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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바로크 도자기의 세계

BAROQUE LUXURY PORCELAIN

미술 시장은 회화와 조각을 시대를 넘어서 공예 미술로 관심
미술 애호가들과 컬렉터 사이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미적 감상과 수집 대상이 흥미진진한 관심사다. 작년 연말부터 올초에 걸쳐 구미권의 유명 미술 경매장에서 커다란 관심사로 떠 오르고 있는 미술 거래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서양 고전 도자기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작년 연말경인 2005년 12월 중순에 파리에서 열린 크리스티 미술 경매소의 경매 매출 실적에 따르면 17-18세기 유럽 고전 가구 공예품과 도자기들이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낮게는 1백80여억원에서 최고 4백7십억원이라는 가히 천문학적 가격에 팔려 나갔다는 소식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紙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올초에는 영국의 고전 미술 전문 학술지인 『아폴로(Apollo)』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 도자기가 미술적 감식안을 자랑하는 컬렉터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하는 컬렉팅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기사를 실어 고전 미술 애호가는 물론 학계의 관심을 환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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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쵸치 (Antonio Cioci)가 1732–1792년경에 그린 도자기 그릇이 있는 정물화. Museo dell’Opificio delle Pietre Dure, Florence.

두 말 할 것 없이 미술 시장을 오가는 미술품 컬렉터들과 경매소의 관심사 변동은 잇따른 미술계 학자들의 연구를 부추기고 또 역으로 학계의 관심사가 미술 시장으로 옮겨져 미술품 거래 당사자들 사이의 새로운 구매 관심을 부추기는 것은 상례다.

과거의 미술품 애호가들과 개인 컬렉터들이 유럽의 19세기말 인상주의 회화나 20세기초 표현주의 회화와 조각품들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덕분에 이미 기하학적인 작품 가격을 구축하게 된 나머지 이제 너도나도 웬만큼 돈많은 갑부들이 하나씩 갖고 있다고 알려진 그같은 유명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은 재차 미술 경매 시장으로 떠밀려 나와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갈 새주인을 찾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미술 시장의 한 구석에서는 미술품에 대한 남다른 감식안을 자랑하며 그동안 미술 시장의 뒷전에 밀려 있던 도자기 공예에 관심의 손짓을 내던지는 컬렉터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크 도자기 – 새롭게 떠오르는 미술 시장의 핫 아이템
과거 십여년 특히 1990년대에 구미권 미술 시장에서 도자기 공예 분야가 그다지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는 능히 짐작할 만 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영미권의 보수주의적 정권이 부추긴 과거 전통과 노스탤지아에 대한 미적 향수풍의 유행은 인터넷을 위주로 한 신경제 붐과 전에 없는 경제 호황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디자인의 유행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났던게 그같은 원인이었다. 백색 위주의 실내 벽면과 단순간결한 직선 위주의 미니널리즘풍의 실내 환경에 고전적인 형샡과 장황한 장식을 특징으로 한 바로크풍 도자기 용품은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4년 동안 변동을 겪어온 구미권의 보수적 정치적 분위기와 패션계의 장황하고 화려해진 유행 경향은 최근에 새롭게 불붙기 시작한 서양 고전 도자 예술에 대한 관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진열해 놓은 예술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미술 컬렉터들의 집을 방문한 친구들과 파티 손님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 및 담소거리로 더없이 안성마춤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 17-18세기 도자기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술품 컬렉터들은 주로 미국와 중유럽권에 살고 있는 사업가 출신의 부유한 남성들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흔히 도자기 하면 식탁용 식기라는가 거실 및 침실용 장식품으로 여성들과 더 가까운 것이라고 여겨져 온 도자기 용품들이 갑작스럽게 남성 컬렉터들 사이에서 미술품에 대한 감식안을 과시할 수 있는 매개체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 역시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다. 최근들어 유난히 미국의 대형 박물관들이 앞다투어 유럽 17-18세기 바로크 도자기 작품들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도자기 소장은 고도의 감신안의 표시’라는 새로운 미술 시장내 추세에 크게 힘입고 있음을 증명한다.

