 차도록 하는 윤일법(intercalation)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윤일법을 관리하던 당시 로마공화국의 대신관(大神官)들이 종종 날짜를 건성으로 관리하거나 날짜셈법 오류를 저지르곤 해서 로마시민들과 농부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고 한다.

이토록 탈 많던 음력달력은 훗날 기원후 1582년에 오자 그레고리 13세 교황이 양력(陽曆)계로의 달력체제 개혁을 단행한 후로 오늘날 대다수 문명사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안 달력(Gregorian calendar) ‘또는 양력 달력의 기초가 됐다. 이렇게 해서 1년(年, year)이란 지구가 태양을 중심축으로 삼아 공전하는데 소요되는 평균 365¼ 태양일수와 매 달의 첫 날 초승달이 12번 반복해 뜨는 시간의 한 단위로 정착됐다.

로마 모라리움 포룸의 야누스 개선문. The Arch of Janus in the forum Boarium of Rome, constructed in the 4th century CE. The four-way marble arch probably acted as a boundary marker and, perhaps not coincidentally, stands directly over the Great Drain or Cloaca Maxima which fed into the river Tiber. Images Courtesy: Ancient History Encyclopedia.

야누스 신은 당시 고대 다른 문명 그 어디에도 없던 토종 로마 신이다. 고대 로마는 로마가 식민지로 지배했던 그리스의 문화와 교육을 모범으로 삼아 구축했는데, 시민들의 신앙생활의 주축이었던 로마 신화 또한 그리스 신화를 원형으로 삼아 형성됐다.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로마신화 속의 신들은 그리스 신화 속 판테온 신전을 로마화시켜 탄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야누스는 역사 속에 등장한 로마인으로,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지금의 중앙 이탈리아에 자리했던 라티움(Latium)이라는 지방의 왕이었다. 그런 점에서 출생은 인간이었지만 독실한 신앙심과 높은 지도자적 자질을 인정받으면 신으로 격상된 야누스는 다양한 신과 해외에서 유입해 온 신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로마공화국의 관대한 종교관을 반영한 지극히 로마적인 신이기도 하다.

미술에서 야누스 신의 초상은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얼굴이 한 몸에 달린 형상으로 묘사된다. 그같은 형상에서 유추해 오늘날 현대 문화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또는 공적인 이미지와 사생활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을 가리켜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오늘날 야누스는 평상시와 분노했을 때 다른 신체와 인격으로 변신하는 가상인물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나 낮과 밤이면 인격이 변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선과 악 사이를 오가며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혹은 위선적인, 다시말해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인격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은유가 됐다.

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이 야누스 신에 부여했던 의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야누스는 로마공화국의 건립, 일-달-해의 시작, 농경과 달력체계를 포함한 천지의 이치와 세상만사의 시작과 끝, 천상으로 가는 입구와 출구(라틴어 ‘januae’), 통로 아치문(라틴어 ‘jani’), 문지기를 두루 상징하는 물환론적 정령(animistic spirit)이었다.

고대로마는 다신교 문화였던 만큼 그 당시 야누스 신에 대한 숭배의식과 미신적 의례도 매우 진지하고 엄격하게 준수됐다. 예컨대 로마의 병사들은 로마 포룸의 북쪽에 있는 야누스 제미누스 신전 앞을 행진할 때 반드시 상서로운 행군법에 따라 행진했다는 로마 역사가 리비(Livy)의 기록도 있다.

특히 야누스 신은 로마 사회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그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를 관재하는 로마의 군사적 수호 영령이었다. 야누스를 기념해 세워진 야누스 제미누스 신전은 사비니족이 로마를 침략했을 때 야누스가 끓는 물로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 세워졌다. 이를 기념해서 후대의 로마왕들은 전쟁시에는 야누스 제미누스 신전의 문을 열어 놓고 평화시에는 문을 닫아 놓아 평화로운 공화국의 안위를 시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로마는 야누스 신의 든든한 수호를 받고 있다는 정신적・영혼적 위안을 제공했다.

오늘날까지도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서양문명권에서는 섣달 그믐(New Year’s Eve) 밤이면 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이키며 신년 새벽을 맞이하는 제야 파티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가하면 로마 달력체계가 선포된 기원전 153년 이후로 로마공화국에서는 매년 새해 1월 1일 마다 신 집정관 취임식을 거행해 야누스 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친지와 지인들에게 음식을 돌려 새해의 풍요와 번창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같은 제례적 흔적은 오늘날 문명사회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기업의 신년시무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야누스와 벨로나. Janus and Bellona by Johann Wilhelm Beyer, 1773–80, Schönbrunn. Vienna, Schönbrunn gardens, statue Janus and Bellona

야누스의 성격은 그리스 신화에서 수입해 온 높은 신들, 예컨대 쥬피터처럼 불같이 과격하지도, 포세이돈처럼 변덕스럽고 난폭하지도, 헤라처럼 질투와 복수심이 강하지도 않았았다. 그의 전신이 묘사된 조각작품을 보면, 야누스는 긴 여행길에서 만날 여행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해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여행길에 오른 영혼들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해 왼손에는 열쇠를 쥔 인자한 신으로 묘사됐다. 또 그는 로마신화 속 전쟁과 폭력의 여신 벨로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제 전쟁을 그만두자고 평화를 설득하기도 한다. 선정하는 황제의 치정 하에 닫혀있던 야누스 제미누스 신전의 문은 평화로운 시절을 알리며 로마시민들의 민심을 다스렸다.

새해의 첫 달 1월을 맞는 우리 인간은 모두가 야누스다. 매년 연말이 되면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며 성취와 실패, 행운과 불운, 간직할 추억과 잊고 싶은 불상사를 차곡이 정리해 기억의 서랍 속에 넣는다. 그리고 1월 1일이면 지난 해 보다 여러모로 나은 새해가 펼쳐지길 기원하며 새해 결심을 한다. 비록 작심삼일로 끝나는 일이 있더라도 보다 나은 나와 미래를 다짐하는 신년각오(New Year’s resolution)는 그 자체로 신성하다. 미국의 초월주의 사상가 랄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저서《자기신뢰론》에서 썼듯, 고대 로마의 신들이 때론 얼간이 인간놀이를 했던 것처럼 인간 내부에도 숭고를 지향하는 신성(神性, divinity)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To make an end is to make a beginning.” — T.S. Eli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