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 속 원과 각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ANDREAS GURSKY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눈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상케 하듯 원거리에서 조망하듯 바라보는 파노라마식 시점 구성과 근엄한 분위기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은 흡사 번쩍거리듯 미화된 건축풍경과 실내공간이라는 ‘원’을 배경으로 얼굴 없고 무기력한 미물로 전락한 인간 군상들이 ‘각’을 이루며 사진 속 선상을 맴도는 소비 사회를 다루고 있다.

Andreas Gursky. Paris, Montparnasse. 1993. Chromogenic color print. 6' 8 3/4"x 13' 1 1/4" (205 x 421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Paris, Montparnasse. 1993. Chromogenic color print. 6′ 8 3/4″x 13′ 1 1/4″ (205 x 421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현대 사진예술계의 슈퍼스타로 전세계 화랑가에서 그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제프 월(Jeff Wall, 캐나다)와 더불어 구르스키가 초대형 컬러판 인화 사진 작품을 사진예술계에 편입시키기 시작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들은 사진 예술하면 의레 A4 크기 내외 소형 흑백사진을 예술이라고 알고 지내왔다. 작품의 규모와 예술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찾는 일반 관객들은 언제부터인가 대형 회화 캔버스와 사진 인화지가 제공하는 규모적 압도감에 익숙해져 버렸다.

평균 폭 2.5미터 안팎, 크게는 가로세로 길이 미터에 이르는 구르스키의 초대형 컬러 사진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작품 속 직선과 곡선에 흐르는 광택처리와 세심히 구성한 것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구도에 일종의 장대함을 느낀다. 흡사 번쩍거리듯 미화된 건축풍경과 실내공간이라는 ‘원’을 배경으로 얼굴 없고 무기력한 미물로 전락한 인간 군상들이 ‘각’을 이루며 사진 속 선상을 맴돌며 공간을 소비한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를 연상케 하듯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식 시점 구성과 근엄한 분위기는 비(非)개인성과 익명성을 주축으로 하던 독일 1950년대 사진 미학의 유산이다.

Andreas Gursky. 99 Cent.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6 ' 9 1/2" x 11' (207 x 337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99 Cent.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6 ‘ 9 1/2″ x 11’ (207 x 337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기하학적이면서 개인을 압도하는 자연 경관이나 건축 내외 공간을 배경으로 배치된 인간상은 더없이 작고 고독한 개체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사진 작품을 두고 분위기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를, 방안지처럼 반복되는 격자 이미지는 196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언급한다. 도쿄, 뉴욕, 파리, 사울파울루, 카이로, 상하이, 로스앤젤레스, 스톡홀름, 홍콩 등을 부지런히 여행하며 작가는 현대 사회의 시대상을 모색한다.

호텔 로비, 아파트 건물, 대형 스토어, 증권거래시장에 이르기까지 하이테크 산업과 교활한 시장 논리가 오가는 곳을 색과 세부 묘사를 통해 현기증 날 만큼 생생하게 포착한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년)와 『99센트』(1999년)에 보이는 격자 이미지에서는 판에 박힌 사각형 생활 공간에서 모여 사는 인간 개개인이, 대량 인쇄된 포장 상자에 담겨 슈퍼마켓과 편의점에 내다 팔리는 화학 세제와 크게 대를 게 없다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상하이』(2000년)가 내뿜는 금색 찬연한 누부심과 층층으로 쌓인 아찍한 원형 복도 광격에서 공허감과 무기력감이 엄습해 오는 건 왜일까? 언뜻 보기에 호화 빌딩처럼 보이는 이 내부 공간에서 과장된 빛과 인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최근 10년간 활용해 온 디지털 기법 덕택이다. 대형 인화를 위해서 5 × 2.178 감광한 카메라만을 사용한다는 구르스키에게 스캐닝, 인화 작업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이미지 편집과정은 중요한 기법이다. 특히 디지털 작업에서는 픽셀 하나 하나를 정성껏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수백만 개로 반복되는 미세한 사각형 픽셀들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며정리할 때 이미지 데이터 처리에 바쁜 마이크로 칩들 사이에는 전자 회로가 돌고 돌아 사격형 픽셀을 미묘하게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Andreas Gursky. Shanghai. 2000. Chromogenic color print. 9' 11 5/16"x 6' 9 1/2" (280 x 200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Shanghai. 2000.
Chromogenic color print. 9′ 11 5/16″x 6′ 9 1/2″ (280 x 200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뉴욕 타임즈 스퀘어를 이미지화한 『타임즈 스퀘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금색 하이라이트와 번쩍이는 화려함은 상업화된 이미지 세계를 지나쳐 미래의 사이버 이미지 세계까지 넌지시 암시하는 듯하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시대정신을 대벼나는 사진작가로 주목받게 된 데에는 그의 사진이 상업사진의 기술적 세련성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1990년대의 키워드가 결합된 결정체라는데 있다.

이미 어릴 적부터 유명한 광고 사진 작가이던 아버지 밑에서 상업사진의 기술을 연마한 그는 1970년대 말 에쎈에서 슈타이너 교수의 지도로 당시 서독 최고의 전통적인 사진교육을 받았고, 다시 1980년대 초에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밑에서 문하생 생활을 하며 사진공부를 계속했다.

미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전에서는 작가가 1984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사진 작품 45점이 전시되며, 뉴욕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5월 15일까지 계속된 후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치례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 이 글은 SK Telecom 사보 《열린세상》 2001년 5/6월호에 실렸던 안드레아 구르스키 현대사진 전 리뷰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