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호텔 체험 시대

POP-UP CHIC

2012년 8월 열린 런던 올림픽에 맞춰 개장을 기획한 A Room for London은 퀸 엘리자베스 홀 지붕 위에 위치해 경관이 특별하다. Photo courtesy: Living Architecture.

팝업 레스토랑, 팝업 가판대, 팝업 부티크. 예상치 않은 장소에 불쑥 나타나 독특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른바 팝업숍(pop-up shop)들이 최근 몇 해 구미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이제는 팝업 리테일(pop-up retail)로 불리며 최신 소매 트렌드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에 걸친 한정된 기간 동안 소비자들을 만나고는 사라져 버리는 임시성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하고 깊은 기억을 새겨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의류와 외식업계 마케터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 리테일 전략이다.

천편일률적인 대형 쇼핑몰 보다는 거리의 아담하고 일시적인 팝업숍이 소비자의 감성과 기억에 깊이 어필한다면, 미지의 도시나 자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빤한 호텔 체인 보다는 팝업 호텔에서 보다 각별하고 추억깊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색다르고 독특한 호텔에서 하루중 가장 소중한 시간 – 휴식과 프라이버시 – 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그같은 팝업 호텔(Pop-up hotels)들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어 트래블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2007년 파리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된 팝업 에벌랜드 호텔의 모습. Photo © Lang/Baumann.

설치미술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팝업 호텔 컨셉은 벌써 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에벌랜드 호텔(Everland Hotel)이 2002년에 시도한 팝업 호텔 실험은 사비나 랑(Sabina Lang)과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두 미술가의 설치미술 프로젝트였다.

2002년 첫 설치장소는 스위스 이벌든(Yverdon)에 자리한 에벌랜드 호텔로, 컨테이너 개조하여 노이챠틀(Lake Neuchâtel) 호수를 내려다보도록 설계한 원룸 호텔방을 소개했다. 두 미술가는 이어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eipzig) 지붕 위에 이 팝업 호텔 객실을 설치해 전시(2006년6월-2007년9월)했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2007년10월-2009년 봄)했다.

한편 해외 관광객이 많아진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프랑스 건설업체 아빌모(Abilmo)가 2008년에 처음 소개한 조립식 팝업 호텔방 컨셉은 특히 여름휴가철 유럽 페스티벌 애호가들과 배낭족들을 겨냥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팝업 호텔을 본격 상업화한 업체는 영국 트래블로지(Travelodge UK) 호텔 체인. 트래블로지는 2008년에 영국 런던 교외 억스브리지(Uxbridge)와 히스로(Heathrow) 두 도시 역세권에 선박용 컨테이너를 층층히 쌓아 객실로 전환한 팝업 호텔을 개장했다.

비즈니스 컨퍼런스, 페스티벌, 휴가철 등 방문객 수가 집중적으로 느는 성수기에 임시적로 건설해 임시 숙박업소로 운영하고 비수기가 되면 철거한다는 컨셉이다. 조립식 컨테이너 객실을 층층히 쌓아 한 채의 호텔 건물로 완성하는데에는 길어야 12주. 기존 식건물 시공에 비하면 공사기간이 짧고 건설비와 에너지 소비비용도 절감된다는 장점 때문에 에코 디자인에서 눈여겨 보는 대안 건축 모델이기도 하다. 트래블로지 호텔측은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동안에도  팝업 호텔을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전세계를 여행하며 모바일 캠퍼들에게 올림픽, 월드컵, 문화 페스티벌 애호가들을 위해서라면 호텔 모빌(Hotel Movíl)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짐을 풀었다 쌌다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와 시골길을 달리며 호텔방의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물 트럭과 호텔방이 하나로 합쳐진 호텔 모빌은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에 친숙하고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안성마춤이다. 스페인 업체가 개발한 이 ‘움직이는 호텔’은 총2층에 11개 객실을 수용할 수 있으며 객실별 욕실, 대형평면 TV, 무선인터넷, 럭셔리 인테리어 액세서리가 완비된 5성급 부티크 호텔 기준을 갖췄다. 호텔 모빌의 대당 단가는 미화 5천만 달러, 1주일 대여료는 미화 8,000달러다.

