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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술 전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EXHIBITION REVIEW

소실되어 오래 잊혀져 있다 여겨졌다가 우연히 발견된 21세기 최고의 미술 발굴품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2017년 11월 14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4천 5백 3십 만 달러(약 5백 1십 억 원)에 낙찰되어 경매장 미술품 낙찰 가격 신기록을 세웠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초상 (흰 담비를 안은 여인)> 1489-90년경 © Princess Czartoryski Foundation. The National Museum, Cracow.

Leonardo da Vinci: Painter at the Court of Milan 지난 11월초부터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에서는 화재의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회가 막을 올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밀라노 궁정화가⟫ 회화전이다. 저명한 국제 일간지와 미술전문지 기자들은 세기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가장 종합적이고 우수한 다 빈치 전시회라며 흥분했다.

이를 보려고 전세계서 모여든 관람객들은 싸늘한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매표소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루었다. 전시회 시작 수일 전부터 예약입장권이 매진되는 폭발적인 호응을 틈타 원가 16파운드 하는 입장권을 대량 수매해 4백 파운드에 되파는 약싹빠른 암표상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시대를 앞선 발명가, 과학자, 탁월한 제도공, 그리고 최근 동성애 예술가로, 또는 댄 브라운의 상상추리소설 속 앤티크라이스트 음모자로 다양하게 조명되어 온 다 빈치가 이번 런던 전시회에서는 궁중화가로 재평가받는다. Continue reading

팝업 호텔 체험 시대

POP-UP CHIC

2012년 8월 열린 런던 올림픽에 맞춰 개장을 기획한 A Room for London은 퀸 엘리자베스 홀 지붕 위에 위치해 경관이 특별하다. Photo courtesy: Living Architecture.

팝업 레스토랑, 팝업 가판대, 팝업 부티크. 예상치 않은 장소에 불쑥 나타나 독특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른바 팝업숍(pop-up shop)들이 최근 몇 해 구미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이제는 팝업 리테일(pop-up retail)로 불리며 최신 소매 트렌드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에 걸친 한정된 기간 동안 소비자들을 만나고는 사라져 버리는 임시성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하고 깊은 기억을 새겨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의류와 외식업계 마케터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 리테일 전략이다.

천편일률적인 대형 쇼핑몰 보다는 거리의 아담하고 일시적인 팝업숍이 소비자의 감성과 기억에 깊이 어필한다면, 미지의 도시나 자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빤한 호텔 체인 보다는 팝업 호텔에서 보다 각별하고 추억깊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색다르고 독특한 호텔에서 하루중 가장 소중한 시간 – 휴식과 프라이버시 – 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그같은 팝업 호텔(Pop-up hotels)들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어 트래블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2007년 파리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된 팝업 에벌랜드 호텔의 모습. Photo © Lang/Baumann.

설치미술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팝업 호텔 컨셉은 벌써 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에벌랜드 호텔(Everland Hotel)이 2002년에 시도한 팝업 호텔 실험은 사비나 랑(Sabina Lang)과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두 미술가의 설치미술 프로젝트였다.

2002년 첫 설치장소는 스위스 이벌든(Yverdon)에 자리한 에벌랜드 호텔로, 컨테이너 개조하여 노이챠틀(Lake Neuchâtel) 호수를 내려다보도록 설계한 원룸 호텔방을 소개했다. 두 미술가는 이어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eipzig) 지붕 위에 이 팝업 호텔 객실을 설치해 전시(2006년6월-2007년9월)했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2007년10월-2009년 봄)했다.

한편 해외 관광객이 많아진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프랑스 건설업체 아빌모(Abilmo)가 2008년에 처음 소개한 조립식 팝업 호텔방 컨셉은 특히 여름휴가철 유럽 페스티벌 애호가들과 배낭족들을 겨냥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팝업 호텔을 본격 상업화한 업체는 영국 트래블로지(Travelodge UK) 호텔 체인. 트래블로지는 2008년에 영국 런던 교외 억스브리지(Uxbridge)와 히스로(Heathrow) 두 도시 역세권에 선박용 컨테이너를 층층히 쌓아 객실로 전환한 팝업 호텔을 개장했다.

비즈니스 컨퍼런스, 페스티벌, 휴가철 등 방문객 수가 집중적으로 느는 성수기에 임시적로 건설해 임시 숙박업소로 운영하고 비수기가 되면 철거한다는 컨셉이다. 조립식 컨테이너 객실을 층층히 쌓아 한 채의 호텔 건물로 완성하는데에는 길어야 12주. 기존 식건물 시공에 비하면 공사기간이 짧고 건설비와 에너지 소비비용도 절감된다는 장점 때문에 에코 디자인에서 눈여겨 보는 대안 건축 모델이기도 하다. 트래블로지 호텔측은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동안에도  팝업 호텔을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전세계를 여행하며 모바일 캠퍼들에게 올림픽, 월드컵, 문화 페스티벌 애호가들을 위해서라면 호텔 모빌(Hotel Movíl)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짐을 풀었다 쌌다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와 시골길을 달리며 호텔방의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물 트럭과 호텔방이 하나로 합쳐진 호텔 모빌은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에 친숙하고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안성마춤이다. 스페인 업체가 개발한 이 ‘움직이는 호텔’은 총2층에 11개 객실을 수용할 수 있으며 객실별 욕실, 대형평면 TV, 무선인터넷, 럭셔리 인테리어 액세서리가 완비된 5성급 부티크 호텔 기준을 갖췄다. 호텔 모빌의 대당 단가는 미화 5천만 달러, 1주일 대여료는 미화 8,000달러다.

건설과 철거가 손쉬운 팝업 호텔 특유의 장점에서 영감받아 반영구적인 호텔로 지은 곳들도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엠호텔(M-Hotel)은 선박용 컨테이너와 붙박이식 조립가구로 만들어져 현재 단기거주를 원하는 비즈니스맨이나 여행객들이 머무는 레지던스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출신 건축가인 팀 파인(Tim Pyne)이 설계한  엠호텔은 널찍한 침실과 오피스 공간이 하나로 융합된 스페이스 컨셉에 기초하고 있다.

각 방은 20피트 컨테이너 한대에 해당하는데, 전형적인 20피트 컨테이너는 길이 약 5.9미터 폭 약 2.3미터 높이 약 2.4미터 크기다. 킹사이즈 침대와 럭셔리 내장재와 악세서리로 갖춰져 있는 욕실, 그리고 고급 간이주방까지 충분히 소화하고 있어 작은 공간도 잘만 설계하면 얼마든지 넉넉한 공간으로 연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규모있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그런가하면 최근들어 팝업 호텔은 럭셔리화되고 있는 추세다. 잭스 캠프(Jack’s Camp)는 바로 그런 수퍼딜럭스 팝업 호텔의 대표적인 예다.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 근처  칼라하리 사막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잭스 캠프는 최고급 럭셔리 캠핑 텐트 경험을 선사한다. 럭셔리 호텔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언차티드 아프리카 사파리 사(Uncharted Africa Safari Co.)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회 행사를 맞아 개장한 후 현재는 아예 영구적으로 지속 운영하고 있다.

