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정물화 정체성 선언

플랑드르 정물화 감상하기

REVIEW FLEMISH STILL LIFES from the Kunsthistorische MuseumWien, from March 18 till July 21, 2002.

이제까지 미술사 학계와 미술 전시회 등은 “네덜란드의 정물화”라는 주제로 통칭해 온 연유로 해서, 정물화(still-life)라는 회화 장르의 본령은 네덜란드 미술이라는 광범위한 지리적 범주 속에 두리뭉실 포함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빈에서는 그처럼 널리 받아들여져 온 전제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어 미술계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플랑드르 정물화 전시가 열리고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 하라흐 궁 입구. 사진: 박진아.

독일출신 미술사학자인 클라우스 에르츠(Klaus Erts)가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과의 협력으로 수년간의 학술연구 끝에 기획한 이 전시에서는 플랑드르 지방의 정물화는 기존 네덜란드 정물화로 알려져 있는 회화 장르와서는 차별화된 회화 쟝르라고 하는 대명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같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전세계 유명 박물관들이 소장중인 플랑드르 정물화 120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규명보고 있는 이 전시는 그런 점에서 그동안 뒷켠에 물러서 있던 플랑드르 정물화의 정체성 선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플랑드르 정물화의 기원을 찾아서 정물화의 역사를 거슬러 보게 되면, 영문 “정물(still life)”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네덜란드어 슈틸레벤(Stilleven)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시 화가들이 사물을 놓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 방식을 묘사한 일종의 인공 조어인데, 스틸(still)이란 움직이지 않는 혹은 가만히 놓여진 대상을 가리키며, 라이프(life)란 사물의 “살아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화가가 직접 바라보면서 대상을 그림으로 묘사한다“는 의미에서의 대상을 지칭한다. 문자 그대로 스틸 라이프란 정지해 있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생명없는 물체가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 정물화가 스틸 ‘라이프’라고 불리우는 이유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많은 미술 감상인들은 이제 그 어원의 기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실게다.

네덜란드 정물화의 기원은 우리나라 조선 후기,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고 상인계층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기리며 방안에 걸어두었던 화조도나 책거리 민화의 탄생 배경과도 견줘 볼 만하다. 이미 학계에서 널리 알려져 온 것과 같이 정물화라는 회화 장르는 16세기 후반기 네덜란드 (대략 오늘날을 홀란드와 벨지움 영토를 합친 규모의 옛 네덜란드를 의미)에서 처음 탄생했다. 국제 해상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네덜란드의 여러 무역 항구 도시들 – 예를 들어 암스텔담, 하알렘, 라이덴 등-에 살고 있던 귀족들과 부유한 브르조아들을 사이에서 정물화가 크게 유행했다.

프란스 슈나이더스(Frans Snyders), 『여 조리사(Köchin)』. 1610년경 작. 쾰른 발라프-리햐르츠 미술관 소장(Wallraf-Richartz Museum, Koeln).

주로 활기찬 거리 시장 경치나 음식물이나 집기들이 널린 실내 주방 광경을 성서의 장면이나 한두명의 인물들 (주로 하녀나 시종의 모습)과 곁들여 배치하여 구성하는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귀족 및 부르조아 미술애호가들이 당시 특히 선호하던 그림 대상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인본주의를 반영하듯,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을 세밀하게 그린 수집용 그림 및 스케치, 성서나 전설을 인용한 알레고리와 상징이 담긴 정물 그림이 큰 인기를 끌었다.

미술사에서는 정물화가 회화 장르 내에서 독보적인 하위 장르로 지위를 구축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165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덜란드 전역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은 꽃, 과일, 만찬이 놓인 식탁, 아침 식사 식탁을 주로 그렸는데 이때까지만해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물화’라는 명칭이 채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17세기말경에 이르자, 네덜란드 정물화는 정치적 종교적 지형변화를 맞는 가운데 분열된 네덜란드는 제각기 다른 정물화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네덜란드 왕조 대 스페인 제국의 침략으로 인한 갈등이, 종교적으로는 칼빈주의 개신교 대 이를 억누르려는 구 카톨릭 세력이 가세하여 네덜란드는 이 시점을 기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로 개종한 네덜란드 영토와 카톨릭교를 유지한 벨지움 영토로 나뉘었다.

