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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승은 뛰어난 제자를 미워하는가?

TINTORETTO AT PRADO

마드리드로 간 베네치아의 거장 화가
 보통 미술 전시회는 미술관에서 열린다. 그러나 때론 미술관에서 할 수 없는 미술 전시도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의 시대의 거장 화가 틴토레토의 전시회는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하기 어려운 바로 그런 전시회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으니 전세계 언론들은 보도하고 미술 애호가들은 마드리드로 속속 날아들고 있다.

자코포 틴토레토의 『젊은이 시절 화가의 자화상 (Self-portrait) 』 1546-1547년 경 작 © Philadelphia Museum of Art

올해 초인 1월말부터 스페인의 자부심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틴토레토 (Tintoretto)》 展을 열어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과 대중 관객들을 손짓하며 올해 최고의 블럭버스터급 전시회가 오는 [2007년] 5월 13일까지 열린다. 193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70년 전에 베네치아에서 열렸던 적이 있는 틴토레토 전시회는 이 화가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라도 미술관의 전시는 베네치아를 벗어나서 그동안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틴토레토의 작품들 중 60여점들이 간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틴토레토 종합전시회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틴토레토》 전을 미술관에서 부치기 어려운 미술 전시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틴토레토의 대표적인 작품들중 대다수는 지금까지도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세상을 뜰 때가지 평생동안 작업했던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남아 있는 것이 그 첫째 이유다. 베네치아를 떠난 다른 곳에서 틴토레토의 전시를 연다함은 앙꼬가 빠진 찐빵과 같은 격이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베니스를 방문하는 문화 관광객들이나 미술사 학도들이 잊지 않고 밟는다는 답사 여정도 바로 틴토레토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베네치아에 있는 여러 교회당, 궁정, 빌라 천정과 벽에 꼼짝 않고 옛 자취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예컨대, 옛 베네치아 총독이 살던 팔라쪼 두칼레(Palazzo Ducale)에 보관되어 있는 『천국(Il Paradiso)』(1588-92년 작)은 규모 면에서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큰 그림으로 여겨지는 초대형 작품이어서 한 눈에 다 보려다간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베네치아 화파가 낳은 천재 반항아
화려한 빛과 감각적인 질감의 마술사, 초대형 캔버스로 관객을 압도하는 장대한 스케일, 쏘아 보는 듯 부리부리한 눈매와 난폭한 폭풍처럼 저돌적이고 고집불통의 사나이 – 그의 본명은 자코포 코민(Jacopo Comin, 1518-1594, 아명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였지만, 평생 ‘일 틴토레토 (Il Tintoretto)’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어로 ‘ 작은 염색공’ 또는 ‘염색공의 어린 아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염색공으로 일하던 아버지의 직업 명칭에서 비롯된 애칭이었으나 곧 그의 예명이 되었다. 어린 틴토레토는 본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서 비단을 염색하는 장인이 되었어야 했지만, 일찍이 벽에 그림을 그려대는 어린 아들의 남다른 재주를 간파한 아버지 죠반니 덕택에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기량이 우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티치아노(Tiziano) 밑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자코포 틴토레토 『노예를 해방시킨 성 마가의 기적(The Miracle of St Mark Freeing the Slave)』 1548년 작 © Gallerie dell’Accademia, Venezia

흔히 사회는 남달리 뛰어난 천재성을 지녔거나 개성이 강한 재능꾼을 격려해주기 보다는 그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 하거나 질타하는 법이다. 특히 틴토레토처럼 저돌적인 성미를 가진 예술가들은 더더욱 제도로부터 비난의 표적이되기 쉽다.

그러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바가 없는지라, 틴토레토가 활동했던 동시대 화가들과 미술평론가들은 그를 가리켜서 지나치게 성급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폭풍우처럼 난폭한 자라고 수근댔다. 심지어는 베네치아의 그림을 보러 1541년에 피렌체에서 방문을 왔던 화가 겸 평론가 죠르죠 바자리(Giorgio Vasari) 조차도 틴토레토의 그림을 비평하는 일보다는 그가 앞뒤를 헤아릴줄 모르는 무모한 자라며 인격 비난에 더 신경을 썼다.

경우는 그림 스승이었던 티치아노도 마찬가지여서 혹시나 제자의 재능 때문에 스승의 명성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젊은 틴토레토는 티치아노의 작업실에서의 견습 생활 초기부터 감각주의 경도로 흐르는 스승의 그림에 공개적인 반발을 보였다고 한다. 제아무리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이라고는 하지만 남달리 번뜩이는 천재성 못지 않게 스승의 권위나 인습에 정면충돌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던 당돌한 견습생 틴토레토를 티치아노는 그다지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러니 티치아노가 온화한 성품을 지녔던 파올로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생-1588사)를 더 아끼면서 훗날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목했던 이유도 그래서 였다.

공개적인 안티-티치아노주의자임을 선언한 젊은 견습생 틴토레토는 그림이란 모름지기 로마와 피렌체에서 높은 명성을 구가하던 선배 거장 미켈란젤로풍의 조각성, 치밀한 구도력, 과학적이고 정교한 도제사적 기량이 두루 갖춰진 이른바, ‘디젠뇨(disengo)’ 개념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보기에 감성에만 호소하려드는 티치아노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와 감각적인 분위기로만 치장되어 있을 뿐 지적 구성과 기획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입장은 현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학교 갤러리에 보존되어 있는 『노예를 해방시킨 성 마가의 기적』(1548년 작)이라는 그림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성 마가가 행한 성서 속의 기적 행적을 대담무쌍한 단축법과 조각 같은 입체감에 베네치아풍 특유의 현란색 색채가 한데 융합시킨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사실인즉, 틴토레토의 작품들도 그의 폭풍 같은 성미를 닮았다. 규모면에서도 그의 작품들은 이동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크다. 그런가하면 그의 양식은 걸작에서 졸작에 이르기까지 미술사가들 조차 의아심을 가질 정도로 양식상의 기복이 심한데, 이는 아마도 항상 새로운 비젼과 기법을 실험하기 좋아했던 그의 성격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서를 해석한 『성 조지와 용의 결투』라든가 『목자들의 예배』 같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베네치아에서 틴토레토 만큼 초상화와 풍경화가 한데 합쳐진 혁신적인 구성을 시도한 화가는 없었다.

