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et Me Not

서양 묘지 디자인에 나타난 추억의 흔적

코르넬리아 그릴(Cornelia Griehl)이 디자인한 <카사니마 꽃문양 유골 단지> 테라코타로 수공 제작 Photo © Simon Marti.

흔히들 말하듯 죽음이란 삶의 일부이자 연장일까?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여간해서 감히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주제인 것이 사실이지만 죽은자의 몸을 묻는 매장 의식(burial) 또는 장례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화사의 일부분이었다. 인류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지금부터 약 2백5십만년에 살았다던 네안데르탈인들은 죽을자를 기리고 모시는 장례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역사를 통틀어서 인류는 묘지를 사자의 막대한 권력과 지위를 죽어서까지도 과시하기 위한 영혼과 불멸의 대표적인 상징물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고대 서양과 아랍세계의 교회나 성전의 석관과 마우솔레움 등은 영혼불멸의 본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구체화한 물리적 증거이기도 하다.

전세상을 하직한 자가 마침내 편히 쉬는 곳이라는 인생 최종의 지점이기도 하지만 또 달리보면 살아 남은 자들이 방문하고 간 자를 기리며 추억의 사물들로 장식하는 전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덤은 인류 최고(最古)의 디자인 공간이어 왔다. 죽은자를 기억하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의미있는 묘비를 설치하고 사진, 조각품, 꽃, 단지 등과 같은 묘지용 장식품들로 자칫 차갑고 외롭게 외면당하기 쉬운 묘지 공간을 장식하곤 한다.

그렇다면 죽은자를 모셔두는 묘지는 결국 산자들을 위한 생활 공간들의 일부라는 뜻일까? 그같은 다소 실존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유명 서구 근현대 건축가들과 미술가들이 묘지 공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여 미술 및 디자인 작품으로 구현한 사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묘지 디자인 전시회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벨러리브 뮤지엄 (Museum Bellerive)에서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건축사무소인 포그트 조경 건축사 (Vogt Landscape Architects)와 역시 스위스 출신의 여류 비디오 설치 미술가인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가 공동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벨러리브 뮤지엄의 안뜰 공간에 제작한 나무로 된 묘지 설치물은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클로드-니콜라 르두 (Claude-Nicolas Ledoux) 설계로 특유의 공모양 돔으로 화재를 모은 바 있는 미래주의 양식의 빌 드 쇼 묘지 (Cimetière de la Ville de Chaux)는 곧 완공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 모스코바에 있는 노보예비치 공동묘지 내의 마르샬 파벨 리발코의 묘지 디자인, 1992년 설계 Photo © Xavier Voirol.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발트프리트호프 공동묘지 (숲의 묘지라는 뜻)는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가베렐 (Gaberel)이 설계했으며, 바르셀로나에 자리하고 있는 유명한 이구알라다 묘지 (Cemeterio Igualada) (엔리크 미랄레스 (Enric Miralles) & 카르멘 피노스 (Carmen Pinos) 공동 설계)의 원본 청사진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묘지 세부 공간을 장식하는 다양한 세부적인 디자인적 요소들도 눈에 띈다. 비석, 금속 십자가와 목재 조각품 등은 스위스가 자랑하는 조각가인 헤르만 오브리스트 (Hermann Obrist)의 조각 원품은 물론 스위스 현대 조각가들이 디자인한 것들이다.

미술관 2층에는 여러 종류의 관 디자인 가운데에서는 특히 독일 근대 건축의 명인인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의 관 디자인 드로잉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팽배하던 서양 19세기 관 모형들, 그리고 각가지 유골 단지 디자인들이 전시되어 있다. 묘지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플라스틱 꽃다발, 꽃병, 촛대, 장례용 화환, 그리고 심지어는 묘지와 관련된 문학작품과 놀이감을 전시해 놓은 광경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결국 묘지란 죽은자 보다는 산자를 위한 공간이지 않은가? 영국의 현대 미술가 쥴리언 오피 (Julien Opie)가 제작한 그래픽 작품과 묘지 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임을 입증한다. 『묘지 디자인: 영원과 과거 사이』 전은 취히리 시내 아우슈텔룽스스트라세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벨러리브 뮤니엄에서 [2005년] 4월 1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