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02년]로부터 약 2년전인 2000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 자리한 갤러리 벨베데레에서는 《구스타브 클림트와 여인들》展이 열려 이곳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바 있다. 벨베데레 갤러리가 있는 벨베데레 궁은 오스트로-헝거리 제국 시절 1714-22년 무려 8년에 걸쳐서 사보이의 오이겐 왕자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바로크 양식 궁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립 미술관으로 지정되었는데, 클림트를 비롯해서 에곤 쉴레, 리햐르트 게르스틀, 오스카 코코슈카 등 19-20세기 전환기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들의 대표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무지움스쿼르티에서 재개관 무지움스쿼르티에(MQ) 레오폴트 미술관 (Leopold Museum-Privatstiftung)
19세기말에서 20세기로 이행되던 시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야릇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탄생하여 근대 지성계를 뒤흔들기 시작하는가 하면, 아놀드 쇤베르크의 근대 음악 이론, 아돌프 로오스 (Adolf Loos)와 오토 바그너 (Otto Wagner)의 유겐트스틸 (Jugendstil)의 근대 건축 양식이 등장하고 문학과 비판적 언론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기말 빈 (Fin-de-Siècle)”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때는 지적 창조적 에너지가 곳곳에서 분출하던 빈 모더니즘 (Wiener moderne) 시대는 세기말 특유의 종말적 비관주의와 새시대에 대한 이상주의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19세기 산업혁명과 낭만주의로 향한 회귀적 욕망이 잔존하는 가운데 20세기 근대주의가 표방하는 개인주의가 충돌하던 이 시기, 오스트리아 빈의 근대 미술은 스캔들로 출발했다.
19세기 후반기까지 줄곧 화려하고 장대한 바로크 회화 양식이 보편화되어 있던 빈에 장식적인 고전주의를 배격한 새로운 회화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스 마카르트를 위시로 하여 빈 분리파 운동 (Wiener Secession)을 이끈 구스타브 클림트,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와 오스카 코코시카 등이 외부 시대의 혼돈과 내면적인 감성과 갈등세계를 표현한 그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이는 같은 시기 파리에서 일던 상징주의, 독일과 북구 유럽의 표현주의 운동과도 맥을 함께하는 당대의 보편적인 사조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표현주의가 세계적인 미술사조로 정식 인정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후반에 접어 든 이후, 한 개인 미술 수집가의 공헌이 크게 기여했다.
유태인 이민자들이 건설한 백일몽 같은 근대 음악계 오늘날까지도 ’음악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19-20세기 전환기 – 빈(Wien, Vienna)은 시기 지성사적으로나 예술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발적인 창조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때는 17세기 이후로 지속되어 온 귀족주의 절대왕권이 제 명을 다하여 쇠퇘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며 상업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까지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신흥부유층의 부르조아 사회가 자리잡기 시작한 격동의 변화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