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여름, 공연 예술의 메카 비너 페스트포헨으로 간다

WIENER FESTWOCHEN 2004

올 초여름, 공연 예술의 메카 비너 페스트포헨으로 간다

비엔나, 신(新)구(丘)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공연 예술의 메트로폴리스
 비너 페스트포헨 (Wiener Festwochen)이 올해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의 오뉴월 봄을 장식하기 위해서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흔히 국제 공연 문화 애호인들과 관객들 사이에서는 비엔나 국제 페스티벌 (Vienna International Festival)이라는 명칭으로더 잘 알려져 있는 연례 종합 문화 페스티벌 비너 페스트포헨이 올해에는 5월 7일부터 6월 20일까지 약 6주여 간의 걸친 기간 동안 문화의 도시 비엔나 곳곳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레파토리로 무장하고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대륙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찾아온 관람객들을 반긴다. 특히 최근 연극, 음악, 무용 등 무대 예술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최첨단 실험 정신과 예술인들과 직접 접하고 그들과의 공기를 나눠 숨쉴 수 있는 축제의 한바탕이기도 하다.

또 그런가 하면 비엔나는 전통적으로 무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극작가, 배우, 무대 연출가들이 모여 사는 그 자체로서 한 편의 무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또 다른 유서깊은 2대 주요 음악 및 연극 페스티벌인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 (Salzburger Festspiel, 올 2004년 행사 기간은 5월28-31일)과 브레겐처 페스트슈필 (Bregenzer Festspiel, 올해 행사 기간 7월 21-8월 22일)도 사실상 비엔나에서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인, 극장 감독, 배우 등 무대 예술계 전문 인력을 대거 조달받아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다.

기독교 카톨릭 교권에 기반한 귀족주의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모름지기 예술이란 사회적 신분의 징표로 여겨져 왔던 이곳 오스트리아에서, 지체 높은 귀족과 상류 부르조아층 인사들이 앞다투어 무대 배우들과 결혼을 하려 들거나 온갖 화려한 파티에 연예계 유명인들과 배우들을 초청해 향연 분위기를 드높이는 문화적 관습은 뿌리깊다.

지금도 부르크테아터 국립 극장 (Burgtheater) 이나 국립 오페라 (Staatsoper) 에서 전속되어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이 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아 고위 공무원급에 버금가는 봉급생활을 하며 사회적 지위와 윤택한 생활을 누린다. 그런 점에서 비엔나는 직업적 무대 예술인이라면 한 번쯤은 살면서 일하고 싶어할 만한 무대 예술가들의 천국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부르크테아터 바로 옆켠에 자리해 있는 유서깊은 카페하우스 카페 란트만 (Café Landtmann)은 19-20세기 전환기 근대 극장 예술이 한껏 꽃피던 시절에 극작가, 배우, 연예인 및 연예계 지망생들이 즐겨 드나들던 화려한 사교 살롱 역할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반드시 행사 비너 페스트포헨이 벌어지는 연례 페스티벌 행사 기간이 아니더라도 비엔나는 평소에도 수많은 관광객들과 예술 애호인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도시이다. 1498년 이래로 지금까지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호프부르크 예배당 (Hofburg Chapel)에서 거행되는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예배 미사는 500년된 유서깊은 전통이다. 하이든과 슈베르트도 비엔나 소년 합창단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소년 단원들이 아니었던가.

늦은 봄과 초 여름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이면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연주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음악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극장 밖에서 매표 행렬에 끼여 입석표도 마다않고 입장권 구입을 기다리는 모습은 이미 오랜 진풍경이 되어 버렸다. 비엔나의 무대 공연을 만끽하려는 그 많은 대중들의 발길에도 불구하고 비엔나가 선사하는 질높은 공연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매년 새해 첫 날이면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신년 아침 인사로 국영 텔레비젼 방송국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신년 컨서트와 그 전날 이브 공연에 연주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퍼레타 『박쥐 (Die Fledermaus)』다.

어디 그뿐인가? 특히 제1구역 도심 중심부는 과거 합스부르크 황실의 절대주의적 귀족주의적 사고방식과 유산의 잔재가 지난 20세기 초엽까지 번성한 오뜨 부르조아지들의 물질적 번영과 한데 어우러진 채 남아 있는 곳이자 과거의 제국시절의 영광을 못내 잊지 못하는 비엔나인들의 아쉬움 섞인 향수가 짙게 배어있는 곳이다. 도심 곳곳과 바로크풍 황실 궁전에 펼쳐져 있는 공원과 정원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비엔나를 찾는 관광객들의 눈을 한껏 즐겁게 해 준다.

