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

그 둘 사이의 애증 관계

UN-TRASHED – An Exhibition of Rejected Designs

디자인 작업을 주문하는 비즈니스 클라이언트도 디자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비즈니스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인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을 정도로 ‘디자인 의식 (design consciousness)’의 이해와 실천이 최고조를 달한 21세기 현재. 과연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의뢰하는 비즈니스 경영자에게 디자인을 먼저 공부하고 디자인을 의뢰하라 할 수 있을까?

21세기 글로벌 경제는 정보의 전파력과 노동력의 유동화로 인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경쟁이 치열해 졌다. 이른바 24시간 경제가 일상화된 요즘, 비즈니스맨들은 보다 빠르고 보다 품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않으면 살아날 수 경제 환경 속에서 경쟁하고 있다. 엇비스한 기능과 품질을 갖추 그 수많은 제품들 가운데에서 소비자들은 선택의 홍수 속에 헤메이고 있으며, 자연히 디자인은 비즈니스 성공의 점차 기초적인 비즈니스 요소가 되었다.

덕분에 디자이너들에게 클라이언트의 주문을 받아 자신의 작품을 상업화하거나 디자인 전략을 상품 매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비즈니스의 전통적인 동반자였던 제품 디자인 분야는 물론, 광고, 사진, 그래픽, 서체 분야에서 디자이너들도 크고 작은 기업들과 정부 기관들을 상대로 디자인 인뢰를 받아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허나, 과연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얼마나 클라이언트들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들의 비즈니스적 요구 사항을 만족스럽게 제공하고 있을까?

비즈니스계는 물론 대중들 사이에서까지 디자인에 대한 의식과 디자인 보편화가 급속히 개선된 요즘, 오히려 요즘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전에 없이 국가적 차원의 디자인 정책이나 비즈니스 클라이언트들을 상대로 한 볼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 [예컨대, 영국 디자인 전문지 『크리에이티브 리뷰 (Creative Review)』 2008년 7월호 편집자글 동시에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인 업무를 맡기기 위해 디자이너들과 협력하는 비즈니스 매니저들은 여전히 디자이너들은 여간해서 상대하기 어려운 까탈스러운 예술가들임을 경험한다고 푸념한다.

지금은 디자이너도 비즈니스를 공부해야 할 때. 그러나 역으로 이제는 디자이너 또한 비즈니스 기초를 공부하고 클라이언트를 이해하고 작품을 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왜? 예술과는 다르게 디자인이란 비즈니스와 산업과 함께하며 성공을 돕는 동반자로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래는 클라이언트도 디자인 공부를 하고 디자인을 비즈니스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디자인 전시회에 대한 리뷰.

연예계를 방불케 할 정도로 디자인계에서도 스타 디자이너들이 속속 나타났다가 스러져 간다. 그런가하면 점점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디자이너를 장래 희망 직업으로 선망하고 있다.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처럼 디자인계에서도 사정은 그다지 다를게 없다. 대체로 평범한 디자이너가 유명세를 떨치기도 하고, 재능과 열망을 겸비한 디자이너들이 주목을 받지 못한채 묻혀 잊혀지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이 창조 작업을 하면서 겪는 손에 꼽는 고충 사안들 가운데 하나는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로 인해서 모처럼 따 낸 프로젝트를 끝내 성사시키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투여된 시간과 작업에 대한 보수와 재료비 조차도 받지 못한채 클라이언트와 결별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나마도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비즈니스 관계가 어느정도 정착된 구미권에서보다 기타 개발도상국권에서는 문자그대로 작품이 한덩이 구겨진 종이뭉치로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일들이 더 빈발하는 것도 사실이다. 디자이너는 창조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해서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는 자기의 디자인 작품이 왜 창조적이고 아름다우며 효과적인가를 클라이언트에게 어떻게 일일이 설명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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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이는 페이지중 좌측의 3 작품은 클라이언트가 선정한 작품들이고 우측의 3 작품은 디자이너들이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작품들.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이너들의 제안 디자인을 거부하는 명목은 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고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든가 고객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가 가장 흔하다.

