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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Taxi, c. 1957 © Saul Leiter /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Taxi, c. 1957
© Saul Leiter /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See a mini-magazine on the photography of Saul Leiter  at penccil : SAUL LEITER

솔 라이터의 사진집 보기 penccil : SAUL LEITER

워커 에반스 – 20세기 포토저널리스트

워커 에반스 「곳간」 캐나다 노바스코샤, 1969-1971.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워커 에반스 「곳간」 캐나다 노바스코샤, 1969-1971.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WALKER EVANS – A Life’s Work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제공황으로 몰아넣었던 1929년 10월 29일 블랙프라이데이와 1930년대 미국인들의 빈곤과 피폐상을 사진기로 기록했던 ‘다큐멘터리 사진가’ 워커 에반스 (1903-1975). 특유의 냉철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대공황기 변화하는 미국의 풍경과 인물들을 포착했던 에반스의 사진 속에는 평범한 일상과 서민들을 보는 미묘하고 예민한 감성이 담겨있다.

「공공광장의 군중 (Crowd In Public Square)」 1930년대, 143 x 248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공공 광장에 모인 군중 (Crowd In Public Square)」 1930년대, 143 x 248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늘날 워커 에반스는 대체로 미국 공황기의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일상 생활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절망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 중반기.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본래 프랑스 문학에 심취해 문학번역가와 작가가 되길 희망하던 에반스가 1년 간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1927년, 한스 스콜레(Hanns Skolle), 폴 그로츠( Paul Grotz), 하트 크레인(Hart Crane) 같은 예술가들의 격려로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때는 젊은 워커 에반스가 25세의 나이로 직업 사진가가 된 해였다.

초기 시절 – 뉴욕 제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한들 출중한 선배 예술인들의 영향과 훌륭한 인맥 없이는 재능의 날개를 펼칠 수 없는 법. 이어서 1928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연줄이 되어준 링컨 키르스타인(Lincoln Kirstein)을 만나 MoMA와의 연줄을 구축한 중요한 해였으며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벤 샨(Ben Shahn)과 우정을 나누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 여류 사진가 베레니스 애벗(Berenice Abbott)을 통해서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가 외젠느 아제(Eugène Atget)와 아우구스트 산더(August Sander)의 작품세계에 접하게 된 그야말로 분수령적 시기였다. 이에 기반해 에반스는 자신의 사진작품과 평소 갈고닦던 문필 재주를 활용한 시집 『The Bridge (다리)』 (하트 크레인 저)를 1930년 출간했고, 곧이어 1931년에 빅토리아풍 건축을 사진으로 기록한 에세이집 『사진의 재등장(The Reappearance of Photography)』을 출간했다.

1932년 그는 뉴욕의 갑부 올리버 제닝스의 제안을 받아 그와 함께 요트를 타고 4개월 동안 타히티 섬으로 가 35mm 영화를 찍고 돌아왔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빈부차가 전에 없이 더 컸던 경제공황기, 전에 없이 화려하고 개인적인 향락추구에 정신없던 미국 한량계급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에 내면적 갈등을 느꼈던 워커 에반스는 이후 이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거리나 농가로 눈을 돌렸다.

「의류가게 바깥에 서 있는 젊은 여인 (Young Women Outside Clothing Store)」 1934-35년, 114 x 184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의류가게 바깥에 서 있는 젊은 여인 (Young Women Outside Clothing Store)」 1934-35년,
114 x 184 mm. Lunn Gallery Stamp (1975)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반스의 작업을 눈여겨 본 경제주간지 『포춘(Fortune)』 은 워커 에반스에게 쿠바로 여행하여 사진을 찍어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1933년 독재자 제라르도 마카도 축출을 위한 내전이 벌어진던 쿠바에서 찍어 온 사진을 모아 1934년 칼스턴 빌즈(Carlston Beals) 저 『쿠바의 범죄(The Crime of Cuba)』라는 책 출간에 기여했으며, 뉴욕 근대미술관은 이 쿠바 사진들을 모아 『19세기 주택 사진전(Photographs of 19th Century Houses)』을 기획해 워커 에반스의 사진 39점을 전시에 포함시켰다. 이 쿠바 사진취재를 통해서 에반스는 짧게나마 헤밍웨이를 만나 알게 되었다고 알려진다.