모차르트의 『돈 죠바니 Don Giovanni)』 오페라 공연으로 1869년 처음 문을 연 이래, 베르디와 바그너가 지휘를 했고 근대 음악의 명인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가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던 국립 오페라 (Staatsoper), 일년 내내 고전 및 근대 음악 공연 레파토리가 끊이지 않는 대중 오페라 극장 폴크스오퍼(Volksoper), 오스트리아 정부가 관리하는 2대 최고의 연극 공연장인 부르크테아터 (Burgtheater)와 아카데미테아터 (Academietheater)는 비엔나가 오늘날까지도 무대 예술과 음악의 세계적인 중심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게 해 주는 굳건한 요새이자 이 분야 공연자들이라면 한 번쯤 그곳 무대에 서 보고파 하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1812년 창설된 비엔나 악우 협회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in Wien – 지금의 콘체르트하우스 (Konzerthaus)는 비엔나가 세계적인 고전 음악의 수도로서의 우위를 유지하는데 막강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국경과 문화를 넘나드는 범유럽 규모의 연합 문화 페스티벌
 제2차 대전 패전이 남긴 폐허와 상흔을 뒤로 한채 옛 신성 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귀족 문화 유산을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한다는 국가적 차원의 문화 청사진의 일부로써 비너 페스트포헨이 처음 발족된 해는 1951년. “오스트리아의 강한 생존 의지에 대한 표명”이라는 절박한 모토 하에서 창설된 국가주도의 야심만만한 거대 문화 페스티벌었던 만큼, 규모면으로나 내용면으로나 초대 행사 서구 구미 문화권에서 활약하는 최고급 무대 예술인들이 모이는 국제 연합 페스티벌 (allied festival)의 형식을 띠고 시작되었다.

비너 페스트포헨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공연들의 수준이 매우 높고 진지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고전 명작을 중추로 한 레파토리를 기획•구성한다는 점일 게다. 1951년 첫 회 행사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카를 뵘 (Karl Böhm, 1894-1981)이 이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죠바니 (Don Giovanni)』는 지금도 페스티벌 약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자랑거리였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종합 예술가 앙드레 헬러 (André Heller)의 버라이어티 시예술 공연 『플릭 플락 (Flic Flac)』은 1981년 하일라이트로 기억되고 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비너 페스트포헨의 총예술 감독직을 지켜 오고 있는 스위스 출신의 예술 기획자 뤽 본디 (Luc Bondy, 1948년 생)가 불혹의 나이로 연출을 맡았던 1991년판 『돈 죠바니』 공연은 이후 『피가로, 이혼하다 (Figaro lässt sich scheiden)』(1998년),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1999년), 『맥베드 (MacBeth)』(2000년 – 이 작품은 이미 1999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에 성공한 화재작이다.) 등을 포함해서 그가 페스트포헨을 위해 특별 연출했던 그 어떤 다른 해 작품들을 능가할 만한 대성공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가하면, 1994년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마르틴 쿠제이 (Martin Kusej)는 라는 무용 공연을 위한 음악을 지휘하여 무용 음악의 새 장을 열었다.

지난해, 프랑크 카스토르프 (Frank Castorf) 감독이 테네시 윌리엄스 1961년 원작 대본 『청춘의 달콤한 새 (Sweet Bird of Youth)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포에버 영 (Forever Young)』이 2003년판 비너 페스트보헨의 하일라이트 공연작으로 높이 찬사받으며 작년 비너 페스트포헨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열기를 뒤로 한 채, 올 행사는 유럽 공연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재정비하고 현대 공연 문화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급 수준의 레파토리를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라고 5월 7일 저녁 비엔나 시청 건물 (Rathaus)에서 열린 개막 행사에서 안드레아스 마일라트-포코르니 문화부장은 포부를 밝혔다.