칼라하리 사막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자연 경관과 초호화 가구와 카페트, 46인치 플라즈마 스크린 TV, 24시간 남아공산 고급 와인과 바베큐 다이닝 서비스, 전용 헬기 서비스, 고고학 탐험과 사파리 워크 산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눈 많은 스위스 레 세르니에(Les Cernier) 마을에 위치한 화이트파드(Whitepod) 샬레는 이글루를 연상시키는 텐트와 현대식  인테리어를 결합시킨 숙박시설로 알프스 대자연과 호화 레스토랑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최근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The Merlion Pop-up Hotel)은 현대미술과 호텔을 접목시킨 새로운 숙박 경험을 시도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싱가포르 비엔날레(2011년 3월13일-5월15일)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과의 협동으로 미술과 호텔 객실이 하나로 합쳐진 메를리온 임시 팝업 호텔을 공개했다.

2011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행사에 맞춰 일본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가 설계해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Tatsu Nishi)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 상징동물을 건축자재로 포장하여 럭셔리 호텔 객실로 변모시켰다. 객실은 2인 이하 투숙만을 허용하며 하룻밤만 묵고 체크아웃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엔날레가 개막되기도 전부터 숙박 예약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호응이 컸는데, 비엔날레를 위한 미술전시작이기 때문에 이 행사 마감과 함께 철거될 예정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활용했다하여 벌써부터 화재가 되고 있는 팝업 호텔도 있다. 내년 개장을 앞두고 잇는 룸 포 런던(A Room for London) 팝업 호텔은 바로 그런 경우다. 다가오는 런던 2012 페스티벌(2012년 6월21일-9월9일)에 대비한 품 포 런던은 사우스뱅크 센터에 자리한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의 지붕 위에 2인용 원룸 객실로 지어질 예정이다. 데이빗 콘(David Kohn) 건축사무소가 건물설계를 맡고 현대미술가 피오나 배너(Fiona Banner)가 실내장식과 미술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어서 전세계서 방문할  건축디자인 애호가들의 순례 발길을 재촉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유리피데스는 “행복의 순간은 짧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정치가 로이 굿먼은 “행복이란 여행과 같아서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 담겨있다”고 했다. 범람하는 정보와 하이스피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현대 소비자들의 주의력은 나날이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팝업 호텔은 색다르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영원한 추억을 안겨줄 특별한 여행경험을 선사해줄 수있지 않을까.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2011년 5/6월호 vol. 14 206-7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크로노스』코리아판 보기.

문화재 이전인가 희대의 미술품 도난 사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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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갤러리 동쪽벽 광경. 세잔느의 『누드가 있는 풍경 (Les grandes baigneuses)』 캔버스에 유채 132.4 x 219.1 cm과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화가의 가족 (La famille de l’artiste)』 캔버스에 유채 1896년 작.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이전에 즈음하여

BARNES COLLECTION IN PHILADELPHIA

매년 여는 국제 예술 페스티벌 말고도 미국의 역사 도시 필라델피아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유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반스 재단 미술 컬렉션이다. 반스 재단은 故 앨버트 반스 박사가 평생 모은 주옥같은 미술품 컬렉션의 보금자리다. 현재 감정 시세 250억 달러 (우리돈 약 27조원)라는 막대한 가치의 미술품 총 2천5백여점 (그 중 회화의 비중은 800여점)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7월3일 반스 컬렉션은 문을 잠시 닫았다. 반스 재단의 허술한 재정관리와 근 10년에 걸친 법률 공방 끝에 반스 컬렉션은 지난 85년 넘는 세월 보금자리였던 메리온을 떠나 필라델피아 도심 서부 벤자민 플랭클린 파크웨이 거리에 지어질 새 건물로 이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7월초 반스 미술 재단이 내년 이전을 이유로 휴관을 선언하고 소장품 이전에 착수하자마자 구미권 미술계와 언론은 잔뜩 술렁댔다. 그토록 값비하고 그많은 수량의 국보급 미술품을 한꺼번에 옯기는 대이동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 적 없는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어느 작품을 몇 점 어느 트럭에 어떻게 무사히 운반하는가는 숨가쁜 헐리우드 첩보영화를 방불케할 만큼 극도로 비밀스럽고 조심스럽다. 미술품은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보다 운반 도중에 도난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디 그뿐인가. 혹 제아무리 도난범죄로부터 안전하다 할지언정 모름지기 미술품이란 매번 이동할 때마다 크고작게 내외적 손상을 받기 때문에 복원전문가들은 가급적 미술품의 이동을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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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르죠 데 키리코 (Giogio de Chirico) 『앨버트 반스 초상 (Portrait of Albert C. Barnes)』 캔버스에 유채 1926년 작품.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반스 재단에 대한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기 까지는  2009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도난당한 미술 (The Art of the Steal)』의 공이  컸다. 이 영화는 故 앨버트 반스 박사의 사유 미술 컬렉션의 설립의도를 묵살한채 이 컬렉션을 갈취하려 혈안이 된 필라델피아 시 정치가들과 주지급 재단 위원들의 탐욕과 음모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문화유산이 막강한 자산이 된 요즘, 반스 컬렉션의 소장품은 필라델피아의 문화적인 위신을 한껏 높여줄 뿐만 아니라 시정부가 추진하는 문화관광 산업 및 파생 수입원에 더없이 요긴한 밑천이 되어 줄것이라는 속셈이 깔려있다.