정치적 종교적 체제가 서로 다른 남북 네덜란드는 따라서 미술 후원 체제와 수집가 체제가 서로 상이한 조건에 처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플랑드르 지방의 정물화는 다름아닌 과거 남부 네덜란드 즉, 오늘날의 벨지움을 포함하고 있는 영토를 지칭하는 셈이며 플랑드르와 브라방 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스페인이 통치한 카톨릭 전통의 남부 네덜란드, 다시말해 플랑드르 지방에서 정물화는 현재 벨지움의 역사 도시 안트베르프(Antwerp)를 경제와 미술의 중심지으로 삼아 이른바 ‘플랑드르 바로크 회화 시대”를 전개시켰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크의 거장 화가 피터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도판]는 여러 정물화 장르들 가운데에서도 동물이나 사냥감을 다룬 정물과 풍성하게 진열된 과일 정물을 잘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메두사의 머리(Das Haupt der Medusa)』 1717-18년경 작. 빈 미술사 박물관 회화 갤러리 소장(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 Gemäldegalerie)

그는 성서와 고대 신화의 내용을 복잡한 구도와 고도로 장식적인 배치로 구성하는데 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독 장황스런 사치를 잘 표현해서 그 방면으로 플랑드르 지방 정물화의 전형을 구현한 장본인으로도 꼽힌다. 여기에 덧붙여, 이번 전시에는 플랑드르 정물화의 또다른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꽃다발 장식물이나 화환 그림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서 카톨릭 전통이 꽃정물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볼 수도 있어 흥미롭다.

관객들이 정물화의 정의와 기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전시의 도입 부분은 우선 정물화 일반에 포함되는 여러 종류의 정물화 작품들을 맛보기 식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부터 출발한다. 정물화가 독자적인 미술 장르로 기반을 잡기까지 정물은 풍경화, 초상화, 풍속화, 역사화 등과 같은 선배 회화 장르들의 일부로 항상 포함되어 왔었음을 상기시켜 주고, 그 시점을 플랑드르식 정물화를 네덜란드식 정물화와 구분하는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플랑드르 정물화의 제1조건은 눈속임 효과 기법((일명 ‘트롬프뢰이유(trompe l’oeil)’)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눈속임 효과를 노린 정물화는 언뜻 그림을 대하는 관객이 실물인지 그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실감나게 재현하는 기술이다. 그런 효과를 거두는 가장 우선적인 수법은 사물을 실물 크기 그대로 그리는 것. 그리고 여기에 사물뒤의 배경을 대체로 비워둔 채 그 자리를 세밀하게 계산한 그림자로 채워 넣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사실, 정물화의 기원은 고대 그리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폼페이 벽화와 로마 시대 모자이크에서 종종 발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게 되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물화의 형식과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의 정물화 그림들이 주로 노린 효과는 2차원 그림을 3차원 실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눈속임적 환영 효과 (illusionism)여서, 그를 통해 미술사학자들은 3차원 환영 효과를 미술이 고대 서양 화가들의 궁극적 미술 추구 목적이었음을 추정해 온 근거가 되어 왔다. 고대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그의 동시대인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 (기원전 425년경에 활동한 걸로 알려짐)로 일컬어지던 제우시스 (Zeuxis)의 놀라운 그림 실력을 증명하는 일화를 전한 바 있다.

