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쉽게 해독하기

ROLAND BARTHES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지난해 11월 27일부터 올 3월 10일까지 프랑스 현대 철학가 롤랑 바르트의 전시회를 열어 그의 철학과 사상 세계를 조명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현대 철학자, 저술가, 문화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일생과 업적을 미술관 전시로 부칠 만큼 지성인을 전통 문화 만큼이나 존중하고 떠받드는 프랑스 사회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1938년에 촬영된 방년 23세의 롤랑 바르트의 초상 사진. Private Collection.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계 스타
프랑스만큼 지성인이라는 직업을 사회문화적으로 높이 우대해 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문학가, 문장가•에세이스트, 영화 평론가, 현대 문화 비평가, 현대 미술 애호가 겸 컬렉터, 사회학자, 취미 화가 –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년 셰르부르 생 – 1980년 파리 사망)를 일컫는 직업 명칭과 타이틀만도 한두 단어로 축약하기 어려울 만치 잡다하다. 그러나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바르트가 기여한 공적은 뭐니뭐니해도 기호학 (semiotics)일 것이다.

기호학은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일상 언어, 의사소통 태도나 행위, 심지어 하찮은 사물들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것들은 숨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온갖 일상적 현상의 표면에 나타난 ‚기호 (signs)’는 그 나름대로 목적한 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 바르트의 언어에 따르면- 이른바 ‚신화 (myth)’를 내포하고 있게 마련이며, 그는 일생을 바쳐 현대 일상 문화 속의 신화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탈신화 (demystify)’ 작업에 헌신했다.

롤랑 바르트라는 한 인물을 주제로 삼는 종합 전시회는 어떻게 기획 전시될 수 있을까?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지난 11월 27일부터 개관해 올 3월 10일까지 3개월여 동안 전시된 <롤랑 바르트>전은 철학자를 주제로 한 전시라는 점에서 많은 언론과 관객들이 사전부터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이 전시 오프닝 직후 게재한 11월 27일 자 짧은 리뷰에서 마리안느 알팡 (Marianne Alphant)과 나탈리 레제 (Nathalie Léger) 두 큐레이터를 칭찬하면서 바르트가 남긴 각종 물리적 자료는 물론 그의 사상까지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꾸려진 구성이 돋보인 전시였다고 평가했다.

흔히 프랑스인들이 기획하는 전시회들이 그렇듯,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기획 컨셉과 전개 방식에서 자료의 방대함, 디스플레이 디자인(건축가 나탈리 크리니에르 담당) 효과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특유의 거창한 태도 (le grande manière)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퐁피두 센터는 IMEC (Institut Mémoires de l’edition contemporaine)와의 협력으로 생전 롤랑 바르트와 관련된 각종 개인 문서 및 필기 기록, 비디오, 음성 녹음된 인터뷰, 영상 기록 클립, 사진, 노트 등의 자료를 입수해 전시에 포함시켰다.

롤랑 바르트는 쟝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와 더불어서 디자인과 시각 현상에 대한 유용한 분석틀과 통찰력을 제시한 현대 프랑스 지성임에 분명하지만, 일반인 독자들에게는 여간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사상가라는 인상을 주어 왔던게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인문사회 과학에서 다분야간 학문 (interdisciplinary)이라고 하는 개념은 60년대 프랑스 구조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구조주의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소쉬르의 언어학, 인류학 등 여러 인문과학 분야에서 수입해 온 이론틀을 빌어 방법론으로 구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조주의가 채용하고 있는 여러 이론틀 가운데에서 기호학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의 저서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 (Mythologies)』중 „오늘날의 신화 (Myth Today)“라는 장에서 나타난 바르트의 기호학 이론틀은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지배했던 좌파적 성향과 비판적 필력이 돋보인다.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은 현대 브루조아지 대중 문화를 겨냥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에세이식 단편글 모음집으로서 문체면에서 평소 철학과 친하지 않은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읽힐 수 있을 만큼 대중친화적이다. 실제로 이 저서는 1957년 초판이 발행되자마자 큰 대중적 매출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였으며 이전까지만 해도 단편글 기고가에 불과했던 바르트를 스타 기호학자로 만들어준 행운작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그의 저서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 (Mythologies)』로 부터 출발한다. 롤랑 바르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라고 한다면 철학의 원천을 일상 생활 (ordinary)에서 발견했다는 것일 게다. 평범한 일상으로 눈을 돌려 하찮은 현상과 사물들로 부터 우리 사회가 대중에게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를 벗겨 폭로하는 그의 사상은 대체로 50, 60년대 프랑스 주류 사상계를 주도한 맑스주의론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외에도 역사는 위대한 이름과 정치사의 묘사가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지속적인 대세와 개인들의 사고방식과 믿음 (정신 상태 또는 멘탈리티)을 묘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아날학파로부터도 영향받은 바 크다. 개인적인 야사,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에 못지 않게 바르트는 제2차 대전 이후 급격히 두드러진 대중 문화 현상을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