그같은 야심만만한 의욕은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특히 올 본 5월 1일부로 본격화된 동유럽 10개국의 유럽 연합 추가 가입과 때를 같이하고 있느니 만큼 올 페스티벌은 중유럽 도시 비엔나에서 열리는 범유럽적 문화 축제라는 점에서 남다른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참여하는 예술 감독들 및 예술인들 중에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주요 서구 유럽 및 구미권 국가들 이외에도 에스토리아, 헝거리, 우크라이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러시아 등 동구권 유럽 출신들이 전에 없이 대거 참여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드라마, 댄스, 음악, 쟝르 크로스 오버, 전시 행사 등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 19개국으로 부터 선별 초대된 총 35개 국제적 제작사들 주도로 223편의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는데, 그중 이번 행사만을 위해서 특별 의뢰 제작된 초연 공연의 수만도 11편에 이른다. 총 13개국 34개 제작사가 선보인 181편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작년의 행사 규모에 비하면 공연작의 수를 예년에 비해 20%가량 대폭 늘린 셈이 된다. 이들 공연을 통해서 제공되는 판매가능한 매표수 또한 78만3백표로 예년보다 약 10%가 증가된 수이다.

다수의 공연이 줄줄이 무대에 올려지는 만큼 이들 공연장들의 위치와 명성도 제각각이다. 현재에는 무대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일명 “블루 칼라” 극장이라는 별명 처럼 과거 노동자들 전용 극장 역할을 했던 소피엔잴레 (Sophiensäle)에서 부터 1962년 처음으로 비너 페스트포헨을 위한 연극 무대로 사용되기 시작한 옛 대중 극장 테아터 안 데어 빈 (Theater an der Wien, 본래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와 베에토벤의 『피델리오』 공연을 감독했던 임마누엘 쉬카네더 (Immanuel Schickaneder)의 극장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엽 화재 끝에 버라이어티 무대 공연장으로 대시 문을 연 로나허 극장 (Ronacher) – Cats, Chicago, F@lco – A Cyber Show 등 상업성 강한 공연이 레파토리의 주를 이룬다), 비엔나 무지움스쿼르티에 (Museumsquartier) 內 무대 공연장 할레 E와 할레 G, 실험성 강한 현대 연극과 무용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샤우슈필하우스 (Schauspielhaus)와 아카데미테아터 (Akademietheater), 그리고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시절에 지어진 바로크풍 건축 양식의 부르크테아터 (Burgtheater)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극장 현장에서 두루 분산되어 공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체된 현대 연극은 거부한다 –과거와 현대의 창조적 접목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서 기획된 각종 무대 행사 수는 총 53편. 그 가운데에서 연극이 차지하는 수는 30편으로 족히 총 무대 행사의 반 이상이 연극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니 비너 페스트포헨에서 차지하고 있는 연극의 중요도는 어지간히 짐작을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연극 예술의 현실은 과거 한때 일부 열렬한 애호가와 후원자의 지원을 받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비로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접어들어서야 유럽을 포함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연극은 귀족층과 명문 상류 계층에게 봉사하는 고급 연예 전유물로서의 신세를 벗어났지만, 그와 동시에 연극은 이를 강력하게 뒷바침해 주었던 옛 상류층 연극 애호가들을 잃었다. 전과 달리 20세기 후반기 연극계는 특히 소련의 1917년 혁명, 미국의 1920-30년대에 걸치 공황기 등을 거치면서 귀족층 뿐만 아니라 보다 폭넓은 사회 계층의 인물들의 주제로 한 민주화된 연극이 실험되곤 했지만 결국 연극 예술은 그 두 관객들 모두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텔레비젼의 대중적 보급과 방송국 제작 드라마와 각종 연예 프로그램의 일반화로 인해서 연극은 시대착오적인 오락물이 되어 버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연극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무엇인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Poetics)』에서 썼던 것처럼 연극이란 부유하고, 여가가 많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 일원이 향유하는 예술 형식이라는 상식이 과연 현대에 와서도 사실도 판명되고 있는가? 그러나 현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적어도 서구 구미 세계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 여러 산업화된 국가들을 경우, 일반 대중의 교육 수준은 전에 없이 높아졌고 여가 시간도 눈에 띄기 많아졌음에도 오히려 연극과 음악을 포함한 무대 예술 향유 인구는 비례적으로 증가하질 않았다.

