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이전인가 희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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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갤러리 동쪽벽 광경. 세잔느의 『누드가 있는 풍경 (Les grandes baigneuses)』 캔버스에 유채 132.4 x 219.1 cm과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화가의 가족 (La famille de l’artiste)』 캔버스에 유채 1896년 작.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이전에 즈음하여

BARNES COLLECTION IN PHILADELPHIA

매년 여는 국제 예술 페스티벌 말고도 미국의 역사 도시 필라델피아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유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반스 재단 미술 컬렉션이다. 반스 재단은 故 앨버트 반스 박사가 평생 모은 주옥같은 미술품 컬렉션의 보금자리다. 현재 감정 시세 250억 달러 (우리돈 약 27조원)라는 막대한 가치의 미술품 총 2천5백여점 (그 중 회화의 비중은 800여점)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7월3일 반스 컬렉션은 문을 잠시 닫았다. 반스 재단의 허술한 재정관리와 근 10년에 걸친 법률 공방 끝에 반스 컬렉션은 지난 85년 넘는 세월 보금자리였던 메리온을 떠나 필라델피아 도심 서부 벤자민 플랭클린 파크웨이 거리에 지어질 새 건물로 이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7월초 반스 미술 재단이 내년 이전을 이유로 휴관을 선언하고 소장품 이전에 착수하자마자 구미권 미술계와 언론은 잔뜩 술렁댔다. 그토록 값비하고 그많은 수량의 국보급 미술품을 한꺼번에 옯기는 대이동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 적 없는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어느 작품을 몇 점 어느 트럭에 어떻게 무사히 운반하는가는 숨가쁜 헐리우드 첩보영화를 방불케할 만큼 극도로 비밀스럽고 조심스럽다. 미술품은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보다 운반 도중에 도난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디 그뿐인가. 혹 제아무리 도난범죄로부터 안전하다 할지언정 모름지기 미술품이란 매번 이동할 때마다 크고작게 내외적 손상을 받기 때문에 복원전문가들은 가급적 미술품의 이동을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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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르죠 데 키리코 (Giogio de Chirico) 『앨버트 반스 초상 (Portrait of Albert C. Barnes)』 캔버스에 유채 1926년 작품.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반스 재단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기 까지는  2009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도난당한 미술 (The Art of the Steal)』의 공이  컸다. 이 영화는 故 앨버트 반스 박사의 사유 미술 컬렉션의 설립의도를 묵살한채 이 컬렉션을 갈취하려 혈안이 된 필라델피아 시 정치가들과 주지급 재단 위원들의 탐욕과 음모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문화유산이 막강한 자산이 된 요즘, 반스 컬렉션의 소장품은 필라델피아의 문화적인 위신을 한껏 높여줄 뿐만 아니라 시정부가 추진하는 문화관광 산업 및 파생 수입원에 더없이 요긴한 밑천이 되어 줄것이라는 속셈이 깔려있다.