오늘날 자동차란 고딕 성당과 거의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창조물이며, 무명의 예술가의 정열을 빌어 착상되었으며,자동차가 그 자체로 마치 마술적인 대상인양 대중은 그것이 지니는 유용성 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한다.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중에서.

전시장 입구에서는 1957년산 시트로엥 DS 19 (Citroën DS 19) 모델 자동차로 표지를 장식한 롤방 바르트의 첫 대중 철학서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이 우선 전시장을 들어서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르트는 이 자동차를 두고 그의 책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에서 „새 시트로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첫 문장을 이렇게 연다. – „오늘날 자동차란 고딕 성당과 거의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창조물이며, 무명의 예술가의 정열을 빌어 착상되었으며,자동차가 그 자체로 마치 마술적인 대상인양 대중은 그것이 지니는 유용성 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만큼 제품과 디자인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해 지적한 비평가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바르트는 일찌기 가장 초기의 제품디자인 비평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전시가 보여주는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르트는 당시 프랑스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로레슬링에서부터 섬유 세탁용 세재, 와인과 우유, 스테이크와 감자칩, 『기드 블르 (Guide Bleu)』 대중용 여행 안내서, 플라스틱 제품, 장난감, 스트립쇼에 이르기까지 기호학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전시는 바르트가 이 책에서 탈신화시킨 일상 용품들과 이미지들을 광채나는 유리관에 담아 관객들에게 제시해 보인다.

대중 프로 레슬링은 고대 그리스의 권투나 일본의 유도가 지니는 내적 원칙이나 상징적인 요소가 일체 거세된 과장극화된 역겨운 코미디에 불과하다고 한 그의 비판은 흥미롭다. 50년대 중엽, 섬유세재의 두 대표적인 브랜드 오모 (Omo)와 페르질 (Persil)이 프랑스 섬유세재 시장에서 대대적인 유통판매를 시작하면서 즐겨 사용된 광고 전략도 바르트에 의해 기호학적인 해부를 면치 못했다. „가루 비누와 세재“라는 에세이는 브랜딩 디자인과 광고의 허위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바르트는 『노로고 (No Logo)』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의 할아버지뻘쯤 되겠다.

화학 섬유세제가 대량 시판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일명 양잿물로 옷을 빨아 입었다. 소비자들이 양잿물을 버리고 그대신 화학 섬유세제를 사쓰도록 부추기기 위해서 당시 광고들은 양잿물은 더러움을 죽이는 광폭한 물질이고 „화학 섬유세제 가루는 옷표면으로부터 더러움을 떠밀어 낸다…“고 해 인체에 대한 무자극성과 시민적인 청결성을 소비자들에게 세뇌하는 전략을 이용했다.

페르질 세제 광고 속에는 한 칙칙한 회색 옷차림을 한 여인이 새하얗고 깨끗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새초롬한 여성을 가리키며 „Ah, cette blancheur … Persil!“ 하며 소리친다. 훗날 오모와 페르질 두 회사는 세계적인 화학 섬유세제업계에서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해 오늘날 유니레버 (Unilever)라는 다국적기업의 소유하에 운영되고 있으며, 두 회사가 생산하는 우아한 섬유 세제는 염소와 암모니아를 주원료로 한 똑같은 가루 비누에 불과함을 지적하면서 바르트는 이 글의 끝을 맺었다.