그만큼 무대 예술과 일반 대중과의 간극은 크다는 말이 되는데, 무대 예술이 현대인의 일상 생활과 정신 활동에 긴요하게 요구되는 오락 형식으로 재인식되지 않는 한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텔레비젼 이외에도 영화, 홈 비디오, 인터넷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등이 나날이 대중의 여가와 오락 문화를 장악해 가고 있는 요즘에 와서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비너 페스트포헨이 제공하는 공연들이 하나같이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연극계와 관객들 사이에 고여있는 정체 현상을 해소해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 공연 속에 마다 숨쉬는 핵심은 무대 위의 배우들과 객석에 앉은 관객들 사이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지적 가능성을 열어보려는 도전의식이다. 매 공연 마다 공연이 시작하기 두세 시간 전, 해피 아워 (Happy Hour)로 이름된 무료 입장 토론 시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페스티벌은 그것이 선보이는 내용과 질로 승부를 할 수 밖에 없다. 예술 사회학에서도 흔히 제안되고 있는 것처럼, 극장과 관객 간의 재결합에 효과적인 한 가지 방법은 오랜 역사에 걸쳐 확인된 불후의 고전 대본을 연극 무대로 올리는 방법이 있다. 그같은 전략은 이번 비너 페스트포헨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되고 있는데, 고전 문학작품이나 희곡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하거나 패러디화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전 문학 작품과 희곡은 그 높은 예술성을 드높이 칭속받고도 일반인들게는 한 번도 제대로 읽히지 못한채 서가 한 구석 꽃힌채 잊혀져 가고 있을까. 벨기에 출신 연출가 기 카시에 (Guy Cassier) 의 연출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Rememberance of Things Past)』는 3부작으로 구성된 그의 프루스트 프로젝트이다. 역시 벨기에 출신의 소설가 겸 영화 감독인 에리 데 카이퍼 (Eric de Kuyper)와 극작가 에르빈 얀스 (Erwin Jans)가 무대 연출을 협력해 미술, 음악, 무대 디자인이 결합된 종합 예술성 강한 작품이지만 오락성도 그에 못지 않게 볼 만하다.

근대가 낳은 희곡 작가 헨릭 입센 (Henrik Ibsen)의 작품들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번 페스트포헨에서는 입센의 근대 고전 세편 『노라 (Nora)』 (희곡 원제 『인형의 집 (A Dolls’ House)』), 『도편수 (The Master Builder)』 그리고 『페르 귄트 (Peer Gynt)』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비너 페스트포헨의 단골 무대 연출가 2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Thomas Ostermeier)와 페터 차덱 (Peter Zadek)의 감독으로 무대에 올려져서 근대적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공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희곡도 현대 연극 무대에서 빠질 수 없다. 페스트포헨과 비슷한 시기인 5월 중순경 런던의 영 빅 극장에서 동시에 초연이 개봉돼 평론가들 사이에서 높은 호응을 얻은 바 있는 『크룰 앤 텐더 (Cruel and Tender)』(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협력작)는 뤽 본디 총감독이 최초로 시도한 영어 대본극으로 영국의 극작가 마틴 크림프 (Martin Crimp)가 고대 그리스의 희곡 작가 소포클레스의 원작인 『트라키스의 여인들 (The Women of Trachis)』를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반테러 임무를 완수하고 그곳에서 구출해 온 한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영웅 헤라클레스는 과연 그의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믿었던 것처럼 선하고 용맹한 영웅이기만 한가?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전쟁 영웅이 아니라 학살과 파괴를 자행한 전범이고 어린 소녀는 정부로 밝혀진다는 이 스토리는 고대 그리스 드라마를 미국의 반테러주의 전쟁이라는 현대적 맥락으로 전환시키고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정교한 열출력, 조명 기술, 세련된 무대 세팅에 이르기까지 가히 이번 행사의 하일라이트라해도 좋을만큼 만족스럽다.

피터 셀러즈 (Peter Sellars, 루르 트리엔날레 (RuhrTriennale) 제작)가 제작한 『헤라클레스의 자식들 (Children of Herakles)』의 스토리 라인도 그에 못지 않게 정치적으로 시대적으로 유효한 해설을 제시한다. 그리스의 희곡 작가 에루리피데스의 동명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현대극으로 옮긴 이 작품에서는 고대 민주주의 아네테 시(市)에서 벌어졌던 망명희망자에 대한 권리 문제를 다룬다. 아버지 헤라클레스가 죽고 나자 고향 테베에서 살아 남은 자녀들이 아테네로 도망쳐 그곳 신전 망명자 보호소에서 머물것을 요구하면서 아테네 전체에 불붙기 시작한 망명자 권리 논쟁을 한 판의 연극 무대로 옮긴 것이다.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종교적 핍박을 피해 서방 세계로 이주해 오는 수많은 이미자 및 망명자 이슈는 유럽과 오스트리아 정치에서는 누구도 건드리길 꺼려하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다. 그런 주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것을 제안하는 이 작품은 의도한 메시지 전달 효과를 한층 고조시키기 위해서 일반 연극 무대가 아닌 오스트리아 국회 건물 (Reichsrat) 안에 있는 역사관 홀에서 펼져진다.