30대 말엽 미술 컬렉터로 변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스 박사의 본업은 화학자였다. 본래 약사가 될 생각으로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화학을 수학한 후, 1899년에 아가이롤 (Argyrol)이라는 기적의 여성용 청결제를 개발했다. 항생제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아가이롤은 임질로 인한 여성병과 신생아 실명을 예방해준 신약으로 각광받으며 큰 매출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반스 박사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마침 때는 유럽에서 다양한 미술 사조와 창조 운동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던 20세기 모더니즘 시대. 반스 박사는 직접 프랑스로 여행가 머물면서 당대에 내노라하는 아트 딜러와 거장 미술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작업실을 둘러본 후 손수 고른 작품만을 사들였다. 예컨대 피카소와 마티스는 딜러 거트루드 스타인을 통해서, 모딜리아니와 데 키리코는 폴 기욤을 통해서 대거 소장하게 된 화가들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당시 반스 박사는 일찍이 미래 거장을 꿰뚫어 볼 줄 알았던 탁월한 감식안을 갖춘 아방가르드 미술 컬렉터였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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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 재단 미술컬렉션 메인 갤러리 서쪽벽 광경. 위의 작품은 죠르쥬 쇠라 (Georges Seurat)의 『모델들(Poseuses)』, 아래 작품은 폴 세잔느 (Paul Cézanne)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반스 박사가 유럽을 여행하며 모은 미술작품들은 대체로 파리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계열 작품들이 백미로 꼽힌다. 르노아르의 그림 180여점, 세잔느 59점, 마티스 46점, 피카소 21점, 드가 7점, 고흐 7점을 포함하여 일부 전문가들은 반스의 소장품을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특히 세잔느가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5개 연작중에서도 반스 재단 소장품은 작품 규모가 제일 크고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쉽다” –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 (Eric Hoffer)가 이런 말을 했다. 반스 박사는 평소 성격이 퉁명스롭고 당시 필라델피아 교외에 살던 부유한 지주급 이웃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본직 약제사에서 미술 컬렉터로 변신한 앨버트 반스 박사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가 되어서도 자신의 소박한 출신을 한번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주옥같은 자신의 미술소장품을 흠모하던 콧대높은 미술계 인사들이나 사교계 방문객들의 관람요청에는 까탈스럽게 굴었지만 소시민 감상객과 학생들에게는 흔쾌히 전시실과 도서관 현관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한다.

반스 컬렉션 재단의 설립자 앨버트 반스 (Albert C. Barnes) 박사는 필라델피아 도심을 피해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교외 마을 메리온 (Merion)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가 폴 크레 (Paul Cret)에게 설계를 맡겨서 세기전환기 아르데코풍으로 디자인한 개인 저택을 1925년에 완공하여 소장품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반스 재단은 미술을 제정신으로 감상할 수 있는 미국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마티스는 말한 적이 있는데, 고즈넉한 교외에 펼쳐진 원예정원, 유럽풍 빌라 건축, 회화와 조각을 빼곡하게 나란히 배치시킨 전시 배열법은 반스 컬렉션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친밀하고 독특한 감상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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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우편배달부 (죠셉 에티엔느-룰랭) (The Postman (Joseph Etienne-Roulin))』, 1889년 작, 캔버스에 유채, 65.7 x 55.2 cm ©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미술작품의 진정한 소유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문화는 소수 특권층의 사유재산이라기 보다는 만인이 공유하는 공공적 유산이라는 개념이 널리 일반화되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국립으로 운영되는 박물관들이 무료입장제로 관객에 공개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생전 반스 박사가 자신의 미술 컬렉션이 길이 비영리 교육 재단으로 활용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힌 법적 유서를 남긴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단 창설자의 사유재산의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시정부가 재정적 부실을 핑계삼아 반스 컬렉션을 자의로 해체 이전한 후 관광명소로 만들기로 한 이 결정을 과연 단순한 문화재 보금자리 이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개인 문화유산와 운영철학에 대한 침해로 볼 것인가?

그래서 반스 컬렉션의 이주에 저항하는 반대 세력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반스 재단에서 미술사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과 회원들에 따르면, 재단의 도심 이전 결정이 반스의 소장품이 지닌 막대한 가치를 알아챈 필라델피아 시 정부와 지주들이 주도돼 반스 재단을 분산시키고 갈취하려는 본 의도를 은근슬쩍 감추기 위한 마케팅 조작에 다름아니라고 역설한다.

반스 컬렉션 소장품들이 새 반스 컬렉션 미술관 (Tod Williams Billie Tsien Architects 설계)으로 옮겨져 전시 채비를 갖추고 2012년 봄에 개장하면 반스 재단은 더 이상 교육의 위한 사유 문화재단이 아니라 유료입장제 시정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현재 공시가 1억5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원 반스 재단 건물은 다른 용도로 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약을 안은채 알보레툼 수목원 안에 지금도 호젓이 서있다. 우수한 문화재의 가치는 현시가로 매길 것이 아니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라는 인류 역사적 진실을 다시금 환기해 볼 것을 재촉하는 듯하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 (CHRONOS Korea) 지 2011년 9/10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미술품, 재산을 지켜주는 또다른 통화화폐

전쟁기에는 군사력, 평화기에는 문화력

사회학자 베블린(Thorstein Veblen)에 따르면, 모름지기 고귀한 신사란 토지, 부동산, 광산같은 유용한 재산보다 미술품처럼 ‘쓸모없는’ 대상에 돈을 잘 쓸줄 아는자라 했다. 부자에게 미술품 수집이란 즐겁고 우아하게 돈쓰는 방법중 하나다. 미술명품을 구입해 곁에두고 살면 시각적 쾌락과 영혼적 행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고상감 취향과 감식안을 주변에 과시할 수 있는 막강한 사교적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고대로마 황제와 몽고의 징기스칸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으로 적의 문화재를 약탈해 가 과시했다. 평화시 교황과 제왕, 귀족과 재력가들은 당대에 최고로 아이디어 좋고 손재간 뛰어나다는 미술가를 앞다투어 고용해 새 건축물을 짓고 실내장식하는데 각축을 벌였다. 전쟁이라는 무력 다음으로 문화는 중대한 소프트파워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미술품, 새로운 화폐단위(커런시)로 떠오르는 밑천

화가 게하르트 리히터와 더불어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대형 사진작품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1991년 작)는 2008년 가을 국제금융위기에서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투자은행의 미술컬렉션이었으나 201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433,250 파운드(우리돈 약 7억6천5백여만 원)에 낙찰되었다.

“미술품은 갖고 있는 동안은 좋은 장식품, 빚을 갚아야할 순간에는 요긴한 밑천”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미술품은 궁지에 몰린 채무자가 막판에 내놓는 빚보증물이었다. 2003년 벨기에의 사베나항공의 부도처리 과정에서 이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르네 마그리트의 <창공의 새(L’Oiseau de ciel)>(1965)가 경매에서 3백4십만유로(우리돈 약 53억원)에 낙찰되어 직원들의 퇴직금을 확보했다. 2009년, 적자로 허덕이던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 항공사도 미래주의 회화 컬렉션을 경매에 부쳐 얻은 수익 1백2십만유로(우리돈 약 20억원)로 대차대조표를 충당했다.