뉴욕 근대미술관에서의 성공에 힘입어서 1935년, 워커 에반스는 미국 연방 농업안정청(FSA: 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의뢰를 받고 공황기 미국 농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사진가로 일했다. 이 시기의 작업은 에반스를 지금까지도 미국 대공황기 사진가로 이름을 남기게 해준 프로젝트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뉴욕 근대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이번에는 『아프리카 흑인 미술(African Negro Art)』이라는 전시를 위해 미국 남부로 여행하며 미국의 흑인 인구들의 생활상을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 넉넉한 수고료는 물론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의 근대미술작품과 동일 선상에서 전시되었던 명예로운 순간이었다.

이어서 1936년 미국 남부 농촌의 빈곤을 고발하는 특집 기사 취재를 위해 제임스 아지 『포춘』 지 편집장과 함께 알마바마 주 헤일 카운티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기사는 잡지기사로서는 부적합하단 판정을 받고 보판되었으나 결국 『Let Us Now Praise Famous Men)』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백인 농촌가족들의 쓰라리고 고달픈 빈곤생활상을 담담하고 냉철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냉철한 관찰자로서의 사진기록작업이라고는 하나 정부 위탁을 받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사진을 생산해야했던 그는 급기야 “정치는 절대로 그만!”이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워커 에반스는 연방 농업안정청 수주 사진작업은 1938년를 끝으로 그만두었다.

「팝스트 블루 리본 광고판(Pabst Blue Ribbon Sign)」 일리노이주 시카고, 1946년.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팝스트 블루 리본 맥주 광고판(Pabst Blue Ribbon Sign)」 일리노이주 시카고, 1946년. Collection of Clark and Joan Worswick © Walker Evans Archive,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농업안정청 일을 접고 난 후 워커 에반스가 사진 렌즈를 들이댄 주제는 뉴욕 지하철이었다. 혼자서 커다란 카메라를 지하철 승객들에게 들이대었다간 따귀를 얻어맞기 십상이던 이 시절. 에반스는 친구 헬렌 레빗과 함께 두 승객인척 돌아다니면서 몰래 카메라를 찍는 수법을 고안했다.

에반스는 자그마한 35mm 콘탁스 카메라의 뷰파인더만 살짝 옷매우새 사이로 내밀어 코트나 자켓 속에 숨기고 셔터를 케이블에 소매 속으로 연결시켜 몰래 찰칵찰칵 명장면들을 잡아냈다.

인물 사진이란 “스튜디오 안에서 모델을 앉혀놓고 조명과 연출을 가미해 찍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 인물사진의 원칙을 거부한 미학적 반항이었다”고 에반스는 훗날 회고했다.

제임스 아지(James Agee)와의 인연 덕택에 에반스는 1945년부터 1965년까지 『포춘』 지에서 정식 사진기자로 일하며 이 잡지의 모든 사진과 편집을 책임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지긋지긋한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후 서방세계는 전에 없는 경제재건과 새로운 문화로 흥청되기 시작했다.

사진예술과 현실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었던 포토저널리즘은 그에게 매우 적합한 작업이었다. 20세기 후반, 전후 경제부흥과 포스트모던 풍요의 시대가 되자 특히 에반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지의 사진기자로 변신해 대서양 건너편 런던으로 가 일하면서 영국적 삶에 푹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영국, 스위스, 캐나다를 여행하며 미국 바깥의 세상을 경험하며 작업했던 그의 고요적막한 분위기의 흑백사진 작품 세계는 마지막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28년부터 사망한 해인 1974년까지 워커 에반스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200여점을 선별해 공개하는 전시회 『Walker Evans – A Life’s Work』가 베를린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에서 2014년 7월25일부터 11월9일까지 열린다. Photos courtesy: Martin-Gropius-Bau, Berlin.

