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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

종합예술의 요소에서 건축가의 자아 표현을 위한 예술 작품으로

CHAIRS DESIGNED BY ARCHITECTS

하루일과 동안 누워서 잠자고 몸을 움직여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하며 활동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인간은 쉬고, 먹고, 일하고, 심지어 배설하는 순간까지 갖가지 모양과 기능을 갖춘 의자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의자라는 가구 품목이 우리 일상생활과 얽히고 설킨 관계는 여간 깊고 방대한게 아니다.

의자란 둔부를 바닥에 대고 앉아면 등을 위에서 받쳐 주는 1인용 가구다. 좀 더 엄밀히 정의하면 의자(chair)란 둔부가 바로 닿는 시트(seat)와 등받이(back rest)가 갖추어진 것이 의자다. 그래서 벤치가 2인 이상 또는 여려명이서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한 긴 걸상(bench, bank)이고, 시트만 있고 등받이가 없는 1인용 스툴(stool)과도 개념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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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레니 매킨토시 (Charles Rennie Mackintosh)가 스코틀랜드 글라스코 아르가일 거리에 있는 테살롱 식당 실내장식을 위해 디자인한 등받이가 높은 의자. 1897년 디자인.

오늘날 실내장식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 오브제 또한 의자다. 디자인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학생과 초년병 디자이너에서부터 이미 대가 취급을 받는 거장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제각자의 시그니쳐 스타일을 압축해 보여주고 평가를 기다릴 때 가장 우선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내보이는 표준 잣대도 바로 의자다. 웬만큼 디자인에 관심있다고 자부하는 디자인 애호가들은 아이콘격 의자와 디자이너 이름까지 암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해 온 앉기의 문화는 의자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의자의 원형이 최초로 탄생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원전 3세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딱딱한 바닥과 벽에 보다 안락감있게 앉고 기대 쉬기 위해서 쿠션이나 방석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의 곡선에 맞게 굴곡시켜 시트와 나트막한 등받이가 있는 클리모스(Klimos) 의자를 만들어썼다 하고, 고마인들은 등받이없이 의자 다리가 좌우로 교차되는 힘으로 시트와 앉는자의 몸을 받쳐주는 접이식 걸상(stool)을 널리 활용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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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릿 릿벨트 (Gerrit Thomas Rietveld)가 1918-1921년 디자인한 레드/블루 체어(Red/Blue Chair는 너도밤나무와 합판을 이용해 제작되었다. © Cassina, Italy.

오랜 과거시절 의자란 언제나 사용자를 의젓하게 앉혀주어 품위를 드높여주는데 매우 유용해서 통치자의 권력과 신분의 심볼 역할을 했었다. 오늘날까지도 조직의 최고위 지위나 장(長)을 가리켜서 영어로 체어(chair)라고 부르는 것도 그같은 문화적 자취를 반영한다.

중세시대 이후부터 의자는 묵직한 소재를 이용해 위엄있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교회의 고위 성직자, 황실 왕족, 지체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앉아서 업무에 임하는 가구로 자리잡았다. 그러다보니 시대가 발전하고 양식이 변천하면서 의자는 다양한 유행과 안락성을 추구하며 디자인적 변천을 거쳐 만인들의 생활가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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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호프만이 빈 푸르커스도르프 요양소 건축과 내부 실내장식을 위해 맞춤 디자인된 팔걸이 의자. 기하학적 선과 흑백 색상으로 정제된 건축과 실내를 일체감을 준다. 1904-1905년. Wittmann 생산.

특히 19세기말부터 모더니즘 운동이 대륙 전체를 열병처럼 뒤흔들었던 유럽에서 의자는 대중을 위한 가능적이고 윤리적인 원형적 모더니즘 품목으로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시대 문제에 봉착한 소외된 인류에 봉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선구자들은 의자란 그 어떤 군더더기 장식이나 불필요한 요소 없이 기능에 충실하며 미감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다.

