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y 2014

모더니즘 도그마는 저리 비켜라!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1편 – 건축)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해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형상과 스토리가 제거된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이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대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1980년대 미철학 – 규율과 기능주의의 교조주의를 접고 순수 이상과 조형의 유희를 추구하다. 진정 모더니즘은 실패한 예술 실험이었는가?
영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조차도  그의 변치않는 모더니즘 이상(理想)에 대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예술과 미학은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사랑받는데 철저히 실패했다’고 거침없이 지적했다. (참고: 에릭 홉스봄 저 『시간의 뒤안길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쇠퇘와 몰락 (Behind the Times: The Decline and Fall of the 20th-Century Avant Gardes)』 (London, Thames and Hudson, 1998년)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은 조형교육에서 나와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언어학과 진화 인류학 분야에서 현대 최고의 권위와 대중적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그의 최근 저서들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나 (How Mind Works)』(1997년 간)과 『빈 서판 (The Blank Slate :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2002년, 한국어판 사이언스북스 간)에서 모더니즘 미술은 출발부터 인간의 근원적인 미적 감지력과 취향에 거스르는 미학을 추구한 결과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결론지었다.

누구를 위한 모더니즘이었는가? 20세기 모더니즘은 인류 역사상 전 지구상의 국가와 언어와 문화권 할 것 없이 도처에 인간의 환경과 사고방식에 철두철미하고 전면적인 변혁을 불어 몰고 온 문명의 대(大)분기점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 역사 반세기 이상을 넘는 세월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같은 거창한 체제 영역으로부터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루다 설명할 수 없이 파고든 모더니즘의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여간해서 요령부득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철학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 1978년 설계.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치펜데일풍 지붕과 포스트모던한 몸체로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 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의 모습. AT&T 건물은 1984년 완공되었다.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독일 바우하우스 학파를 비롯하여 20세기 전반기를 주름잡은 여의 건축 및 디자인 분야의 거장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만인의 생활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보편적인 휴머니즘 미학을 이룩한다는 이상을 뒤쫒았음에도 불구하고, ① 건축과 디자인은 결국 한편으로는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대기업과 정부 관료 기관에 봉사하는 시녀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으며, ② 또 한편으로는 대중을 소비자라는 유행과 소비의 노예로 만든 대량 소비주의 지향적 마케팅 전략이 가장 즐겨 활용한 기업들의 부가가치 창출용 수단으로 변신변질 되었다.

1960년대말 서구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돌발적으로 불거진 반문화 운동 (Counter-culture Movement)과 인문학계 내 지성인들 사이에서 전개된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모더니즘의 바로 그같은 변질을 지적하며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런 한편,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면서 서구 사회와 일본에서의 경제 성장은 계속되는 가운데 평범한 대중들은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가 안겨준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었다.

“No more ‚Less is more’ but ‚Less is a bore” 단순한 것이 더 심오하다고?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 – 건축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봉 미스 반 데어 로헤 (Mies van der Rohe)가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의 미학적 근본 기치로 내걸었던 „Less is more.“(단순한 것이 더 의미있는 것이라는 의미)는 미학 모토는 어느새 부터인가 „Less is a bore“ 즉,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이라며 빈정어린 비판의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그같은 분위기는 1980년에 접어들면서 이성 (rationality)보다는 감성 (emotion) ,보편적인 ‚고급 취향 (good taste)’ 보다는 대중문화와 저급 주변 문화에서 영감 받은 ‚저속 취미 (bad taste)’, 엘리트 취향의 규율 보다는 불특정의 다양성 및 재미 (fun)와 재치 (wit), 대량생산 (mass production) 보다는 소량창조 (small-scale creation)를 추구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시대의 출발을 고하는 것이었다.

