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Brow Meets Low Brow, Low Brow Meets High Brow

이미 1960년대말경부터 건축과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불거져 나온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논쟁은 특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성주의 엘리트 디자이너들과 이론가들의 예술적 실험정신과 극소수의 부유한 문화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제품 디자인 업체 알레시(Alessi)를 비롯해서 가구 디자인 업체인 카시나(Cassina)와 카르텔(Kartell) 등은 1980년대부터 유명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의 명성을 약싹빠르게 상업화시킨 이른바‚ 거장 시리즈’ 디자인 제품들을 개발해 지갑 사정이 좋은 중상층 시장에 크게 어필했다.

New Forms and Experimentalism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90s

20세기 후반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유산을 이어받아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공존
인본주의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예술관에서 출발한 20세기초 모더니즘이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따분하고 천편일률화된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무릎을 꿇고 나자, 1960년대부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이 등장하며 건축을 본령을 삼아서 현대인들의 시각 환경과 미적 감수성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2편 – 디자인)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Part 2)

기능적인 건축은 자를 대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못지 않게 올바르지 못한 길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장족의 발전 끝에 우리는 드디어 비실용적이고, 쓸모없고, 주거가 불가능한 건축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오스트리아 출신 생태 건축가 프리든스라이히 훈더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모더니즘에 대하여 남긴 평.

디자인은 창조적 혼란과 기발한 컨셉의 결정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흔히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정신을 가리켜서 ‚창조적 혼란 (creative chaos)’ 상태라고 표현하곤 했다. 1980년대는 자연 과학 분야에서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가 처음으로 발표되어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뒤에 숨은 무작위적인 연쇄적인 인과관계와 인간의 이해불능력을 정의한 시대였다.

고도로 발전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미지(未知)의 영역은 점차 커져만 가고 있음을 시인하는 과학계가 그러할진대 디자인 예술 분야라 하여 사정은 그다지 다를수 없었다. 디자인 제품이란 반드시 기능적 구실을 수행하는 사물의 결정체여야 한다는 과거 모더니즘의 강령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이제 디자인은 창조자의 기발한 착상, 독창적인 컨셉, 사회문화적 이념이 담긴 이념적 의사소통의 매개적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닐스 다르델 – 근대 유럽의 민주적 댄디

“NILS DARDEL AND THE MODERN AGE” at Moderna Museet, Stockholm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근대기 유럽 미술계에서 하이소사이어티에서 기인 화가이자 개성 강한 댄디로 알려져 있던 닐스 다르델(Nils Dardel). 오늘날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 화가가 되었지만 그가 국민 화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때는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패션 감각, 기이한 성격,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사생활을 고집했던 꾀짜라는 딱지에 가려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덕택에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댄디(Dandy)란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인류 문명과 최고로 세련된 매너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유학여행을 떠나던 엘리트 교육과정, 이른바 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하고 돌아온 귀족 남자 자제들을 뚯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

FROM ANARCHY TO AFFLUENCE

New York –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1970년대 무렵 미국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 도시 뉴욕에서는 1960년대말에 불어 닥친 반문화 정치 활동을 끝으로 전에 없이 새로운 전자 매체 혁명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접어들자 미국은 국제 유류 파동과 그로 인한 경제 불황 중에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통령을 선출하여 보수주의적인 분위기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공중파 케이블 텔레비젼을 통해서 MTV 방송국에서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같은 수퍼스타 연예인들이 미국 내는 물론 전세계의 팝음악 팬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morsa_loftbed
모르사(Morsa)가 디자인한 로프트 침대. Photo ⓒ Dan Wynn, lent by Joan Kron.

이 즈음 뉴욕의 미술계도 전에 없이 새로운 이른바 ‘다운타운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뉴욕의 금싸라기 땅이자 예술 구역으로 자리잡은 이스트빌리지 (EastVillage)는 바로 그 뉴욕 다운타운 문화의 발상지이자 예술인과 보헤미언들의 창조적 실험실이어 왔다.

맨하탄의 로뤄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 구역 내 옛 물류 창고가 모여있던 이스트빌리지는 한때 집없는 거리부랑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범죄가 빈번하는 빈민가로서 높은 악명에 시달렸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아주 싼 임대료를 찾아 살러온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예술인들이 이 옛 공업지대를 주거용 아파트로 삼기 시작하자 소호 구역에서는 일명 ‘로프트 임대법 (Loft Law)’이라는 부동산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저가 임대료를 모색하던 예술인들은 물론 미술 화랑업자들, 대중 음악가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이 동네를 급속도로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이를 간파한 부동산업자들이 198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이스트빌리지를 예술인의 구역으로 홍보하면서 지가 상승을 부추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