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 21세기 현대인들의 문화 예배당인가 오락단지인가?

영국 대영박물관 건물의 외관 모습. 2000년도 사진 © British Museum.

세계의 박물관

THE MUSEUMS OF THE WORLD

예술은 문명의 여정을 따라 핀 꽃길과도 같다. –링컨 스테펜스 (19세기 미국 언론인)

예술이 없다면 현실의 조야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 조지 버나드 쇼 (20세기초 아일랜드의 문학가 및 비평가)

여권과 여행자금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세계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게 된 오늘날. 특히 1990년대 후반기부터 글로벌 경제와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 21세기 만큼 해외 여행이 모든 대중에게 널리 보편화된 시대는 인류 역사상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과 여행자들은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면 의례 그곳 대표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러보는 것이 의무적인 관광 코스이자 당연스런 의례가 되었다. 어떤 관객에게 박물관과 미술관이란 앎과 지식 향상을 위한 교육적 기관일테고 또 다른 관객에게는 눈요기감과 즐거운 시간을 약속하는 오락공간일테다.

박물관이란 어떤 곳?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분야인 박물관학이 내린 정의에 따르면 박물관(museum)이란 인간 문명의 사회적 역사가 남긴 다양한 종류의 형태, 내용, 기능 등을 담은 사물들을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시를 통하여 대중에게 전시하고 의사소통하는 기관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박물관이란 그처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미술 작품이나 인공(人工) 유물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사물의 무덤 – 20세기 미국 미술가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 – 혹은 더 이상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는 부유한 사람들이 주말마다 미술품들에 경의를 바치는 현대인의 교회당 – 존 홀 스노우(John Hall Snow) – 이라고 비꼬아 지적한 평가도 있다.

인류 문화의 박물관(museum)이라는 어휘는 서양 고전적인 근원에 뿌리는 두고 있다. 본래 그리스어 원형 ‘무제이온(mouseion)’은 철학적 사유의 장소에 있던 뮤즈들의 의자를 의미했던 것이며,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아크로폴리스에 숭배를 목적으로 다신들의 상을 그려 넣은 그림들을 죽 걸어 진열한 곳은 피나코텍(Pinakothek)이라고 불리웠다. 고대 로마 시대와 이집트의 역사적 고도(古都)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무제움(Museum)은 철학적 토론의 장(場)이었다.

미술품의 소장처로서의 뮤지엄의 개념이 처음 비롯된 때는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화되었다. 피렌체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家)가 미술품을 고귀한 신분성과 권력의 과시를 위한 전통이 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 대중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이 서구 문화에 정착하기 시작한 때는 계몽주의가 꽃피기 시작한 18세기, 백과사전적 지식과 과학과 이국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급격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미술 문화 향유 문화가 일반화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요즘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에 대한 관심도 점차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전시문화에 관심 많은 관객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 여행중에도 여행지의 박물관을 방문하여 이때까지만 해도 보고 들어만 알고 있는 세계적 미술 명작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이른바 ‘박물관 관광’에도 제법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세계적인 규모와 방대한 분야의 우수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기로 그 명성이 자자한 기관들 예컨대 영국 런던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 그리고 대만 타이페이의 고궁 박물원 등은 저마다 우수한 수준의 소장품들을 방대한 량 보유하고 있어서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 감상자들에게 끊임없이 탐구와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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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대영박물관 1759년 런던에서 개관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과 이어서 1793년에 문을 연 파리 루브르(Louvre)는 18세기 북유럽에서 급증한 무역활동과 산업화의 산물이었다. 특히 대영박물관은 일찍이 개인 미술 소장자들이 국가에 기부한 우수한 미술품들을 “단지 교육 받은 소수의 교양인들의 연구와 흥미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대중을 위한 교육과 혜택의 원천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매우 공익적인 국가주도적인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만물적인 박물관(universal museum)”을 지향하는 대영박물관을 최대 화재의 소장품들은 박물관의 고대 전시실에 상설전시중인 그리스 판테온의 엘진 마블,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실마리를 제공한 로제타 석(石), 이집트 미이라와 웅장한 석조각, 이스터 아일랜드의 신비로운 현무암 인물조각, 사이프러스와 페르시아 고대 유물들은 가히 그 찬연웅장함 면에서 세계 최고급이라할 만 하다.

대영박물관의 여타 스타 전시품들의 그늘에 가려 일반인들이 자칫 놓칠 수 있는 감상거리로는 전통적인 귀족 거주구역 블룸스버리의 몬태규 하우스(Montague House)에 소장되어 있는 로버트 코튼 경(卿)과 옥스포트의 로버트 할리 백작, 한스 슬론 傾 등이 대영제국에 매각한 18-19세기 고전 회화 수집들이 백미로 꼽힌다.