예술계와 학계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알파벳 앞의 두글자를 따서 줄인 ‚포모 (PoMo)’라는 속칭으로도 불리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당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1960년대 중엽부터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말 부터 1980년대까지 전개된 새로운 건축 디자인의 유행을 통해서 더 구체화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인가 아니면 모더니즘과 단절인가? 학계는 논쟁을 멈추지 않으며 ‘포모’의 정체를 밝히려 애썼다.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1세대 20세기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학계에서만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문화계 전반에서도 유럽과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특히 미국에서, 1950-60년대 대도시의 대기업 사무실 건물 설계를 맡았던 미국 마천루의 건축 제왕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은 이미 1970년대말에 근대식 건축 골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영국 18세기 귀족풍 치펜데일 양식이 오묘하게 뒤섞인 AT&T 사 건물을 뉴욕에 지어 올리는 것으로써 판에 밖힌 모더니즘풍의 국제 건축 양식의 답습에 대항한 일탈의 제스쳐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6년에 미국에서는 건축가 로버트 벤추리 (Robert Venturi)가 『건축에 있어서 복합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라는 책을 써서 박스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이며 일체의 장식성이나 의미가 제거된 무미건조하고 청교도적인 모더니즘식 건축의 시대는 이제 물러갈 시기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1972년에 『라스 베가스의 교훈 (Learning from Las Vegas)』라는 책을 내고는 쇼비즈니스 오락과 도박의 인공인조 도시 라스 베가스의 거리 도처와 고속도로 주변에 널려있는 절충적인 상업 건축물과 저속한 빌보드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미학이야 말로 다가올 미래의 신건축이 가야할 길이라고 선언했다.

또 콜린 로우 (Colin Rowe)와 프레드 쾨틀러 (Fred Koettler) 공저 『콜라쥬 도시 (Collage City)』(1973년 간)와 렘 코올하아스 (Rem Koolhaas)의 저서 『들뜬 도시 뉴욕 (Delirious New York)』(1978년 간)에서 마천루의 천국 뉴욕에서 급속히 출현하기 시작한 새로운 포스트모던풍 건축물과 거리 풍경을 지적하면서 과거의 건축 양식들의 복귀와 다양한 건축 요소들의 재출현을 높이 찬양했다.

그 기원과 발원지가 무엇이었든지 상관없이 1980년대의 건축가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은 단순간결과 무장식성을 추구했던 ‚경직된 모더니즘 도그마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anti-thesis to Modernist aesthetics)’과 ‚과거 및 기존 이미지들의 재발견-혼합-절충’이었다.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단순함과 모순성이 한데 결합된 포트스모던 건축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2세대 뒤이어서 1980년대 중엽에는 필립 존슨의 제자들이 대거 특히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주도했다. 로버트 스턴 (Robert Stern)과 존 버지 (John Burgee) 등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과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가미한 건축물들, 예컨대, 텍사스 휴스턴 대학 건축 학교 빌딩(1982-85년 완공), 버지니아 대학 천체관측소 부설 식당 건물(1982-84년 완공), 캘리포니아 라 홀라 프로스펙트의의 오피스 빌딩(1983-85년 완공)을 통해서 과거 건축 양식과 현대적 요소들이 뒤섞인 절충적인 건축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건축가들 가운데에서 특히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는 강렬한 색과 과장되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첨가된 건축물로, 그리고 리쳐드 마이어 (Richard Meier)는 한결 젊잖고 보수적인 경향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기인 1970년대 말엽부터 1980년대 동안 대서양 건너편 유럽 대륙에서도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反모더니즘적 경향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포트스모더니즘 건축이 팝아트, 광고나 만화 같은 저급 대중 문화 이미지, 미국 건립 초기의 식민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 등과 같은 다양한 원천에서 두루 차용하여 절충 결합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면, 유럽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한결 정치적・이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는 추세였다.

“유럽의 미래는 과거에” – 유럽의 전통 복고주의 유독 유럽에서 포스트모던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1980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상 최초로 건축 비엔날레가 조직되면서 „현재 속에 잔존하는 과거 (The Presence of the Past)“라는 대제목으로 열린 건축 전시회를 통해서 불거졌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이 책은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이 전시에는 로버트 벤추리, 찰스 모어 (Charles Moore), 파올로 포르토게지 (Paolo Portoghesi), 알도 로시 (Aldo Rossi), 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리카르도 보필 (Ricardo Bofill), 레옹 크리에 (Leon Krier) 등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끌던 국제급 건축가들의 작품 세계가 소개되어 개인주의 (individuality), 친밀성 (intimacy), 복합성 (complexity), 유머 감각 (sense of humor)을 건축요소로 삼아 이전 모더니즘 건축과는 퍽 색다른 건축 정신을 선언했다.