건설과 철거가 손쉬운 팝업 호텔 특유의 장점에서 영감받아 반영구적인 호텔로 지은 곳들도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엠호텔(M-Hotel)은 선박용 컨테이너와 붙박이식 조립가구로 만들어져 현재 단기거주를 원하는 비즈니스맨이나 여행객들이 머무는 레지던스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출신 건축가인 팀 파인(Tim Pyne)이 설계한  엠호텔은 널찍한 침실과 오피스 공간이 하나로 융합된 스페이스 컨셉에 기초하고 있다.

각 방은 20피트 컨테이너 한대에 해당하는데, 전형적인 20피트 컨테이너는 길이 약 5.9미터 폭 약 2.3미터 높이 약 2.4미터 크기다. 킹사이즈 침대와 럭셔리 내장재와 악세서리로 갖춰져 있는 욕실, 그리고 고급 간이주방까지 충분히 소화하고 있어 작은 공간도 잘만 설계하면 얼마든지 넉넉한 공간으로 연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규모있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그런가하면 최근들어 팝업 호텔은 럭셔리화되고 있는 추세다. 잭스 캠프(Jack’s Camp)는 바로 그런 수퍼딜럭스 팝업 호텔의 대표적인 예다.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 근처  칼라하리 사막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잭스 캠프는 최고급 럭셔리 캠핑 텐트 경험을 선사한다. 럭셔리 호텔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언차티드 아프리카 사파리 사(Uncharted Africa Safari Co.)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회 행사를 맞아 개장한 후 현재는 아예 영구적으로 지속 운영하고 있다.

칼라하리 사막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자연 경관과 초호화 가구와 카페트, 46인치 플라즈마 스크린 TV, 24시간 남아공산 고급 와인과 바베큐 다이닝 서비스, 전용 헬기 서비스, 고고학 탐험과 사파리 워크 산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눈 많은 스위스 레 세르니에(Les Cernier) 마을에 위치한 화이트파드(Whitepod) 샬레는 이글루를 연상시키는 텐트와 현대식  인테리어를 결합시킨 숙박시설로 알프스 대자연과 호화 레스토랑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최근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The Merlion Pop-up Hotel)은 현대미술과 호텔을 접목시킨 새로운 숙박 경험을 시도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싱가포르 비엔날레(2011년 3월13일-5월15일)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과의 협동으로 미술과 호텔 객실이 하나로 합쳐진 메를리온 임시 팝업 호텔을 공개했다.

2011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행사에 맞춰 일본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가 설계해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Tatsu Nishi)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 상징동물을 건축자재로 포장하여 럭셔리 호텔 객실로 변모시켰다. 객실은 2인 이하 투숙만을 허용하며 하룻밤만 묵고 체크아웃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엔날레가 개막되기도 전부터 숙박 예약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호응이 컸는데, 비엔날레를 위한 미술전시작이기 때문에 이 행사 마감과 함께 철거될 예정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활용했다하여 벌써부터 화재가 되고 있는 팝업 호텔도 있다. 내년 개장을 앞두고 잇는 룸 포 런던(A Room for London) 팝업 호텔은 바로 그런 경우다. 다가오는 런던 2012 페스티벌(2012년 6월21일-9월9일)에 대비한 품 포 런던은 사우스뱅크 센터에 자리한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의 지붕 위에 2인용 원룸 객실로 지어질 예정이다. 데이빗 콘(David Kohn) 건축사무소가 건물설계를 맡고 현대미술가 피오나 배너(Fiona Banner)가 실내장식과 미술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어서 전세계서 방문할  건축디자인 애호가들의 순례 발길을 재촉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유리피데스는 “행복의 순간은 짧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정치가 로이 굿먼은 “행복이란 여행과 같아서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 담겨있다”고 했다. 범람하는 정보와 하이스피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현대 소비자들의 주의력은 나날이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팝업 호텔은 색다르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영원한 추억을 안겨줄 특별한 여행경험을 선사해줄 수있지 않을까.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2011년 5/6월호 vol. 14 206-7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크로노스』코리아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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