파리의 루브르는 프랑스 혁명 이후 왕궁을 시민들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대중적 여론에 떠밀려 대영박물관을 뒤따라 34년 후에야 루브르 궁을 공공 기관으로 전환했다. 일찍이 루이 15세는 뤽셈뷔르 궁에서 회화전시회를 열었고, 이어서 루브르 궁 내 그랑드 갤러리(Grande Galerie)가 1793년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루브르가 지금과 같은 막대한 규모의 소장품을 갖추게 된 때는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서 대규모로 전세계 해외 유물을 프랑스로 대거 실어온 19세기 초엽에 와서였다. 지금도 루브르의 간판격 작품들로 일일 평균 3천명의 관람객들을 반기고 있는 불후의 명작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그리스 고전기 조각품 사모트라케의 나이키 상과 밀로의 비너스 상, 그리고 티치아노, 렘브란트, 루벤스, 프라고나르, 푸생, 다비드의 회화작품 등 서양 르네상스, 바로크에서 19세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품들이 이루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진귀한 가치를 발한다.

1980년대의 미테랑 대통령은 루브르가 자랑하는 과거의 영광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건축가 I.M. 페이 설계의 초현대식 유리 돔을 루브르 입구에 설치하여 신고(新古)의 조화와 발전을 표현한 프랑스의 비젼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편 대서양 건너편 미국 최대의 상업과 문화의 도시 뉴욕에서는 대중을 위한 공공 문화 기관으로서 1870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이 설립되었다. 정부의 주도로 소수의 이사회 위원들이 영구소장품과 조직 운영을 담당하는 독특한 미국식 박물관 운영체제를 단행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최대의 블록버스터(blockbuster) 박물관의 대명사이기도 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동서양 고대 문명기에서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근대기에 이르기까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영구소장품 수는 2백만여점, 입장객 수는 연간 5백만 명을 자랑한다.

요 몇 년 사이부터 오전 10시15분부터 오후 3시15분까지는 한국어 갤러리 투어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이 박물관이 자랑하는 최대의 하일라이트 소장품들을 일목요연하게 관람하는 교육적인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백과사전적인 소장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영 박물관에 못지 않은 소장품들이 그득한 이 박물관이 유난히 자랑삼고 있는 분야는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 이슬람 미술, 르네상스 고전 회화, 미국 식민지 시대 미술, 중국 고대 미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실(室) 등으로 하루 반나절에서 하루 가량의 시간을 박물관에서 할애할 수 있는 관객들에게 꼭 한 번 방문을 권할 만하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 그런가 하면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과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자국의 풍부하고 방대한 문화보호소 겸 보고의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1835년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문화재의 도굴과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서 이집트 박물관을 설립했다. 이집트 문화재는 앞서 언급한 세계적인 박물관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계 최대 규모의 이집트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곳은 두말할 것 없이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 in Cairo)이다.

국제 박물관 전문가들은 종종 소장품의 보존관리상 박물관 건물 안팎의 환경 및 전시 조건의 열악함을 지적하곤 하지만 소장품의 질과 규모 면에서만 본다면 상하 이집트 5,000년 세월과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 3,000년을 한 박물관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방대하고 풍부하다. 그래서 이틀에 걸쳐 보더라도 한 눈에 일망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박물관 관객들은 사전에 자기가 보고 싶은 유물을 미리 알아 둔 다음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5,000년전의 나르메르왕 석판조각, 아크나텐 파라오의 유물들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하일라이트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이집트 박물관에는 투탄카멘의 무덤 유물과 그 유명한 초대형 황금 마스크가 있다. 방방을 이어지며 펼쳐지는 이집트 중기왕국 시대의 실물 미이라들은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여 마치 기원전 2,000년전으로 되돌아가 파라오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한 경험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타이페이의 국립고궁박물원 고전 중국 문화재의 보고(寶庫) 대만 타이페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은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있는 고궁박물원과 한때 일체였다. 19세기의 중국 민란을 끝으로 국민당 총통 장개석의 지휘로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던 5,000년 중국의 문화유산을 대만으로 대거 옮겨와 보관전시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타이페이의 국립고궁박물원이다. 문화재 약탈이냐 아니면 1960년대 공산당 문화혁명으로부터의 문화재 파괴를 방지한 문화재 보호였는가라는 논박을 뒤로 한채 오늘날의 국립고궁박물원은 고대 중국 상나라 시대부터 청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70만점의 고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가장 값진 중국미술의 보고이다.

도기, 자기, 청동기, 옥기, 조각, 서예, 회화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진귀하고 값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남북송 시대의 채색된 풍경화, 원나라의 복고양식 풍경화, 명나라의 유유자적한 문인화, 청나라 말기의 근대적이고 개성적인 회화들은 중국 미감을 발달사를 한 눈에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중국 고미술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명화들도 고미술품 감상이 마치고 한 후 왕의(王義)가 천하제일항서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중국 정원으로서는 가장 우아한 아름다움을 실현했다고 평가되는 지선원(至善園)을 산책하며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이 박물관 방문중 놓치지 말아야 할 순서다.

* 이 글은 본래 ING 사보 2006년 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맨 위 이미지 설명: 영국 대영박물관 건물의 외관 모습. 2000년도 사진 © British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