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그림 속에 깃든 헝거리 영혼

ROMANTIC REALISM IN THE 19TH CENTURY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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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리 페렌치 (Károly Ferenczy)의 『오프페우스 (Orpheus)』 1894년 작품, 캔버스에 유화, 98,2 x 117,5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중유럽권에서는 흔히 “한 번 헝거리 사람이 되면 영원한 헝거리 사람”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관용구 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만큼 헝거리인들의 국민적 정체성과 문화적 자부심이 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동시간적 통신 수단의 발달과 급속한 문화의 전파가 시시때때로 전개되어 국가간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있는 요즘, 국민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논한다 함은 어딘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이기까지한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이 지적한 바 있듯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 정처없이 여러다른 국가와 문화권을 떠돌고 있게 된 오늘날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문화 속에서 국경과 지역적 차별성에 따른 국민적 정체성을 논하는 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같은 화두를 제기하며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수도이자 유서깊은 중세 도시인 크렘스 (Krems)에서는한 편의 미술 전시회를 통해서 국민적 정체성은 지리적 경계나 인종적 배경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예술적 정신을 함께 나누는 영혼적 공통체로서 정의되는 것임을 선언한다. 헝거리 부다페스트 국립 미술관과 오스트리아 크렘스 쿤스트할레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과거 오스트로-헝거리 제국으로서 중유럽권을 지배해 온 오스트리아와 헝거리의 깊은 역사적 인연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최초로 19세기 헝거리 미술을 최초로 소개하는 뜻깊은 미술 전시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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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마다라지 (Viktor Madarász) 『영웅 라즐로 훈야디의 죽음에 대한 애도 (Die Beweinung des László Hunyadi)』[스케치 그림], 1859년 작, 캔버스에 유화, 65,3 x 81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크렘스 쿤스트할레에서는 지난 8월 13일부터 내년 2월 중순까지 근 6개월 동안헝거리의 회회 미술 속에 나타난 독특한 국민적 정서와 전통 고취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헝거리의 영혼 – 헝거리인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회화』 전을 계속하고 있다.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에 이어 바로 최근 2004년 5월 유럽 연합국의 새로운 회원국이 되어 변화와 활기를 맞고 있는 헝거리. 본래 헝거리는 기원후 9세기 말엽 피노-우그릭족의 일파인 마기야르 족이다뉴브 강 유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탄생하기 시작한 국가다.

오늘날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공화국, 북쪽에는 슬로바키아, 남쪽으로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국가들, 그리고 동쪽으로 루마니아에 접한 채 자리하고 있는 내륙의 중유럽 국가로 알려져 있는 헝거리는 다양한 종족의 여러 주변 부족들이 합쳐져 오래 세월 동안 혼합된 다민족 국가일 뿐만 아니라 외부의 침략과 정복으로 인한 시련과 격동의 역사를 경험해 왔다.

그러다 보니 헝거리의 전통 문화는 집시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농민들 중심의 민속 문화와 이웃 독일 및 오스트리아로부터 강요되었던 독일계 및 유태인계의 도시적 메트로폴리스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는 문화의 멜팅폿으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다. 특히 농민과 서민을 중심으로 한 문화 운동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헝거리를 통합하는 수단이 되곤 해서 언제나 정치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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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탈란 세켈리 (Bertalan Székely)의 『탈출하는 미할리 도보지와 그의 아내 (Mihály Dobozy und seine Gemahlin)』 1861년 작, oil on canvas, 133 x 155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특히 19세기 초부터 문학, 연극, 음악을 비롯한 공연 예술 분야는 헝거리 국민들의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외부국가의 침략으로 부터 저항하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했던 헝거리인들 사이에서 국민적 정신성을 일깨워주는 시인이나 문학가들은 국가적 위기 속의 영웅 대접을 받았고 서민들의 민속 문화 전통에 대한 재발견과 재평가를 통해서 국민대중은 서구 유럽에서 몰려 온 급속한 근대화와 도시화로부터 토착적인 문화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가 유독 관심있게 주목하고 있는 주제는 전 유럽을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열품으로 몰아 넣었던 19세기, 헝거리의 화단에서 불어 닥친 특유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이다. 19-20세기 전환기 경, 유수한 과학자는 물론 문학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81-1886)와 벨라 바르톡 (Béla Bartók, 1881-1945) 등을 비롯한 작곡가를 배출한 바 있는 헝거리는 미술계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화가들을 배출했다. 여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도 헝거리인들의 정신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헝거리적 민족성의 근원 시기를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서 찾고 있다.

