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통해 본 결혼의 모습 어떻게 변했나

Rembrandt van Rijn 『The Jewish Bride』, 1667. Rijksmuseum Amsterdam
Rembrandt van Rijn 『The Jewish Bride』, 1667. Rijksmuseum Amsterdam

WEDDINGS THROUGH THE AGES

19세기 미국의 정치가, 과학자, 저자였던 벤자민 플랭클린 (Benjamin Franklin)에 따르면 모름지기 „결혼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상태“라고 했다. 남남이 만나 평생 동안 함께 할 것을 맹세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계약 관계이기도 한 결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경험하기도 하는 결혼은 생노병사(生老病死)와 희노애락(禧怒愛樂) 인생살이에서도 빼놓은 수 없는 인생여정의 한 과정인 만큼 예식으로서의 결혼식이란 즐비한 먹거리로 손님을 대접하는 만찬 (feast)과 축제 (festival)를 열어 신랑과 신부의 미래를 한껏 축복해 주는 잔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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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결혼해 주겠소?” 노먼 락웰 (Norman Rockwell)이 1957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The Saturday Evening Post)》誌 표지에 기고했던 일러스트레이션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 이후 (After the Prom).

개인주의 의식의 발현으로 두 남녀 [※2000년부터  네덜란드에서는 동성의 결혼도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개인이 구애와 연애 끝에 사랑과 신뢰라는 가치관을 주축으로 해서 결혼이라는 평생 언약식을 올리는 결혼식이란 20세기 후반기에 와서야 널리 보편화된 현상이었다.

허나 그 이전까지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결혼이란 종교적 사회적 통합과 평화 유지, 경제적인 교환 가치, 자손 대잇기 같은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략 결혼, 신부 매매, 신부 도둑질 관습을 두루 지칭하는 인간사회 내 각종 형태의 부족간 혹은 가문간의 짝짓기 관행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결혼식이라는 의미로 널리 일반화된 웨딩 (wedding)이라는 단어는 본래 18세기 영국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과 신랑을 결합을 알리는 공식 행사를 직접 주간해 딸자식의 보호와 책임을 다른 가족 출신 남성에게 이전하는 신부 이행 예식 (ceremony)을 일컫는  ‚비웨딩 (bewedding)’ 예식에서 유래했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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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산에서의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

인류의 역사 아주 오래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유태교 전통에서는 남녀 간의 성적·사회적 결합을 종교적이고 법적인 차원에서 인정하기 위해 결혼식이라는 예식을 중히 여겨 실시했다 한다. 그같은 전통은 예수가 살았던 초기 기독교 시대 기원 후 한 두 세기 그리고 이어서  고대 로마 시대로 계승되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신중의 신 제우스가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이다산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고대 로마 시대 실내 장식용 벽화로 그려져 지금도 이탈리아 나폴리에 남아있다. 최고의 신과 여신이 결혼 서약을 하는 그 고결한 맹세에도 불구하고 사랑, 기쁨, 배신, 질투가 뒤섞인 인간의 모험 넘치는 격동의 결혼생활을 암시하는 듯하다. 아틀란타와 히포메네스, 술의 신 디오니수스와 아리아드네도 결혼을 했는데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은 폼페이에 있는 빌라 데이 미스테리 프레스코 벽화에 남아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결혼식에서는 결혼의 신 히메나에우스 (Hymenaeus)를 기리는 결혼시(詩)가 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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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산보 (Promenade)』1917년 작, 캔버스에 유채, 170 x 164 cm (66 15/16 x 64 9/16 in.).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한편 유대교 신자들은 결혼식에서 온갖 다채로운 축하 무용을 발달시켜 온 것으로 유명한데, 그같은 흔적은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이라든가, 화가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이 결혼과 결혼한 남녀를 주제 삼아 즐겨 그렸던 환상적인 분위기의 유화 그림들에서도 발견된다.

고대 유태인은 결혼식 만찬에서 신랑이 신부와 춤을 추는 것은 반려자를 향한 헌신 (devotion)의 표시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들의 문화권에서도 남녀칠세 부동석 원칙이 철저했던 중세시대에는 각각 신부와 신랑은 같은 성의 초대 손님들과만 춤을 출 수 있었지만 점차 그같은 규칙이 느슨해 져서 손과 손에 손수건을 대고 신랑신부와 남녀 객빈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춤을 추는 풍습이 일반화되었다.

유대교, 초기 기독교, 로마 카톨릭교, 불교 등 인류 초기 역사에서 번성했던 주요 종교들을 보면 언제나 성직자나 신앙인들의 종교적인 성생활 금지 원칙으로 인한 성적(性的) 긴장이 항존했던게 사실이다. 종교에 귀속한 남녀 수도승들이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도원에 은적하며 수도에 전념하는 것을 신과 일대일의 상징적 결혼식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일반 신도들은 일부일처제의 결혼 서약을 통해서 부부의 화합을 고결하고 성스러운 평생의 헌신 행위로 발전시킨 것이다. 인류의 주요 종교가 결혼한 상태 혹은 기혼자를 미혼 상태나 미혼자들보다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게 된 기원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바가 크다.

