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이조 – 과거의 舊物을 시대에 맞는 新 거주공동체로 고쳐 쓰는 방법

GASOMETER CITY VIENNA

新舊의 조화로운 共存 – 현대 건축으로 다시 태어난 빈의 가조메터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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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위펭에 있는 초기 근대식 가스 저장 탱크의 모습. Photo © Harald Finster.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새로운 건축물 프로젝트가 홍수를 이루었던 지난 십 수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부동산 개발 업계에 이르기까지 헌 건물을 허물어 없애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 관례가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각 문화 발전과 경제 활성은 반드시 과거를 파괴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과거의 물적 유산을 잘 보존하되동시에 이것을 현대적으로 계승,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문화 발전의 중요한 척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요리, 수돗 꼭지에서 나오는 온수, 겨울철 집안 난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생활 속에서 가스 에너지를 항상 사용하고 있지요. 요즘 같이 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가스는 보통 지하 저장고나 첨단 암염 동굴에 묻어 보관 관리되기 때문에 여간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스는 지상에 지어진 원통형 저장탱크에 저장되었습니다.

유럽의 옛 여러 도시에서 원통형 모양으로 된 가스저장탱크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한창이던 유럽 풍경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었습니다. 특히나 19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에는 런던을 비롯해서 맨체스터, 쉐필드, 뉴카슬 등 같은 옛 산업도시들에서는 과거 빅토리아 시대풍 분위기를 담고 있는 가조메터 즉, 가스저장탱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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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빈 가조메터 옛 가스 저장소. 빈-지머링(Wien-Simmering)에 위치한 이 가스 저장소를 석탄을 연소시켜 추출한 가스를 보관했다. 1896년에 지어져 이 도시 전체에 가스를 공급해 왔으나 1999-2001년 지역 재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철폐되어 주상복합형 아파트로 재탄생했다.

이를 본따서 대륙권 유럽 여러 산업 도시들도 앞다투어 둥근 원통형 가조메터를 지어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급증하는 가스 수요에 부응해야 했습니다. 경우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빈 도시 정부는 19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886년, 급속화된 빈의 도시 개발 정책과 부동산 붐으로 인해서 가스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국식 가스저장탱크 4대를 짓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것이 지금 빈 제11번 지머링(Simmering) 구의 명물이 되어 건축애호가들과 문화순례자들의 발길을 잡고 있는 가조메터(Gasometer)입니다. 아치형 창문과 좌우대칭적 균형감을 강조하여 적색 벽돌로 원통형으로 쌓아 올려서 르네상스풍 건축을 연상시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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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개봉된 영국 필름느와르 걸작 『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의 한 장면에 담긴 비엔나 밤 거리. 당시 비엔나 거리는 가스등으로 밝혔다.

지금도 빈 옛 거리 구석구석과 공원에 서 있는 가로등들은 본래 가스로 불을 밝혔던 가스등이었다고 합니다. 정사각형 돌로 깔린 보도 양 편에 가스등이 희미한 빛을 뿌리는 고즈넉한 거리 풍경 –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을 내던 가스등 만이 연출할 수 있었던 낭만도 가스 연료 덕분이었습니다.

고체, 액체, 플라즈마와 더불어 4대 물리적 상태의 한 요소인 기체 형태의 자동차 연료와 가열용 연료인 가스(gas)는 본래 그리스어로 “혼란”이라는 뜻의 카오스(chaos)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럽의 19세기말 20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가스는 석탄을 태워 기체로 전환시켜 만들어 썼고, 지금처럼 천연 가스를 액체 상태로 보관하는 방식은 1970년대 이후에나 널리 일반화된 공법이었다고 합니다. 옛 가조메터들이 광산촌 근처에 지어졌던 이유도 바로 채굴해 낸 석탄을 바로 가스로 가공하는데 운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쪽에서 바라본 가조메터 A동.

하지만 가조메터가 현대 건축의 명소로 재탄생하게 된 때는 지난 2001년 10월. 과거 석탄을 태워 가스를 만들어 보관하는 구식 가스 저장소였던 비엔나의 가조메터는 쓸모가 없어졌고 급기야 1984년에 공식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축물이 도시에 기여한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외형을 참작하여 빈 도시 정부는 가조메터를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고 폐허 상태의 건물로 내버려두느니 주거용 아파트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여 현대적으로 재활용하자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쓸모가 없어지고 오래되었지만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옛 건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유용한 건축으로 재탄생 시킬 수 있을까요? 그 같은 고려에서 탄생한 재건축 사업이었던 만큼 빈 정부는 이 사업에 매우 큰 기대와 자부심을 갖고 임했다고 합니다.