반쯤 익힌 먹음직스럽고 핑크색 핏빛도는 두툼한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가 프랑스 음식문화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은 아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바르트에 따르면, 프랑스인에게 와인과 더불어 덜익힌 고깃덩어리는 피와 생명을 의미하며, 스테이크 식사를 권유받는 것은 남으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제안받는 것과 같은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는 서양인 비즈니스맨과 여행객들을 보라. 모르긴 몰라도 중요한 사업미팅을 앞두고 기를 다지거나 친구들끼리의 우애를 다지는 의례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프랑스인에게만이 아니라 서양인들에게 감자란 땅에서 자라는 곡물이라는 이유에서 노스탤지어와 애국심을 상징한다. 이에 곁들여 마실 와인은 절대로 취하려는 목적으로 한꺼번에 마시지 말 것인데, 와인은 위스키나 맥주와는 달리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며 와인마시기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생활중 일부를 구성하는 장식성 의례행위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격조와 품위가 있는 식탁을 꾸미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은 어디서 메뉴를 찾을까. 입맛 돌게 윤기나는 세련된 요리 사진이 실린 『엘르 (Elle)』 여성지를 보라. 희귀한 재료와 일류 조리사의 테크닉과 디자인 감각 없이는 만들기 어려워 보이는 메뉴가 실린 이 『엘르』지가 겨냥하는 주 독자가 실은 요리할 시간이 많지 않은 하류노동계층 여성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일상적으로 평범한 요리를 하는 중류층 여성이라면 보다 현실적인 조리법이 실린 <『렉스프레스 (L’Express)』> 대중지를 보고 그날 저녁 식탁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엘르』가 보여주는 구르메 음식은 음식 디자인, 사진기술, 포토샵이 결합해 탄생시킨 데코레이션 요리 (Ornamental Cookery)에 불과하다.

프랑스 대중이 가장 즐겨 보는 여행 안내서 『기드블르』는 또 어떤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대중 관광객들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도시과 나라를 체계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여행 안내서를 활용하고 있는가. 여행비를 손에 쥔채 어디로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 모르는 대중은 기드 블르 관광 안내서에 의존해 여행 계획을 짜며, 책에 실린 엽서 사진을 자신의 카메라에 다시 찍어담기 위해 관광명소를 방문하고 가이드가 제안하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기드 블르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수고를 덜어주는 조절도구이며 여행자의 사기를 지켜주는 손쉬운 대체물…“일 뿐이다.

1954년경 롤랑 바르트가 40살을 맞기 즈음의 모습. 개인 소장.

자신이 속해 있던 프랑스 부르조아지 계층을 향한 비판
『일상생활 속의 신화들』을 비롯한 그의 기호학 저서가 공개적으로 비난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대상은 프랑스의 상층 부르조아지 (grande bourgeoisie)와 프티부르조아지 중산계층와 그에 속해있는 대중 (mass)이다. 바르트 스스로가 중산층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바로 그 사회구성원들을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바르트의 출신과 성장 배경은 부르조아지 계층에 대한 일관적인 천착을 어느정도 설명해 주는 구석이 있다.

1915년 해군 장교 아버지와 프티브루조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제1차대전중 전사한 이후 그의 어머니는 중산층 출신에 남편의 출신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로부터 전사자 보상금 지급혜택을 받지 못했다. 바르트의 사진미술에 대한 비평서이자 그의 최후작인 『카메라 루시다 (La chambre claire)』(1980)는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 앙리에트에 대한 아련하고 감상적인 기억과 애정을 서술한 사진비평론집이다. 해변가를 배경으로 황량하게 버려진듯 서있는 당나귀를 뒤에 둔채 서 있는 앙리에트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은 원래보다 훨씬 크게 확대인화된 채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카톨릭 교회가 지배하는 프랑스에서 개신교 신자로 성장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그로 인해 경험한 심리적 갈등이 생전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쳤던 것같다. 평생을 봉비방 (bonvivant, 호식가, 미식가, 유쾌한 대화 친구, 뚜렷한 고정 직업없이 사교계를 오가며 유유자적하게 인생을 즐기는 탐미가를 두루 지칭하는 명칭), 쾌락주의자, 동성연애자, 세심한 댄디 드레서, 수다스런 가십취미가로 살았던 그는 책읽기와 철학하기라는 자칫 고통스러울 수 있는 지적노동을 에로틱하고 쾌락적인 취미라고 여겼다. 그의 저서 『텍스트의 즐거움 (Le plaisir du texte)』(1973)은 바로 그에 대한 책 한 권의 주석이다.