30대 말엽 미술 컬렉터로 변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스 박사의 본업은 화학자였다. 본래 약사가 될 생각으로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화학을 수학한 후, 1899년에 아가이롤 (Argyrol)이라는 기적의 여성용 청결제를 개발했다. 항생제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아가이롤은 임질로 인한 여성병과 신생아 실명을 예방해준 신약으로 각광받으며 큰 매출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반스 박사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마침 때는 유럽에서 다양한 미술 사조와 창조 운동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던 20세기 모더니즘 시대. 반스 박사는 직접 프랑스로 여행가 머물면서 당대에 내노라하는 아트 딜러와 거장 미술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작업실을 둘러본 후 손수 고른 작품만을 사들였다. 예컨대 피카소와 마티스는 딜러 거트루드 스타인을 통해서, 모딜리아니와 데 키리코는 폴 기욤을 통해서 대거 소장하게 된 화가들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당시 반스 박사는 일찍이 미래 거장을 꿰뚫어 볼 줄 알았던 탁월한 감식안을 갖춘 아방가르드 미술 컬렉터였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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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메인 갤러리 서쪽벽 광경. 위의 작품은 죠르쥬 쇠라 (Georges Seurat)의 『모델들(Poseuses)』, 아래 작품은 폴 세잔느 (Paul Cézanne)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반스 박사가 유럽을 여행하며 모은 미술작품들은 대체로 파리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계열 작품들이 백미로 꼽힌다. 르노아르의 그림 180여점, 세잔느 59점, 마티스 46점, 피카소 21점, 드가 7점, 고흐 7점을 포함하여 일부 전문가들은 반스의 소장품을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특히 세잔느가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5개 연작중에서도 반스 재단 소장품은 작품 규모가 제일 크고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쉽다” –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 (Eric Hoffer)가 이런 말을 했다. 반스 박사는 평소 성격이 퉁명스롭고 당시 필라델피아 교외에 살던 부유한 지주급 이웃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본직 약제사에서 미술 컬렉터로 변신한 앨버트 반스 박사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가 되어서도 자신의 소박한 출신을 한번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주옥같은 자신의 미술소장품을 흠모하던 콧대높은 미술계 인사들이나 사교계 방문객들의 관람요청에는 까탈스럽게 굴었지만 소시민 감상객과 학생들에게는 흔쾌히 전시실과 도서관 현관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한다.

반스 컬렉션 재단의 설립자 앨버트 반스 (Albert C. Barnes) 박사는 필라델피아 도심을 피해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교외 마을 메리온 (Merion)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가 폴 크레 (Paul Cret)에게 설계를 맡겨서 세기전환기 아르데코풍으로 디자인한 개인 저택을 1925년에 완공하여 소장품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반스 재단은 미술을 제정신으로 감상할 수 있는 미국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마티스는 말한 적이 있는데, 고즈넉한 교외에 펼쳐진 원예정원, 유럽풍 빌라 건축, 회화와 조각을 빼곡하게 나란히 배치시킨 전시 배열법은 반스 컬렉션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친밀하고 독특한 감상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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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우편배달부 (죠셉 에티엔느-룰랭) (The Postman (Joseph Etienne-Roulin))』, 1889년 작, 캔버스에 유채, 65.7 x 55.2 cm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미술작품의 진정한 소유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문화는 소수 특권층의 사유재산이라기 보다는 만인이 공유하는 공공적 유산이라는 개념이 널리 일반화되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국립으로 운영되는 박물관들이 무료입장제로 관객에 공개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생전 반스 박사가 자신의 미술 컬렉션이 길이 비영리 교육 재단으로 활용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힌 법적 유서를 남긴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단 창설자의 사유재산의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시정부가 재정적 부실을 핑계삼아 반스 컬렉션을 자의로 해체 이전한 후 관광명소로 만들기로 한 이 결정을 과연 단순한 문화재 보금자리 이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개인 문화유산와 운영철학에 대한 침해로 볼 것인가?

그래서 반스 컬렉션의 이주에 저항하는 반대 세력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반스 재단에서 미술사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과 회원들에 따르면, 재단의 도심 이전 결정이 반스의 소장품이 지닌 막대한 가치를 알아챈 필라델피아 시 정부와 지주들이 주도돼 반스 재단을 분산시키고 갈취하려는 본 의도를 은근슬쩍 감추기 위한 마케팅 조작에 다름아니라고 역설한다.

반스 컬렉션 소장품들이 새 반스 컬렉션 미술관 (Tod Williams Billie Tsien Architects 설계)으로 옮겨져 전시 채비를 갖추고 2012년 봄에 개장하면 반스 재단은 더 이상 교육의 위한 사유 문화재단이 아니라 유료입장제 시정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현재 공시가 1억5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원 반스 재단 건물은 다른 용도로 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약을 안은채 알보레툼 수목원 안에 지금도 호젓이 서있다. 우수한 문화재의 가치는 현시가로 매길 것이 아니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라는 인류 역사적 진실을 다시금 환기해 볼 것을 재촉하는 듯하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 (CHRONOS Korea) 지 2011년 9/10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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