조직과 국가 운영을 하던 중 절실한 자금난에 처했을 때, 미술품과 문화유산을 담보로 걸거나 빚을 갚겠다? – 당장 돈이 필요한 채무자에겐 분명 솔깃한 얘기 같다. 2008년 가을 터진 금융위기에서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 투자은행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사의 회계사정 후 뉴욕과 런던 본부에서 보유하고 있던 미술품 450여점을 소더비와 크리스티스 경매소를 통해 매각해 채무의 일부금액을 이행했다. 이어 200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극장 운영에 필요한 대출금을 융자받기 위해서 소장품이던 샤갈의 벽화 시리즈를 거래 은행에 채무담보로 넣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4월에는,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재정난에 처한 그리스 정부에 2천6백7십억유로 구제대출금을 허락하는 담보로 파르테논 성전을 담보로 놓으라는 제안을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고대그리스 민주주의 상징이자 수호물을 국가빚에 대한 담보로 내놓다니 얼토당토 않을 소리지만 문화재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해준 사례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고가 미술작품은 오래전부터 구미 엘리트층 사이에서 매우 요긴한 보증품이자 이른바 ‘3D 위기’를 대비한 개인 재산 목록이기도 하다. 여기서 3D란 3가지 인생의 고비 즉, 이혼(divorce), 사망(death), 빚(debt)을 뜻한다. 실제로 최근 세계 유명 은행들은 돈많은 프라이빗뱅킹 고객들의 재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데, 채권이나 주식 위주의 전통적인 투자품목으로부터의 손실방지를 헤지책 겸 포트폴리오의 다각화 전략으로써 미술 투자를 권유하는 추세다.

1980년대, 소더비 경매소가 한 호주 사업가 앨런 본드에게 반 고흐의 유화 <수선화>와 소장미술품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다. 본드는 채무불이행하게 되었고 그 댓가로 소더비는 <수선화>와 그의 컬렉션을 대충자금으로 압수한 후 게티 미술관에 막대한 금액으로 되팔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도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미술경매소는 경매전 최저 작품예상가의 40%까지에 대한 금액을 고객에게 융자해주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아트파이낸스란?

그렇다면 미술품은 어떻게 귀한 자산으로 변모할까? 과거 미술작품, 가격, 미술품 보험엗 대한 미술컬렉터를 상대로한 조언은 옥션하우스나 화랑업자들이 주로 담당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초엽 이후 경기호황을 타고 유명 은행들은 미술시장을 금융권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유한 은행고객을 상대로 미술품을 투자와 재산증식을 위한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아트파이낸스 서비스(art finance service)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프리이빗 뱅크는 여유자금이 많은 고객에게 시장성있는 미술품 구입을 권유하거나 사업용 대출자금이 필요한 고객의 소장미술품을 담보로 대출금을 융자해 준다.

그렇게 마련된 자금을 바탕으로 은행은 자체적인 미술계 인사이더와 큐레이터로 구성된 자문단(art advisory)을 구성하고 유망주 미술가를 선별지원하거나 홍보하여 미술품 시장가격을 높여간다. 블루칩 미술가의 작품이나 유망있어 보이는 신진미술가의 작품구입을 대행해 주거나 미술품 구입에 필요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른바 아트펀드(art fund) 제가 그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며 2005-6년에 최호조를 맞았었다.

2008년 가을 국제금융위기에도 아랑곳없이 구미의 개인은행들은 미술의 애셋화 전략을 꾸준하게 진행중이다. UBS은행은 아트바젤 미술페어와의 긴밀한 스폰서 겸 재정파트너로서 미술 컬렉터들의 재정기밀을 보장한다. 세계최고의 앤티크페어인 TEFAF 마스트리히 행사 스폰서인 ABN_AMBRO, BNP파리바, 도이체은행은 미술컬렉팅과 컨설팅 서비스를 핵심 기업 철학으로 삼고 있다.  크레디스위스, 씨티그룹, HSBC은행, 딜로이트(Deloitte) 회계법인은 미술투자 고객들의 수요증가에 부응하기위해 정보제공 프로그램 운영과 뉴스레터 발행도 한다.

미술투자, 미래유망주냐 블루칩이냐?

미술계는 패션계에 못지않게 유행에 민감하다. 특히 생존하는 현대미술가의 인기도는 기복이 심하고 수명도 짧다. 더구나 요즘처럼 수많은 미술가들이 각축을 별이는 환경에서 미래의 피카소와 워홀을 미리 점찍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2008년 국제금융위기 직후 현대미술시장 매출액은 이전 해보다 17% 하락했고 미술품을 팔려는 고객수도 30-40% 줄었다. 2008년 9월 17일, 데미언 허스트가 전속화랑이던 화이트큐브와 분리를 선언하고 런던 소더비 옥션에서 첫 직접경매를 기다리던 같은 날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고를 해서 당황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생존하는 현대작가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위태롭고 불확실한가를 확인하게 해 준 경우다.

반면 블루칩 미술작품은 불황은 물론 극단적인 경제환경이 닥친다해도 가격을 유지하는 든든한 자산이 된다. 블루칩 미술품이란 프랑스 인상파 계열 미술, 20세기 모더니즘 미술, 고전 거장들의 미술품 등 미술시장에서 인기도와 가격이 입증된 것들이다. 양식적 식별이 쉽고 인지도가 높아서 미술시장 내에서도 기복없이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장기투자대상으로써는 물론이고 급히 자금을 마련해야할 때 자금화  유동성도 우수하다. 제값을 하는 블루칩 미술품의 조건은 거장 미술가의 전형적인 양식으로된 핵심작이며 미술사적 의미가 인정받았고 경매장과 감식가의 감정을 거친 출처(provenance)가 분명한 진품이라고 전문가들은 귀띰한다.

감식안이 좋다면 컬렉터는 꼭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로 관심분야를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주얼리, 금은제 장식품, 도자기나 유리 공예, 휘귀 동전과 우표, 희귀 악기, 고가구, 빈티지 포도주도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커지는 컬렉팅 아이템들이다. 예컨대 최근 중국 갑부들은 전세계 미술경매를 통해서 해외 미술시장에 떠도는 중국 골동문화재와 고미술품을 다시 사들여오고 있다. 차후 필연적으로 찾아올 렌민비화의 가치상승과 최근 급속화되고 있는 인플레에 대비하려는 헤지 전략이자 가격이 더 상승할 중국미술품을 미리 사두겠다는 계산된 투자의도에서다.

단, 겉보기보다 미술품은 다른 재산보다 관리비가 많이 드는 목록이기도 한다. 미술작품을 소유한다 함은 토지, 금은괘, 주식처럼 속성이 유지되는 재산품목이 아니라 세월, 환경, 관리에 따라 변하고 손상되므로 컬렉터는 문화재 관리자라는 필히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작품 운반비용, 복원 및 관리비, 미술품 파손 및 도난 대비 보험료, 옥션하우스 매매 수수료 등에 드는 부수적 비용에 대해서도 미리 정보를 갖추는 것도 필수다. 현재 아트어드바이저리를 보유한 은행들과 사설 아트펀드 회사들은 이 모든 서비스를 대행해준다.

