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의 미술가’ 필립 거스통

PHILIP GUSTON – LATE WORKS at Schirn Kunsthalle Frankfurt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미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1950년이 저물기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대세를 놓지 않고 있던 가운데, 추상표현주의를 과감히 뒤로 하고 다시금 ‘구상미술(figurative painting)’로 돌아간 반항아가 있었는데 필립 거스통은 그런 ‘이단자’였다. 2013년 겨울 (11월6일-2014년 2월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른 쿤스트할레에서는 미국 화가 필립 거스통(1913-1980, 캐나다 생)이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1960년대 말부터 ‘고급 미술’에 미국 대중 시각문화를 결합해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했던 필립 거스통의 후기시절 구상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이 필립 거스통 전시는 덴마크 훔레벡 미술관으로 옮겨져 2014년 9월7일까지 “필립 거스통: 그림그리고, 담배피고, 먹고 (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이라는 제목으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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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Guston, The Line, 1978 Oil, on canvas, 180.3 x 186.1 cm. Private collection © The Estate of Philip Guston.

유럽 미술사에서 찾은 회화의 맥 본명 필립 골드스타인인 화가 거스통은 러시아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어릴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여 혼자 그림그리기를 시작했고 어머니의 격려를 받았지만 미술대학에서의 제도권 교육은 끝내 거부하고 학위를 마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깊이에는 유럽의 고장 화가들이 영감의 원천이자 본받아야할 스승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특히 피카소, 막스 베크만, 데 키리코, 고야, 렘브란트를 깊이 존경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이탈리아 여행을 했고, 20세기 초 멕시코 벽화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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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Guston, Musa McKim: I thought I would never write Anything down again, o.J. / n.d. Oil on canvas, 48.3 x 60.1 cm. Private collection © The Estate of Philip Guston.

거스통은 1950년대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로버트 마더웰이 추상표현주의 회화로 미술계를 평정하고 있던 뉴욕에 입성해 한동안 추상표현주의 계열에 동참해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의 그림에 만족을 못느끼고 방황에 빠져 드로잉에 집중했다.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구상주의 회화를 그리기 시작해 1970년대에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여전히 추상표현주의 열병에서 못 벗어나고 있던 미술평론가들의 평가는 싸늘하다 못해 적대적이었다. 그는 외롭게 그러나 꿋꿋하게 자신의 구상주의 회화를 세상을 뜰 때까지 다작했고, 그의 그림들이 지닌 잠재력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1980년도에 와서야 유럽서 불어닥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신구상주의 회화운동을 계기로 비로소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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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Guston, The Studio, 1969 Oil on canvas, 121.9 x 106.7 cm. Private collection © The Estate of Philip Guston.

“순수추상은 지겨워요!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필립 거스통은 필립 거스통의 후기 구상주의기 무려 650여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려낸 이 화가 평생 다작의 시대였다. 한 작품이 또다른 작품의 모티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새 아이디어로 파생되며 알레고리와 상징적 요소들이 가미된 거스통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로 구축되었다.

천국에서 내려온듯한 거다란 손가락 이미지는 성경 속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자명종 시계는 시간 흐름의 덧없음, 깊숙이 빨아들일수록 빨리 타들어가는 담배는 인생의 짧음, 토막난 사지나 신발 더미는 대학살과 폭력을 가리키는 심볼들이다. 분홍색 화면은 핏빛처럼 진한 카드미움 빨강색 물감에 흰물감을 섞어 폭력의 기억을 희석시켜보려는 화가의 몸부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화가는 끝내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나 맥락을 다 풀어헤쳐주지 않는다. 화가가 표현하고 싶어했던 외로움, 어린시절의 아팠던 기억이나 트라우마(아버지의 자살, 쿠클럭스클랜의 위협 등), 자기정체성 혼돈(이름을 거스통으로 개명한 점) 등이 느껴지지만 정작 실제 이야기는 신비스럽게 가려진채 그림 보는이의 마음과 심리를 때로는 불편하게 또 때로는 안절부절하게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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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 1973, Oil on canvas, 196.8 x 262.9 cm. Collection Stedelijk Museum, Amsterdam.

“내 인생은 언제나 불안함에 기반해 있었습니다. 당신한테 한 번 물어봅시다, 예술이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필립 거스통을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들의 영원한 의문거리는 ‘왜 화가가 추상을 버리고 구상 미술을 택했을까?’라는 방향전향의 동기다. 창조적인 인간의 특성이 그러하듯, 거스통은 개인적인 회의, 공포, 갈등을 예술창작에 열정적으로 임해 위력있는 작품을 창조해 내는 것을 통해서 그가 평소 앓던 불안감과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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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활영한 필립과 무사 거스통 부부 모습. © The Estate of Philip Guston.

거스통의 그림 속에 자주 나타나는 큰 머리통에 눈 하나 달린 우울한 거인 씨클롭스는 화가 자신의 분신이며, 씨클롭스는 뭔가 먹고 술 마시고 줄담배를 피어대거나 때론 가면을 쓴 모습으로 즐겨 등장한다.

창조과정의 고뇌와 노력을 상징하는 이 이미지들은 전형적인 아텔리에 풍경이자 예술가가 머무는 자리는 자나깨나 아텔리에임을 말하려는 듯하다.웬지 수수께끼 같고 모호해 보이는 그의 그림 분위기 속에는 멜랑콜리와 무거움을 승화시키고 싶어한 화가 특유의 블랙휴머가 담겨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즉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임을 잊지 말라’고 했지만, 필립 거스통의 그림 기록은 죽지 않고 예술가의 심연과 창조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는 인문학적 단서가 되어 줄 만하다. 이 전시는 2014년 독일 함부르크 팔켄베르크 컬렉션과 덴마크 훔레벡 루이지아나 근현대 미술관에서 차례로 순회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