당시 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 사이에서는 달걀을 섞은 템페라 안료 고착제를 사용해서 캔버스 화면을 혀로 핥은듯 반들반들하게 표면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의 회화작품들은 르네상스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붓칠이 거칠고 물감칠이 두껍게 마감된 것들이 많다. 훗날 17-18세기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틴토레토의 그림들을 관찰하면서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자코포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The Origin of the Milky Way)』 1577-1579년 작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어디 그 뿐인가? 장대한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강한 저돌력의 사나이였던 그는 그림 주문 수주를 위해서라면 그림값을 파격적으로 깎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경쟁 화가들을 철저히 물리치기 위하여 공짜로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당연히 당대 그와 경쟁하던 주변 화가들은 틴토레토를 염치없고 주제넘게 나서는 녀석이라며 미워했다.

그러나 학자들에 따르면 틴토레토의 가격파괴 작전은 돈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못말리는 열의와 에너지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한 작품을 붙들고 오랜 시간을 보내길 싫어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작업을 빨리 완성시킨 초스피드 화가로도 유명했다.

남다른 성격 못지않게 그림에도 혁신을 단행했던 틴토레토는 당시 르네상스 미술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했던 고상하고 시적인 아름다움을 쫏기 보다는 신화나 성서 이야기 조차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위트와 휴머로 해석하기를 좋아했다. 본래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전시를 위하여 프라도로 대여해 온 틴토레토의 걸작 『은하수의 기원』(1575년경 작)은 폭발할 듯 넘치는 화가의 열정과 남성적 저돌성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는 대표적인 예다.

이 그림은 신인 아버지 쥬피터와 인간인 어머니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半申半人)의 헤르쿨레스를 영원히 죽지 않도록 불멸화시키기 위하여 쥬피터가 아기 헤르쿨레스를 잠자는 쥬노의 젓가슴에 물려 젓을 빨게 했다는 신화담을 묘사한 것이다. 갓난 아기 때부터 힘이 장사였던 영웅 헤르쿨레스가 너무 힘차게 쥬노의 젖을 빨았던 나머지 젓줄기가 하늘로 뻗쳐 나가서 우주의 은하수가 되었다는 것이 이 일화의 줄거리인데, 이 얼마나 남성적인 박력과 짖굳은 장난기 가득한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쾌활한 해석인가!

『불칸에게 들켜 놀란 비너스와 마르스(Venus Surprised by Vulcan)』(1545년 작)는 또 어떤가?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는 혼외 연인 사이였다. 마르스는 전쟁에서 돌아오면 의례 유부녀 비너스를 찾아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스가 비너스를 만나러 온 것을 알게 된 비너스의 남편 불칸은 아내와 마르스의 외도 행각 현장을 밟게 된다.

자코포 틴토레토 『불칸에게 들켜 놀란 비너스와 마르스(Venus Surprised by Vulcan)』 1545년경 작 © Bayerische Staatsgemäldesammlungen, Alte Pinakothek, Munich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맨 몸에 다리를 벌린채 헝클어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천연덕스러운 비너스의 자태하며, 난처한 상황을 피해 급히 몸을 숨긴 채 긴장한 채로 숨어 있는 마르스의 모습과 마르스를 향해 얄밉게 짖어대는 고발쟁이 개의 모습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아내가 정말 바람을 피웠는지 확인하려고 이불자락 안을 확인하는 불칸은 관객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관음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화가의 음탕스러운 상상력과 휴머 감각을 한 편의 쾌활한 그림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구약성서 다니엘書 13장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묘사한 『수잔나와 두 장로』(1555-56년 작)는 수잔나가 목욕하던중 음탕한 두 노인네가 몰래 훔쳐보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 일화를 빌어서 틴토레토는 젊은 여성 나체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나이든 남성의 음흉추함을 그림으로 해석했다.

베네치아 화파의 우두머리 자리를 고수하던 스승 티치아노가 죽고 나자 틴토레토의 그림은 전보다 더 없이 강력한 압도력과 아름다움으로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로서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 또한 세월의 힘에는 굴복하고 말았는지 말년에 치달아 가면서 젊은 시절의 불타는 열정과 위세 당당함을 뒤로 한채 한결 명상적인 주제의 그림들을 즐겨 그렸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성서를 그림으로 그렸다. 특히 현재 베네치아 산 죠르죠 마죠레 교회당에 걸려 있는 『최후의 만찬』(1592-94년 작)은 틴토레토가 세상을 뜨기 불과 몇 달 전에 완성시킨 최후작중 하나이다.

이 화가는 다가오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놓인 만찬상과 예수와 12제자들의 극적인 몸동작의 역동적 구도에도 불구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대가의 정신은 잊혀지지 않고 후대로 이어지는 법. 틴토레토의 정신은 스페인에서 온 그리스인 화가 엘 그레코의 매너리즘으로 이어져서 16세기 베네치아의 화단을 다시 한 번 드높게 빛냈다. Photos courtesy: Museo del Prado, Madrid.

* 이 글은 『오뜨』 誌 2007년 5월호의 아트뉴스 컬럼에 실렸던 것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