각별한 취미가를 위한 귀중한 재산목록

일반적으로 미술 전문가들은 미술품을 단기적인 투자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경고한다. 미술작품의 매매 거래과정과 통로가 투명하지 않고 비밀스럽다는 점도 지적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때도 작품 대여비나 저작권료를 받는 경우가 아닌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 재정적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미술품 자체를 깊이 사랑하고 세계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한다는 사명감이 겹합된 긴 안목없이 단기에 재정적 이득을 보겠다는 목적에 미술품에 투자했다가는 후회하기 쉽다. 성공한 개인 미술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화랑업자나 언론매체의 허풍이나 일시적인 유행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만의 취향을 키워나가라고 조언한다.

결론적으로, ‘미술품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대출보증, 인플레에 대비한  투자대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은 ‘그렇다’이다. 단, 미술시장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고 꾸준한 정보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작품을 볼 줄아는 탁월한 안목을 갖췄을 때에만 그렇다. 좋든싫든 미술품은 어느새 중요한 대안 투자대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래 《크로노스》 코리아 (CHRONOS Korea) 지 2011년 7/8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현대 인도미술 시장 다이제스트

INDIAN ART NOW

인도 현대미술의 오늘과 내일

영원한 사랑과 로맨스의 아이콘 타지 마할. 대영제국으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킨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현대 인도 대중문화 현상이 된 발리우드 시네마 – 인도 하면 떠오르는 몇몇 대표적 전형 말고도 인도의 문화적 위상 증진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현대미술이다.

이미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온지 오래된 일본미술, 최근 십 여년 동안 경제 급성장과 함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이어서 인도의 현대미술은 요즘 구미권 컬렉터들 사이에서 새삼스러운 관심과 유망한 투자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도 현대미술을 향해 강렬히 쏟아지는 국제 미술시장의 주목은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 성장국들의 일원으로 급성장한 경제력의 덕도 힘입은 때문이다.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2006년 작. Stainless steel
1066.8 x 1066.8 cm. 
Photo © 2010.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블루칩 미술품은 이제 주식이나 채권에 버금가는 자산으로 인정받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투자 품목이기도 하지만 컬렉터의 남다른 감식안을 우아하게 뽐낼 수 있는 문화적 무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구미권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크리스티스나 소더비의 동남아시아 미술 경매 결과를 눈여겨 보도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 런던 프리즈 등 간판급 국제 현대미술 박람회에서는 최근 주가 높은 현대미술가들을 홍보하며 컬렉터들을 유혹한다. 예컨대 아니시 카푸르(Anish Kapoor),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은 서구적인 감각과 최첨단 매체로 인도의 현모습을 조명하는 전략으로 구미 미술시장을 공략하며 한껏 주가를 높이는 작가들이다.

최근 몇 해에 걸쳐 크리스티스 경매소는 인도 현대미술 영역에서 최고의 경매실적을 올려왔고, 그 뒤를 소더비 경매소가 뒤따르고 있다. 2000년 인도 뭄바이 본사에서 창립된 후 현재 뉴욕, 런던, 델리 등 4도시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사프론아트(Saffronart)는 인증된 고급 인도 미술과 공예품을 인터넷상에서 거래하는 최대 규모의 온라인 경매소 겸 딜러로 유명하다. 사프론아트는 가장 최근인 9월말 가을철 정기 경매에서 원로 화가인 티옙 메타(Tyeb Mehta)의 회화작품을 미화 1백5십6만5천 달러(우리돈 약 18억5천여만 원)에 낙찰시켜 2008년 국제금융난 후로 잠시 침체되어 있던 인도미술 시장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다.

라빈더 레디(Ravinder Reddy) 
 1995-96년 작. 
Fiber glass, gold leaf, paint 
61 x 86,4 x 111,8 cm.
 Lekha and Anupam Poddar Collection 소장품. Photo courtesy: Daimelr Art Collection.

막불 피다 후사인(Maqbool Fida Husain)은 인도 근현대 미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국가대표급 원로 화가다. 1915년 생인 후사인은 일명 ‘인도의 피카소’ 또는 ‘인도의 워홀’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20세기 인도 미술계를 목도하며 70평생 활동한 다작가였다. 본래 영화극장 간판과 포스터를 그리던 간판쟁이 일을 하던중 미술의 세계로 입문한 그는 말년에 힌두교 다신들을 누드로 그렸다하여 과격 힌두교 신자들로부터 쫏겨 해외 망명생활을 하다가 올해 6월 런던에서 작고했다.

그렇다고 인도 미술가들이 후사인의 뒤를 이어 신성모독이나 사회적 터부에 도전하는 도발적 미술을 추구하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인도 미술가들은 주로 인도인들의 일상 풍속을 담은 풍경화나 역사적·종교적 사건을 다룬 기록성 강한 역사화를 주로 그려왔다.

그런 이유로 전세계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인도미술은 대체로 신비롭고 사색적인 미술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풍 구상화를 그린 시예드 하이더 라자(Syed Haider Raza), 인도 토속풍경을 그린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는 후사인과 더불어 인도 근대 미술계의 삼대구도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블루칩 원로 화가들이다.

21세기 현재, 인도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30-40대 미술인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창조적 화두이자 쟁점은 다름아닌 글로벌리즘(Globalism)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글로벌화의 물결을 타고, 인도는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 고속도로와 신도로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인간무리와 교통수단, 새로운 물적풍요와 그 뒤안길에 서려있는 수선스러움과 허탈감 – 글로벌화라는 열병에 들떠있는 오늘날 인도의 풍경은 급속한 산업화를 겪은 아시아인에게 보편적인 공감대에 호소하는 면이 있다.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 2007-2008년 작. C-print. Courtesy the artist and Frith Street Gallery, London. 2008 © Dayanita Singh.

현대 인도 미술인들은 인도적 향취가 짙은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매체나 기법 면에서는 서구의 현대미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젊은 세대 인도미술가들은 과거 선배 화가들이 갇혀있던 전통적 회화나 조각에서 벗어나서 초대형 설치, 멀티-스크린 비디오, 대규모로 확대한 총천연색 디지틀 사진,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결합한 혼합매체 등 매체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표현 방식을 구사한다. 구시대와는 확연히 다르고 복잡해진 글로벌 사회를 보다 절실히 표현하는데에 최첨단 시각매체가 더 유용하기 때문일테다.

주제 면에서도 나태한 컨셉츄얼 미술이나 가벼운 세태풍자나 논평에 안주하지 않는다. 최근 주목받는 현대 인도의 미술인들은 언뜻보기엔 전형적이고 진부하다고 느껴질 지언정 현대화 과정 속에서 인도인들이 경험하는 종교적, 경제적, 일상적인 혼돈과 갈등을 진지한 어조로 다루며 사색적 무게를 가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예컨대 ‘인도의 데미언 허스트’라고 불리며 인도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는 광채가 화려한 일상용품을 활용한 대형 설치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경매장의 귀염둥이로 자리잡은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은 대형 사진작품을 통해서 빛과 초고속 스피드로 전율하며 변화·갈등하는 인도의 겉모습과 인간상을 포착한다.