건축 안팎 총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건물과 어울리는 인테리어, 가구, 악세서리 세부까지 총지휘하는 이른바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추구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거장 근대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과 오토 바그너(Otto Wagner)는 건축물과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손쉽게 대량생산된 가구를 구입할 수 있게된 요즘과는 달리 건축에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 당시의 사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축적 외양과 인테리어의 완벽한 일체성(unity)를 고집했던 근대 건축가들의 원칙주의 때문이었다. 유독 20세기 전반기 탄생한 대다수 의자들이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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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가구생산업체 카시나는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2 큐브 체어 디자인 원형 그대로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 Cassina, Italy.

독일의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헤(Ludwig Mies van der Rohe)가 디자인한 철재 의자 받침구조와 가죽 시트의 바르셀로나 의자는 지금도 비트라에서 꾸준히 생산판매 되고 있는 근대 의자의 고전작이 되었다. 스위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철제 팔걸이 의자와 핀란드의 알바 아알토(Alvar Aalto)의 라미네이트 굴곡목 의자도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의 대표작들이다.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는 철관이라는 근대적인 재료를 사용해 캔틸레버 공법을 응용한 의자 디자인의 혁신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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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1958년 디자인한 달걀 의자(Egg™). © Fritz Hansen. Photo: Tim Bjørn.

유럽과 미국에서 디자인이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본격적으로 활용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였다. 때는  건축가가 핵심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건축 설계와 가구와 실내장식까지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예컨대 르 코르뷔지에, 독일의 에곤 아이어만(Ego Eiermann), 덴마크의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등은 건축 프로젝트 수주시 실내용 가구 디자인까지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고집했다던 대표적인 ‘가구 건축가(furniture architect)’들이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1958년 디자인한 달걀 의자(Egg™)는 코펜하겐 로열 호텔 로비와 리셥션 공간의 실내장식용으로 주문받아 제작되었다. 이 호텔의 건축 외형과 실내장식을 조화롭게 결합한 ‘가구 건축가’ 야콥센의 종합예술주의의 사례다.

전후 1950년대 이후부터 경제재건을 위해 이탈리아 뉴웨이브 붐을 일으키며 기랑성같은 디자인 거장을 배출한 이탈리아(죠 폰티, 카스틸리오네 형제 등)에서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은 물론 자동차와 가전제품 디자인에 기여한 주인공들도 다름아닌 건축가들이었다.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별개의 분야로 결별시키려는 움직임이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서 시작된 이래, 지금도 의자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산업디자이너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찰스와 레이 이임즈( Charles & Ray Eames) 부부는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와 가구를 가리켜서 “작은 건축”이라고 부르며 철제와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제품으로 현대 디자인의 대량생산과 소비주의 문화를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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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넬슨의 마시멜로 의자. Collection Vitra Design Museum 
© Vitra Design Museum.

큐비클 사무공간의 창시자 조지 넬슨(George Nelson)은 허먼 밀러와의 협력 끝에 완성한 의자 디자인으로 유명해졌고, 현대 디자인 마케팅의 창시자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본직이던 그래픽 디자인에서 영역을 넓혀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으로써 인테리어 영역까지 포용했다.

대량생산과 소비주의와 후기 산업사회가 무르익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 와서 건축가들은 의자를 디자인하는 일에서 한발짝 물러나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로 그 임무를 넘겨주었다. 20세기초 바우하우스식의 기능주의에 저항한 디자이너 개인의 독특한 컨셉과 스타일,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가 의자 디자인에 임한 디자이너들의 주된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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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의 위글 체어. 값싸고 구하기 쉬운 소재가 유행했던 1960년대 디자인 트렌드를 가구 디자인에 응용했다. 에지보드로 불리는 카드보드 종이를 여러층으로 겹쳐 접착제로 붙여 제작하여 일상생활에서도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충분할만큼 견고하다. 1972년 작품.

특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전세계를 강타한 스타 아키텍트의 건축붐을 타고 의자 디자인은 건축가의 시그너쳐 건축 스타일과 창조적 자존심을 한데 결함해 뽐낼수 있는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카드보드를 겹치고 구부려 제작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위글 체어(Wiggle Chair)라든가, 기상천외한 형태로 보는이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토르크 체어(Torq)는 의자 본연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의 개성을 응축시킨 조형성 강한 미니 건축에 더 가깝다.

