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시, 도시대학

THE STUDENT IN GRONINGEN, 1614-2014

오늘날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 지방, 도시는 점점 일종의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산업과 환대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도시들은 서로 앞다투어 저마다의 특징과 장점을 내세워서 도시 마케팅을 하고 그 도시만의 ‘아이콘’을 창출하려 애쓴다. 새로운 랜드마크를 지어 올리고,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신건물이 들어서고,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새 호텔과 레스토랑 건물들이 옛 건물을 부수고 들어선다. 하지만 도시 브랜딩은 꼭 옛 것을 부숴내고 새 것을 지어넣어야 하는 파괴적 과정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 도시와 장소가 담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 같은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는 길이 더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다.

Jan Jr. Wassenbergh,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게으른 학생 (The pipe smoker (the lazy student)〉, oil on wood, 77,5 x 63 cm. Collection Groninger Museum.
Jan Wassenbergh, Jr.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게으른 학생 (The pipe smoker (the lazy student)〉, oil on wood, 77,5 x 63 cm. Collection Groninger Museum.

저마다의 차별화 전략과 브랜딩 전략은 이 도시들간의 치열한 각축전은 분명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지만 실은 이 ‘장소의 브랜딩화’ 아이디어는 그다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는 여러개의 도시국가들로 구성된 섬들의 동맹체제였고, 중세시대 대륙권 유럽은 교회와 정치군사적 유지들이 성곽을 짓고 그 속에 작은 자치구역을 지배하며 도시국가 체제의 원형을 구축했다.

본래 대학(university)이란 기독교 교회가 설립하여 수도사와 수녀들이 학문 자료를 보관하고 지식의 전수하도록 할 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자료보관소이자 교육기관이었다. 오늘날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자칭 ‘대학도시(university city)’라 부르며 도시 아이덴티티 구축과 브랜딩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금도 유럽에 있는 유서깊은 대학 도시들 중에서 중세에 설립된 프랑스의 파리 대학,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영국의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은 대표적이다. 이들 대학들은 도시 속에 일부의 제도기관으로서 출발했지만 수세기에 걸쳐 성장을 거듭하며 도시를 대표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 이른바 ‘대학도시’들 탄생시킨 명문 대학들이다.

흐로닝언은 오늘날 바로 자칭 유서깊고 혁신적인 ‘대학도시’라 브랜딩한 네덜란드 북쪽 지방 흐로닝언(Groningen) 주에 위치한 작은 고도시. 고건물과 최첨단 신건축이 공존하는 이 자그마한 고도시 곳곳에는 흩뿌려진 후춧가루 마냥 흐로닝언 대학 본교, 분교, 연구소들이 150군데에 분산되어 있다. 올해로 흐로닝언 미술관은 이 대학의 설립 400주년을 기념하여 〈흐로닝언 대학생(The student in Groningen 1614-2014)〉이라는 독특한 미술문화 전시회를 8월31일까지 연다.

Lambertus Beckeringh, Jr 〈의학대학 학생으로서의 아벨 엡포 반 볼호이스 (Abel Eppo van Bolhuis)〉, 1761년, 파스텔. Collection Groninger Museum.
Lambertus Beckeringh, Jr 〈의학대학 학생으로서의 아벨 엡포 반 볼호이스 (Abel Eppo van Bolhuis)〉, 1761년, 파스텔. Collection Groninger Museum.

1614년 흐로닝언 대학이 처음 설립된 이래, 도시 흐로닝언의 전체 인구 구성비중 일부는 늘 대학생이 차지해왔다. 과거 이 도시 전체인구중 대학생 인구가 차지한 비율은 보통 전체 도시거주인구의 4-5% 수준이었으나, 대학 교육의 문턱이 낮아지고 대학교육이 한결 보편화된 지난 50년을 거쳐오면서 대학생 인구는 기하흡수적으로 증가했다.

과거 대학이란 유명가문의 자재나 갈 수 있는 엘리트 교육기관 역할을 했지만, 누구나 노력만하면 자수성가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기 성취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학 교육은 전에 없이 대중화되었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이 도시 흐로닝언에서도 시 정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흐로닝언 대학에 등록된 학생수는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도시 인구중 25% 즉, 길거리를 다니다 마주치는 사람 넷중 한 사람은 이곳에서 살며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나날이 실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일하고 세금을 내는 어른들의 눈엔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가며 유유히 학교 캠퍼스와 강의실 사이를 오가며 한가롭게 책장이나 들춰대는 대학생이란 자칫 기생적이고 소비만 하는 비생산적 인구 집단으로 비취지곤 한다.

하지만 대학도시임을 자처하는 흐로닝언 정부측은 대학생 인구 덕분에 이 도시가 대학가 특유의 예능적 잠재력을 발산하는 탤런트 잉태소임을 자랑한다. 예컨대 에렐만(Eerelman), 바흐(Bach), 다익스트라(Dijkstra) 같은 유명한 화가나 사진가,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엡케 촌더란트(Epke Zonderland)도 이 대학 출신이다.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대학이란 고등 지식을 전수받고 전문분야별 기능을 습득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미래 사회생활과 인생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할 사교능력과 처세술을 미리 훈련하는 사회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그같은 전인적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흐로닝언 대학은 1815년부터 대학내 각종 사교단체를 설립해 강의실 바깥 대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또 그런가하면 도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예컨대 17세기 독립전쟁기, 나폴레옹 치하시절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시 나치 침략기에 대학생들은 전투와 군사 배후지원에도 기여했다.

흐로닝언 대학 설립 400주년 기념 포스터. Photo: Sacha de Boer.
흐로닝언 대학 설립 400주년 기념 포스터. Photo: Sacha de Boer.

오늘날 전세계 정치가와 정책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창조경제론과 창조적 도시론의 시점에서 보자면 대학 도시는 그 자체적으로 갖가지 서비스업을 창출하고 소비하는 지역 소비경제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예컨대 대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경청하고 연구하는 시간 외 여가를 쪼개어 아이돌봄이, 택시 운전기사, 레스토랑 웨이터로 취업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하며, 또 역으로 클럽, 바, 레스토랑, 쇼핑 등 이 대학가 젊은이 문화를 반영하는 특유의 여가(leisure) 문화와 밤거리 오락문화(Nightlife)를 주도적으로 창출하는 소비자가 되어 지역 소비경제에 기여하기도 한다.

최근 흐로닝언 시정부는 젊은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도시의 시민구성층을 활용해 활발한 축구 도시로서도 브랜딩하고 있다. 전세계 여러도시에서 실험되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가는 가운데 리쳐드 플로리다의 창조적 도시론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Images courtesy: Groninge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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