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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라디오 백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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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Credits, ORF.

오스트리아 라디오 백년사

오늘날같은 디지틀 문화속에서, 대중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라디오는 오래전 텔레비젼과 컴퓨터 단말기같은 시각 매체에 자리를 내주고 만 한물 간 소리상자가 되어 버렸다. 물론 택시나 버스에 올라 타거나 구멍 가게에 들어 서면 라디오 소리를 들을 수 있긴 하지만, 매체의 대중 흡입도 면에서나 현장감 전달면에서 시각 화면이 달린 매체에 비할 바가 안된다.

하지만 이미 19세기말엽부터 인류 기술발달사에서 라디오는 적잖은 기여를 했다. 미국의 새뮤얼 모스가 모스코드를 이용한 전보기를 발명한 1836년도 이후,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전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20세기 전후부턴 군사용 전신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대륙을 건너서까지 전파를 주고 받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중엽, 라디오가 처음 전세계에 보급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라디오는 대중들의 중요한 정보원 역할을 했다. 역사의 흐름과 그에 따른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라디오의 역할은 물론 외양 디자인도 변천을 겪었는데, 지난 1세기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전개된 라디오 변천사를 살펴보는 전시가 오스트리아의 한 북쪽 지방 (Niederösterreich)에 있는 고성(古城) 샬라부르크 (Schallaburg)에서 열리고 있어 흥미를 끈다.

오스트리아에서 라디오가 처음 탄생한 해는 1902년. 요한 프리치와 그의 아들 폴커 프리치가 전파송수신기를 만들어 실험하다가 잡음없는 소리전송수신에 성공해 오스트리아 최초의 무선통신기 기술을 탐험한 셈이었다. 그후 1904년 오토 누쓰바우머가 라이오파를 이용해 전세계로 음성을 전달하는 무선기술을 한단계 발전시켜서 드디어 1923년에 오스트리아 라디어 전파국이 빈에 설립등록을 해 1924년부터 RAVAG (라디오-교통社)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34년 히틀러가 이끄는 민족사회당에 의해 RAVAG 건물이 장악당하고 1938년부턴 제국라디오사회라는 조직명으로 개칭하여 나치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39년 폭탄공격으로 제국라디오사회 건물이 파괴되고, 이후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자 켈레멘스 홀츠마이스터의 재건축으로 빈 라디오송신국이 다시 세워져 임시 라디오 방송국 역할을 했다.

나치하의 패전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종전 즉시 약 8년 동안 러시아, 미국, 프랑스, 영국 등 4개 연합국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이상의 4개국 언어로 방송되는 4개 별도 방송국을 운영했다 (러시아의 라디오 빈, 미국의 롯-바이스-롯, 프랑스의 센더그루페 베스트, 영국의 센더그루페 알펜란트). 1953년 4개 점령국들이 철수하자 라디오 외스터라이히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라디오 방송을 다시 시작했고, 60년대 말부터 영국 BBC의 방송프로그램 형식을 모델로 삼아 오늘날의 Ö1 (문화전문 채널), ÖR 지방채널, Ö3 유럽 최초의 팝뮤직 방송채널로 자리잡아 왔으며, ORF 방송국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69년에 창설되어 팝뮤직과 고전음악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1979년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외국인 (영어권 및 프랑스어권)을 위한 블루 다뉴브 라디오가 FM4 (주파수103.8)에서 지난 20년 넘게 방송되어 왔으나 지난 2000년 보수극우 연합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예산 동결과 정책적 이견의 결과로 결국 블루 다뉴브 라디오는 사라지고 그 대신 이른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어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는 청소년 대상의 문화방송국으로 전환해 해외거주자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현재는 ORF(ORF1과 ORF2) 국립 방송국 산하 소속 Ö1, Ö3, FM4 라디오국(orf.at) 말고도 오스트리아에는 54개 사립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 이 글은 2002년 6월 『디자인 정글 (Design Jungle)』에 실렸던 글 [원문 보기]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