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고대 로마 - 게르마니쿠스의 재를 갖고 로마로 돌아오는 아그리파 (Ancient Rome; Agrippina Landing with the Ashes of Germanicus) 1839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 『고대 로마 – 게르마니쿠스의 재를 갖고 로마로 돌아오는 아그리파 (Ancient Rome; Agrippina Landing with the Ashes of Germanicus)』 1839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의 후기 회화 세계

LATE TURNER – PAINTING SET FREE At the Tate

2013년 영화화되어 큰 화재를 모은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The Hundred-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2009년)은 창조적 마인드와 끊임없는 호기심과 생을 향한 열정이 있는 자에게 나이란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장수하는 노년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 속에 있는 요즘 세상에서 노후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한편,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노년에 치닫더라도 유연하고 개방된 사고를 키우며 자연을 관찰하고 경외하며 동시에 과학적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류 정신을 되세기게 해준다.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 (괴테의 이론) - 홍수 이튿날 - 모세의 창세기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1843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 (괴테의 이론) – 홍수 이튿날 – 모세의 창세기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1843년. Tate. Accepted by the nation as part of the Turner Bequest 1856.

영국 화가 조세프 메일러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년✝) 또한 작업 말년기인 1835-50년 약 15년 동안 유난히 폭발적인 창조적 활력과 발군의 시각적 혁신을 이룩했다. 1835년 윌리엄 터너는 환갑을 맞았다. 누가 뭐라해도 이미 ‘장년의 나이’가 된 이 화가는 나이와 노쇄해진 체력에도 아랑곳 않고 더 큰 세상을 보고 역사를 공부하고 외국의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유럽 전역으로의 긴 그림 여행길에 오르곤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터너는 정말 모와 마티스에게 표현적인 색채, 뿌옇고 아련한 대기 분위기 연출하는 법을 가르친 근대미술의 선구자였을까? 일부 서양 미술사 책에 보면, 특히 그가 그린 말기 그림들에 보이는 극도의 추상적이고 물감을 두텁게 입힌 임파스토 기법을 들어서 터너를 19-20세기로 넘어가던 근대기 프랑스 인상파의 선각자인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영원불변성을 그림으로 기록해 두고자 했다는 점에서, 시시각각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외부세상을 포착하려 했던 프랑스 인상주의 세계관과는 정반대 입장을 취했다.

터너는 실은 고대 유럽 역사주의와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던 18세기형 낭만주의자였다. 터너가 환갑의 나이에 인류역사를 배우기를 계속하며 그림 그리기 열정을 불태웠던 당시 19세기 유럽은 근대 모더니즘이 본격화하기 직전, ‘질풍노도 (Sturm und Drang)’ 자연의 위력에 경외를 바치고 고대 로마 그리스 시대를 되돌아보며 흘러간 역사주의의 향수 속에서 시름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터너는 당시 독일인들의 낭만주의 서정을 한껏 적셨던 작곡가 리햐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와도 정서적으로나 세계관적인 측면에서 아주 유사했던 바그너리언이었다.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푸른 리지에서의 일몰 (The Blue Rigi, Sunrise)』1842, Watercolour on paper, 297 x 450 mm. Tate collection.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푸른 리지에서의 일몰 (The Blue Rigi, Sunrise)』1842, Watercolour on paper, 297 x 450 mm. Tate collection.

런던에서 이발사의 아들이라는 지극히 조촐한 배경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 네살의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한 후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교수로 발탁되며 노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사회적 존경까지 받았던 그는 내면적으로는 전근대적 인물이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어느새 근대적 업적주의의 장점을 누렸던 시대운을 잘 타고난 운 좋은 미술가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미술컬렉터가 제시한 거금의 돈을 거부하고 자신의 작품 모두와 스케치 및 기록물을 간직해 두었다가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할 수 있었다.

영국  2014년 개봉된 영화 『미스터 터너(Mr Turner)』(티모시 스폴(Timothy Spall) 주연)에서 묘사되었듯, 땅딸막하고 무뚝뚝했던 화가 터너 씨는 혁명적이고 위대한 미술을 창조했지만 사생활 면에서 조촐하다 못해 때론 인격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모까지도 지녔던 한 남자였다. 이 영화를 만든 마이크 리(Mike Leigh) 감독은 과연 화가 터너를 훌륭한 미술가로 보여주려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점을 지녔던 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주려 했을까? 이 영화의 의도는 그다지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훌륭한 미술가는 오로지 불타는 창조적 열정과 그나 남긴 훌륭한 미술작품을 통해서 역사와 관객에게 평가받을 뿐이므로.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리는 『터너의 후기 회화 – 회화를 해방시키다. (Late Turner – Painting Set Free)』 전은 2014년 9월10일부터 2015년 1월25일까지 테이트 브리튼 린버리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Images courtesy: Tate Brita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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