스탠리 큐브릭의 눈

EYES WIDE OPEN – STANLEY KUBRICK AS PHOTOGRAPHER

“그의 눈은 짙고 촛점이 분명했으며 꿰뚫듯 날카로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내 크리스티안느 할란(Christiane Har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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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Kubrick, 쇼걸 로즈머리 윌리엄스의 사진을 찍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Showgirl – Kubrick photographing Rosemary Williams), 1949.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인류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20세기 영화사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그의 대표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2001: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issey)》(1968년)《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년)《아이스 와이드 셧(Eyes Wide Shut)》(1999년)을 비롯해 큐브릭은 완벽한 영화 스토리라인을 구축했던 전설적인 영상 이야기꾼으로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어릴적부터 학교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툭하면 결석하고 학교 성적이 너무 나빠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이 되자 갈 수 있는 대학이 한 곳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 지원도 할 자격도 안될 지경이었다고 그는 1965년11월27일 제러미 번스타인과 나눈 76분 짜리의 『뉴요커(The New Yorker)』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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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 로키 그라치아노의 초상(Rocky Graziano – Portrait), 1947.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이미 추축군에 밀려 주춤거리고 있을 시기. 거의 꼴찌로 고등학교에서 벗어난 큐브릭은 같은 또래 남들이 전쟁에 징병되어 군대를 가고 학자금 빚을 내어 대학에 진학하고 편한 오피스 직장을 찾느라 허둥대며 경쟁하고 있을 동안 자기만의 열정을 키우고 있었다.

그가 열 세살 나던 해 아버지가 사준 그라플렉스 카메라로 늘 사진찍기를 해왔던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룩(Look)』 격주간 잡지에서 프리랜스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직업 세계로 뛰어들었는데, 때는 공자가 말한 남자에게는 ‘지학(志學)’의 나이를 바로 뒤로 한 꽃 같은 나이 16세.

1945-50년 이 미국 시사 매거진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동안 청년 큐브릭은 나중 영화감독이 될 때를 대비하며 날카로운 눈과 카메라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에 큐브릭은 “내가 원치않는 것은 찍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설적인 영화감독은 한 번도 정식 영화 학교나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감독이었던 만큼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강한 자기의지와 독립적 성격이 담겨있다.

5년 동안 사진을 기고했던『룩』매거진 시절, 피사체의 성격과 본질을 포착하고 그 모든 요소들은 분위기와 타이밍에 적절하게 포착한 후 독자적인 내러티브로 발전시키는 큐브릭 특유의 이야기 만들기 수법에 자양분 역할을 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룩』매거진에서 몸담고 있던 마지막 해로 접어들 무렵, 큐브릭은 전에 없이 더더욱 비일상적이고 외로운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개인들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처절한 외로움, 알 수 없는 운명과 이에 맞부딛힌 20세기 인간적 조건을 탐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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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Kubrick, 창가에서 대본을 외고 있는 여배우 벳시 폰 퓌르스텐버그(Betsy von Fürstenberg – Reading a script in the windowsill), 1950. Courtesy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Gift of Cowles Communications, Inc. © SK Film Archives, LLC.

이번 비엔나 쿤스트룸에서 열리는 『아이스 와이드 오픈(Eyes Wide Open- Stanley Kubrick as Photographer)』 전 (2014년 5월8일-7월13일)은 큐브릭이 전설적인 영화감독이 되기 전 그의 예술적 뼈와 살에 영양분 – 그리고 창조를 향한 자유의지와 독립성 – 을 주었던 사진가로서의 삶과 작업을 재조명해 보면서 창조인의 위대한 창조력과 창조적 삶이란 이 가치관 추구를 향한 한 편의 여정에 다름아님을 시사한다.

《아이스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을 마지막 작품으로 끝내고 난 후 70세의 나이로 잠 속에서 세상을 떠난 스탠리 큐브릭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내내 그 특유의 소년같은 가볍고 명랑한 미성의 목소리 – 그리고 청명한 정신력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푸릇푸릇 젊은 나이의 큐브릭이 군대로 징병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통의 광기 통으로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틀에 밖힌 제도권 기초 교육과 대학 교육 체제로부터 세뇌당하지 않아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빚어지는 큰 실수는 아이들에게 분별없이 아무것이나 가르치고는 성적이 나쁠까봐, 학급에서 뒤떨어질까봐 무서워 공부하도록 만드는 공포를 기본 동기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