무려 반세기가 넘게 승승장구한 제1차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의 끝으로, 현대적인 건축과 도시 설계로 급격히 현대화된 주거 생활 환경을 경험한 이탈리아인들은 새삼 과거로 눈을 돌려서 19세기와 20세기초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를 재발견하여 건축으로 재해석하려는 ‚역사주의 (Historicism)’ 운동을 되살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 걸쳐 그동안 방치되어 왔거나 허물어져 가는 고건축물을 복원하는 고건축 재건축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시기도  바로 1980년대 부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알도 로씨 (Aldo Rossi)는 일찌기 1960년대에 과거 고전주의가 지닌 엄격한 건축 원칙을 높이 찬양하는 건축서 『도시 건축론 (L’architettura della città)』(1966년 간)을 발표하고 이탈리아 지방 마다의 맥락에 맞는 고전주의 건축을 제안하였다. 역사주의을 취한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들 가운데에는 마이클 그레이브스, 로버트 벤추리 등이 대표적이며 디자인 회사들 가운데에는 크놀 (Knoll), 알레시 (Alessi), 포르미카 (Formica) 등이 그같은 계열 속에서 기능 보다는 과거의 시각적 장식성과 환상적인 이미지를 되살린 가구 및 가정용 제품 디자인에 주력했다.

또 1980년대는 이탈리아어권 스위스에서도 유난히 많은 건축디자이너들이 탄생하여 국제 무대로 명성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현대 건축계의 스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를 비롯해서 마리아 캄피 (Mario Campi), 브루노 라이흘린 (Bruno Reichlin), 파비오 라이하르트 (Fabio Reinhardt)는 모더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이른바 ‚신합리주의 (Neorationalism)’ 건축을 정착시킨 장본인들이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모더니즘의 무자비하다시피한 엄격주의와 규율에서 탈피하되 근대적인 소재와 건축 기술을 백분활용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인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휴머니즘적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여 계승하자는 건축 디자인 철학을 골자로 하고 한 이 신합리주의는 곧이어서 독일의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thias Ungers),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 벨기에의 롭 크리에 (Rob Krier) 등과 같은 건축가들이 동참한 1980년대 유럽의 핵심적인 건축 경향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파리에서는 이미 1970년대말에 급속히 발전한 건축 기술과 소재의 발전을 한껏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파리 퐁피두 센터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공동 설계)를 지어 선보였다. 건축사 최초로 건물의 철골 골조와 구조적 내부설치물이 바깥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도록 설계된 퐁피두 센터 건물은 처음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그 파격성과 도발성으로 비난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이 건물이 파리의 역사적 자리에 들어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로서 선언한 과감한 제스쳐와 유희적 유머 감각은 지금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hias Ungers)의 건축 설계 스케치, Deutsches Architekturmuseum, Frankfurt am Main, 1980년 (Coloured drawing, ca. 40,0 x 30,0 cm) © DAM

※ 이 글은 본래 LG 인테리어 『공간사랑』지 2005년 8월호 “History of …” 연재 컬럼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이제 브랜드라 말고 러브마크라고 부릅시다

BOOK REVIEW

케빈 로버츠 저 『러브마크』증보판 표지. 도서출판 서돌에서 한국어판이 출판되었다.

케빈 로버츠 저 『러브마크』증보판 원서 표지. 도서출판 서돌에서 한국어판이 출판되었다.

책 제목:『러브마크 : 미래의 브랜드 (Lovemarks: The Future Beyond Brands)』

저자: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 사치 앤 사치 CEO 著

출판사: PowerHouse Books, New York, NY 출판사

출판년도: 2004년 초판 발행/2005년 증보판 발행

영국의 거물급 광고 대행업체 사치 앤 사치(Saatchi & Saatchi)의 총괄 책임 최고 경영자 케빈 로버츠는 “브랜딩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쇼핑몰, 거리 매장과 상점, 수퍼마켓 어딜가나 엇비슷한 기능과 품질을 갖춘 상품들은 많다. 품질 면에서나 기능 면에서나 어지간히 규격화된 상품들 사이에 구분표 처럼 붙은 브랜드 또는 트레이드마크들.