또 그런가하면 한결 정치적·종교적 운을 띤 작품을 하는 작가들도 눈에 띄는데, 특히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인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는 멀티스크린 비디오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힌두교대 회교 사이 종교적 갈등을 다뤄 구미권에서 무게있는 작가로써 평가받고 있다.

지티시 칼랏(Jitish Kallat) <수하물 찾기(Baggage Claim)> 2010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릭. Courtesy: Arndt Gallery, Berlin.

경제성장과 더불어 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한 인도의 현대미술은 과연 창조성과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자칫 인도 미술은 몇몇 한정된 수의 미술인들이 서구 미술 시장에 의해 작위적으로 선정돼 ‘인도 브랜드’ 창출로 치중되는 아닐까? 장기적으로 예술적 생명력과 내공을 발휘하며 미술사에 남을 작가는 누구일까? – 이 모든 의문점은 역사의 시험대에 서있는 현대미술가라면 누구나 당면한 숙제일뿐 인도 미술 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의 현대 미술은 인도의 역동적인 경제성장 만큼이나 계속 진행중인 흥미로운 문화 프로젝트다.

국가는 경제가 번성하면 그에 준하는 미술이라는 유형 자산(tangible asset)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인도 현대미술이 구미 미술시장에서 관심을 끌게 된 배후에는 인도 산업계 갑부들과 30-50대전문직 중상층 해외파 인도인들이 주도된 미술 수집 트렌드 한 몫을 한다고 새프란아트는 집계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정신적 영혼적 풍요로움을 가장 잘 버무려 표현해 주는 재산 목록으로써 미술품만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경제력이 커지면 문화의 위력도 그에 비례해 커지는 것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지 2011년 11/12월호 (제17호) 188-189쪽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멋있게 사는 법 – 캘리포니아 스타일

캘리포니아 스타일에 담긴 “모던하게 사는 법”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미국인(American)>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모습, 1964년 작, 22.9 x 34.1 cm, 젤라틴 은판인쇄,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 1984, The Estate of Garry Winogrand.

LIVING A GOOD LIFE – CALIFORNIA STYLE 1994년 개봉된 왕가위 감독의 홍콩영화 <중경삼림>에 보면 귀여운 여주인공 페이 (페이 웡 분)가 틈만 나면 이 히트팝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을 크게 틀어 놓고 듣는 장면이 나온다. 페이에게 캘리포니아란 사랑하는 님과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꿈의 이상향이었던 것 같다.

한 평생 근사한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캘리포니아로 가라!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 유독 캘리포니아 주는 ‘행복한 인생(Good Life)’의 심볼이었다. 일찍이 19세기 중엽에 달아올랐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는 오늘날 대도시 샌프란시스코가 탄생할 수 있게 해 준 부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경제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한창 괴롭히던 1920-40년대에도 로스앤젤레스만은 그에 아랑곳없이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세계최대의 영화산업 단지이자 은막의 스타들이 모여산 초호화 주거지로 급성장했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극단적인 미국이다” – 20세기 미국 서부를 대표한 거장 소설가 월러스 스테그너(Wallace Stegner)는 1959년 캘리포니아를 가리켜서 이렇게 정의했다. 그도 그럴것이, 캘리포니아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역사의 무게로 억눌린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역동성과 개방성을 자랑하는 ‘실험’의 땅이었다.(월러스 스테그너의 글 ‘캘리포니아:실험적 사회”중에서, <The Saturday Review> September 23, 1967, p.28) 오늘날, 디자인 혁신의 대명사 애플 컴퓨터는  제품마다 “Designed in California”를 자랑스럽게 새겨넣어 판매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는 지금도 전세계 IT 혁신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세계의 혁신적 디자인의 중심지로 거듭 탄생하며 ‘현대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물질적 전형을 전세계인들에게 제시하기 시작한 때는 1950년대 부터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에 이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과 우방국가들의 승리로 마무되고 나자 이제 미국은 산업과 문화 분야에서 최강 세력으로 떠올랐다.

드디어 미국식 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시대가 기지개를 틀기 시작했고, 미국은 인류 역사 어디서도 전에 보지 못한 경제 발전과 물질적 풍요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덩달아 미국인들도 과거 20년여 지속된 경제적 문화적 공백기에서 벗어나 한결 풍요롭고 안락한 신세계를 갈구했다. 미국인들은 전보다 아름다운 의식주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고 자가용 자동차의 대중화 덕분에 이동도 자유로워졌다.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하여 1953년 출시된 스투드베이커 아반티 자동차 © Estate of Raymond Loewy.

쇼어드라이브의 아이콘격 도로인 하이웨이 원오원(Highway 101)을 타고 달리는 멋진 드라이브는 캘리포니아를 자동차로 거쳐간 운전가라면 지울수 없는  짜릿한 추억거리다. 오른편에는 수평선 저기까지 깊고 푸르게 빛나는 태평양해를, 왼편에는 절묘한 암벽을 낀 채 아름다운 두 남녀가 바람에 머릿결을 휘날리며 전속으로 질주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 방향으로 이 도로를 따라 달리는 빨강색 레드 코르벳(Corvette) 스포츠카. 뉴욕에서 성공적인 그래픽 광과 디자인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도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미색 스두드베이커 아반티(Studebaker Avanti)를 몰고 이 길을 달렸다.

꿈결과도 같은 드라이브 끝에 두 남녀가 다달은 곳은 팜스프링스 사막 한 가운데 지어진 현대식 저택. 제2차 대전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이민 온 건축가 리쳐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가 설계한 이 집 안을 오가다보면 온통 자연이 내 것이 된 것 같다. 유리창이 높고 커서 하루종일 집 안으로 자연광이 가득 들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대지와 녹색 자연이 탁 펼쳐져 보이는 이 집을 가리켜서 건축학자들은 당시 캘리포니아의 대기에 그득하던 특유의 낙관적 발랄함, 거침없는 실험성, 신기술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한꺼번에 담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평가한다.

샌프란시스코 출신 건축가 피에르 쾨니히(Pierre Koenig)가 1960년도에 설계한 스탈 하우스(Stahl House (일명 Case Study House #22))의 모습은 전설적인 건축사진가 줄리어스 슐만(Julius Shulman)이 찍었다. © J. Paul Getty Trust. Used with permission Photography Archive, Research Library, Getty.