때는 19세기 초엽, 헝거리는 15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터엌키의 오즈만 제국 하의 지배에서 막 벗어났지만 곧 서부에 있는 이웃나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 체제 하로 접어든 위기의 시대였다. 헝거리인들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보다 밝고 자립된 미래를 구축하겠다는 신념 하에 1848-49년에 둑립 혁명을 일으켰지만 결국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뿌리고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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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할리 문카치 (Mihály Munkácsy)의 『장작거리 나무를 진 여인 (Holz tragende Frau)』 1873년 작, 목판 위의 유화, 99,7 x 80,3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그 결과 지배자의 전보다 더 강한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게 된 헝거리는 자유를 향한 투쟁 정신이 남긴 파토스와 채 가시지 않은 독립에 대한염원을 달래기 위하여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예술 운동으로 헝거리인들의 내면을 배출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헝거리의 영혼’이라고도 불리는 헝거리 낭만적 사실주의 미술 운동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해 준 예술적 자취라고 여겨지고 있다.

예컨대 이 시대 헝거리인들의 총체적인 내면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미할리 문카치 (Mihály Munkácsy)는 외부 세력의 오랜 정복  하에서 국민들이 겪은 슬품과 고통, 자유를 향한 갈구 욕망이 잘 어우러져 보는 이의 가슴에 찡한 하는 감동을 안겨줄만큼 헝거리인들의 심금을 자극하는 작품을 이룩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헝거리의 미술 전통은 그보다 일찌기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거듭하여 전개되던 15-16세기와 17-18세기, 카톨릭 교회가 막대한 정치적 위세를 발하던 헝거리에서는 교회 권력을 위시로 한 건축과 도시 건설 사업이 주로 이루어 졌으며 회화 예술도 교회를 위한 종교화와 역사화가 주를 이루었다. 종교화와 역사화는 조각과 더불어서 건축 실내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인테리어 장식 수단으로 애용되었는데 그 결과 초상화 쟝르도 급속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예컨대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미클로시 바라바스 (Miklós Barabás)는 1848-49년 헝가리 독립 운동을 이끈 국가적 영웅들의 초상을 연작으로 여러편 그려서 국가적인 화가로 떠 올랐으며, 풍경화 그리기에 유능했던 칼로리 마르코 (Károly Markó)와 초상화가 요제프 보르쇼시 (József Borsos)도 헝거리인들의 국민적 감성에 호소하는 그림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서부 유럽에서 전파되어 온 낭만주의의 영향이 번지기 시작한 19세기, 헝거리에서도 새로운 미술 운동이 일기 시작했든는데, 이로하여 비로소 헝거리 화가들은 주변 강국의 침략과 정복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멜랑콜리한 서정으로 전환시킨 역사화를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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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진예이 메르제 (Pál Szinyei Merse)의 『양귀비 꽃이 핀 들판 (Wiese mit Klatschmohn)』 1896년 작, 캔버스에 유화, 39 x 63,2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그러나 가장 유명한 헝거리 출신 화가들은 특히 1848-49년 독립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난 19세기 중엽 이후에 와서 비로소 줄줄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베르탈란 세켈리 (Bertalan Székely)는 『탈출하는 미할리 도보지와 그의 아내 (Mihály Dobozy und seine Gemahlin)』(1861년 작) 등 당시 헝거리를 사로잡았던 역사적 사건들을 극적인 분위기로 묘사했고, 유명한 대표작 『영웅 라즐로 훈야디의 죽음에 대한 애도』(1859년)를 그린 빅토르 마다라지 (Viktor Madarász)는 그 특유의 “민족성 호소적”인 분위기와 웅장한 분위기 연출력을 발휘하여 저멀리 서구 유럽 파리의 화단에서까지 인정을 받았다. 역시 역사적인 그림을 기념비적인 초대형 화폭으로 옮겨서 역사화 쟝르에서 독자적인 경지를 이룩한 귤라 벤추르 (Gyula Benczúr)도 오늘날까지 헝거리인들의 뇌리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후반기 헝거리의 낭마주의파화가들은 헝거리의 전통적인 민속 미술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특히 헝거리인드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미할리 문카치 (Mihály Munkácsy)는 이른바 헝거리적 ‘민속적 사실주의 (folk realism)’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장작거리 나무를 진 여인』(1873년)을 비롯한 수 편의 그의 작품들은 헝거리의 순수 회화 미술 분야에서 의미심장한 초석을 쌓았다고 인정받을 정도이다.