현대 연극의 정치적 논평이 보다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무대는 『1934년 2월-침묵의 사전 (Februar 1934-Das Wörterbuch des Schweigens)』. 오스트리아에서 시민 내전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목에서도 시사하고 있듯이, 양차 대전 사이기이던 당시 1934년, 오스트리아 내부에서는 사민주의 방어대와 오스트리아 파시스트주의 돌푸스 정권을 옹호하는 민간 경비대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는 비극이 벌어졌었는데, 이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서는 침묵으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깊숙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프로이트가 그의 심리분석학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상처와 슬픔은 꾸준한 애도 작업 (Trauerarbeit)을 거쳐야 정화되는 법이다. 과거의 상처를 규명하고 극복할 것을 시도하는 이 작품은 이 연극을 위해서 면밀하게 수집된 자료와 문서에 근거해 대본을 구성했으며 연극 중간중간에 관객들의 질의와 참여를 유도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한편, 보다 실험적인 성향의 연극을 기대하는 관객들이라면 포룸페스트포헨ff라는 부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한 편의 연극 작품 『도덕과 그 밖의 다른 패러독스의 시학에 관하여 (Von der Poesie der Moral und anderen Paradoxien)』을 권할만 하다. 최근 동유럽 10개국의 유럽연합 가입이라는 새로운 정황에 즈음하여 서로 다른 정치경제적 사정과 문화적 차이에 상관없이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온 연극인들이 동일하게 겪는 불안감과 방향감 상실을 토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연극인들에 의한 연극인들에 대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 어느 페스티벌을 막론하고 귀염둥이 역할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인형극일 것이다. 올해 비너 페스트포헨이 선보이는 인형 극장은 카타다 출신의 팔방미인 솔로 공연 예술가 로니 버켓 (Ronnie Burkett)을 초대해 아름다움과 판타지를 주제로 한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직접 만든 인형들을 가지고 연기한다. 정치와 철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토털 환상 무대를 경험하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한 편의 환상극도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는 법이다. 프랑스에서 온 콤파니 뒤 한느통 제작의 초현실풍 서커스극 『심연의 여명 (La Veillée des Abysses)』은 4월에 런던에서 공연에 올려져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화재작이다. 주인공을 맡능 제임스 티에레 (James Thiérrée)는 각각 무희, 곡예사, 줄타기 광대, 소프라노 가수, 저글러 각각 한 명씩 도합 6인팀을 구성하여 연극, 음악, 서커스 쟝르를 한데 녹이는 환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현대 음악은 모더니즘 신화의 수호자
그런가 하면 음악이 주가 된 인형극도 있다. 오늘날 이른바 뉴뮤직 (New Music)의 최고 권위자이자 한때 현대 음악계의 악동으로 널리 명성을 떨쳤던 바 있는 피에르 불레 (Pierre Boulez)의 총감독 하에 기획된 이번 페스티벌 음악 프로그램 가운데에서 주목할 말한 인형극3편은 마누엘 에 팔라 (Manuel de Falla)의 『명인 페트로의 인형극 (El Retablo de Maese Pedro)』, 스트라빈스키의 『르나르 (Renard)』, 그리고 아놀드 숀베르크의 피에로 뤼네르 제21번』이 그것이다. 이 인형극에서는 프랑스에서 온 앙상블 앤터콩탱포랭 (Ensemble Intercontemporain) 단원들이 특유의 매력넘치는 음악 연주를 맡아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한껏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17세기에 활동했던 작곡가 마르크-앙트완 샤르팡티에 (Marc-Antoine Charpendtier)의 코미디 발레 음악곡 『몰리에르 죽다 (Molière stirbt)』가 비너 페스트포헨 사상 처음으로 초연 연주를 무대로 올려서 자칫 근대 음악 일색이 될 뻔한 레파토리에 웃음과 다채로움을 더하려한 흔적도 엿보인다. 고전 음악과 근대 음악을 현대적으로 소화한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보다 심층적으로 맛보길 기대하는 청중들이라면 5월 중순경부터 폐막일 전까지 로나허 극장에서 이어질 차이트_초네 (zeit_zone , 영어로는 타임존 (time_zone)이라는 의미)이벤트를 놏치지 말 것을 권한다. 뉴욕에서 온 만능 문화인 DJ 스푸키 (DJ Spooky)가 원작 『국가 탄생 (Birth of a Nation)』을 한 편의 힙합 시네마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클랑포룸 빈 (Klangforum Wien)은 최근 오스트리아를 주도하는 신세대 DJ, 전자 음악인, 프로듀서들을 한데 모아 근대 클래식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들려주는 『리믹스 (Remix)』 컨서트를 선보인다.