그러나 이 브랜드란 이제 구식 마케팅 전략에나 쓰이던 도구에 불과할 뿐, 정작 진열대에 잔뜩 늘어선 제품들 앞에서 어떤 제품을 고를까를 고심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아무런 감흥이나 느낌도 안겨주지 못하는 지지부진해진 이름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로버츠 CEO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마케팅 분야의 최첨병 브랜딩이 앞으로 가야할 미래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러브마크(Lovemarks)라고 케빈 로버츠는 올[2004년] 봄 5월에 전격 출간된 그의 저서 『러브마크: 미래의 브랜드』에서 선언한다.

그렇다면 이 러브마크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늘 중하게 여기는 ‘기분(feeling)’이라는 개념과도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러브마크’란 개념은 로버츠가 직접 창안한 마케팅 개념이다. 우리말로 흔히 키스마크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는 이 단어는 짙은 키스를 한 다음 피부에 남은 멍자국 정도가 되겠다. 말하자면 상품을 이름하는 브랜드 또는 트레이드 마크는 이제 소비자의 마음에 사랑의 느낌을 각인하여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 러브마크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감성위주의 마케팅 컨셉을 한 단어로 응축한 셈이 되겠다.

지금까지 브랜드가 기업과 제품 생산자의 소유물이었다고 하다면, 러브마크는 소비자의 소유물이 된다. 일단 러브마크가 소비자의 사랑과 애정을 독차지하기만 하면 소비자는 세상 끝까지 달려가 그 제품을 반드시 구하려 들것이다. 그 소비자들이 러브마크를 향해 표현하는 “충성도는 이성을 넘어선 것(Loyalty beyond reason)”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장벽도 뛰어 넘을 준비가 되어 있는 미치광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말이다.

그렇다. 케빈 로버츠의 ‘러브마크論’은 통계 자료와 수치 결과에 대거 의존하여 소비자들을 계층화된 몇몇 소비군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비즈니즈 마케팅론에 대한 전면반박임과 동시에 최근 부각되고 있는 감성 마케팅 및 광고 전략의 세력 확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서 감성(emo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본인은 케빈 로버츠가 처음은 아니다.

제네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前 회장은 항상 자기 기업의 가치, 부하 간부 직원들에 대한 ‘사랑(love)’을 목소리 높여 외쳤으며,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허브 켈러허 회장은 ‘열정(passion)’이야말로 기업 성공의 핵심추진력이라고 역설했다. 게다가 최근 전세계에서 잔잔한 유행력을 발휘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감성지향적인 취향이 번져가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가 거듭할 수록 매출 실적 하락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경영난에 봉착하기 시작한 영국의 광고회사 사치 앤 사치 사가 뉴질랜드 출신의 광고 마케팅 전문가 케빈 로버츠를 전세계 총괄 최고경영자로 임명한 해는 1997년. 그 후로 지금까지 7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에 사치 앤 사치는 자금 경리 장부 액수만도 66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 규모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올 상반기 보고된 세입 보고서에서 영국화 4백만 파운드(미화 7백여만 달러 가량)의 흑자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랑을 내세운 로버츠의 감성 마케팅 홍보력은 이미 일상 생활에서도 널리 발견되고 있어서, 은행이나 관공서들은 예전의 칙칙한 회색빛 벽 대신에 친밀감 드는 파스텔조 인테리어로 개조한지 오래며, 크리스피 크림(Krispy Kreme) 커피 도넛 체인점 같은 대중 음료업체들은 대대적인 오프닝 행사를 기획하여 일명 소비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구두 선전 (word-of-mouth advertisement)” 효과를 잔뜩 노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도 코카콜라, 로모그라피 카메라, 도요타 자동차 등이 그같은 대표적인 예로 등장하고 있듯이, 로버츠는 개인적으로도 제품에 열광적인 애정을 지닌 구매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 구두 선전 효과를 철저하게 신뢰하는 워드-오브-마우스 선정의 열성팬이다.

