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본 1970-80년대 뉴욕 다운타운 문화

FROM ANARCHY TO AFFLUENCE

New York –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1970년대 무렵 미국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 도시 뉴욕에서는 1960년대말에 불어 닥친 반문화 정치 활동을 끝으로 전에 없이 새로운 전자 매체 혁명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접어들자 미국은 국제 유류 파동과 그로 인한 경제 불황 중에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통령을 선출하여 보수주의적인 분위기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공중파 케이블 텔레비젼을 통해서 MTV 방송국에서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같은 수퍼스타 연예인들이 미국 내는 물론 전세계의 팝음악 팬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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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사(Morsa)가 디자인한 로프트 침대. Photo ⓒ Dan Wynn, lent by Joan Kron.

이 즈음 뉴욕의 미술계도 전에 없이 새로운 이른바 ‘다운타운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뉴욕의 금싸라기 땅이자 예술 구역으로 자리잡은 이스트빌리지 (EastVillage)는 바로 그 뉴욕 다운타운 문화의 발상지이자 예술인과 보헤미언들의 창조적 실험실이어 왔다.

맨하탄의 로뤄 이스트 사이드 (Lower East Side) 구역 내 옛 물류 창고가 모여있던 이스트빌리지는 한때 집없는 거리부랑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범죄가 빈번하는 빈민가로서 높은 악명에 시달렸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아주 싼 임대료를 찾아 살러온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예술인들이 이 옛 공업지대를 주거용 아파트로 삼기 시작하자 소호 구역에서는 일명 ‘로프트 임대법 (Loft Law)’이라는 부동산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저가 임대료를 모색하던 예술인들은 물론 미술 화랑업자들, 대중 음악가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이 동네를 급속도로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이를 간파한 부동산업자들이 198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이스트빌리지를 예술인의 구역으로 홍보하면서 지가 상승을 부추기기도 했다.

당시 이스트빌리지에 모여든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은 미술, 음악, 문학, 무대 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1970-80년대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때마침 유럽에서는 기존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편향적인 모더니즘에 반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 강하게 번지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팝 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은 이곳 이스트빌리지에서 거주하고 작업하면서 주변 미술인들과 어울렸다. 키스 헤링과 바스키아의 낙서화는 이스트빌리지 화랑계 인사들을 통해서 드디어 주류미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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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필립 헤이트(Philip Haight)가 메르체데스 벤츠 자동차용 좌석을 재활용하여 제작한 라운지 체어. Photo ⓒ Peter M. Fine, lent by Joan Kron.

얼마전 타개한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이스트빌리지를 배경으로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펑크록과 뉴욕 빈민가의 흑인과 히스패닉 젊은이들의 애환이 담긴 힙합 음악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마돈나, 블론디, 토킹헤즈, 비스티 보이스 같은 팝음악가들은 이스트빌리지 클럽을 드나들면서 스타의 길을 다졌고, 영화감독 짐 자무시도 이곳에서 영화만들기를 시작했다. 비트 제네레이션이나 클럽57에 가면 윌리엄 버로우스 같은 문학가들이 신산문 낭독회를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운타운 북 (The Downtown Book)』 책의 저자인 마빈 테일러 (Marvin Taylor)에 따르면 “다운타운의 예술인들은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로 고급 미술과 대중 문화 사이의 간극을 위반하고 고급 아방가르드 미술을 엘리트의 독점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면서 당시 1970-80년대의 정치사회적 쟁점을 고발하려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들은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다장르적인 활동을 벌인 만능 예술인들인 경우가 많다.

1970-80년대 미국의 미술과 문화의 얼굴을 뒤바꿔 놓은 다운타운 예술인들의 그같은 실험적이고 다장르적인 활동은 인테리어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뉴욕 다운타운 특유의 도회적 배경과 웨어하우스 건물이 주를 이루는 건축 환경 속에서 당시를 휩쓸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힘입어서 예술인들은 동성애 문화화와 하위문화의 전복적 정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스트빌리지 예술계가 1980년대에 유난히 많은 동료들을 에이즈로 잃은 것도 그로 인한 결과였다. 또 그들은 소비 문화를 부추기는 당시의 미국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서 창조한 ‘쓰레기 문화 (trash culture)’ 를 통해서 전통적인 고급 취향과 저급한 대중 취향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데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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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제이 스펙터(Jay Spectre)는 이 수세대 디자인을 한 항공사 클라이언트에게 판매하길 원했으나 실패한 후 아메리컨 메탈 레스토랑 재료사를 통해서 생산했다. Photo ⓒ Peter M. Fine, lent by Joan Kron.

제아무리 체제 전복적인 예술운동도 주류로 영입되면 소비시장 경제의 일부분이 되는 법. 오늘날 되돌이켜 보면 1970-80년대의 이스트빌리지 예술인들의 아방가드르적 활동은 ‘보기 흉한 키치’와 ‘경솔한 난동’이 합쳐진 ‘의심스러운 취향’만을 남겼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그 활동 뒤에 남은 창조적 산물들은 21세기의 대중 시각 문화가 있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막샵 (The Mock Shop) 인테리어 및 여가용품점에서는 지금도 소비주의와 고가품을 비웃으며 저가로 생산된 당시 이스트빌리지풍 인테리어 디자인의 컨셉과 스타일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주는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이스트빌리지 디자인에 대한 광범위하고 흥미로운 전시회인 『무정부에서 풍요로: 1974-1984년까지의 뉴욕 디자인 (Anarchy to Affluence: Design in New York, 1974-1984)』 전은 현재 뉴욕 파슨스 뉴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2006년] 오는 4월 1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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