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아]키텍트의 興.亡.盛.衰.

THE RISE AND … STUMBLE OF A STARCHITECT

스타키첵쳐는 지난 20여 년에 걸친 승승장구 끝에 드디어 몰락을 맞고 있는 것일까? 최근 국제 건축평론계에서는 거물급 유명 수퍼스타 건축가가 전세계 건축붐과 건설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스타키텍쳐(starchitecture)’ 추세가 드디어 저물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타키텍쳐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리즘 물결을 타고 이른바 프랭크(프랭크 게리), 렘(렘 코올하스), 자하(자하 하디드) 같은 몇몇 소수의 스타키텍트들이 설계한 기상천외한 모양의 건물들이 전세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여러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하게 된 최근 건축 트렌드에 대한 찬반 논쟁은 특히 최근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지 오피니언 면의 토론실(Room for Debate) 컬럼에서 절찬리에 펼쳐지며 문화계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자하 하디드 스캔들로 인해서 수많은 유능한 건축가와 건축사무소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 스타키텍쳐 시스템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Hadid_portrait
건축가 자하 하디드 (1950-2016)

이같은 현상의 계기에 불을 지핀 결정적인 사건은 8월 25일, 미국의 건축 평론가 마틴 필러(Martin Filler)가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지에 출간될 예정이던 한 편의 건축도서 신간 서평에 담긴 내용이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법정 고소했다는 건축계 소식으로부터 점화되었다.

하디드 측은 명예 실추로 인한 명예 훼손 피해를 들어 일개 잡지사로서는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고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소했다. 이튿날인 8월 26일,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지가 8월 28일 자 이 평론글을 웹사이트에 출판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이 글을 쓴 평론가 필러가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당분간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마틴 필러가 쓴 이 화재의 서평은 “오만불손한 건축(The Insolence of Architecture)”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미 올 [2014년] 6월 5일 출판되었던 로완 모어(Rowan Moore)의 저서 『우리는 왜 짓는가: 건축 속의 권력과 욕망(Why We Build: Power and Desire in Architecture)』[이 책은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이재영 옮김/계단/2014년11월)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번역되었다.]이라는 책을 리뷰한 글이다.

하디드가 건축계 언론의 웃음거리가 된 때는 벌써 작년 11월. 2022년 카타르에서의 행사를 앞두고 있는 월드컵 축구 행사에 대비, 하디드가 발표한 알 와크라 월드컵 축구경기장 설계 디자인 안은 당초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경기장 외형이 ‘여성의 은밀한 그곳’과 닮았다며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하디드는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미국의 한 격주간지 건축 평론가를 상대로 법률 소송을 걸어 다시 한 번 그녀 개인의 직업적 명성의 사활을 걸고 있다.

스타키텍트가 주도된 건축붐은 1990년대 본격화된 글로벌리즘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큰 예산금을 써가며 국가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고 싶어하는 정치가와 정부 관료들은 아무리 수주비가 비싸도 건축계 수퍼스타를 채용하면 디자인 설계, 건설, 대외적 명성과 이미지가 자동으로 관리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축구경기장의 경우, 총 200천 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요되기로 책정되어 있는 프로젝트 수주 초기부터 카타르 정부는 노먼 포스터, 알베르트 슈페어 건축사무소, 그리고 자하 하디드 중 누구를 택할까를 고심하다 결국 하디드로 결정했다는 소문이다.

알 와크라 월드컵 경기장으로 채택된 이 해괴한 디자인 말고도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카타르 정부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을 괴롭힌 비판성 언론 보도는 그 뿐이 아니었다. 올초 2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dian)』지가 비판한 사항은 바로 카타르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적 처우 현실이었다. 정상적인 활동이 지극히 어려운 사막 기후의 카타르 땅 건축건설 노동장에서 열악한 작업환경과 긴 노동시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시간당 미화 80센트 가량을 받으며 휴일 없이 한 달 30일, 마감이 촉박한 경우 시간 외 노동까지 합하면 주당 60시간을 꼬박 땡볕과 먼지 속에서 일한다고 보고되어 있다.