이 시대 건축가들이 탁 트인 공간감과 현대식 감각을 한껏 표현할 수 있기까지 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개발된 첨단 군사기술과 신소재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한다. 벽과 기둥을 없애서 열린 공간을 연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축용 강철 기둥, 바닥부터 천정에 이르는 벽 높이의 통판유리창을 지탱해 주는 특수 강화유리 판넬, 그 유명한 찰스와 레이 이임즈 부부 디자이너가 의자 설계에 즐겨 활용한 섬유유리 소재는 모두 전쟁기에는 무기용으로 쓰이다가 평화시가 되자 일상 디자인 용품에 응용된 대표적인 첨단 소재들이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한들 팔리지 않으면 누가 알아줄터냐”고 당대 유명한 건축사진가 고 줄리어스 슐만(Julius Shulman)은 날카롭게 지적한 바있다. 이렇게 하여 캘리포니아에서는 미술관 전시회, 리테일 숍 매장, 광고, 각종 출판물, 영화 속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를 총동원한 홍보통로를 한껏 활용하여 이른바 “캘리포니아 룩(California Look)”을 전 미국에 마케팅했다.

캘리포니아 디자인과 물질적 풍요를 향한 약속에 못지않게 소비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켜야 하는 것은 바로 ‘캘리포니아’라는 이상 그 자체라는 감성 마케팅 전략도 이 때 본격적으로 응용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os Angeles)> 일간지는 이 “캘리포니아 룩” 창조에 한몫 거들며 특히 찰스와 레이 이임즈 부부의 인테리어 디자인, 반 케펠-그린(Van Keppel-Green)의 인도어/아웃도어 디자인, 아키텍쳐럴 포터리(Architectural Pottery) 등을 그 대표주자로 꼽았다.

스트라웁 & 헨즈먼 버프(Straub & Hensman Buff) 설계소가 디자인한 미르만 하우스(Mirman House)의 여가공간(캘리포니아 아카디아 소재). 1958년 설계. Photo: Julius Shulman, 1959년. © J. Paul Getty Trust. Julius Shulman Photography Archive. Research Library at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경제적 윤택, 물질적 풍요, 유쾌한 인생과 낙관주의가 지속되던 캘리포니아에서는  1960년대 말엽에 이르러 거침없는 성장과 소비주의를 비판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진 반문화운동이 캘리포니아식 행복한 인생관에 잠시나마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히피밴드였던 마마스 앤 파파스 조차도 1960년대말 뉴욕에서 추운 한겨울을 보내면서 “…캘리포니아에 있었더라면 편하고 따뜻하게 지내고 있을텐데…” 라며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기후와 느긋한 분위기를 동경했다.

캘리포니아 디자인 정신 속에 담긴 개방적 문화, 혁신주의, 그리고 인생은 지금보다 나아지고 풍요로와질 것이라는 낙관정신은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지금도 미국으로 모여들게 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정착시켜준 문화적 증거로써 고스란히 남아있다. 20세기 후반기 캘리포니아식 모더니즘과 행복한 인생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두 편 <포커스-로스앤젤레스> 전(LA 게티 미술관)과 <캘리포니아 모던 디자인> 전(LA 카운티 미술관)은 각각 올[2012년] 5월6일과 6월3일까지 계속된다. ♦ All Photos Courtesy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The Getty Institute.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지 2012년 3/4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2012년 TEFAF 마스트리히트 유럽 파인아츠 페어

TEFAF MAASTRICHT  THE EUROPEAN FINE ART FAIR 2012

1993년 발효되어 유럽연합과 유로 공동화폐제가 제정된 마스트리히트 조약 보다 네덜란드의 작은 고도시 마스트리히트를 유명한 연례 문화행선지로 만들어준 효자는 또 있다. 바로 TEFAF 유럽 미술 재단(The European Fine Art Foundation) 박람회가 그것이다. 일찍이 1970년대에 설립된 두 전신인 픽투라 파인 아트 페어와 앤티크 마스트리히트 골동미술 박람회를 통합하여 1988년에 처음 발족되었다. 당시만해도 독일어권, 벨기에, 네덜란드의 컬렉터를 주고객으로 삼은 지엽적 수준의 행사였으나 90년대 이후로 급격히 범유럽화와 글로벌화되며 급성장해 올해로 설립 25주년 특별 기념회(silver jubilee)를 맞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네덜란드의 문화 고도시 마스트리히트에서 3월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 동안 막을 올려고 전세계에서 모여든 미술애호가들과 갑부 컬렉터들을 맞이했다. 예년에 비해 유독 해외 참가자들이 많았던 올해, 마스트리히트에서 가장 가까운 첫 해외 관문인 독일 아헨-마스트리히트 공항에서는 올해 이 행사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평소보다 360편 더 많은 항공편을 추가로 관제했다고 보고했고, 이 도시 시내는 물론 인근 교외 호텔과 레스토랑들까지 총동원되어 전세계서 찾아온 미술컬렉터 손님맞이에 돌진했다.

전세계 미술계에서 내노라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인사들은 물론 미술 학자와 평론가들이 매년 3월이면 TEFAF로 몰려들어 그 해의 미술시장을 세심히 관찰하고 미술품 거래 트랜드를 형성하고 돌아간다. 고전 미술부터 최신 21세기 현대미술, 공예와 디자인, 그림과 조각품, 오뜨 장신구, 고서적 약 30만여점이 총마라된 문자 그대로 ‘미술 페어의 정수(精髓)’다.

주도면밀한 운영으로 정평이 나있는 TEFAF 마스트리히 조직위원회가 매년 행사에 맞춰서 발표하는 각종 공식 자료와 통계치 보고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교계 내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회자된다. 예컨대 오프닝 전날인 프리뷰 파티와 본행사 기간 동안 TEFAF 행사장을 찾은 올해 방문관객들은 샴페인 1만5천 잔, 포도주 3만1천 잔, 커피 7만5천 잔, 다과류 1만개, 샌드위치 5만개, 그리고 생굴 1만1천개를 소비했다고 집계됐다. 이 행사 동안 동원된 장내 요리사로 5백여병, 서빙스태프 2천3백명에 이르러서 요식업계의 번개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또 TEFAF 페어는 고급스럽고 세심하게 설계된 페어장 디스플레이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디자이너 톰 포스트마(Tom Postma)의 지휘 하에 매년 색다른 인테리어로 재탄생하는 페어장은 언제나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예년과 다름없이 올해도 봄 기운을 가득 선사하며 행사장 입구에서 관객을 반겼던 대형 꽃밭에는 철장미 3만3천 송이, 카페와 통로를 장식한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프랑스산 튤립꽃 4만 5백 송이, 목련·매화 꽃가지 4천5백대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페어 조직위원회 측은 일단 매해 참가화랑업자들과 출품작들이 선정된 후 행사 시작 약 한 달전 경부터 전시장 디자인과 전시공간 건설작업에 들어간다. 페어장 건설에 투입되는 남녀 인부들의 수는 220명, 특히 행사 오프닝 직전 사나흘 동안 건설 및 인테리어 인부들과 조직위원회의 운영직원들 20여명이 24시간 교대로 막바지 마무리 밤샘작업에 임하느라 들이킨 커피는 3만 잔, 설탕은 2백5십 킬로그램에 이른다는 재미있는 수치도 남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TEFAF가 세계 최고의 미술 및 골동미술 박람회로서의 저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 어떤 행사보다도 우월한 컨텐츠 즉, 출품되는 미술품들의 높은 수준과 믿을수 있는 진품성이다. 한 번 본 사람은 미술품을 볼줄 아는 높은 안목을 키우게 되는 살아있는 교육장이기도 하다. 미술계 인사이더들이 TEFAF 마스트리히 미술 페어를 가리켜서 일명 ‘소장품을 내다 파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전세계 18개국에서 초대되어 온 260여 골동품 딜러와 화랑업자들의 엄선된 작품 목록은 행사 개막 수 개월 전부터 국제적인 감정전문가들의 엄격한 진품감정 과정을 거친다. 특히 올 행사를 위해 초대되어 온 감정전문 위원들의 수는 175명에 이르른 것으로 보고된다. 자연히 믿고 찾아 미술품 쇼핑을 오는 컬렉터들의 기대 수준은 매우 높고, 참여한 화랑업자들의 매출 실적 또한 우수하다. 전시자들은 부스 스탠드 임대료로 1평방미터당 330유로를 지불하는데, 이는 동급의 여타 고미술 박람회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어서 전시 참여 화랑업자들에게 TEFAF는 일석이조격으로 매력적인 행사라고 화랑업자들은 입을 모은다.