항상 건장한 체구에 항상 검정색 일색의 캐쥬얼한 옷차림을 한채 전세계 사치 앤 사치 사무실과 대학 강의(로버츠는 현재 영국 옥스퍼드 대학 경영학과에서 출강한다) 및 강연회에 등장하는 그는 16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든 자수성가 광고인이다. 그는 1950-60년대 말 런던 패션계의 큰별 매리 콴트(Mary Quant)의 브랜드 매니저로 커리어 첫 발을 디뎠던 1969년도를 회상하면서 이 책의 서두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이후 P&G중동 지사, 펩시 콜라 캐나다 지사, 그리고 펩시 콜라 뉴질랜드 및 아시아 태평양 지사의 총책임직을 거치는 동안, 소비자와 상품 간의 감성적 관계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러브마크론으로 밀어 붙여 성공한 광고 전략들은 도요타 자동차와 P&G 같은 거물급 기업들의 경우 뿐만 아니라 제네럴 밀즈 사의 시리얼 브랜드 치리오(Cheerio’s)의 매출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사치 앤 사치 광고 스폿들은 칸느 광고제에서도 예술적 우수성까지 인정받고 있을 만큼 러브마크론의 막강한 효력이 발휘되고 있다.

비즈니스계에 그 흔하다는 MBA 출신도 아니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동기 부여와 리더십을 전파하고 있는 로버츠가 감성위주의 마케팅 및 광고가 반드시 지녀야 할 요건을 다음과 같은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① 신비로울 것(mysterious), ② 감각적일 것(sensual), 그리고 ③ 친밀감을 줄 것(intimate). 이상 3가지 키워드를 성공적으로 상품에 반영시켜 성공한 제품들의 예는 여럿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한 나이키(Nike)의 광고 전략은 로로 디자인의 새 장을 연 케이스이며, 애플 i 시리즈 컴퓨터는 소수의 완강하고 충직한 소비자들의 감성을 적절하게 건드려서 성공한 니시(niche) 상품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는다.

끝으로, 저자가 선정한 25대 톱 러브마크들을 한 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마존 온라인 서점, 애플 컴퓨터, 보디숍, CNN 방송, 코카콜라, 디즈니, 다이슨, 이베이 온라인 경매소, 구글 인터넷 서치 엔진, 할리-데이비슨, 이탈리, 레고, 리바이스, 맥도널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 넬슨 만델라, 나이키, 닌텐도, 노키아, 팸퍼스 종이 기저귀, 적십자, 스와치, 도요타 자동차, 베스파, 버진.

하지만 소비자와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오래 가슴에 남는 러브마크는 정의와 신념의 대명사가 된 남아공의 역사적 영웅 지도자 넬슨 만델라처럼 반드시 상품이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한다면, 러브마크론은 상품과 인간간의 의사소통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의사소통에도 응용될 수 있는 컨셉이기도 하다.

LovemarksBanner1

러브마크 개념의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브랜드러브마크의 개념적 차이 대조표
브랜드 – 러브마크
정보 – 관계
소비자 인식도 – 대중의 사랑
보편일반적 – 개인적
내러티브 – 러브 스토리
품질 약속 –감성 제안
상징적 – 아이콘적
규정적 – 신념 고취적
단정조 – 이야기조
명확한 정체 – 신비적
가치관 지향적 – 정신, 영혼지향적
직업적 – 열정적 창조성
광고 대행업체 – 아이디어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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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본래 월간 《디자인》지 2004년 11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눈

