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이스탄불 현대미술을 사랑한다?

ISTANBUL MODERN
이스탄불 모던 – 터어키 근현대미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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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내리보며 자리해 있는 이스탄불 모던 근현대미술관 외관 모습 ⓒ 2011.

기원전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역사를 가진 동서양의 교차점 터키의 유서 깊은 고도시 이스탄불. 도처에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건축물과 고미술품이 널려 있어 울타리 없이 열려 있는 영원한 박물관이라고도 표현되는 도시다. 이곳에 최근 근현대 미술관이 들어서며 세계적인 컬렉션을 선보여 세계인의 놀라운 시선을 받고 있다.

요즘 들어 유럽에서 터키는 삼삼오오 모인 지인들과 뉴스 언론이 가장 즐겨 떠올리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터키의 유서 깊은 고도 이스탄불에 이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현대 미술관이 지난 12월 12일에 문을 열어 구미권 미술계와 언론을 잔뜩 주목시켰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터키의 회원 가입 여부를 정식 논의하기로 되어 있던 12월 17일을 며칠 앞두고, 터키는 자국에 대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의도로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5개월이나 앞서 서둘러 개막식을 올렸다는 후문이다.

이스탄불 모던 미술관은 개관 첫 주에 1만8,000명에 가까운 관람자 수를 기록했다. 용기를 얻은 이 미술관의 관장 오야 에크자치바시 (Oya Eczacibasi) 여사는 2005년에 관람자 수 100만을 돌파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과시하고 있다. 그녀는 가문의 막대한 부를 이용해 모아둔 개인 미술품 컬렉션 4,000여 점을 미술관에 영구 전시하고 있는데, 20세기 터키 출신의 국내외 미술가들과 최근 구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20세기 유럽에서 모더니즘과 현대 미술 등 다양한 사조가 전개되고 있는 동안 터키 미술계는 유화 중심의 회화와 고전적 조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즈데미르 알탄과 오메르 울루치는 20세기 터키 회화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원로 화가로, 이번 이스탄불 개막전에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다. 터키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비딘 디노와 피트렛 무알라의 작품들도 조만간 미술관 창고를 벗어나 전시실에서 관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미술관의 개인 소유주이자 창립자인 아크자치바시家는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 (Forbes)』가 선정한 터키 제5의 갑부 집안이다. ‘이스탄불의 오르세 미술관’을 만들어보자는 에르도간 터키 수상의 비전이 이번 아크자치바시家의 현대 미술관 개관에 결정적인 청신호 역할을 했던 만큼, 이스탄불 모던 미술관이 향후 터키의 대외 문화 이미지 제고와 관광 수익에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서 세계 사이에서 안장을 갈아타며 발전해온 인구 7000만의 이슬람계 국가 터키는 우리에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멀리 느껴지는 나라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기원전 7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광스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터키가 자랑하는 역사 도시 이스탄불은 기원후 250년 즈음 고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자리한 비잔틴 문명의 중심지였다. 11세기 이후 이슬람 교권을 중심으로 한 오토만제국이 들어선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은 동쪽에서 침범해온 몽고의 칭기즈칸과 서쪽 유럽 십자군의 기독교 세력 사이에서 수차례 잔혹한 전쟁과 갈등을 헤쳐왔다. 그만큼 주류 이슬람권 문화와 유럽의 잔재들이 묘하게 융합되어 있는 신비와 낭만의 고도이기도 하다.

istanbul-modern-4_small그래서 터키인들의 이스탄불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은 제법 강하다. 터키인들은 자기 나라를 두고 ‘도처에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건축물과 고미술품이 널려 있어 울타리 없이 열려 있는 영원한 박물관’이라고 설명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 표현을 달리 해석하자면, 터키에는 구미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제도 시설이 그다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여전히 제도권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시설을 찾아보기 어려운 터키. 그 때문에 이번 서양식 대형 미술관인 이스탄불 모던 미술관의 개관은 터키인들에게 있어서나 세계 미술관계의 입장에서나 매우 뜻깊은 계기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탄불을 미술의 불모지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현재 이스탄불에서는 고도의 심장부 술타나으멧 구역 주변 곳곳에 사설 화랑들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987년부터는 국제적인 규모의 현대 미술 행사 ‘이스탄불 비엔날레 (Istanbul Biennial)’를 2년마다 개최하고 있을 정도로 근현대 미술 문화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이스탄불 최초의 근현대 미술관이 들어선 자리는 이 도시를 안고 있는 마르마라海 해안. 회청색 수경을 전망 삼아 서 있는 미술관 건물은 관장인 오야 에크자치바시 여사가 손수 이스탄불 전역을 돌아다닌 끝에 낙점한 옛 세관 건물로, 지난 20여 년간 이스탄불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서양 미술의 중심부와 주변 지역 간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라는 수석 큐레이터 로자 마르티네즈의 말처럼, 동서양의 문화적 교량 역할을 담당하게 될 이스탄불 모던 미술관의 미래가 기대된다.

* 이 글은 본래 『노블레스 (NOBLESSE)』 지 2005년 3월호 104페이지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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