얼마나 더 여러 케이스의 특출난 인물들이 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던 모범생도 아니었으며 대학 졸업증을 받은 고학력도 아니었음이 밝혀져야, 또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실제 인생살이에서는 줄줄이 실패를 면치 못하고 자기아집에서 못벗어난채 허우적대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수두룩함을 증명해야 현대인들은 자식들을 제도권 교육체제라는 족쇄로부터 해방시킬 것인가? 명배우 말론 브란도가 큐브릭을 묘사했듯이 창조적 마인드란 배운 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소화시킨 것을 자기만의 시점에서 재창조할 줄 아는 능력인 것을. All images courtesy: BA-CA Kunstforum, Vienna.

Paris Photo 2013

파리 포토 2013 페어 올해로 3회를 맞아 11월 14-17일4일 동안 파리 제8구역에 위치한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거행된 파리 포토(Paris Photo) 사진 박람회는 사진예술 애호가, 진지한 사진 컬렉터, 사진예술가 지망생들이 한 자리에 몰려들어 과거의 명작과 최신 현대미술 트렌드를 조명하는 사진분야 박람회 최고급 연례행사다.

19세기말 사진기의 발명과 더불어 실험된 사진 예술의 역사는 회화나 조각 보다 그 역사는 훨씬 짧지만 기술과 산업생산의 발달, 사진기의 대중화, 대중의 접근 용이성 때문에 오늘날 사진찍기 활동은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활동이 되었다. 영감과 정열만 있으면 누구든 사진가가 될 수 있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잘 찍어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올해 파리 포토 페어에서 전시된 수많은 근현대 사진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예술성 못지 않게 높은 판매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고된 20세기 사진 명인들의 빈티지 명작 사진작들을 골라보았다. Images courtesy of Paris Photo.

두 젠준의 바벨탑 세상

DU ZHENJUN. BABEL WORLD

인류역사 속에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 전설적 건축물중 하나 바벨탑(The Tower of Babel). 과연 바벨탑의 존재는 사실이었을까 허구였을까, 과거에 존재했을까 미래에 존재할 것인가, 역사적 기록일까 인간 상상력에서 비롯된 예견일까?

Du Zhenjun. Babel World - An exhibition at the ZKM | Media Museum. Europa, C-Print, 2010, 180x240cm © Du Zhenjun.

Du Zhenjun. Babel World – An exhibition at the ZKM | Media Museum.
Europa, C-Print, 2010, 180x240cm © Du Zhenjun.

중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중 한 사람인 두 젠준(Du Zhenjun, 1961년 상하이 생)  교수가 독일 칼스루헤 미술과 비이어 센터(ZAM Karlsruhe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에서 『바벨탑 세상(Babel World) 』 전을 8월 4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중인 작품들은 사진미술가 두 젠준이 작업하고 있는 가장 최근작들. 초대형 인화지에 인쇄한 이 사진들은 세상을 고대 바벨로니아의 신화속 건축물인 바벨탑에 비유하여 디스토피아 상태에 빠진 현대 도시 풍경과 그 속에서 기괴한 행동모드 속에 허우적대는 현대군중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벨탑 전설은 현실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처한 위험을 경고해주기 위해 역사와 함께 재구성되고 각색되고 업데이트되어 전해지는 한 편의 설화라고 본다.  바벨탑은 경고시스템이다. 본래 수많은 언어와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는 환경 속에서 실존적 위험에 처한 유일신 종교가 처한 상황을 경고하기 위한 이야기였을 것 같다. 두 젠준은 종교적 신화에 담긴 정치적 내용을 지극히 통속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작품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두 젠준은 종교적인 선언을 하려지도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바벨이란 종교적 심볼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위기상태(crises of civilization)에 대한 경고이자 오늘날의 사회적 파멸 또는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광경을 파노라마다.

컴퓨터를 활용해 구성된 그의 초대형 포토몽타쥬 사진작품들은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의 공포와 판타지 회화를  바라보는 듯한 감흥을 자아내기도 한다. “글로벌리즘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냉소적 타이틀을 붙여줘도 좋을 현대사회 불지옥 광경이다.

