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도그마는 저리 비켜라!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1편 – 건축)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해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형상과 스토리가 제거된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이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대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1980년대 미철학 – 규율과 기능주의의 교조주의를 접고 순수 이상과 조형의 유희를 추구하다. 진정 모더니즘은 실패한 예술 실험이었는가?
영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조차도  그의 변치않는 모더니즘 이상(理想)에 대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예술과 미학은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사랑받는데 철저히 실패했다’고 거침없이 지적했다. (참고: 에릭 홉스봄 저 『시간의 뒤안길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쇠퇘와 몰락 (Behind the Times: The Decline and Fall of the 20th-Century Avant Gardes)』 (London, Thames and Hudson, 1998년)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은 조형교육에서 나와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언어학과 진화 인류학 분야에서 현대 최고의 권위와 대중적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그의 최근 저서들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나 (How Mind Works)』(1997년 간)과 『빈 서판 (The Blank Slate :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2002년, 한국어판 사이언스북스 간)에서 모더니즘 미술은 출발부터 인간의 근원적인 미적 감지력과 취향에 거스르는 미학을 추구한 결과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결론지었다.

누구를 위한 모더니즘이었는가? 20세기 모더니즘은 인류 역사상 전 지구상의 국가와 언어와 문화권 할 것 없이 도처에 인간의 환경과 사고방식에 철두철미하고 전면적인 변혁을 불어 몰고 온 문명의 대(大)분기점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 역사 반세기 이상을 넘는 세월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같은 거창한 체제 영역으로부터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루다 설명할 수 없이 파고든 모더니즘의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여간해서 요령부득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철학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 1978년 설계.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치펜데일풍 지붕과 포스트모던한 몸체로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 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의 모습. AT&T 건물은 1984년 완공되었다.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독일 바우하우스 학파를 비롯하여 20세기 전반기를 주름잡은 여의 건축 및 디자인 분야의 거장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만인의 생활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보편적인 휴머니즘 미학을 이룩한다는 이상을 뒤쫒았음에도 불구하고, ① 건축과 디자인은 결국 한편으로는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대기업과 정부 관료 기관에 봉사하는 시녀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으며, ② 또 한편으로는 대중을 소비자라는 유행과 소비의 노예로 만든 대량 소비주의 지향적 마케팅 전략이 가장 즐겨 활용한 기업들의 부가가치 창출용 수단으로 변신변질 되었다.

1960년대말 서구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돌발적으로 불거진 반문화 운동 (Counter-culture Movement)과 인문학계 내 지성인들 사이에서 전개된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모더니즘의 바로 그같은 변질을 지적하며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런 한편,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면서 서구 사회와 일본에서의 경제 성장은 계속되는 가운데 평범한 대중들은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가 안겨준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었다.

“No more ‚Less is more’ but ‚Less is a bore” 단순한 것이 더 심오하다고?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 – 건축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봉 미스 반 데어 로헤 (Mies van der Rohe)가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의 미학적 근본 기치로 내걸었던 „Less is more.“(단순한 것이 더 의미있는 것이라는 의미)는 미학 모토는 어느새 부터인가 „Less is a bore“ 즉,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이라며 빈정어린 비판의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그같은 분위기는 1980년에 접어들면서 이성 (rationality)보다는 감성 (emotion) ,보편적인 ‚고급 취향 (good taste)’ 보다는 대중문화와 저급 주변 문화에서 영감 받은 ‚저속 취미 (bad taste)’, 엘리트 취향의 규율 보다는 불특정의 다양성 및 재미 (fun)와 재치 (wit), 대량생산 (mass production) 보다는 소량창조 (small-scale creation)를 추구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시대의 출발을 고하는 것이었다.

예술계와 학계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알파벳 앞의 두글자를 따서 줄인 ‚포모 (PoMo)’라는 속칭으로도 불리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당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1960년대 중엽부터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말 부터 1980년대까지 전개된 새로운 건축 디자인의 유행을 통해서 더 구체화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인가 아니면 모더니즘과 단절인가? 학계는 논쟁을 멈추지 않으며 ‘포모’의 정체를 밝히려 애썼다.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1세대 20세기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학계에서만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문화계 전반에서도 유럽과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특히 미국에서, 1950-60년대 대도시의 대기업 사무실 건물 설계를 맡았던 미국 마천루의 건축 제왕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은 이미 1970년대말에 근대식 건축 골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영국 18세기 귀족풍 치펜데일 양식이 오묘하게 뒤섞인 AT&T 사 건물을 뉴욕에 지어 올리는 것으로써 판에 밖힌 모더니즘풍의 국제 건축 양식의 답습에 대항한 일탈의 제스쳐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6년에 미국에서는 건축가 로버트 벤추리 (Robert Venturi)가 『건축에 있어서 복합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라는 책을 써서 박스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이며 일체의 장식성이나 의미가 제거된 무미건조하고 청교도적인 모더니즘식 건축의 시대는 이제 물러갈 시기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1972년에 『라스 베가스의 교훈 (Learning from Las Vegas)』라는 책을 내고는 쇼비즈니스 오락과 도박의 인공인조 도시 라스 베가스의 거리 도처와 고속도로 주변에 널려있는 절충적인 상업 건축물과 저속한 빌보드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미학이야 말로 다가올 미래의 신건축이 가야할 길이라고 선언했다.

또 콜린 로우 (Colin Rowe)와 프레드 쾨틀러 (Fred Koettler) 공저 『콜라쥬 도시 (Collage City)』(1973년 간)와 렘 코올하아스 (Rem Koolhaas)의 저서 『들뜬 도시 뉴욕 (Delirious New York)』(1978년 간)에서 마천루의 천국 뉴욕에서 급속히 출현하기 시작한 새로운 포스트모던풍 건축물과 거리 풍경을 지적하면서 과거의 건축 양식들의 복귀와 다양한 건축 요소들의 재출현을 높이 찬양했다.