여기에 태부족한 주거시설과 무심한 의료 처우까지 더하여 작업중 사망하는 해외 노동자들의 수는 2011년~2013년 사이 공식 통계치로 약 1천 명에 이른다고 하며 이 경기장 시공이 본격화될 2015년 이후부터는 그 수가 더 증가할 것이라 한다. 알 와크라 축구경기장 설계안 언론회담에서 카타르의 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하디드는 “나는 노동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부가 해결할 일이다. 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만 일축했다.

로완 모어(Rowan Moore) 의 시간 건축비평서 『우리는 왜 짓는가: 건축 속의 권력과 욕망 (Why We Build: Power and Desire in Architecture)』의 표지. 2014년 6월 출간.
로완 모어(Rowan Moore) 의 시간 건축비평서 『우리는 왜 짓는가: 건축 속의 권력과 욕망 (Why We Build: Power and Desire in Architecture)』의 표지. 2014년 6월 출간.

필자 필러는 로완 모어[현 영국 『옵저버(The Observer)』지 건축 평론가; 『옵저버(The Observer)』는 일간 『가디언』 의 자매지로 매주 일요일 발행 됨]의 『우리는 왜 짓는가: 건축 속의 권력과 욕망』 이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권력과 욕망의 심볼로서의 건축을 논하면서 다시 한 번 특히 글로벌리즘 세태를 타고 승승장구하는 현대 유명 건축가들은 이렇다할 만한 직업윤리적 건축 실무 가이드라인이 없는 골육상쟁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거창한 건축 프로젝트가 실제 건물로 실현되기까지 관여되는 과정이나 부조리는 백안시하는 무자비한 현실을 지적한다.

이 점은 바로 이 책의 골자이자 건축 비평가라면 능히 지적할 수 있는 쟁점이지만, 2010년 『타임』 지 선정 100대 가장 파워있는 인물로 선정된 스타 건축가이자 2012년에는 영국 여왕이 수여한 여자 기사 작위도 수여받은 자하 하디드는 어쩌면 이미 스스로를 그 어떤 평론가의 비판으로부터도 면제받을 수 있는 지위에 이르렀다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지와 평론가 마틴 필러의 즉각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자하 하디드는 이번 명예 훼손 고소건을 취하 하지 않고 뉴욕 연방 법원으로 가져가 소송을 재개할 것이라는게 건축계 언론의 짐작이다. 이번 하디드의 소송건은 2009년 폰치 사기 스캔들로 감옥생활중인 전 증권중개인 버나드 메이도프를 변호했던 뉴욕 변호사 오렌 와르샤브스키가 맡고 있다. 하지만, 건축 비평가 제임스 러셀의 논평처럼, 하디드는 이번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는 것으로써 자칫 법률 소송에서는 이길 지언정 건축가로서의 명성은 영원히 실추시키는 역효과를 낳지는 않을까. 건축이 권력과 부를 과시하려는 자의 이미지 관리 수단이 된 오늘, 하디드가 이 소송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이런 요란스런 스캔들의 주인공에게 앞으로 건축 수주를 맡기고 싶어할 클라이언트는 없을테니 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다가올 2020년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설계를 위해 그 많은 우수한 일본출신 건축가들을 외면하고 하디드 사무실에 수주한 정부에 항의하는 건축가들의 시위아라타 이소자키를 주도로해 일고 있어 건축계를 들썩이게 했다. 실제로 일본은 2015년 7월 중순, 국민을 상대로 한 의견수렴 선거와 건축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국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기로 한 2020년 동경 올림픽 경기장 건축안을 무효화했다.

또 이번 스캔들로 인해서 우리나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비롯해서 이미 하디드가 설계한 건축물이 하나 둘쯤은 있는 개발도상국의 여러 도시에서 ‘안목은 모자라지만’ ‘돈은 있어’ ‘유명한 해외 건축가를 수주해 지은’ 스타키텍트 건축물들은 자칫 미래 우스개 조롱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바로 그런 점에서 스스로를 위한 기념비를 짓기 좋아하는 자기망상적 정치가와 무사안일주의 정책관료들도 한결 정제되고 비평적인 감식안을 갖고 예술계의 스타 시스템을 가려볼 줄 아는지, 또 국민은 자기가 국가와 도시 정부에 낸 세금이 제대로 된 도시 개발과 투자에 사용되고 있는지 눈여겨 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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