예컨대, 고대 유대교 율법서 『탈무드 (Tamud)』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자(남성)는 살인자와 같으며 신의 형상을 짓밟는 자이다“라고까지 했으며, 조로아스터교에서 사용되는 성전인 아베스타 (Avesta)에서도 „결혼한 자는 결혼하지 않은 자보다 신분상 우월하다“라는 유사한 언급이 나타나있다. 그러니 결혼한 자는 지역사회와 가족친지들에게 책임감있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인정받는 그같은 통념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류 보편의 집단의식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Kulturgeschichte / Liebe / Hochzeit / Hochzeitsfeier
얀 스테엔 『농군의 결혼 피로연 (Country Wedding)』1670년, 57 x 68 cm.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Gemäldegalerie.

과거 시절의 결혼의 개념은 세월이 지나고 역사가 발전해 온 결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결혼이란 신랑과 신부간의 사랑, 행복, 그리고 미래를 향한 모험이라는 애정이 위주가 된 일부일처제 언약 관계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한편 초기 기독교 시대에 예수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일부일처제를 제시하는 부분이 신약성서 계시록에 등장해 그 당시 일부다처제가 일반화되어 있던 고대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사실상 결혼이란 기독교 교리에 의해 최초로 남녀의 관계 더 나아가 부부를 위주로 한 가족 관계와 자녀의 부양을 종교적이고 영적(靈的)인 단계로 격상시킨 제도였다.

무릇 „ …결혼식과 연회 잔치는 손님많고 먹을 것 많은 즐거운 행사이어야 하며 신랑신부의 첫날밤 침실은 선하고 성스러운 것이 될지어다…“라고 한 신약 에페지안서 5장 내용처럼 결혼식 잔치와 부부의 화합은 기독교의 축복을 잔뜩 내려 받은 인생사 중대 통과의례다.

서양에서 신랑신부의 결혼식 복장과 첫날밤 침실을 흔히 아담과 이브의 형상, 생명의 나무, 금슬좋은 쌍쌍새 등과 같은 상징성 깊은 문양들로 장식해 성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하곤 했던 것이나 결혼하는 신부에게 값진 가구나 세공장식품을 선물해 보내는 풍습 등은 딸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오동나무를 심어 혼수가구를 준비하고 혼수품을 준비해 시집보내거나 혼인 첫날밤을 중요하게 여기는 옛날 우리나라 풍습과 아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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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코포 로부스티 틴토레토(Jacopo Robusti Tintoretto)가 그린 『가나에서의 결혼 만찬』 1561년, 캔버스에 유채, 4.35m x 5.45 m.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Sacristy of the Chiesa di Santa Maria della Salute, Venice)의 주문을 받아 그려 바쳐진 이 그림은 현재에도 이 교회의 성물안치소에 남아있다.

„양고기 저녁상에 초대된 자들이야말로 축복받은 자들일지어다“ [계시록 19장9절]라고 한 말에서 예수는 메시아 – 즉, 인간의 몸을 빌어 태어난 예수 자신 – 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은 자들은 양고기가 있는 저녁 식사에 초대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 저녁 식사상을 두고 혼인 축하연 (Wedding Feast)이라고 비유하곤 했다.

여기서 예수는 구약성서 창세기 부분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과 사라 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해 하나의 육신이 된다고 설파함으로써 일부일처제의 정당성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서양 초기 기독교 시대와 중세기 이후로 르네상스기까지 ‘가나에서의 결혼 만찬 (The Marriage Feast of Cana)’이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기도 했던 인기 주제이기도 하다.

데이비드와 바드셰바의 결혼식 만찬 도중 초대석에 앉아 있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모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 잔치의 주인이 부끄러운 곤경에 처할 것을 우려하여 아들 예수를 시켜 잔치상을 포도주와 음식으로 가득채우는 기적을 행하게 한다는 성서의 일화를 묘사한 그림이 바로 『카나에서의 결혼 만찬』이다.