Du Zhenjun. Babel World - An exhibition at the ZKM | Media Museum Walls, C-Print, 2011 variable dimension, 160x120cm, 240x280cm © Du Zhenjun

Du Zhenjun. Babel World – An exhibition at the ZKM | Media Museum
Walls, C-Print, 2011 variable dimension, 160x120cm, 240x280cm © Du Zhenjun

중국 상하이 대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한 후 199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창작활동을 해 오고 있는 두 젠준은 고국 중국을 떠난 직후부터 전통적인 회화 쟝르를 뒤로 하고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매체로  전향했다.

수퍼 터보 파워와 스피드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와 글로벌화 현상이 낳은 디스토피아적 사회 환경 이미지들을 빌어서 두 젠준은 물리적 정신적 정체적 감옥에 갖쳐 허우적대는 딱한 현대 군중의 모습을 무자비하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표현한다.

사진가 두 젠준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 또는 예언를 전하려 하는걸까? “별다른 의도는 없다. 난 단지 내가 느낀 것 – 두려움, 흥분, 환상, 광란 등- 을 시각화하는 것일뿐이다.”

전시 제목: 두 젠준 – 바벨탑 세상 (Du Zhenjun. Babel World) | 전시 기간: 2013년 2월9일–8월4일 | 전시 장소: ZKM | Media Museum, Karlsruhe

 

소비사회 속 원과 각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ANDREAS GURSKY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눈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상케 하듯 원거리에서 조망하듯 바라보는 파노라마식 시점 구성과 근엄한 분위기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은 흡사 번쩍거리듯 미화된 건축풍경과 실내공간이라는 ‘원’을 배경으로 얼굴 없고 무기력한 미물로 전락한 인간 군상들이 ‘각’을 이루며 사진 속 선상을 맴도는 소비 사회를 다루고 있다.

Andreas Gursky. Paris, Montparnasse. 1993. Chromogenic color print. 6' 8 3/4"x 13' 1 1/4" (205 x 421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Paris, Montparnasse. 1993. Chromogenic color print. 6′ 8 3/4″x 13′ 1 1/4″ (205 x 421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현대 사진예술계의 슈퍼스타로 전세계 화랑가에서 그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제프 월(Jeff Wall, 캐나다)와 더불어 구르스키가 초대형 컬러판 인화 사진 작품을 사진예술계에 편입시키기 시작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들은 사진 예술하면 의레 A4 크기 내외 소형 흑백사진을 예술이라고 알고 지내왔다. 작품의 규모와 예술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을 찾는 일반 관객들은 언제부터인가 대형 회화 캔버스와 사진 인화지가 제공하는 규모적 압도감에 익숙해져 버렸다.

평균 폭 2.5미터 안팎, 크게는 가로세로 길이 미터에 이르는 구르스키의 초대형 컬러 사진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작품 속 직선과 곡선에 흐르는 광택처리와 세심히 구성한 것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구도에 일종의 장대함을 느낀다. 흡사 번쩍거리듯 미화된 건축풍경과 실내공간이라는 ‘원’을 배경으로 얼굴 없고 무기력한 미물로 전락한 인간 군상들이 ‘각’을 이루며 사진 속 선상을 맴돌며 공간을 소비한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를 연상케 하듯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식 시점 구성과 근엄한 분위기는 비(非)개인성과 익명성을 주축으로 하던 독일 1950년대 사진 미학의 유산이다.

Andreas Gursky. 99 Cent.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6 ' 9 1/2" x 11' (207 x 337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99 Cent.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6 ‘ 9 1/2″ x 11’ (207 x 337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기하학적이면서 개인을 압도하는 자연 경관이나 건축 내외 공간을 배경으로 배치된 인간상은 더없이 작고 고독한 개체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사진 작품을 두고 분위기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를, 방안지처럼 반복되는 격자 이미지는 196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언급한다. 도쿄, 뉴욕, 파리, 사울파울루, 카이로, 상하이, 로스앤젤레스, 스톡홀름, 홍콩 등을 부지런히 여행하며 작가는 현대 사회의 시대상을 모색한다.

