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유쾌한 축복

페테르 브뤼헐 ⟪야외에서의 결혼식 춤⟫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Wedding Dance in the Open Air, c. 1566, 119.3 ⨉ 157.4 cm. Collection: Detroit Institute of Arts, Detroit

그림 앞에 마주선 관객의 시선은 우선 화면 맨 오른쪽 아래 백파이프를 켜는 악사에게로 향한다. 흥겨운 잔치에 음악이 빠질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백파이프 하면 소리가 요란한 스코틀랜드식 악기를 떠올리지만 16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켰던 파입삭(pijpzak)은 소리가 감미롭고 섬세해서 결혼식에도 안성마춤이었다. 악사가 입은 조끼와 하의의 선명한 빨강과 스말토 안료로 낸 하늘색은 화면 전체에 걸쳐 반복해 등장하며 화폭 구석구석 펼쳐지는 잔치참석객들의 천태만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라며 관객의 시야를 유도한다.

결혼식 잔치의 주인공인 신부는 주변 잔치 초대객들에 둘러싸인채 결혼 축하춤을 추고 있다. 신부는 당시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지방 전통을 따라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내려 단장했다. 고래적부터 북유럽권의 신부들은 결혼식날 신부 단장을 할 때 길게 기른 머리를 풀어 내렸는데,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은 순결과 젊음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신부의 손을 잡고 빨간 셔츠와 녹색 조끼 차림으로 춤추는 남성은 아마도 신랑이 아닌 신부의 친정 아버지 같다.

이 기쁘고 축복스러운 결혼잔치에 도대체 신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다수 브뤼헐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그림만을 봐서는 그에 대한 답은 미술사학자들도 규명하지 못한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신랑은 결혼식날 하루해가 지고 어둑해진 저녁에야 피로연장에 등장할 수 있었다는 15~16세기 네덜란드의 결혼 풍습에 미루어 본다면 브뤼헐은 아예 신랑을 그려 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농군의 결혼피로연을 묘사한 브뤼헐의 또다른 걸작 회화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소장, 1567년)에도 나타나 있듯, 화가는 신부를 근엄한 표정과 절제된 몸가짐을 한 과묵한 여성으로 즐겨 묘사했다. 저녁 피로연에 신랑이 등장할 때까지 음식을 입에 대거나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당시 유럽의 엄격한 혼인식 규율을 따라야 했던 신랑신부에 대한 시각적 기록이다.

⟨야외에서의 결혼식 춤⟩은 16세기 북부 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출중한 거장화가 아버지 피테르 브뤼헐이 유독 정통했던 군중화의 대표작중 하나다. 왁자지껄한 파티가 한창인 영화 속 한 장면을 스냅 사진으로 포착해 놓은 듯한 이 한폭의 농촌 풍속화 속에는 무려 125명의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수많은 인파를 한 화면 속에 빼곡이 채워넣는 ‘군중화(crowd painting)’ 구도법은 네덜란드 거장 화가였던 선배 히에로니무스 보시(Hieronymus Bosch)의 그림에서 받은 영향이다.

이 그림 속에는 관객의 관음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눈요깃거리들로 가득하다. 한 눈에 봐도 우람하고 과장스럽게 묘사된 샅주머니를 한껏 뽐내며 춤추는 남성들의 모습을 빌어 브뤼헐은 결혼과 다산의 미덕을 격려했던 16세기 유럽 전통농경사회 그 이면에 서린 인간의 저속하고 음탕한 본능과 어리석음을 은근슬쩍 꼬집는다. 화면 오른켠 나무 앞 주황색 상의와 검정 모자차림을 하고 옅은 미소를 띤채 뒷짐진 사내는 도덕 검열 나온 고을관청의 관리 또는 교회감독관일까? 아니면 허리춤에 매달린 붓자루가 암시하듯 농군들의 천태만상을 관찰하며 미술적 영감을 얻었던 화가 자신의 분신일까?

역시나 감독관의 눈이 채 닿지 않는 저 멀리 그림 후경으로 갈수록 초대객들의 품행은 한결 느슨해진다. 모처럼 잘 차려입고 온 질박하고 툽툽한 촌남촌부들은 들뜬 잔치 분위기와 술기운의 도움을 받아 평소 억눌러뒀던 본능과 욕구를 발산한다. 춤추는 쌍쌍남녀, 입맞춤하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 카라프 병채로 맥주를 들이키는 술꾼, 소문 퍼뜨리기와 수다에 열중하는 마을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서서 유혹의 시선을 주고 받는 선남선녀들이 수놓는 이 번잡하고 떠들썩한 잔치판은 농군들이 맘껏 먹고 마시며 춤추고 이성을 만나고 최신 가십을 따라잡을 수 있던 마을 공동체 사교장임과 동시에 공동사회의 통합을 유지해준 사회적 안전밸브였다.

남녀의 로맨틱한 결합과 새 가족의 탄생을 선언하는 결혼 서약은 인류 보편적인 통과의례이자 인생여정의 중대한 이정표다. 그런가하면 예식으로의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의 미래를 축복해 주기 위해 풍성한 음식거리가 있는 만찬과 화기애애한 축제를 곁들여 손님들을 대접하는 사회적 모임이다. 그러하다 보니 ‘결혼은 또 다른 결혼을 낳는다(One wedding brings another.)’는 옛 영국 속담처럼 과거에는 결혼식에 참가한 초대객들 사이에서 새로운 만남이 탄생하고 혼인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했다. 결혼이란 제도는 순간적 충동과 욕정을 초월해 기나긴 인생여정을 함께 할 두 개인 간의 엄숙한 약속이다. 그렇지만 그처럼 진지한 결혼 생활에도 즐거움과 재미가 따른다고 브뤼헐은 이 그림을 통해 귀띰한다. 제아무리 진지한 결혼 맹세도 가볍고 유쾌하며 여흥가득한 야외결혼 축제와 함께 출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본래 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 2020년 3월호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This column has been originally appeared in the March 2020 issue of aT, corporate journal published monthly by 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