고미술과 골동품 시장으로 출발한 행사이니만큼 고전미술부는 TEFAF 행사장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바로크 거장 화가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헨리 8세 영국왕> 초상화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쥬세페 아르침볼도가 과일로 구성한 남성 초상화를 포함한 고전 명회화 작품들은 이미 공식 오프닝 이전에 익명의 개인 유럽 컬렉터들이 사갔다고 전해진다.

올해가 25주년 기념이어서일까? 올해는 미국과 유럽에서 온 컬렉터들 덕분에 유독 은제 수공예품이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보고된다. 올 행사에서는 쟌마리아 부첼라니의 은세공 오뜨 조알레리가 각광받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은도공 코르넬리스 반 데르 부르크가 제작한 호화 접시나,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은도공 폴 드 라메리의 은제품도 귀금속 예술에 조예있는 컬렉터들에게는 영원한 고전이다.

고전미술과 골동미술품을 사가는 고객에 대한 구입자 명의와 낙찰가격은 비밀스럽게 관리되는 반면에, 그에 비해서 근현대 미술부 페어장에서는 구매자의 명의와 최종날찰 가격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뒷담으로 한결 시끌벅적하고 과시적인 편이다. 근현대 미술에 관심있는 진지한 갑부 미술 컬렉터들은 매년 늦봄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급 미술박람회인 바젤 박람회을 우선으로 찾는다. 그런 그들이 최근들어 새롭게 마스트리히트로 속속 찾아들고 있는 이유는 TEFAF가 아직도 미술시장 곳곳에 틈틈히 나돌며 새 주인을 찾고 있는 귀한 근현대 미술작품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앤토니 마이어 갤러리와 뉴욕 화랑 크리스토브 반 데어 베게 갤러리는 가져온 독일화가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작품들을 거의 다 팔아서 높이 쾌재를 불렀다. 특히 마이어 갤러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87년에 그린 풍경화 <작은 거리(Kleine Strasse)>를 이미 행사 공식 오프닝 전날인 귀빈 프리뷰에서 6백6십만 달러(우리돈 약 63억원)에 팔았다고 <뉴욕타임즈> 지가 보도했다. 또 독일 뮌헨의 다니엘 블라우 화랑은 작품당 2만-7만 유로(우리돈 약 3천만원-1억원)하는 앤디 워홀의 드로잉 시리즈들을 거의 다 낙찰시키고 돌아갔다.

그런가하면 진지한 컬렉터라면 한 두 작품씩 갖추고 있다는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대형 흑대리석 조각은 3천5백만 달러(약 4백억원, 란다우 화랑)에,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마릴린 몬로의 빨간입술 모양을 따 디자인한 루비와 진주 브로치가 4만5천 달러(우리돈 약 5천만원)에 딜러제안 가격으로 선보여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근 현대미술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는 인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르는 한국의 가나 화랑을 통해서 스테인레스 설치미술작을 낙찰시켰다.

TEFAF는 매년 전세계 경제상황과 그에 따라 움직이는 미술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는 유용한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일본 쓰나미 재해에 미술품 매매 세율의 증가법(이전 세율 6%, 개정 세율 19%)으로 인해 연초 유럽의 미술시장 분위기가 다소 침체된 분위기였다.

올해 TEFAF 조직위원회는 총 공식 발표된 총 거래액이 13억 달러(우리돈 약 1조4천7백억원)라고 발표했다. 2008년 가을의 국제금융위기 이전기와 거의 맞먹는 견실한 매출실적이다. 열흘간 열린 올해 박람회 행사에서 무려 7만2천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 TEFAF는 골동미술품과 고전 화가의 회화작품(30%)들이 주거래 품목이었으나, 최근 점점 서양 근현대 미술 분야의 화랑업자들의 진출이 높아져 가고 있는 추세여서 TEFAF 최종매출의 34%(골동미술 34%, 고전회화 30% 대비))를 차지하게 되었다.

TEFAF 재단이 올 행사 결산 보고에 유독 눈여겨 보고 있는 사항은 바로 미술계내 중국 파워의 급부상이다. 중국(2010년에 23%, 2011년에 30%, 세계2위)은 올해부터 미국을 떠밀고 세계에서 가장 큰 글로벌 미술시장이 되었다고 보고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에는 러시아, 중국, 홍콩, 싱가포르를 포함한 신흥 경제강국에서 온 개인 바이어들과 컬렉터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중국의 경우, 국제경기침체, 증권시장 불안세, 화폐가치 저하에 대비한 자산 헤지의 방편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신흥부유층들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중국미술시장의 붐을 뒷받침한다.

앞으로도 구미와 신흥경제강국의 미술 컬렉터들은 마스트리히트를 찾아 유럽의 고미술품 쇼핑을 하러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EFAF는 보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화랑업자들과 딜러들도 참여하는 국제급 행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가 저마다의 언어권을 시장으로 발판 삼아 고미술 박람회를 개최하는 추세인만큼 TEFAF는 앞으로 적잖은 경쟁에 맞부딛힐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TEFAF 마스트르히트 조직위원회는 올해의 성과를 발판 삼아 한결 국제적인 박람회로 더 성장할 것을 다짐한다. All Photos Courtesy: TEFAF Maastricht. Photo: Harry Heuts.

* 이 글은 <크로노스> 코리아(Chronos Korea) 지 총권 제20호 2012년 5-6월호 216-219쪽에 실렸던 것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