호텔 로비, 아파트 건물, 대형 스토어, 증권거래시장에 이르기까지 하이테크 산업과 교활한 시장 논리가 오가는 곳을 색과 세부 묘사를 통해 현기증 날 만큼 생생하게 포착한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년)와 『99센트』(1999년)에 보이는 격자 이미지에서는 판에 박힌 사각형 생활 공간에서 모여 사는 인간 개개인이, 대량 인쇄된 포장 상자에 담겨 슈퍼마켓과 편의점에 내다 팔리는 화학 세제와 크게 대를 게 없다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상하이』(2000년)가 내뿜는 금색 찬연한 누부심과 층층으로 쌓인 아찍한 원형 복도 광격에서 공허감과 무기력감이 엄습해 오는 건 왜일까? 언뜻 보기에 호화 빌딩처럼 보이는 이 내부 공간에서 과장된 빛과 인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최근 10년간 활용해 온 디지털 기법 덕택이다. 대형 인화를 위해서 5 × 2.178 감광한 카메라만을 사용한다는 구르스키에게 스캐닝, 인화 작업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이미지 편집과정은 중요한 기법이다. 특히 디지털 작업에서는 픽셀 하나 하나를 정성껏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수백만 개로 반복되는 미세한 사각형 픽셀들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며정리할 때 이미지 데이터 처리에 바쁜 마이크로 칩들 사이에는 전자 회로가 돌고 돌아 사격형 픽셀을 미묘하게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Andreas Gursky. Shanghai. 2000. Chromogenic color print. 9' 11 5/16"x 6' 9 1/2" (280 x 200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Andreas Gursky. Shanghai. 2000.
Chromogenic color print. 9′ 11 5/16″x 6′ 9 1/2″ (280 x 200 cm). Courtesy Matthew Marks Gallery, New York, and Monika Sprüth Galerie, Cologne © 2001 Andreas Gursky.

뉴욕 타임즈 스퀘어를 이미지화한 『타임즈 스퀘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금색 하이라이트와 번쩍이는 화려함은 상업화된 이미지 세계를 지나쳐 미래의 사이버 이미지 세계까지 넌지시 암시하는 듯하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시대정신을 대벼나는 사진작가로 주목받게 된 데에는 그의 사진이 상업사진의 기술적 세련성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1990년대의 키워드가 결합된 결정체라는데 있다.

이미 어릴 적부터 유명한 광고 사진 작가이던 아버지 밑에서 상업사진의 기술을 연마한 그는 1970년대 말 에쎈에서 슈타이너 교수의 지도로 당시 서독 최고의 전통적인 사진교육을 받았고, 다시 1980년대 초에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밑에서 문하생 생활을 하며 사진공부를 계속했다.

미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전에서는 작가가 1984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사진 작품 45점이 전시되며, 뉴욕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5월 15일까지 계속된 후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파리 퐁피두 센터,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치례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 이 글은 SK Telecom 사보 《열린세상》 2001년 5/6월호에 실렸던 안드레아 구르스키 현대사진 전 리뷰를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빔 벤더스의 낯설고 적막한 곳들