우리나라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 승려 화가 솔거가 경주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 그림이 너무도 훌륭해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떠올리듯, 제우시스가 그린 포도 그림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새들이 그림으로 날아와 포도를 쪼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한편 당시 제우시스의 강력한 경쟁 화가였던 파라시오스 (Parrhasios)가 화폭 속에 그려넣은 아마천 커튼이 너무도 실감나게 묘사된 나머니 이 그림을 처음 본 제우시스가 속의 그림을 보게 커튼을 걷어보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제우시스는 일개 새의 눈을 속일 수 있었지만 파라시오스의 기량은 인간인 동료 화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정도였음을 증명해 보여 제우시스가 승복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내용이다.

얀 다비즈 데 헤엠(Jan Davidsz de Heem), 『과일이 있는 정물(Fruechtestillleben)』, 1648년 작. 바두즈 리히텐슈타인 군주 컬렉션 소장(Sammlungen des Fuersten von Liechtenstein, Vaduz)

그런 고대 일화들을 살펴보건대, 서양 미술에서 회화란 자연을 능수능란하게 모방 (imitation)할 줄 아는 기술과 눈속임 효과를 자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으며, 이후 정물화의 역사에서도 그 원칙은 지속적으로 유효하게 활용되어 왔다. 정물화의 전개사를 살펴보다 보면, 특히 17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태어나 안트베르프를 배경으로 활동한 것으로 짐작되는 코르넬리스 노르베르투스 가이즈브레히츠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가 단연 선두적인 대표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독일과 프레데릭 2세와 크리스티안 5세 치하의 덴마크에서 활동하다가 스웨덴으로 옮겨 화가생활을 한 가이즈브레히츠는 당시 귀족들과 부유한 브르조아들이 혈안이 되어 수집하던 호사품이나 진귀품들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내는 정물화 분야에 정통한 인물이다.

인생의 헛됨과 공허의 알레고리 – 바니타스
바로크 정물화는 흔히 유한한 인생의 무위와 덧없음을 즐겨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중세시대부터 성서를 인용, 문화 전반에서 되풀이되어 주제화되어 온 바로 이 바니타스(vanitas)의 개념은 17세기에 이르러 정물화가 즐겨 활용한 독자적 하위 범주로 발전했다. 생의 무상함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가들은 르네상스, 중세, 심지어는 고대 문화에서 도출한 정해진 상징 체계를 반복해서 그림으로 표현했다.

죽음을 상징화한 해골을 비롯해서 불꺼진 촛대, 파이프 담배대, 꽃다발, 곤충, 악기, 책 같은 사물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 부, 명성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물 대상이다. 정물이 놓인 어둡고 음울한 배경 처리와 세심히 의도된 구도 역시 바니타스를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바니타스를 주제로 삼은 정물화의 발생지는 북 네덜란드이지만, 얀 디비즈 데 헤엠 (Jan Davidsz de Heem)[도판]과 피터 뵐 (Pieter Boel)[도판] 같은 남 네덜란드 출신 정물화가들에 의해 플랑드르 정물화는 꽃다발와 과일이 풍성하게 배치된 특유의 호화로운 정물화의 전형을 개척했다.

요아힘 보이켈레르(Joachim Beuckelaer, circa 1533–1575) 『에마우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는 제자들이 뒷 배경에 있는 부엌 풍경(Kitchen Scene with Meeting on the road to Emmaus)』 circa 1560, oil on panel, 109.5 × 169 cm (43.1 × 66.5 in). Royal Picture Gallery Mauritshuis.

정물화의 묘사 대상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두 말 할 것없이 먹거리일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장과 주방을 그린 정물화는 참으로 여러 다른 독립된 정물화 장르를 파생시키는데 기여했다. 대형 거리 시장과 주방 조리대에 널린 각종 먹거리와 고기와 생선 그림은 돈 많은 부르조아 계층 가정에서 특히 선호한 그림이다. 본래는 북구 네덜란드에서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18세기까지 변형발전을 거쳤다.

피터 에릇센과 요아힘 보이켈레르가 시장과 주방 장면 정물화 장르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는데, 이들의 그림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정물화라기 보다는 풍속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캔버스 전방에는 시장 진열대, 주방 탁자나 식사용 테이블에 산처럼 쌓인 신선한 먹거리 재료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이나 뒷배경에는 시장 상인이나 하녀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때문이다[도판].