비엔나의 가조메터를 아파트로 개조하는 재건축 사업은 역사의 흔적, 건축 예술, 도시 설계라는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한데 아울러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키는 자못 진지한 정책 사안이었던 때문이지요.가조메터를 구시대의 산물이자 매연의 주범이라 하여 지난 1999년부터 10년 단계적인 철거 계획을 수립하고 하나씩 철거한 영국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입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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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조메터 아파트 주변과 부대시설이 있는 풍경. 오른편 삼각형 모양의 지붕의 적벽돌 건물은 과거 가스저장소 관리소, 오른쪽의 돔 지붕이 있는 탑은 관재탑. 뒤로 보이는 높이 솟아 있는 굴뚝과 설비 시설은 과거의 산업화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현재는 그 자리에 주로 사무실, 레스토랑, 카페, 클럽 등 업무와 사교 활동용 시설들로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조메터 아파트는 2001년 10월에 공식 개장을 했지만 잔뜩 들떠 있던 입주자들은 그 보다 반 년 전인 5월부터 미리 속속 입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가조메터 시티(Gasometer City) 개발 사업 덕분에 가조메터는 현재 주거용 초현대식 아파트, 쇼핑 센터,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모여 있는 자족적인 소형 신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P1030545sm1995년 착수된 가조메터 재건축 사업에 초대된 건축가(팀)은 모두 넷.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이 가조메터 건물 A, 오스트리아의 코옵힘멀블라우(CoopHimmelb(l)au)가 건물 B, 만프레드 베도른(Manfred Wehdorn)이 건물 C, 빌헬름 홀츠바우어(Wilhelm Holzbauer)가 건물 D를 각각 맡아서 2001년에 완공을 마쳤습니다.

« A동에 주거용 아파트, 사무실, 쇼핑몰 설계를 맡은 쟝 누벨의 디자인은 유리와 금속 골조를 한껏 활용한 천정 돔을 통해서 자연광이 최대한 들이치게 해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특징이지요.

그런가 하면, 코옵힘멀블라우가 설계를 맡은 B동은 삐죽삐죽하고 무너질 듯해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아슬아슬한 탈구성주의 스타일은 코업힘멀블라우의 트레이드마크로 특히 1980-90년대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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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담당 건축가들은 대체로 주거용 아파트 건물을 짓자는 설계계획안을 제시했지만 코옵힘멀블라우 팀은 가조메터 건물 외부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사무실 건물을 추가로 세우자는 안을 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서쪽 방향에 서 있는 코업힘멀블라우 설계 담당 B동 전면에는 20층짜리 초현대식 유리 금속 소재의 탈구성주의(De-constructive) 양식의 건물이 높게 서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 건축사무소 코업힘멀블라우가 설계한 B동 입구. 19세기풍 가스탱크 계량미터가 눈길을 끕니다. B동과 C동의 공공 공간과 쇼핑몰을 이어주는 연결 통로.

가조메터 아파트 4개 동은 모두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눈비 오는 날에도 물 한 방울에 젖지 않고 단지 곳곳을 누빌 수 있습니다. 아파트 건물 외부 입구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가스저장고 계량판은 디지틀 시대가 점령해 버린 오늘날 뜻하지 않게 아날로그 시대의 미학을 아련하게 자아내는 과거의 흔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 네 건물 맞은 편에 세워진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쇼핑몰 건물은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뤼디거 라이너(Rüdiger Lainer)가 설계했는데, 외부에서 느껴지는 기하학적이고 정결해 보이는 외모에 못지 않게 채색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빛으로 실내를 조명하는 인테리어 분위기가 매우 탁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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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동 안에 있는 대형 영화관 입구 모습. 채색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일광이 찬란한 실내 조명 효과를 냅니다.

이 건물 안에는 초대형 영화관 외에도 식당가,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단지, 시립 자료실이 입주해 있어서 이른바 멀티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센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콘크리트 금속 유리를 주소재로 한 엔터테인먼트 센터는 건물 표면에 색유리로 마감하여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센터는 유리와 금속으로 된 공중 통로 다리를 통해서 가조메터 아파트 C동으로 곧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P1030531sm» 뤼디거 라이너가 설계한 엔터네인먼트 센터(일명 E동)의 동쪽 주차장 쪽 벽면의 모습. 자칫 척박해 보이기 쉬운 콘크리트 소재이지만 직접 보면 리듬감 있고 정갈한 배치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게 마감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의 가조메터 시티 찾아가는 법: 자동차로 남동쪽 방향 고속도로 A23번을 따라 가다가 상크트 마르크스(St Marx) 출구로 나와 가조메터 시티(Gasometer City) 표지판을 따라 가거나, 지하철(U-Bahn) 3호선 (U3) 가조메터(Gasometer)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주소: Guglgasse 6-14, A-1110 Wien.

※ 별도 명기된 이미지 외 모든 사진: 박진아. All photos by Jina Park, unless otherwise indicated.

*이 글과 사진들은 2007년 7월 LG 인테리어 웹진 지:인 http://www.z-in.co.kr/ 글로벌 인테리어 뉴스 컬럼에 실렸던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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