EYES WIDE OPEN – STANLEY KUBRICK AS PHOTOGRAPHER

“그의 눈은 짙고 촛점이 분명했으며 꿰뚫듯 날카로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내 크리스티안느 할란(Christiane Har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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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Kubrick, 쇼걸 로즈머리 윌리엄스의 사진을 찍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Showgirl – Kubrick photographing Rosemary Williams), 1949.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인류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20세기 영화사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그의 대표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2001: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issey)》(1968년)《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년)《아이스 와이드 셧(Eyes Wide Shut)》(1999년)을 비롯해 큐브릭은 완벽한 영화 스토리라인을 구축했던 전설적인 영상 이야기꾼으로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어릴적부터 학교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툭하면 결석하고 학교 성적이 너무 나빠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이 되자 갈 수 있는 대학이 한 곳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 지원도 할 자격도 안될 지경이었다고 그는 1965년11월27일 제러미 번스타인과 나눈 76분 짜리의 『뉴요커(The New Yorker)』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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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 로키 그라치아노의 초상(Rocky Graziano – Portrait), 1947.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이미 추축군에 밀려 주춤거리고 있을 시기. 거의 꼴찌로 고등학교에서 벗어난 큐브릭은 같은 또래 남들이 전쟁에 징병되어 군대를 가고 학자금 빚을 내어 대학에 진학하고 편한 오피스 직장을 찾느라 허둥대며 경쟁하고 있을 동안 자기만의 열정을 키우고 있었다.

그가 열 세살 나던 해 아버지가 사준 그라플렉스 카메라로 늘 사진찍기를 해왔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룩(Look)』 격주간 잡지에서 프리랜스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직업 세계로 뛰어들었는데, 때는 공자가 말한 남자에게는 ‘지학(志學)’의 나이를 바로 뒤로 한 꽃 같은 나이 16세.

1945-50년 이 미국 시사 매거진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청년 큐브릭은 나중 영화감독이 될 때를 대비하며 날카로운 눈과 카메라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에 큐브릭은 “내가 원치않는 것은 찍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설적인 영화감독은 한 번도 정식 영화 학교나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감독이었던 만큼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강한 자기의지와 독립적 성격이 담겨있다.

5년 동안 사진을 기고했던『룩』매거진 시절, 피사체의 성격과 본질을 포착하고 그 모든 요소들은 분위기와 타이밍에 적절하게 포착한 후 독자적인 내러티브로 발전시키는 큐브릭 특유의 이야기 만들기 수법에 자양분 역할을 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룩』매거진에서 몸담고 있던 마지막 해로 접어들 무렵, 큐브릭은 전에 없이 더더욱 비일상적이고 외로운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개인들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처절한 외로움, 알 수 없는 운명과 이에 맞부딛힌 20세기 인간적 조건을 탐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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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Kubrick, 창가에서 대본을 외고 있는 여배우 벳시 폰 퓌르스텐버그(Betsy von Fürstenberg – Reading a script in the windowsill), 1950.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이번 비엔나 쿤스트룸에서 열리는 『아이스 와이드 오픈(Eyes Wide Open- Stanley Kubrick as Photographer)』 전 (2014년 5월8일-7월13일)은 큐브릭이 전설적인 영화감독이 되기 전 그의 예술적 뼈와 살에 영양분 – 그리고 창조를 향한 자유의지와 독립성 – 을 주었던 사진가로서의 삶과 작업을 재조명해 보면서 창조인의 위대한 창조력과 창조적 삶이란 이 가치관 추구를 향한 한 편의 여정에 다름아님을 시사한다.

《아이스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을 마지막 작품으로 끝내고 난 후 70세의 나이로 잠 속에서 세상을 떠난 스탠리 큐브릭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내내 그 특유의 소년같은 가볍고 명랑한 미성의 목소리 – 그리고 청명한 정신력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푸릇푸릇 젊은 나이의 큐브릭이 군대로 징병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통의 광기 통으로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틀에 밖힌 제도권 기초 교육과 대학 교육 체제로부터 세뇌당하지 않아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빚어지는 큰 실수는 아이들에게 분별없이 아무것이나 가르치고는 성적이 나쁠까봐, 학급에서 뒤떨어질까봐 무서워 공부하도록 만드는 공포를 기본 동기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

얼마나 더 여러 케이스의 특출난 인물들이 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던 모범생도 아니었으며 대학 졸업증을 받은 고학력도 아니었음이 밝혀져야, 또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실제 인생살이에서는 줄줄이 실패를 면치 못하고 자기아집에서 못벗어난채 허우적대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수두룩함을 증명해야 현대인들은 자식들을 제도권 교육체제라는 족쇄로부터 해방시킬 것인가? 명배우 말론 브란도가 큐브릭을 묘사했듯이 창조적 마인드란 배운 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소화시킨 것을 자기만의 시점에서 재창조할 줄 아는 능력인 것을. All images courtesy: BA-CA Kunstforum, Vienna.