빈에서 활동하는 오스트리아 현대 음악인 겸 피아니스트 루페르트 후버 (Rupert Huber)의 기획으로 꾸며지는 『은밀한 도피 (Private Exile)』에서는 비엔나 23개 구역별 한 가정씩을 선정한 후 각 가정마다 일일이 뮤지션들이 방문해 즉석 연주를 벌이는 일종의 실험적 음악 퍼포먼스를 벌인다. 후버가 이끄는 이 연주단은 각 가정에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 MP3 스트리밍를 통해서 DJ 음악, 일렉트릭 음악, 록, 힙합, 재즈, 실험 음악, 고전 음악, 비서양 음악이 두루 믹싱된 음악 스타일을 선사한다. 이 『은밀한 도피』 프로젝트에는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신세대 전자 음악가 리햐르트 도르프마이스터 (크루더와 도르프마이스터 (Kruder + Dorfmeister) 2인조 현대 음악 밴드 중 일인)가 참여하고 있어서 일반 대중 음악팬들의 관심까지 고조시키는데 한몫을 톡톡이 했다.

“모더니즘 신화의 투사”라는 모토를 올 페스티벌 음악 프로그램의 대주제로 요약한 피에르 불레의 약속 대로 총 22편의 컨서트와 오페라 공연들은 서양 근대 음악의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너 페스트포헨이 독일 뮌헨 음악 비엔날레 페스티벌과 베를린 페스트슈필과 공동으로 제작한 『베레니스 (Berenice)』는 동명의 에드가 앨런 포의 근친상간을 내용을 한 공포 소설을 오페라극으로 재탄생 했다. 데뷔시가 쓴 유일한 오페라 『펠레아와 멜리상드 (Pelléas et Mélisande)』는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공연된 적이 없는 세기말풍 멜라콜리 음악의 극치로 유명한데, 금지된 사랑, 질투, 형제살인 등과 같은 어둡고 신비로운 요소들이 한데 버무려진 사랑의 수수께끼극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체코계 유태인 피아니스트 겸 문필가였던 레오슈 야나첵 (Leoš Janáček)의 출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빈 콘체르트하우스 (Konzerthaus)에서는 야나첵의 드라마 곡 『어느 실종된 사람의 일기 (The Diary of One Who Disappeared)』을 통해서 한 집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몰래 부모님의 농가를 떠나는 한 총각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근대 12음조 음악의 창시자 아르놀드 숀베르크는 그의 견실한 추종자이자 제자였던 안톤 폰 베버른 (Anton von Webern)을 가리켜서 한 줄기 한숨으로 소설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심오한 감수성의 소유자로 묘사한 적이 있다.

폰 베버른은 숀베르크와 구스타브 말러와 더불어 20세기초 근대 음악의 주인공으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정작 그의 음악 세계는 지독히 난해해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연주되는 기회가 매우 적다. 그런 점에서 평소 폰 베버른의 음악을 듣고 싶어했던 근대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비너 페스트포헨이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되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빈 국립 오페라단이 부르는 프리드리히 체르하 (Friedrich Cerha)의 오페라 『얼룩옷차림의 파이프 피우는 사람 (Der Rattenfänger)』가 지난 1997년 그라츠에서 열린 슈타이리셔 헤릅스트 (Steirischer Herbst) 예술 페스티벌을 이후로 처음으로 개작판을 청중에게 선보인다.