작년 연말부터 올 2월말까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박물관에서 『바로크 시대의 호사 도자기 (Barocker Luxus Porzellan)』 展은 그런 점에서 최신 구미권 미술계의 움직임을 잘 반영하고 있는 전시회가 아닐 수 없다. 리히텐슈타인 박물관 (Liechtenstein Museum)은 약 1년전에 소더비 경매소를 통해서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일명 ‚배드민턴 장롱(Badminton Cabinet)’이라고 불리는 18세기풍 바로크 흑목 자개장을 무려 영화 1천9백만 파운드(우리돈으로 약 3백5십억원)을 주고 구입하여 화재가 된 바 있는 거부의 개인 소장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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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한 작은 도자 찻주전자, 1730-35년경 제작, 뚜껑 포함 높이 14,2 cm, Sammlung Rudolf von Strasser.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요즘들어 도자기 수집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중유럽권의 핵심국가. 이미 17세기부터 우수한 도자기 제품을 생활의 일부분을 삼아 사용해 오던 리히텐슈타인 군주 가문이 대대로 사용하고 보관해 오던 진품 바로크 도자 식기들과 장식용품들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크 시대의 진품 도자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동방에서 온 진기한 신소재 도자기
당시 빈의 합스부르크 황실 정권기 동안에 합스부르크 제국내 영토 중에서도 빈과 프라하를 오가며 중유럽 북동부 지역에서 막대한 권력을 자랑했던 리히텐슈타인 군주 가문은 황실과 여타 고위급 귀족 가문들과의 경쟁에 뒤쳐질 새라  유럽권에서 드높이 찬양받던 바로크식 호화 도자기 용품들을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에 특별 주문하여 사용했고 여타 귀족들도일부 유명 도자기 화가들을 시켜 각 가문 만의 독특한 지위와 고귀한 취향을 반영하기 위한 특수 디자인이 담기 도자기들을 만들어 썼다.

지금도 서양 고전 도자 전문가들과 미술 시장에서 최고로 꼽히는 도자기들은 독일 작센 지방의 마이쎈 (Meissen) 도자기와 프랑스의 세브프 (Sèvre) 도자기를 꼽지만, 빈의 뒤 파키에 (Du Paquier) 도자기 공장 (1718년 설립-1744년 폐쇄)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오랜된 유서깊은 도자기 생산소였다는 점 때문에 최근 미술 경매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며 초고가를 홋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려 청자를 두고 그 유려한 자태와 색채 감각의 비법 전수와 변천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가 많듯이 유럽의 몇몇 도자기 공장들과 명장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돌던 도자기 제작 기법과 극비 유출에 관한 야사는 웬만한 탐정소설을 방불케 할 만큼 흥미진진하고 구구한 설도 많다. 예컨대 빈의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의 총책임자였던 클라디우스 이노첸테 뒤 파키에는 도자기 비법을 누출했다간 죽음 당했다던 마이쎈의 도자기 장인들과 화학자들을 몰래 꼬득여 빈으로 데려와 일을 시키는등 우수한 도자기 생산을 위해서라면 여간한 모험도 서슴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혼신의 노력과 황실 주문을 받은 바쁘고 벅찬 생산활동에도 불구하고 뒤 파키에를 비롯한 온 도자기 공장은 막대한 금액에 이르는 만성적인 적자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다가 1944년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황제의 관리 하에 들어갔지만 1864년에 결국 폐쇄되었다가 다행히도 오늘날까지 비너 포르첼란 마누팍투르 아우가르튼 (Wiener Porzellan Manufaktur Augarten)이라는 명칭으로 계승되어 도자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빈 도심부 근처의 제9구역 파사우 (Passau) 구에 가면 리히텐슈타인 성과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 (Du Paquier Porzellan Manufaktur)은 포르첼란거리 (Porzellangasse) 상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있는데, 이 둘의 지리적은 가차움만 보더라도 당시 리히텐슈타인 가(街)와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의 남다른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한 전시품 정리 과정에서 뒤 파키에 도자기 공장에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리히텐슈타인 궁전 소장의 도자기들은 대체로 궁전내 은제품 보관 창고와 다과 주방에 수두룩하게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이번 전시에 포함되었다.

18세기 초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심을 모으며 인기 사치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도자기 (porcelain)는 본래 중동을 거쳐 멀리 중국과 일본에서 도자기 용품들이 수입되어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새로운 외래 유행과 희귀한 진품 수집에 탐욕스럽던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각광받았다.

18세기까지도 금은 식기나 주석으로 된 금속재 식기가 일반적이던 지체 높고 부유한 유럽의 귀족 식탁 문화에서 도자기는 그 특유의 희고 윤기있는 표면 때문에 이른바 ‚하얀금 (white gold)’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귀한’ 신소재로 여겨지며 소재의 혁명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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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뒤파키에 도자 공방에서 생산된 음료수 주전자, 1730/35년경 제작, 높이 7,9 cm, Sammlung Rudolf von Strasser.