룸 서비스!

Valdemar Schønheyder Møller, Kartenclub an den Spieltischen in der weißen Stube des Brøndums Hotels, 1891/93, Öl auf Leinwand, Sammlung Skagens Museum, © Skagens Museum.

Valdemar Schønheyder Møller, Kartenclub an den Spieltischen in der weißen Stube des Brøndums Hotels, 1891/93, Öl auf Leinwand, Sammlung Skagens Museum, © Skagens Museum.

미술 속의 호텔과 숙소의 모습

ROOM SERVICE

플로리안 슬로타바(Florian Slotawa) 『요제피네 펜션(Pension Josefine)』 뮌헨, 제18호 실 1999년 7월5일 밤, Baryth-Print, © VG Bild-Kunst Bonn 2014, Courtesy: Galerie Nordenhake, Berlin/ Stockholm; Sies + Höke Galerie, Düsseldorf.

플로리안 슬로타바 (Florian Slotawa)
『요제피네 펜션(Pension Josefine)』 뮌헨, 제18호 실 1999년 7월5일 밤, Baryth-Print, © VG Bild-Kunst Bonn 2014, Courtesy: Galerie Nordenhake, Berlin/ Stockholm; Sies + Höke Galerie, Düsseldorf.

“호텔의 최대 장점은 가정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피난처라는 것이다.” –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호텔이란 투숙객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방 공간으로 후퇴해 쉴 수 있는 객실과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레스토랑과 로비가 있는 반(半)공공-반(半)사적 공간이며, 집을 떠나 길에 오른 객손님이 필요로 하는 끼니(食)와 잠자리(住)를 제공해 주는 편의시설이자 인류 보편의 사회문화 제도다.

과거 시절 여행이란 지체 높은 고관귀족이나 돈 많은 갑부들이나 국가와 나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었지만, 여권 소유의 대중화와 대중관광 환대산업(hospitality industry)이 보편화된 오늘날 일과 휴가를 위해 여행을 하는 호텔 투숙객들은 전에 없이 많아졌고, 그같은 수요에 호응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는 전에 없이 많은 호텔과 숙소가 생겨났다.

글로벌 경제 물결을 틈타고 덩달아 글로벌화된 미술계와 미술시장 환경 속에서 바쁜 비즈니스맨들 못지않게 잦은 여행을 하며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무리는 바로 예술가들. 이른바 첨단 신(新) 노마드로족으로도 불리며 세계 유명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무대예술가와 음악연주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세계 여러 도시서 전시회 오프닝과 사이트-스페시픽 작품 설치를 하며 창조활동을 펼치는 미술인들은 늘 항공기, 호텔, 미술행사장 사이를 셔틀콕처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George Grosz: Die Straße, 1915, Öl auf Leinwand, Staatsgalerie Stuttgart. © Estate of George Grosz, Princeton, N.J. / VG Bild-Kunst Bonn 2014.

게오르크 그로스 (George Grosz),  『거리 (Die Straße)』 1915년, 캔버스에 유채, Staatsgalerie Stuttgart. © Estate of George Grosz, Princeton, N.J. / VG Bild-Kunst Bonn 2014.

그런 점에 착안해 독일 바덴-바덴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룸 서비스-미술 속에서의 호텔과 호텔 속의 미술가(Room Service – On the Hotel in the Arts and Artists in the Hotel)》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19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여행과 호텔 문화가 어떻게 미술 속에서 표현되었는지 살피고 있다.

이 전시는 근대적 개념의 여행 문화가 최초로 시작한 시점을 19세기 초엽으로 설정하고 그같은 예를 영국 화가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이 1824년 그린 그림에서 출발한다.

