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와 같은 건축, 건축과 같은 인생

ARCHITECTURE OF ÁLVARO SIZA

50년 묵묵히 걸어온 거장 건축가 – 알바로 시자의 건축 세계

흔히들 요즘에는 ‚건축가는 21세기의 록스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유명세와 사회문화적 의미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사 행세를 톡톡히 한다. 그중에서도 알바로 시자는 누가 뭐라해도 글로벌 문화를 이끄는 이 시대의 스타 건축가들의 대열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거장 현대 건축가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아랍 무어족의 대표적 기념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 스페인 그라나다의 1천년 된 알함브라 궁전과 광장 모습. 알바로 시자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 후안 도밍고 산토스와 협동으로 알함브라 궁전 방문센터를 설계했다. Topographical Architecture. Image from the Alhambra Project by Álvaro Siza Vieira and Juan Domingo Santos © António Choupina.

알바로 시자가 설계해 현재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파비온(Pavilhão de Portugal)은 1998년 리스본 세계박람회를 기해 완공되었다.

그러나 알바로 시자는 화려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꺼린다. 지난 십여년 구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기라성 같은 여타 ‚스타 건축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최첨단 건축 시공 기술과 신소재를 한껏 활용하여 때론 기괴하고 때론 극단적이기까지한 극도의 실험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 알바로 시자는 단순한 형태와 미묘한 빛의 조화를 공간 미학으로 승화시킨 그만의 독특하고 일관적인 건축 양식을 구축해 왔다.

알바로 시자는 지금까지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건축 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1933년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무역과 상업이 성행한 북부 포르투갈 지방에서 제일 큰 도시로 알려져 있는 오포르토(Oporto) 근방에서 태어났다. 오포르토에 있는 미술 대학(Escola de Belas Artes)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50년대 후반기에 선배 건축가이자 시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 페르난도 타보라(Fernando Tavora)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며 건축 실무를 익힌 후 1960년대 후반기부터 고국에서는 물론 스위스, 미국, 베네주엘라, 일본 등에서 대학 강의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이미 1970년대 중엽부터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알려온 알바로 시자는 특히 1982년과 1990년의 파리 퐁피두 센터, 1983년 런던 인스티튜트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 1988년 하버드 건축대학 등 고국 보다는 해외 무대에서 더 유명해 졌다. 작년 초 뉴욕에 있는 디자인 전문 갤러리(Ohm Design)에서 열린 <시자-5:50전>은 알바로 시자가 자기 작업을 직접 정리한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담담하며 자신의 건축과 디자인 인생 50년을 총정리한 종합전시로서 전세계 대도시들을 돌며 순회전으로 부쳐지기도 했다.

공간과 형체의 일체를 추구한 알바로 시자의 건축적 가치가 국제 건축계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때는 시자가 1988년 미스 반 데어 로헤 건축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였다.

깔끔하고 단수하면서도 강하고 통일감을 자랑하는 건축으로 시자는 이후 1992년에 건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축계의 아카데미상격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받았고, 이어서 2002년에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최고의 건축 프로젝트에 수여하는 금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2년 판, 13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2012년 8월29일-11월25일)는 알바로 시자에게 평생공로 금사자상을 선사했다.

„내가 건축에서 가장 눈여겨 보고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명료성(clarity)과 단순주의(simplism)다.“ 고 한 알바로 시자의 고백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서구 건축계에서는 상자각을 연상시키는 그의 반복적이고 잠재적인 단순미를 가리켜서 그를 미니멀주의자(Minimalist)로 즐겨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단순주의란 복잡함을 제거시킨 단순성(simplicity)이 아니라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여러가지 복잡성을 명료한 형태로 한 편의 건축물 속에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건축 철학을 두고 보아 노바 티 하우스(Boa Nova Tea House)과 세투발 대학(Setubal College) 건물이라든가 산티아고 미술관(Santiago Museum) 등 같은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들 속에는 고요한 표현주의가 잠자고 있다고 포르투갈의 건축 비평가인 페드로 비에이라 데 알메이라는 평가한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이 고요하고 단순해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표현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자연 태양광을 자유자재로 다룰줄 아는 건축가의 탁월한 재주 때문일 것이다. 빛의 달인인 알바로 시자는 건축물의 안팎을 들이치는 태양광을 단순히 실외를 구분하고 사물을 분별하기 위해 대상에 떨어지는 빛줄기에 불과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을 통해서 들이치는 빛은 과거 르 코르뷔지에식의 „단순한 빛덩어리“가 아니라 조형화되고 만져질 것 같은 빛처럼 느껴지곤 한다. 지중해 까까이 위치한 태양과 여유의 나라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점 때문일까. 이른바 „키아도(Chiado)“ 감흥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빛 조형 감각은 고국 포르투갈의 고도시 키아도의 두꺼운 돌벽 고건축물들에 달린 유리창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가공된’ 빛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해안도시 세투발에 1993년에 건립된 세투발 교육대학 건물은 U형 대지 기반 위에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시공기간: 1986-1993년.

시자의 작품 세계가 내뿜는 또다른 특징은 요즘 국제적인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하기 즐기는 대규모 건축물을 고집스럽게 거부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그런 그의 건축 스타일을 가리켜서 우쭐하지 않는 겸손의 수사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제아무리 거창한 이름의 클라이언트의 주문과 프로젝트의 규모와는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일정한 스케일을 고수하는 그의 건축 철학의 결과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주변 환경에 어울리도록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 20세기초 독일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 건축 원리가 강조했던 것처럼 사용자의 신체적 편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 „휴먼 스케일“의 원칙,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열정은 건축 설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변함없는 않는 최우선적 요건들인 때문이다. 이상주의 건축을 이행한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자동차는 없고 보행자만 있는 도시 베네치아, 교통수단과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도시 나폴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의 건축적 철학과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시자의 설계로 1993년에 완공된 포르투갈 오포르토에 있는 건축 대학 건물은 주변 환경에 대한 섬세한 이해, 덩치 큰 건축을 거부하는 반(反)거물형 건축에 대한 지향, 그리고 정교한 디테일 마감이 잘 어우러진 예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스타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와 나란히 캘리포니아 파사디나에 있는 아트 센터 오브 칼리지의 확장 건축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는 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건축 설계라는 천직을 ‚일생에서 제일 중요한 취미’라고 믿으며 계속하고 있다.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지  2005년 11월호에 실렸던 것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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