문카치와 더불어서 팔 진예이 메르제 (Pál Szinyei Merse)도 헝거리의 자연 풍경을 아련하고 낭만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옮겼는데, 특히 『양귀비 꽃이 핀 들판』(1869년)은 작품은 같은 시기에 프랑스 퐁텐블로의 야광파에 준할 만한 서정적인 농촌 외부 풍경화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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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홀로지 (Simon Hollósy)의 『옥수수 밭 (Beim Maisschälen)』 1885년 작, 캔버스에 유화, 151 x 100,5 cm © Ungarischen Nationalgalerie, Budapest.

전 유럽이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창조적 기운으로 꿈틀대고 있을 20세기 초엽 헝거리의 화단에서도 파리에서 번진 아르누보 운동이라든가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풍에서 영향받은 풍경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틸바다르 손트바리 코츄카는 그같은 운동을 처음으로 주도한 화가였고 비슷한 시기에 나기야브냐 미술가 집단이 탄생했다.

니기야브냐 미술가 집단은 헝거리 화단의 야광파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시몬 홀로지 (Simon Hollósy)의 주도로 창설되어 『오르페우스』를 그린 유명한 화가 카롤리 페렌치 (Károly Ferenczy)의 미술 세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양분 역할을 해 주었다.

당시 야광파풍으로 풍경화를 즐겨 그리던 헝거리 화가들은 고국의 천연 자연 환경과 화가마다의 내면적 환상 세계가 뒤섞인 오묘한 분위기의 사실주의 화풍을 구축함으로써 급진적인 아방가르드주의가 전개되던  파리를 위시로 한 서구 유럽의 모더니즘 경향과는 또 색다른 길을 구축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처 초超포트스모더니즘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21세기, 인류는 왜 또다시 국민적 정서와 민족성을 재차 논하고 있을까? 적어도 유럽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건대 인류는 지역주의와 거국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주의 사이를 오가는 치열한 패권 다툼과 이합집산을 경험해 왔다.

20세기 전세계를 뒤흔든 두 차례의 유럽의 대전은 모두 방대한 대국적 정치 파워와 그 주변의 소수 국가들의 민족주의 간의 갈등이 화근이 되어 촉발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지역주의와 유토피아적 세계주의라는 두 상반되는 사상은 인간 본유의 사회적 기질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단서가 되어 준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은 그의 저서중 하나인 『전통의 발명 (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오늘날 우리가 한 국가의 유서깊은 전통 및 의례들중 상당수는 19-20세기 유럽 전역 여러 국가에서 불거졌던 민족주의 운동의 결과 고안된 ‘발명된 전통’임을 증명해 보인바 있다.

그런 점에서 내년 겨울까지 크렘스에서 전시가 계속될 『헝거리의 영혼』 展은 초고속 신매체 커뮤니케이션, 국제 여행의 대중화,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를 경험하고 있는 현재 유럽 연합의 갈등 상황을 넌지시 시사하는 가운데 관객들이 헝거리의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을 통해서 국민적 자아정체성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Images courtesy: Kunsthalle Krems.

* 이 글은 본래 『오뜨 (HAUTE)』  2006년 10월호 아트뉴스 컬럼에 실렸던 글을 다시 싣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