WIM WENDERS PLACES, STRANGE AND QUIET

나는 여행을 많이 하다보니, 또 정처없이 걸어다니면서 길 잃고 헤메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보기 드물고 묘한 장소에 도달하곤 한다. 나를 그런 곳으로 인도하는 레이더라도 있는양, 나는 언제나 낯설게 적막하거나 적막하게 낯선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빔 벤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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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야외 극장(Open-Air Screen)》 이탈리아 팔레르모, 2007년 © Wim Wenders.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도심 제1구역 중앙부에 자리한 전통적인 자일러슈테테 거리(Seilerstätte) 화랑가에 이어, 199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초엽 급격히 새로 조성된 현대미술 화랑 클러스터 슐라이프뮐 거리(Schleifmühlgasse)가 현대미술 인사이더들 사이의 아지트 겸 트렌디 스폿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새로 이주해 온 아티스트들의 아텔리에와 화랑들로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 어느새 아무리 구물이 되거나 버려진 도시 구석일지라도 부동산 지가가 오르고 주변 상업이 번창하는 새 트렌디 스폿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피해 최근들어 젊은 예술인들과 기획자들은 또다시 기성 화랑가에서 벗어나서 한결 저렴한 지가와 임대료, 역동적인 주변 환경과 다양한 인구지도를 찾아 새 일터와 전시공간을 찾고 있는 추세다. 아주 최근인 2012년 초여름, 현대사진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오스트리히트 화랑 (Ostlicht. Galerie für Fotografie)은 바로 그런 움직임의 예로, 빈 제10구역에서도 유독 유명한 옛 앙커 빵 공장(Ankerbrot AG) 단지 건물을 개조해 새 화랑 둥지를 틀고 6월 4일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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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오스트리히트 현대사진 화랑 전시장 광경. Photo: Marco Pauer.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중심부로부터 남쪽에 자리해 있으며 19세기 이후부터 각종 공장과 산업 시설이 옹기종기 들어차기 시작했던 이유로 해서 전통적으로 육체노동자들이 많이 이주해 와 거주하던 제 10번 구역. 일명 파포리텐(Favoriten) 구역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곳에는 근대식 도시개발 방식을 따서 도로는 격자구조로 거주용 주택은 근대기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따서 개발된 곳이다.

독일의 전설적인 영화감독이자 사진가 빔 벤더스 (Wim Wender)가 30여년 동안 과거 동독, 호주, 아르메니아, 일본을 여행하면서 찍어 둔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 40여점을 선별해 전시하는 《빔 벤더스 – 낯설고 적막한 장소들 (Wim Wenders – Places, Strange and Quiet)》전은 대부분 인간들이 더 이상 눈을 돌리지 않는 버려지고 잊혀지고 알려지지 않는 장소의 한 구석을 담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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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미국 몬타나 주 버티에 있는 한 골목길 풍경(Street Corner in Butte, Montana)》 2003년. © Wim Wenders. 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벤더스는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고 한다.

사진가 벤더스의 눈과 카메라를 통해 공간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주변으로 떠밀리고 잊혀져 곧 사라지고 없어질 사물과 풍경에 대한 멜랑콜리한 시학이자 마지막 물리적 기록이다. 일찍이 1980년도 초엽, 빔 벤더스는 서부 미국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다니면서 그의 간판급 명작 영화 《파리, 텍사스 (Paris, Texas)》를 촬영할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했었다.

1970년대 “신 독일 시네마”의 기수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현대 영화 감독으로서 해 온 영화작업과는 반대로 벤더스는 사진 작업에 임할 때 만은 “다소 구식”이라 여겨지는 아날로그 기술을 고집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진 작업을 하면 나와 내가 사진으로 찍어 온 장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 없는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 요즘 디지틀 사진가들의 작업은 아날로그 사진 기술과는 전혀 다른 작업과정을 거친다. 요즘 사진가들은 ‘이미지 프로듀서’로서 일종의 새로운 부류의 화가라 해야 맞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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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카니발 회전차 (Ferris Wheel) (Reverse Angle)》 아르메니아, 2008년 © Wim Wenders.

“…내 사전에 따르면, 그런 사진 작업은 더 이상 사진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새 유행 속에서도 나 같은 부류의 사진가들이 계속 아날로그 사진작업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향수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촬영한다는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식 사진작업은 모든 것이 쉴틈없이 사라지고 말 것에 저항하는 끊임없는 노력 활동이다.”

《빔 벤더스의 낯설고 적막한 장소들》사진 전시는 본래 브라질 사웅파울로 미술관 (Museu de Arte de São Paulo)에서 출발 (2010년10월21일)한 이래 독일 함부르크 팔텐베르크 컬렉션 (2012년 4월14일-8월19일)으로 순회전시 되었다. 한 편의 사진집 카탈로그로도 출간되어 있다. 《Wim Wenders Places, Strange and Quiet》(Hatje Cantz, Ostfildern, 2011 124 pages, 37 colour images, 8 folding panels, hardcover ISBN 9783775731485).

전시 장소: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히트 현대사진 화랑 (Ostlicht. Galerie für Fotografie) | 전시 기간: 2012년 10월6일-2013년 1월9일까지. Photo courtesy: Ostlicht, Wien.