디자이너 개인의 전위적이고 창조적인 이상과 클라이언트의 비젼이 어긋나는 일은 많다. 지난 4월 27일,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는 세계 그래픽 디자인의 날을 기념한 기획 전시 『디자인 낙선전 (UN-TRASHED – Exhibition of Rejected Works)』을 개최했다. 전시회 명칭은 문자 그대로 휴지통에 내버려진 디자인을 집어꺼내서 재음미해 보는 전시이며,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를 주류로 끌어올린 1863년 파리 살롱 도톤느의 낙선전을 떠올리게 한다.

작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려 화재를 모았던 기획전 『디자인과 윤리(Design and Morality)』 展이 겨냥했던 전시 촛점은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소 육중한 주제였다. 이 전시가 디자이너 스스로가 갖춰야 할 자질과 의식에 대한 교육 문제를 다룬 자기성찰적 행사였다면, 그같은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올해의 『디자인 낙선전』 展은 시각의 방향을 돌려 클라이언트도 디자인 교육이 필요함을 제기한 전시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 전시의 컨셉 구성과 진행을 총담당한 이바 바바야 (Iva Babaja)는 그녀 스스로가 클라이언트의 몰이해로 인해서 자신의 작품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 쓰라린 경험을 한 적있는 중견 그래픽 디자이너 겸 디자인 이론가이다. 4월 27일 세계 그래픽 디자인의 날을 기념하여 ULUPUH 갤러리에서 개장한 이번 전시가 상정한 비판의 대상은 현재 크로아시아 클라이언트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디자인에 대한 짧은 안목과 한계성일 테지만, 그 주제가 담고 있는 보편성은 선후진국을 초월한다.

전시가 마무리된 5월 18일부터 이 전시회의 기획진이 전시 홈페이지를 통해서 관심있는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낙선작들을 올려 공개하고 최근 클라이언트들의 낙후된 시각적 감수성과 디자인 작품에 대한 기호도와 선택기준 트렌드 및 문제점을 지적해 비판 토론하는 가상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그 호응도를 짐작할 만 하다.

전시 시작 일주일 후인 5월2일, 크로아시아의 문화부는 디자이너와 일반대중의 관심도를 발빠르게 눈치채고 이 전시가 앞으로 비엔날레 형식의 정기적인 국제 디자인 행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재정후원을 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적잖은 디자이너들의 우수한 그래픽 광고와 포스터 작품을 „왠지 맘에 안든다“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거절하여 무자비한 클라이언트로 악명높던 크로아시아 문화부가 그처럼 돌변한 태도를 보인 것도 흥미로운 충격이다.

이제까지 디자이너 스스로의 자기 성찰을 통해서 디자이너-클라이언트 관계상의 문제 해결책을 모색하려던 시도와는 달리 이 전시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시각적 감수성 부족과 의사결정상의 모호한 기준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일종의 배후공격 전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일부터 먼저 선언 (First Things First Manifesto)』운동, 『애드버스터즈 (Adbusters)』 웹사이트,『노 로고 (No Logo)』 베스트셀러 서적들은 기업 아이덴티티, 광고, 브랜딩이 대중 소비자들을 농락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디자인의 비윤리적인 측면을 폭로하고 있지만, 사실상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들은 결과물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대한 이미지 결정은 그대신 클라이언트와 클라이언트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전략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클라이언트가 거절한 우수한 디자인 작품들과 (거절된 작품들보다 질이 떨어지는) 그대신 채택된 디자인 작품들을 한자리에 나란히 보고 현재의 시각문화를 비판 재고해 보는 이 전시가 시각문화의 새로운 계몽의 빛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의 편집판은 월간 『디자인』 2002년 6월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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