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박물관

THE MUSEUMS OF THE WORLD

예술은 문명의 여정을 따라 핀 꽃길과도 같다. –링컨 스테펜스 (19세기 미국 언론인)

예술이 없다면 현실의 조야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 조지 버나드 쇼 (20세기초 아일랜드의 문학가 및 비평가)

여권과 여행자금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세계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게 된 오늘날. 특히 1990년대 후반기부터 글로벌 경제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 21세기 만큼 해외 여행이 모든 대중에게 널리 보편화된 시대는 인류 역사상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은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의례 그곳 대표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러보는 것이 의무적인 관광 코스이자 당연스런 의례가 되었다. 어떤 관객에게 박물관과 미술관이란 앎과 지식 향상을 위한 교육적 기관일테고 또 다른 관객에게는 눈요기감과 즐거운 시간을 약속하는 오락공간일테다.

닐스 다르델 – 근대 유럽의 민주적 댄디

“NILS DARDEL AND THE MODERN AGE” at Moderna Museet, Stockholm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닐스 다르델 ⟨숨져가는 댄디(The Dying Dandy)⟩ 1918년 © Nils Dardel.

근대기 유럽 미술계에서 하이소사이어티에서 기인 화가이자 개성 강한 댄디로 알려져 있던 닐스 다르델(Nils Dardel). 오늘날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 화가가 되었지만 그가 국민 화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때는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패션 감각, 기이한 성격,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사생활을 고집했던 꾀짜라는 딱지에 가려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덕택에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댄디(Dandy)란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인류 문명과 최고로 세련된 매너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유학여행을 떠나던 엘리트 교육과정, 이른바 이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하고 돌아온 귀족 남자 자제들을 뚯했다.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

PHILIP GUSTON – LATE WORKS at Schirn Kunsthalle Frankfurt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미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1950년이 저물기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대세를 놓지 않고 있던 가운데, 추상표현주의를 과감히 뒤로 하고 다시금 ‘구상미술(figurative painting)’로 돌아간 반항아가 있었는데 필립 거스통은 그런 ‘이단자’였다. 2013년 겨울 (11월6일-2014년 2월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른 쿤스트할레에서는 미국 화가 필립 거스통(1913-1980, 캐나다 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1960년대 말부터 ‘고급 미술’에 미국 대중 시각문화를 결합해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했던 필립 거스통의 후기시절 구상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이 필립 거스통 전시는 덴마크 훔레벡 미술관으로 옮겨져 2014년 9월7일까지 “필립 거스통: 그림그리고, 담배피고, 먹고 (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이라는 제목으로 계속된다.

작자 미상 『참전하거라! 네 임무이니까 (Go! It`s your duty lad. Join to-day)』 1915년, 컬러리토그라피, 101 x 127,1 cm 인쇄: David Allen & Sons Ltd., Harrow/Middlesex,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작자 미상 『참전하거라! 네 임무란다. (Go! It`s your duty lad. Join to-day)』 1915년, 컬러리토그라피, 101 x 127,1 cm 인쇄: David Allen & Sons Ltd., Harrow/Middlesex,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전쟁을 위한 프로파간다 1914-1918년

WAR AND PROPAGANDA 14/18

바로 지난 6월 6일. 우리나라에서는 현충일 국가공휴일이었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올 2014년 디-데이 결행일 (D-Day) 70주년을 맞아 G-20 소속 각나라 국가 대표들이 모여 특별 기념행사를 가지며 역사속으로 저물어간 제2차 세계대전을 기렸다. 디-데이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이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해안에서 비상상륙작전을 단행해 연합군이 추축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특수군사행동이 단행된 날이었는데, 오늘날 이 날은 과거 승자와 패자가 한데 모여 정치정책을 조율점검하는 외교행사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시 영국은 독일군이 벨기에 아기에게 총검을 들이댄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적에 대한 적대감을 불지피는 증오심을 일부러 자아낼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파리 인상주의 회화 예술사회학적으로 바라보기

ESPRIT MONTMARTRE – Bohemian Life in Paris Around 1900.

“예술가촌으로서의 몽마르트르 구역”은 초대형 메트로폴리스 파리가 지닌 여러 단면들중 중대한 한 면모를 차지한다. 파리 몽마르트에서 활동하던 한 평론가는 1890년에 이렇게 논평했다. “파리 몽마르트. 이 구역은 하나의 거대한 아텔리에를 닮았다. 에드가 드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는 모두 한 때 여기서 살며 작업했다.

키이스 반 동겐(Kees Van Dongen), 「몽마르트 르 사크르쾨르 대성당(Montmartre, Le Sacré-Cœur)」 1904년.
키이스 반 동겐(Kees Van Dongen), 「몽마르트 르 사크르쾨르 대성당(Montmartre, Le Sacré-Cœur)」 1904년.

파리 몽마르트 – 근대 유럽의 대 창조 작업실 파리의 예술가 동네 몽파르나스의 역사가 시작된 때는 1885년경 유럽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30년 전 무렵이었다. 몽파르나스 남쪽 구역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해 이 구역에 자리잡기 시작한 예술가들의 자기정체성과 생활상은 일찍이 앙리 뮈르제(Henri Murger)가 쓴 책 『보헤미언 삶의 현장(Scènes de la vie de Bohème)』(1847-1849년)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