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비범한 무명 디자인

NO NAME DESIGN – THE WUNDERKAMMER OF FRANCO CLIV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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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Name Design』 전시회. © Copyright: Franco Clivio Photo: Hans Hansen / G+A.

『무명 디자인 (No Name Design)』 전시회는 일상생활 속의 우리의 주변에서 늘상 널려있어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당연히 여겨지는 사물들에 바치는 한 편의 찬가다.

현란한 모양새나 소리높여 외치는 색채, 종잡기 어려운 숨은 컨셉이나 철학으로 무장하고 수 초 간이나마  지나치는  이의 주목을 끌어잡으려 애쓰는 디자인 상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이 전시회는 요란을 떨지도 유혹하려들지도 않지만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몰라도 조용한 미감과 기능성을 자랑하는 명품 무명 디자인을 재발견해 본다.

우리주변 속의 평범한 비범한 일상용품들을 찾아 모은 날카로운 심미안의 주인공이자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은 프랑코 클리비오 (Franco Clivio, 1942년 생, 현재 스위스 취리히 거주). “바지에 주머니가 생긴 이래 나는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골수 수집가임을 자처하는 클리비오는 일상 속의 진부하고 ‘비’예술적이라고 여겨지는 평범한 사물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밀라노 출신의 디자이너 겸 교육자다.

그에게 “발견 (to discover)하기는 곧 보고 (to see) 사고하는 것 (to think)”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그는 수많은 백화점과 철물점은 물론 중고상, 벼룩시장, 고물상 등 할 것 없이 그의 호기심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랑곳 않고 면빗으로 이 잡아 내듯 찾아다니면서 평범 속 비범함을 담은 최고 품질의 무명 디자인 용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전시회의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관람을 하다보면 마치 수많은 보배들이 널려있는 알라딘의 보물섬 동굴을 걸어다는 듯한 감흥이 느껴진다. 프랑코 클리비오가 이번 전시 『무명 디자인』 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상속의 디자인 명품들은 약 900여점. 접어다폈다 할 수 있는 휴대용 칼, 장식용품, 다목적 장비, 손잡이형 도구, 가위, 안경테, 각종 측정용 자 같은 대부분 작지만 규모있고 쓸모면에서 유용성 넘치는 일상용품들이다.

Gewerbemuseum Winterthur; No Name Design, Franco Clivio
디자인 수집가 프랑코 클리비오의 모습. Photo: Michael Lio.

그러나 보기에 “단순한 명품은 단순하지 않다.” 이 수많은 무명 디자인 제품들을 하나같이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공통사항은 언제나 제품에 담겨 있는 디자인 상의 높은 수준과 품질이다.

여기서 클리비오가 정의하는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란 가장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모양새나 형태미 보다는 탁월하게 잘 작동하는 기능성, 적합하고 고급스러운 재료 및 재질, 그리고 빈틈없고 탄탄한 제품 조립구조를 뜻한다.

프랑코 클리비오가 강조하는 일용품 디자인에 대한 5가지 스토리

일상 사물들 대다수는 조악한 모방품이다. – 인간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방한다. 하지만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 행위는 해적행위이자 도둑질이다. 열심히 일하고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 신제품을 만든 개발자는 제아무리 독창적이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해적판 제품에 밀려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유명한 피스카르스 가위 (Fiskars Scheren)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짝퉁 피스카르스 가위는 겉모양만 피스카르스일 뿐 잘 잘리지도 않고 손잡이도 엉망인채로 대량생산돼 전세계로 팔려나갔다. 우수한 신제품 개발자나 업체는 미연에 형태나 기능의 저작권과 특허 관리를 해서 저질 모방품으로 대량생산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Gewerbemuseum Winterthur; No Name Design
핀란스 산 피스카르스 가위. Photo: Michael Lio.

안경 – 고대 로마의 문필가 가이우스 플리니우스(서기 23-79년 활동)에 따르면 일찍이 네로 황제는 햇볕에 나가기 전 녹색 에메럴드를 눈에 대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했다고 한다. 물을 채운 유리구를 사물에 대면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는 원리를 응용해 중세 유럽인들은 평면볼록(平凸)렌즈를 발명했는데, 14세기 살았던 후고 드 프로방스 추기경은 이렇게 만들어진 안경을 꼈다.

그로부터 500여넌 후, 에드워드 스칼렛(Edward Scarlett)이라는 영국의 안경사가 안경대 코받침을 개발해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착용하기 편해진 안경테는 시력교정을 도와주는 역할 말고도 우리의 얼굴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돕는 패션 악세서리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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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잡고 사용하는 각종 손장비들 Photo: Michael Lio.

인체공학 – 인간과 장비 사이를 연결주는 매개는 다름아닌 인간의 손이다. 헌데 사람마다 손의 크기가 각양각색이다 보니 손장비는 모든 사람의 손에 잘 맞아 사용에 무리가 없어야 하는게 디자인 제1원칙이다.

그런가하면 인간은 경험과 반복을 통해서 매우 적응을 잘 할 줄 아는 촉각기억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생산되고 있는 손장비 디자인에는 사용자들의 다양한 손 크기와 촉각기억력을 고려해 보기에도 좋으면서도 사용감이 우수하도록 인체공학이론을 널리 응용하고 있다. 이렇게 발달된 인체공학론은 최근들어 가구, 필기구, 의료기구 디자인에도 활용되고 있다.

세상만사를 연결하는 전선과 케이블 – 오늘날 전선 만큼 일상 주변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사물이 또 있을까? 금속 전선에서 신기술 섬유유리와 광합성 소재 전선까지, 나노입자 크기의 미세 케이블에서 지름 수백미터의 초두께 케이블까지 참으로 크나큰 형태적∙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온 케이블은 본래 기사 갑옷을 짜거나 꿰메고 쥐덫 같은 작은 일상용품을 만드는데 사용되던 부품의 일종이었다 한다.

Gewerbemuseum Winterthur; No Name Design
전선과 케이블을 응용해 만들어진 각종 일상용품들. Photo: Michael Lio.

오늘날 가정에서 DIY를 실천하는 현대 일반인들 사이에서 조차도 자전거를 수선하고, 정원을 가꾸고, 주방기구를 만들고, 크고작은 사물들을 서로 엮고 묶어 만들고 고치는데 갖가지 케이블과 철선은 필수품이 되었다. 최근 전선과 케이블은 특히 철도, 교량, 도로 건설 등에 필요한 토목용도와 전기 및 통신 기술 발달에 유독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변함없는 최고의 재료는 자연에서 온다 – 목재, 대나무, 가죽 등 예나지금이나 최고로 꼽히는 재료는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예컨대 목재는 유연하지만 견고하고 에너지를 제공해 주며 물에 뜨고 비교적 빨리 자란다. 교량 건설에서부터 악기에 이르기까지 목재의 용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폭넓다. 재료의 유연성과 융통성 측면에서 대나무는 그 어떤 목재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우수해서 특히 과학자와 공학자 치고 대나무를 하이테크 해법으로 고려해 보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무명 디자인』 전은 5월5일 부터 10월6까지 스위스 빈터투르 산업 박물관(Gewerbemuseum Winterthur)에서 계속된다. All Photos courtesy of Gewerbemuseum Winterth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