안트베르프 출신이며 피터 폴 루벤스의 영향을 받은 이 분야 거장 프란스 슈나이더스 (Frans Snyders)[도판]는 선배들의 업적을 한층 끌어 올려서 빵과자 굽는 장면, 극도의 호사스런 구성의 과일채소 정물화를 그려서 이 시장과 주방 정물화에 새로운 경지를 이룩했다고 평가된다. 추가로, 동물 및 사냥감 정물 그림들도 슈나이더스가 전문적으로 능란하게 다루었던 것을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프란스 슈나이더스(Frans Snyders), 『생선 시장(Ein Fischmarkt)』 1620-30년경 작. 빈 미술사 박물관 회화 갤러리 소장(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 Gemaeldegalerie).

식탁에 날 것과 익힌 산해진미가 즐비하게 차려진 모습은 담은 먹거리 정물화도 플랑드르 지방 정물화의 표준적 전형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부유계층이 풍요로운 생활과 식도락가적 취향을 과시하려고 주문해 걸었던 그같은 그림 속에는 껍질에 담긴 굴, 말린 과일, 디저트, 버터, 치즈, 아티초크, 밤 같이 그 지방에서 생산된 토산품 이외에도 감귤이나 레몬 같은 이국적인 열대 과일과 열매들이 자주 발견되며 그 옆에는 한껏 광택을 내뿜는 퓨터 물잔과 유리로 된 와인잔이 병치되곤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먹거리 정물화로는 아침 식사 식탁을 묘사한 정물 그림일 것이다. 아침 식탁이 독자적인 정물화의 하나로 정착하기 전까지 이 주제는 주로 성서적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안을 장식하곤 했는데, 지나친 식탐과 감각적 쾌락추구는 파멸을 초래한다는 종교적 금기를 상징해 절제의식을 명심시키는 기능을 했다.

17세기 플랑드르 미술은 주로 종교적 암시나 인간의 성품을 암시하기 위한 상징으로나 등장하던 꽃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미술의 묘사 대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흩어 진열하거나 부케로 구성한 꽃 그림에는 꽃병, 그릇, 바구니 등 같은 일용품 말고도 나비나 벌 등 곤충을 곁들여 그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남 네덜란드 지방에서의 반 종교개혁 운동의 덕택으로 꽃다발 장식이나 화환 장식 형식을 띤 꽃 그림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로 활용되곤 했다. 꽃 정물에 유난히 능해 일명 ‘꽃-브뤼겔’로도 일컬어졌던 화가 얀 브뤼겔(형)과 피터 폴 루벤스는 이 장르를 창시한 장본이다.

피터 뵐(Pieter Boel), 『지구본과 앵무새가 있는 정물(Stillleben mit Globus und Kakadu)』 1658년경 작. 빈 미술 아카데미 회화 갤러리 소장(Gemäldegalerie der 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Wien).

화려하고 사치스런 외양과 그 뒤에 숨은 일시적 순간성과 인생무상(vanitas)라는 근원적 모순은바로크와 매너리즘 시대 미학의 본질로 여겨져 왔다. 16-17세기 남부 네덜란드에서 전개된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는 과일, 동물 사냥감, 산해진미에서 꽃과 곤충에 이르는 자연 세계로부터 정교한 장인정신이 엿보이는 직물, 유리, 금속과 같은 인공 사물들을 고도의 필력과 기법으로 화폭에 모방해 내어 당시 회화 미학의 독특한 철학과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르임을 보여준 이 전시에서 더 많은 미술감상자들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기 기대해 본다.

플랑드스 정물화의 정체성 선언 –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의 <플랑드르 정물화> 展 | 전시 장소 : 빈 미술사 박물관 분관 전시장 하라흐 궁(Palais Harrach) | 전시 기간 : 2002년 3월 18일부터 7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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