당시 귀족들이 사용하던 도자기 용품들은 주로 거나한 식사상을 한껏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장식하기 위해 활용된 식탁용 식기와 성내를 꾸며주는 실내 장식용 미술품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리히텐슈타인 가문에서 그들의 거주용 성내 보물 보관소인 ‚가다로바 (Guardaroba)’실(室)을 그득하게 메운 보배들의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해 온 도자기들이었는데, 이들 도자기들은 너무 귀중하게 다뤄진 나머지 실제로 음식을 담는 식기로 기능하기 보다는 식탁을 풍성하고 호화롭게 돋보이게 해 주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빈 바로크 도자기 – 정치적 격변에 대한 평화적 외교 수단
건축, 조각, 회화 등 미술 분야에서 탁월한 기능을 발휘했던 이탈리아 미술가들을 통해서 특히 16세기 이후부터 남부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이 급격히 북부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18세기초엽부터 이탈리아 피렌체 근방에서는 유럽을 통틀어서 최고의 제작 기술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자기 공장이 설립되어 도자기 주문생산식으로 도자기를 전유럽의 소수 고객들에게 공급했다.

도자기 용품을 흠모한 여러 귀족 가문들 사이에서 유독 리히텐슈타인 가 (家)가 오늘날까지 값진 도자기 수집품들을 보유하고 있게 된 데에는 이 가문이 지금까지도 가문의 맥과 재산을 운좋게 유지해 올 수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도 이 이미 15세기 유럽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 가문의 조상들이 지녔던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18세기에 피렌체-빈 합스부르크 황실 사이에서 빚어진 유럽의 정치사적인 인연에 기인한 바가 크다.

르네상스의 요람 피렌체는 이 국가도시를 호령해 오던 메디치 가문이 몰락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통치 하로 굴복해야 하는 굴욕적인 정치적 입장에 처하자 피렌체의 귀족이자 토스카나 (피렌체 시가 소속해 있는 지방) 대표 외교사신이던  카를로 지노리 (Carlo Ginori) 후작은 외교적 묘안을 착안해 냈다. 처세술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상술에 정통했던 귀족 출신 지노리는 고향 피렌체가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도자기 제품들을 북동 유럽 합스부르크 황실과 귀족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피렌체는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양국 사이의 정치적 동요 없이 정치적인 통합을 성취할 수 있었다.

역으로 유럽 북동부의 합스부르크 문화권은 피렌체 도자기 공장에 그들의 시각 문화가 담긴 도자기 용품을 주문함으로써 이탈리아 피렌체로 합스부르크의 시각 문화를 역전파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피렌체의 지노리의 능숙한 상술과 빈 합스부르크 황실의 문화적 지배 전략이 만난 문화 외교의 승리였던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도자 기술과 빈 합스부르크 황실의 취향이 반영된 바로크 시대 도자기 제품들 속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들로는 인도풍 꽃문양과 ‚시누아제리 (Chinoiserie)’로 불리는 중국풍 이미지들이었다. 어느것이 어느것이라고 구분짓기 어려울 정도로 인도풍과 중국풍적 요소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유럽화된 동양풍 도자기 표면에는 대체로 화련한 색상, 비대칭적인 식물 문양,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인물 섞인 풍경화들이 즐겨 그려져 제작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17-18세기 바로크 유럽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특유의 패턴들도 발견되는데, 예컨대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애용되던 이른바 ‚그로테스켄베르크 (Grotesenwerk)’는 상상의 동식물 문양이나 신화적인 형상들을 양식화한 정교한 문양을 뜻하는데 이후 도자기 제작을 통해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으로 전파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유럽풍 꽃문양 (European flowers)’으로 불리는 꽃, 들딸기, 곤충 패턴도 네덜란드의 정물화의 유행과 새롭게 대두된 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서 부상한 문양이었는데, 특히 빈 뒤 파키에 공장에서 생산한 강열한 적색과 자주색 안료로 그려진 유럽풍 꽃문양 도자기들은 바로크 시대 도자기 중에서도 핵심 감상 포인트로 꼽힌다. 바로크 도자기는 그 어느 미술품이나 그렇듯이 작품과 관련된 배경과 소유자 및 출처가 그 작품의 진가를 더해주는 미술품이다. § All Images courtesy © LIECHTENSTEIN MUSEUM. Die Fürstlichen Sammlungen, Wien. Photo: Coppitz.

* 이 글은 본래 『오뜨』지 2006년2월호 아트뉴스 컬럼에 실렸던 글임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