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40주년 멤피스 그룹을 기억하며

1980년 연말 1981년 신년을 앞둔 겨울 어느 날,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스튜디오에서 젊은 산업 디자이너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라는 야심찬 이탈리아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가 주도해 스튜디오 알키미아(Studio Alchimia, 1976년 결성)라는 급진적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을 함께 결성한 동료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의 철학적·이론적 의견 차이 끝에 알키미아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디자인 운동이 결성되려는 자리였다. [중략] … 『디자인정글』 2021년 3월 31일자 [스토리⨉디자인] 칼럼 계속 읽기

High Brow Meets Low Brow, Low Brow Meets High Brow

이미 1960년대말경부터 건축과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불거져 나온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논쟁은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성주의 엘리트 디자이너들과 이론가들의 예술적 실험정신과 극소수의 부유한 문화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제품 디자인 업체 알레시(Alessi)를 비롯해서 가구 디자인 업체인 카시나(Cassina)와 카르텔(Kartell) 등은 1980년대부터 유명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의 명성을 약싹빠르게 상업화시킨 이른바‚ 거장 시리즈’ 디자인 제품들을 개발해 지갑 사정이 좋은 중상층 시장에 크게 어필했다.

New Forms and Experimentalism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90s

20세기 후반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유산을 이어받아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공존
인본주의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예술관에서 출발한 20세기초 모더니즘이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따분하고 천편일률화된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무릎을 꿇고 나자, 1960년대부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이 등장하며 건축을 본령을 삼아서 현대인들의 시각 환경과 미적 감수성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2편 – 디자인)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Part 2)

기능적인 건축은 자를 대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못지 않게 올바르지 못한 길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장족의 발전 끝에 우리는 드디어 비실용적이고, 쓸모없고, 주거가 불가능한 건축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오스트리아 출신 생태 건축가 프리든스라이히 훈더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모더니즘에 대하여 남긴 평.

디자인은 창조적 혼란과 기발한 컨셉의 결정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흔히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정신을 가리켜서 ‚창조적 혼란 (creative chaos)’ 상태라고 표현하곤 했다. 1980년대는 자연 과학 분야에서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가 처음으로 발표되어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뒤에 숨은 무작위적인 연쇄적인 인과관계와 인간의 이해불능력을 정의한 시대였다.

고도로 발전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미지(未知)의 영역은 점차 커져만 가고 있음을 시인하는 과학계가 그러할진대 디자인 예술 분야라 하여 사정은 그다지 다를수 없었다. 디자인 제품이란 반드시 기능적 구실을 수행하는 사물의 결정체여야 한다는 과거 모더니즘의 강령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이제 디자인은 창조자의 기발한 착상, 독창적인 컨셉, 사회문화적 이념이 담긴 이념적 의사소통의 매개적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닐스 다르델 – 근대 유럽의 민주적 댄디

“NILS DARDEL AND THE MODERN AGE” at Moderna Museet, Stockholm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근대기 유럽 미술계에서 하이소사이어티에서 기인 화가이자 개성 강한 댄디로 알려져 있던 닐스 다르델(Nils Dardel). 오늘날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 화가가 되었지만 그가 국민 화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때는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패션 감각, 기이한 성격,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사생활을 고집했던 꾀짜라는 딱지에 가려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덕택에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댄디(Dandy)란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인류 문명과 최고로 세련된 매너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유학여행을 떠나던 엘리트 교육과정, 이른바 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하고 돌아온 귀족 남자 자제들을 뚯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