그 기원과 발원지가 무엇이었든지 상관없이 1980년대의 건축가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은 단순간결과 무장식성을 추구했던 ‚경직된 모더니즘 도그마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anti-thesis to Modernist aesthetics)’과 ‚과거 및 기존 이미지들의 재발견-혼합-절충’이었다.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단순함과 모순성이 한데 결합된 포트스모던 건축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2세대 뒤이어서 1980년대 중엽에는 필립 존슨의 제자들이 대거 특히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주도했다. 로버트 스턴 (Robert Stern)과 존 버지 (John Burgee) 등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과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가미한 건축물들, 예컨대, 텍사스 휴스턴 대학 건축 학교 빌딩(1982-85년 완공), 버지니아 대학 천체관측소 부설 식당 건물(1982-84년 완공), 캘리포니아 라 홀라 프로스펙트의의 오피스 빌딩(1983-85년 완공)을 통해서 과거 건축 양식과 현대적 요소들이 뒤섞인 절충적인 건축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건축가들 가운데에서 특히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는 강렬한 색과 과장되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첨가된 건축물로, 그리고 리쳐드 마이어 (Richard Meier)는 한결 젊잖고 보수적인 경향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기인 1970년대 말엽부터 1980년대 동안 대서양 건너편 유럽 대륙에서도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反모더니즘적 경향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포트스모더니즘 건축이 팝아트, 광고나 만화 같은 저급 대중 문화 이미지, 미국 건립 초기의 식민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 등과 같은 다양한 원천에서 두루 차용하여 절충 결합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면, 유럽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한결 정치적・이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는 추세였다.

“유럽의 미래는 과거에” – 유럽의 전통 복고주의 유독 유럽에서 포스트모던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1980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상 최초로 건축 비엔날레가 조직되면서 „현재 속에 잔존하는 과거 (The Presence of the Past)“라는 대제목으로 열린 건축 전시회를 통해서 불거졌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이 책은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이 전시에는 로버트 벤추리, 찰스 모어 (Charles Moore), 파올로 포르토게지 (Paolo Portoghesi), 알도 로시 (Aldo Rossi), 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리카르도 보필 (Ricardo Bofill), 레옹 크리에 (Leon Krier) 등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끌던 국제급 건축가들의 작품 세계가 소개되어 개인주의 (individuality), 친밀성 (intimacy), 복합성 (complexity), 유머 감각 (sense of humor)을 건축요소로 삼아 이전 모더니즘 건축과는 퍽 색다른 건축 정신을 선언했다.

무려 반세기가 넘게 승승장구한 제1차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의 끝으로, 현대적인 건축과 도시 설계로 급격히 현대화된 주거 생활 환경을 경험한 이탈리아인들은 새삼 과거로 눈을 돌려서 19세기와 20세기초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를 재발견하여 건축으로 재해석하려는 ‚역사주의 (Historicism)’ 운동을 되살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 걸쳐 그동안 방치되어 왔거나 허물어져 가는 고건축물을 복원하는 고건축 재건축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시기도  바로 1980년대 부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알도 로씨 (Aldo Rossi)는 일찌기 1960년대에 과거 고전주의가 지닌 엄격한 건축 원칙을 높이 찬양하는 건축서 『도시 건축론 (L’architettura della città)』(1966년 간)을 발표하고 이탈리아 지방 마다의 맥락에 맞는 고전주의 건축을 제안하였다. 역사주의을 취한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들 가운데에는 마이클 그레이브스, 로버트 벤추리 등이 대표적이며 디자인 회사들 가운데에는 크놀 (Knoll), 알레시 (Alessi), 포르미카 (Formica) 등이 그같은 계열 속에서 기능 보다는 과거의 시각적 장식성과 환상적인 이미지를 되살린 가구 및 가정용 제품 디자인에 주력했다.

또 1980년대는 이탈리아어권 스위스에서도 유난히 많은 건축디자이너들이 탄생하여 국제 무대로 명성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현대 건축계의 스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를 비롯해서 마리아 캄피 (Mario Campi), 브루노 라이흘린 (Bruno Reichlin), 파비오 라이하르트 (Fabio Reinhardt)는 모더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이른바 ‚신합리주의 (Neorationalism)’ 건축을 정착시킨 장본인들이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모더니즘의 무자비하다시피한 엄격주의와 규율에서 탈피하되 근대적인 소재와 건축 기술을 백분활용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인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휴머니즘적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여 계승하자는 건축 디자인 철학을 골자로 하고 한 이 신합리주의는 곧이어서 독일의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thias Ungers),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 벨기에의 롭 크리에 (Rob Krier) 등과 같은 건축가들이 동참한 1980년대 유럽의 핵심적인 건축 경향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파리에서는 이미 1970년대말에 급속히 발전한 건축 기술과 소재의 발전을 한껏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파리 퐁피두 센터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공동 설계)를 지어 선보였다. 건축사 최초로 건물의 철골 골조와 구조적 내부설치물이 바깥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도록 설계된 퐁피두 센터 건물은 처음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그 파격성과 도발성으로 비난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이 건물이 파리의 역사적 자리에 들어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로서 선언한 과감한 제스쳐와 유희적 유머 감각은 지금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hias Ungers)의 건축 설계 스케치, Deutsches Architekturmuseum, Frankfurt am Main, 1980년 (Coloured drawing, ca. 40,0 x 30,0 cm) © DAM

※ 이 글은 본래 LG 인테리어 『공간사랑』지 2005년 8월호 “History of …” 연재 컬럼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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