Raffaello, Spozalizio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라파엘로 (Raffaello), 《성처녀 마리아의 약혼식 (“La Spozalizio”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 1504년. Oil on round-headed panel, 170 x 117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마리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는데 신부의 처녀성과 결혼과 가족의 성스러움을 중시했던 서양 기독교와 기독교 미술은 이같은 놀라운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성서에서 흔히 묘사되듯 마리아의 몸을 빌어 하느님의 형상을 띠고 때어난 예수는 어머니를 향해 „여인이여, 나와 무슨 용건이 있는가?“ [요한서] 라고 했을 정도로 어머니 마리아와 거리를 두었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칭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에서 마리아 신앙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고대 지중해 지방에서 비기독교 이교도들이 급격히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기원후 400-500년도부터 비로소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는 „성처녀“ 혹은 „성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중세 기독교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마리아의 결혼식 장면(Wedding Procession 또는 Marriage of the Virgin)“  „수태고지 (Annunciation)“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의 방문 (Adoration of Magi)“ „성처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 (Virgin Mary and Jesus)“상을 통해서 마리아는 하나님이 육신화한 예수를 낳아 준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으로 나타났고, 특히 [마리아의 결혼식 장면을 그림 작품]들은 서양 중세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결혼식 풍경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자료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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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아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 1434년, 떡갈나무판 위에 유채.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같은 르네상스 시대이지만 장소를 바꾸어 북구 유럽으로 잠시 눈을 돌려 보자.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거장 화가 얀 반 아이크 (Jan van Eyck)의 걸작 『아르놀피니의 결혼(Arnofini Marriage)』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은 르네상스 미술사가들 사이에서 미술 속의 도상과 상징 연구에 즐겨 활용된 바 있는 의미심장한 작품이자 화가의 탁월한 묘사력과 손재주로 보는이의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귀족이자 난봉꾼으로 이름이 자자했던 아르놀피니가 결혼 서약을 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그려진 이 그림 속의 두 신랑신부는 사랑 보다는 경제적 사회적 필요에 의한 계약으로써의 결혼이 널리 행해지던 당시 15~16세기 유럽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충직과 헌신을 상징하는 개,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 평탄치 못할 결혼의 미래를 예견이나 하듯 고개를 삐딱이 기울이고 있는 신부의 모습 등에서 보는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특히 국제 무역과 상업으로 경제적인 부흥을 한껏 경험했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신흥 부유층의 높아가는 수요에 부응해 풍속화가 널리 유행했다. 그림을 주문한 고객의 희망사항에 따라서 가문의 넉넉함을 자랑하기 위한 과시용 장식품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 혹은 낭비, 방탕, 무절제의 악덕을 꼬집고 풍자하는 교훈 그림으로 그려져서 집안 거실이나 식당 벽에 걸어 장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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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뢰겔 아들 (Pieter Bruegel the Younger), 『농군 결혼 잔치 (Peasant Wedding Dance)』1623년, 목판에 유채. 개인소장.

인물 초상화,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민화처럼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정물화, 그리고 집주인이나 아녀자들의 생활상이나 농부나 시녀의 일상을 묘사한 풍속화 등 집안 장식용이나 게으름, 방탕, 낭비를 말라는 훈계용 그림들 가운데에는 농가나 하층계급자들이 모이는 주점이나 실내를 배경으로 한 결혼 피로연이나 춤잔치를 묘사한 작품들이 자주 발견된다.

일찍이 히에로니무스 보시 (Hieronymus Bosch)를 비롯해서, 페터 브뢰겔 (Peter Bruegel), 얀 스테엔 (Jan Steen) 같은 북부 르네상스~바로크 시대 풍속화가들이 그린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결혼식 장면 묘사는 초대된 수많은 하객들이 음(飮)과 주(酒)를 한껏 즐기며 진탕하게 노는 축제를 묘사했다. 이 그림들의 도상적 뼈대는 분명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 즐겨 등장하던 성서 속 ‘가나에서의 결혼 연회’ 일화에서 빌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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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Henri Rousseau) 가 그린 『결혼 잔치 (The Wedding Party) 』 1905년 경, 캔버스에 유채, 163.0 x 114.0 cm. Musée de l’Orangerie, Paris © Photo RMN – C. Jean.

18-19세기 서양 문명은 귀족주의 체제가 서서히 그 쇠퇴을 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근대적인 사고와 과학의 발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사랑 이외의 또다른 목적을 둔 사회적 관례이자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다. 19세기 스페인 절대주의의 잔학성과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림으로 고발했던 고야 (Francisco de Goya y Lucientes)의 『결혼식 (The Wedding)』은 갓 결혼의 서약을 마친 행복한 신랑신부의 모습 보다는 부유한 남성과 몰락한 가문 처녀 간의 정략결혼의 모습을 풍자했다.

모더니즘과 개인주의 의식이 폭발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19세기말-20세기초 세기전환기 유럽, 드디어 결혼이란 소수의 상류지배계층이나 평민족들에 할 것 없이 부족들 혹은 가문들 사이의 사회적 윤활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 더 이상 아니라 사랑의 결실이자 새인생 출발을 위한 두 자유로운 개인 간의 선택과 의지의 상징이라는 근대적인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두 남녀가 평생을 함께 하리라는 맹세이자 의식적인 개인 의사 표시가 된 오늘, 미술은 점차 결혼식의 황홀감과 결혼 생활의 행복을 표현하게 되었다. 20세기초 프랑스의 에뒤아르 루소 (Eduard Rousseau)의 『결혼식 (The Wedding)』은 천진난만한 아름다움을 안겨주며, 마르크 샤갈의 『결혼식 (The Wedding)』이나 『산보 (The Stroll)』는 결혼식 혹은 결혼한 상태는 환상적이고 행복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한 남녀의 화합임을 잔뜩 강조하는 그림들이다.

* 이 글은 본래 『오뜨 웨딩 (Haute Wedding)』 지 2003-2004년 1/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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