그 밖의 들을 거리와 볼거리 – 컨서트, 전시, 시네마
올해 페스트포헨 컨서트 시리즈는 여느해와 다를바 없이 특별 초청되어 온 국제급 지회자들과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펼치는 고전 음악의 향연으로 그득하다. 특히 올해의 특별 주제는 드보르작 Antonin Dvorák. 올해가 드보르작 사망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 착안하여 드보르작을 기리는 기념 컨서트에서는 그의 가장 간판작이자 아홉번째 심포니인 『신세계 (New World)』 협주곡 이외에도 사이멈 래틀 경 지휘로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드보르작의 오페라 『반다 (Vanda)』를, 블라디미르 페도제예프 지휘와 빈 합창단 (Wiener Singverein)으로 『진혼곡 (Requiem)』을, 그리고 피에르-로랑 에마르 (Pierre-Laurent Aimard)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비교적 덜 알려진 드보르작의 피아노 협주가 계속된다.

그 밖에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세이지 오자와가 이끄는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가 초청 연주를 위해서 비엔나를 방문하게 되며 리카르도 무티 (Ricchardo Muti)의 이탈리아 음악 프로그램, 죠르쥬 프레트르 (George Prêtre)의 안톤 브루크너 프로그램, 그리고 나콜라스 하르농쿠르 (Nikolas Harnoncourt)에 이르기까지 말그대로 고전 음악계의 초호화판 출연진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만큼 고전음악팬들에게는 올 여름 비엔나는 음악의 성지순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비너 페스트포헨은 시각 문화에 관심있는 문화인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느놀드 숀베르크 센터에 자리잡고 있는 전시장에서는 행사 기간은 물론 9월 중순까지 숀베르크가 생전 사용하던 작업실을 재현해 보여주고 그의 12음조 음악이 탄생하기까지의 다양한 관련 원본 문헌과 자료을 공개하는 전시를 계속한다. 『아르놀드 숀베르크의 탁월한 선택 (Arnold Schönbergs Schachzüge)』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엿볼수 있듯이 인습에 젖어있던 전통 음악과 미의식으로부터 과감히 단절하여 독창적인 근대 음악을 세계를 연 작곡가의 업적을 높이 재평가하고 있다.

한편 비엔나의 유태인 박물관에서는 『비엔나, 유태인의도시 (Wien, Stadt der Juden)』이라는 전시를 10월말까지 열고 이미족으로서 비엔나에 정착했던 유태인 민족들이 근대 세기 전환기와 양차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비엔나에 기여했던 유태인들과 업적을 시기별로 고찰하려 시도한다. 오스트리아의 역사가 한스 티체 (Hans Tietze)도 지적했던 것처럼 유태인과 비엔나인을 따로 구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유태민족들의 존재는 이 도시의 자연스러운 구성의 일부였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리아 국립 영화박물관에서는 페스트포헨을 계기로 박물관 종합회고전을 마련해 5월말까지 전시로 부친다. 들뢰즈 (Gilles Deleuze)가 현대인은 “감시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 논평에 착안해서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의 개인 생활을 침해하는 감시 카메라를 모티프로 한 30편의 단편 영화와 비디오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그 성가신 감시 카메라에 비평적인 “시선을 되던져” 본다.

현대 무대 예술의 혁신성과 실험성이 시험받는 곳 
5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교회 미사의 전통, 고전 음악 연주에 관한 한 새로운 해석보다는 과거의 연주법과 소리를 그대로 보존하여 연주할 것을 고집하는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 보다는 옛 건물을 고증적으로 재건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일반인들의 전통적 미의식 – 그같은 비엔나인들의 과거와 전통에 대한 애정과 보존에 대한 애착적 정서가 자칫 고리타분하고 혁신에 저해적이지는 않을까?

그같은 당연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너 페스트포헨은 전통과 혁신을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킨다는 기본 취지에 충실하다. 무대 예술 분야의 예술적인 혁신의 최첨단을 실험하려 드는 지성적인 접근 태도가 두드지는 행사인 만큼 자칫 평소 무대 예술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일반 대중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때론 난해하고 또 때론 상상외로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게다.

전통은 과거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실험성은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는 사고와 태도를 표현하기 때문에 더더욱 관객의 관심과 지치지 않는 열정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전통과 혁신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문화 관객들이라면 바로 그같은 사색의 장場을 제공해 줄 비너 페스트포헨을 잊지 말고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한다.

* 이 글은 본래 하나은행 발행 Transtrend 誌 2004년 여름호에 게재되었던 컬럼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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