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소사이어티 가을 휴일 피크닉

James Jacques Joseph Tissot, Holyday, oil on canvas, c. 1876. Collection: Tate Britain, London.

<휴일(Holyday>은 프랑스인 화가 자메 티소트(James Tissot)가 런던에서 작업하던 시절에 완성된 유화 작품이다. <피크닉>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런던 북부의 세인트존스우드(St. John’s Wood)라는 부촌 근교에 자리해있던 화가 티소트의 자택 정원 안 연못가다. 연못가 주변 참나무 이파리가 노랑과 주홍으로 물든 가을철 휴일 오후, 선남선녀들이 검정색 주철 기둥으로 둘러쳐진 연못 가장자리 잔디 위에 다과(茶菓) 피크닉을 차리고 따뜻한 햇살과 청명한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19세기 런던인들 사이에서 세인트존스우드는 젊은이들이 주말과 휴일이면 데이트나 쌍쌍파티를 하러 모여들던 데이트 명소로 유명했다.

James Tissot, Reading the News, circa 187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영국식 풍속화격인 가족단란도(conversation piece) 구도를 빌어 주말과 여가에 근교 야외에서 피크닉을 즐겼던 19세기 중상층 영국인들의 근대기적 문화상을 기록한 티소트의 대표작 <휴일>은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상류층 영국인들의 여유롭고 평온한 여가생활상과 최신 유행 패션을 세밀히 관찰하고 묘사한 문화사적 기록으로 평가된다. 영국인들은 야외 피크닉에서 도자기 찻주전자에 담은 진한 홍차를 은제 사모바르로 데운 물로 희석해 마셨다. 이 그림 속에 묘사된 푸른색의 밑뾰족한 ‘해밀턴’ 유리병이 암시하듯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은 청량감 좋은 인공 탄산수도 즐겨 마셨다.

화면 중앙의 회백 줄무니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상냥하게 상대 남성의 찻잔에 우유를 붓고 있다. 화면 중간에 드리운 참나무 가지와 단풍든 이파리 틈새로 연못 반대편 남녀 한쌍이 엿보이는데, 다리를 교차시키고 등을 보이는 남성과 흰 드레스 차림의 여성 사이엔 제법 진지한 구애가 오가는 듯하다. 베이지색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머리에 쓴 빨강-황금-검정색 줄무늬 캡에서 이들은 이진가리(I Zingari)라는 영국 엘리트층 아마츄어 크리켓 클럽 소속 선수들임을 시사한다. 이 유쾌한 사교 행사에 미혼 여성들을 인솔하고 온 나이든 샤프롱 여인네도 호위 책임을 잠시 늦추고 앉아 차 한잔을 든채 눈을 붙인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화면 오른켠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청초한 자태의 젊은 여인이다. 연못 건녀편으로 시선을 고정한채 홀로 사색에 잠겨 있는 이 여인은 다름아닌 티소트의 영원한 사랑이자 반려자 캐슬린 뉴튼(Kathleen Newton)이다. 양손에 낙타색 스웨이드 장갑, 어깨에 연겨자색 숄, 무르팍에 격자무늬 모직 담요를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날씨는 화창하지만 공기는 제법 쌀쌀한 것 같다.

파리 보자르 미술아카데미와 상류층 고객들 사이서 인기 높은 초상화가로 인정받던 화가 생활을 접고 홀연히 1871년 런던으로 건너와 영국 상류층 사교계를 오가며 그림을 그리던 1875년 어느날, 화가는 다채로운 과거의 젊고 아름다운 이혼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 후로 캐슬린은 뮤즈이자 모델로서 수많은 티소트의 작품 속에 등장했고, 1876년 티소트의 아들을 낳았다. 1882년 캐슬린이 폐결핵 말기 자살로 나이 스물여덟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티소트는 이 영국 연인과 함께 했던 런던에서의 10년을 그의 인생중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캐슬린의 죽음을 계기로 티소트는 영국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돌아갔다. 티소트가 영국에서 제임스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와 에드워드 포인터(Edward Poynter) 같은 기라성같은 사교계 초상화가들과 경쟁하며 ‘근대기 영국 상류사회의 사교 문화와 패션의 기록자’로서 경력을 쌓고 있던 사이(1871~1882년), 파리에서는 절친했던 동료 화가 에드가 드가가 인상파 회화의 주역이 됐고 슬럼 구역이던 몽마르트르는 미술가, 지성인, 문학가, 보헤미안들의 창조 산실로 변모했다.

최후까지 스승 앵그르의 가르침에 기초해 프랑스 초기인상주의와 영국 풍경화를 자신만의 독자적 근대 풍속화 양식으로 구축한 티소트는 총 15편의 ‘파리의 여인(La Femme à Paris)’ 회화 연작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근대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19세기 말 근대기 유럽인들은 어떤 표정을 머금고 어떤 패션과 몸가짐으로 어떤 장소에 모여 사교와 여가활동을 했을까? 근대기 유럽인은 어떻게 대도시 환경 속에서 신시대가 요구한 개인주의, 개성표현 욕구, 급변하는 사회 체제에서 적응하며 운명을 개척했을까? 티소트의 작품 세계는 그같은 문화사적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해줄 유용한 인류학적 시각자료다.

(점심 식사(Un Dejeuner), circa 1868, oil on canvas, 77.8 cm X 58.7 cm. Private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