에즈라 스톨러가 보여주는 흑백의 건축 공간

에즈라 스톨러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명물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의 실내 천정을 촬영한 것. 1959년 작. Silver gelatin pring. Ezra Stoller © Esto.

에즈라 스톨러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명물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의 실내 천정을 촬영한 것. 1959년 작. Silver gelatin pring. Ezra Stoller © Esto.

EZRA STOLLER PHOTOGRAPHY

에즈라 스톨러의 건축 사진

TWA 공항 터미널을 촬영한 사진작. 본래 아이들와일드 공항이라 불리던 곳으로서 현재는 K.F.케네디 공항으로 바뀌었다. 핀란드계 미국인 디자인 에에로 사아린넨 설계. 1962년 작. Ezra Stoller © Esto.

TWA 공항 터미널을 촬영한 사진작. 본래 아이들와일드 공항이라 불리던 곳으로서 현재는 J.F. 케네디 공항으로 바뀌었다. 핀란드계 미국인 디자인 에에로 사아린넨 설계. 1962년 작. Ezra Stoller © Esto.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름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출간되어 온 여러 신문 및 대중 매체와 책을 통해서 작품을 알려온 사진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에즈라 스톨러(Ezra Stoller). 1915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뉴욕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한 후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8년 부터 본격적인 프리랜스 사진업으로 뛰어들어 직업적인 사진가 활동을 시작했다.

제2차 대전을 통해서 경제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미국에서 에즈라 스톨러는 사진업에 뛰어들자마자 건축과 디자인 사진 분야에 관한 한 독보적인 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니 시운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

1940년대 중반 이후 향후 2,30여 년 동안 에즈라 스톨러가 카메라로 포착하지 않은 미국의 주요 건축물은 거의 없다했을 만큼 그의 활동은 광범하고 두드러졌다. 과거 미국 『뉴욕 타임즈』 지의 건축 평론가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가 „에즈라 스톨러 만큼 일반 대중들이 20세기 근대기 건축물을 보는 눈을 철저하게 길들였던 사진가는 전에 없었다“고 평가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른바 ‚아메리컨 드림’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는 가운데 미국이 풍요의 사회로 진입할 무렵이던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톨러는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고려할 줄 알고  건축가, 편집자, 사진 외뢰자가 의도한 비젼을 잘 체득하여 사진 속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능력이 유난히 탁월했던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필립 존슨의 공동 설계로 지어진 뉴욕 시그램 빌딩. 1958년 촬영. Ezra Stoller © Esto.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필립 존슨의 공동 설계로 지어진 뉴욕 시그램 빌딩. 1958년 촬영. Ezra Stoller © Esto.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제일 위의 사진 이미지], 미스 반 데어 로헤(Mies van der Rohe),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같은 거장 근대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건축물 사진 촬영을 하는데 만큼은 에즈라 스톨러 만한 사람이 없다며 고집해 그를 사진가로 고용했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20세기 전반기 미국 대도시들에서 강하게 불어닥쳤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 스톨러는 흑백으로만 사진을 촬영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을 비롯해서, 시카고에 있는 에드가 카우프만의 개인 주택인 폭포수 위의 집 폴링 워터(Falling Water),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필립 존슨이 공동 설계한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에에로 사아린넨(Eero Saarinen)이 설계한 역작 뉴욕 TWA 공항 터미널, 폴 루돌프 (Paul Rudolf)가 지은 예일대학 미술건축대학, 그리고 루이스 칸(Louis Kahn)의 소오크 연구소(Salk Institute) 등은 하나같이 사진가 스톨러의 눈과 카메라를 통해서 포착된 20세기 전반기 아메리카의 상징적인 건축물들이다.

2004년 이이콘적 흑백 사진으로 20세기 건축물을 바라보는 근현대인들의 시야를 재정의해 준 사진가 스톨러의 타개를 기념하여 그의 건축 사진 세계를 한 눈에 경험할 수 있는 전시 『에즈라 스톨러』 회고전은 [2004년] 12월 19일까지 미국 윌리엄즈 대학 미술관 Williams College Museum of Art에서 계속된다.

* 이 글은 본래 LG 데코빌 사보 『공간사랑』지 2004년1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