그보다 훨씬 전인1968년, 반문화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다달았을 시기 출간된 『저자의 죽음 (La mort de l’auteur)』에서 그는 텍스트는 독자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독자의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서술 된다고 주장하여 저자의 언어전달 의도에 찬물을 끼얻었던 바 있는 책이다.

바르트는 프랑스 지성계에 데뷰했을 50년대와 이후 60년대까지 중국 공산주의당 마오쩌뚱 정권을 지지했던 바 있다. 특히 60년대에 그는 정치적인 관심을 다소 미뤄둔채 동양 문화권에서의 기호 체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자주 여행하기도 했다. 여러차례의 일본 여행과 관찰의 결실로써, 그는 1970년 출판된 책 『기호의 제국 (L’Empire des signes)』에서 일본 문화는 기호들이 의미나 상징이 없는 순수한 기호 그 자체로써 존재하는 문화라고 결론내렸다.

쥬세페 아르침볼도 (Giuseppe Arcimboldo). 『도서직원 (Le bibliothécaire)』, 1566년작. 캔버스에 유화. © Skokolosterns slott, Skokloster, Sweden.

생전 바르트는 상당한 수준의 피아니스트였으며 미술 애호가 겸 컬렉터이기도 했다. 70년대에는 잠시나마 취미 화가로서 그림그리기에 열중하기도 했었다. 그같은 그의 개인적 취미 활동 흔적과 미술 소장품들도 이번 전시에서 빠지지 않고 전시되었다.

그는 과일과 채소 형상을 인물화로 그려낸 아르침볼도 (Arcimboldo), 발투스의 큰형이자 에로티스트였던 피에르 콜로소스키, 화가 사이 톰블리, 동성애주의 사진가 빌헬름 폰 글뢰덴, 근대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쏭의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생전 모았던 그의 미술 작품들은 현재 IMEC가 보관하고 있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와 어린시절 한 동네에서 같이 성장한 동무였던 바르트는 불가리아 출신 헤겔주의자 크리스테바, 후기 니체주의 역사고고학 및 철학자 미셸 푸코, 알제리아 태생 유태인계 철학자 쟈크 데리다 등 동시대 철학자들과 더불어 제2차 대전 종전후 50년대 이후부터 돌파구를 찾지 못한채 갈팡질팡하던 프랑스 철학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현대 프랑스 지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60년대 이후 프랑스 지성계의 큰별 롤랑 바르트는 그가 사망하기 1980년도 직전까지 강의했던 콜레쥬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와 그의 단골 사교실이던 생제르맹의 카페 플로르 (Café Flore)를 오가면서 전형적인 프랑스 지성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대중적인 인기까지 독차지했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는 생전 바르트가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준비에 사용했던 수백장의 노트 인덱스 카드를 전시장 벽면에 빼곡히 붙여 보여주는 것으로 마감한다. 노트 마다 칠필로 일일이 적었던 철학자의 사변적 흔적들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이 전시 코너는 특히 프랑스인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바르트가 손으로 끄적거린 필적들은 놀랍게도 그가 생전 흠모해 하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그림과 닮은데가 많다.

돌이켜 보건대, 롤랑 바르트는 독창적인 기호학 이론가였다든가 체계적인 방법론을 수립한 철학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비범한 관찰력과 통찰력은 그의 저서와 글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사물과 관습들이란 무심코 지나칠 평범한 것들이 아님을 바르트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평소 철학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일반인들 사이에서 다시금 바르트의 책을 사보는 대중 독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 이 글은 『디자인네트 (designNET)』 2003년 4월호 포럼 컬럼에 개제되었던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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