콘스터블은 영국 브라이튼에 처음 생긴 그랜드 관광호텔과 그 앞으로 펼쳐진 해변가 풍경을 그렸다. 그런가하면 윌리엄 터너는 여행할 때마다 자기가 묵은 호텔방 인테리어에 영감 받아서 객실 실내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벡만(Max Beckmann)은 투숙하는 호텔마다 화가 자신의 시점과 현실이 변화함을 자각하고 그에 매료되 그림으로 그렸다. 동시대 극사실주의 화가인 조지 그로스(George Grosz)는 숨가쁘게 박동하던 독일 베를린 도심 호텔 안팎과 주변서 벌어지는 천태만상 도회 군중상을 포착했고, 거장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는 파노라마 시점으로 당시 변화하는 독일 도회광경을 찍었다. 한편 다이앤 아르부스(Diane Arbus)의 카메라 속에 비친 호텔이란 겉으로는 아닌척 조심조심 펼쳐지는 매춘과 화류의 세계였다.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무제, 알라바마 주 헌츠빌(Untitled (Huntsville, Alabama)』1969/1970년, 염료전사인화법 © Eggleston Artistic Trust, Courtesy: Cheim & Read, New York / Sammlung Museum Folkwang, Essen.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무제, 알라바마 주 헌츠빌(Untitled (Huntsville, Alabama)』1969/1970년, 염료전사인화법 © Eggleston Artistic Trust, Courtesy: Cheim & Read, New York / Sammlung Museum Folkwang, Essen.

프랑스의 개념주의 미술가 소피 캴르(Sophie Calle)는 베니스 호텔에서 객실청소부로 변장하고 투숙객들을 상대로 밀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으로써 사적 공간으로서 호텔 객실의 정의에 찬물을 끼얻었다. 전시로 늘 자주 여행해야 했던 단명한 독일의 현대 화가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는 자기가 머물렀던 호텔마다서 모아온 편지지와 봉투에 드로잉을 그려 그만의 가상 호텔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쓴 걸작 소설 『산(Der Zauberberg)』 은 이 책 속의 주인공이자 교양있는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가 20세기 초엽 유럽서 창궐하던 폐결핵에 걸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한 고급 요양호텔에 투숙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럽 구제체가 무너져 가는 가운데 주인공이 여러 세기말적 인간상을 만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인생, 질병,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훌륭하게 묘사해 놓은 이 책은 카스토르프가 1912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대에 자원입대하는 것으로 이 책은 주인공의 죽음을 저멀리 넌지시 암시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단기 요양을 할 생각으로 체크인했던 한스 카스토르프가 전쟁이라는 상징적 죽음 직전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7년 동안 머물었던 스위스의 요양호텔은 인생이라는 영혼의 손님이 묵다간 숙소가 아니었을까.《룸 서비스》전은 바덴-바덴 시립 쿤스트할레(Staatliche Kunsthalle Baden-Baden)에서 2014년 3월22일부터 6월22일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 맨 위 작품 설명:  발데마르 쇤헤이더 묄러(Valdemar Schønheyder Møller) 『브뢴덤스 호텔 흰방 테이블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카드놀이 회원들(Kartenclub an den Spieltischen in der weißen Stube des Brøndums Hotels)』 1891/93년, 캔버스에 유채. Skagens Museum Collection © Skagens Museum, Denmark.

창조경제 = 경제창조?

BOOK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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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는 경제를 창출해줄까?

Magazine Jungle | 박진아의 북리뷰 ③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

책 제목: 창조경제: 아이디어로 돈 버는 방법 (The Creative Economy: How People Make Money from Ideas)

저자: 존 호킨스 (John Howkins)

발행일: 2002년

‘창조경제’란 말이 요즘처럼 자주 언급되는 때도 없다. 지난 정권에서는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부주도의 디자인 장려정책과 사업추진을 해왔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디자인은 어느새 ‘창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갈아입고, 21세기 한국 경제성장의 엔진이 될 차비에 한창이다. 헌데 일반대중은 물론 문화산업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이 창조경제 정책이 표명한 탄탄한 정의와 실질효과에 대해 혼란과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갸우뚱대는 것은 왜일까? …

디자인 정글에 실린 이 북리뷰 계속 읽기 (2013년 7월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