이미 세상에는 도저히 다 팔수없을 만큼 많은 수의 의자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의자 본위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의 자아 표현이 위주가 된 예술작품으로서의 의자는 앉기에 그다지 편하지도 앉은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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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형태(Form in Motion)”라는 슬로건을 모티프로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Z-체어(Z-Chair), 스테인레스 광택 강철 소재, 24개 한정수량으로 Sawaya & Moroni 생산. 2011년 작품.

그러다보니 세상에 넘쳐나는 의자들에 대한 일부 젊은 디자이너들의 볼멘 소리도 잦아졌다. 예컨대 올 201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디자인수도 행사를 기해 핀란드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제발 더 이상 의자 디자인은 그만’하자는 이색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도 있었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천해 온 의자 디자인은 또 미래에 어떻게 진화해 나갈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숙제거리일듯 하다.

 

침묵의 세대를 위한 디자인

DESIGN FOR THE SILENT GENERATION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기의 디자인 제2편: 1925-195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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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쟈끄 룰만 (Emile-Jacque Ruhlman)의 아르데코 양식 인테리어.

지난 5월 9일 개관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세기의 디자인 2편: 1925-1950년』 전은 총 4편으로 구성된 디자인 시리즈 전시 가운데 그 두번째.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럽 모더니즘 디자인 작품들 가운데 1925-50년 중 등장한 디자인을 양식별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감각적이고 우아한 1920-30년대의 프랑스 아르데코 (Art Deco) 양식을 비롯, 동시대 독일 아방가르드 미술 및 디자인 미학을 주도한 바우하우스 (Bauhaus), 그리고 자연적 재료와 선의 미학을 특징으로 하는 1930년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포함한다.

1925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된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장식양식인 아르데코는 1920년대말부터 30년대까지 유행했다. 날렵하고 모던한 현대감각과 우아하고 정제된 고전양식을 한데 어우른 실내장식과 가구제품들은 값비싸고 귀한 목재와 금속 소재를 사용하여 고도의 숙련된 제조공들의 손으로 제작된 것들이어서 당시 파리 귀족과 호사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파리의 금박 청동 설화석고 소재 램프와 흑목과 상아로 된 사이드보드 (1922년경 제작)는 이국적 소재로 제작된 사치품에 분명하다. 또 쟝 퓨이포카 (Jean Puiforcat)의 은주발(1934), 안드레 마레, 그네 쥘르 랄리크의 가구와 유리 디자인과 비 파리출신 아일린 그레이 (Eileen Gray) 등의 작품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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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 (Eileen Gray)가 1930년대에 디자인한 팔걸이 의자.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1919년 창설된 바우하우스는 독일 정부가 조직적으로 지원 운영한 디자인 학교로서 사치스러운 아르데코 양식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디자인 양식과 운동을 일컫는다.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제료와 오브제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기능적인 생활용품을 창조하여 여러 대중의 생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이념에서 출발한 양식이었다.

바우하우스 건축과 디자인 철학은 동시대 미술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쳐서 20세기 전반기 추상미술의 핵심 이론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 국제양식이다.

그 유명한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의 “바실리” 팔걸이 의자 (1925년)를 비롯해서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헤 (Ludwig Mies van der Roher)의 S-라인 “MR” 의자는 바우하우스의 대명사급 제품들이다. 여기에 아리안네 브란트 (Marianne Brandt)의 은과 흑목 소재로 된 차거르개 (1925년 경)는 작지만 기하학적 선과 형태로도 뛰어난 우아미를 성취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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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구부린 철관으로 제작된 캔틸레버 의자 “바실리” 팔걸이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독일의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

바우하우스의 양식의 기능위주의 직선적 엄격성은 이후 30년대 중엽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기초적 영감이 되었다. 광택 목재와 대체 금속 및 유리소재 등과 같은 자연적 소재를 이용, 곡선의 유기적인 형태의 가구들은 흔히 인체를 연상시키곤 한다.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알바 알토 (Alvar Aalto)의 “31” 팔걸이 의자 (1930-33년)와 스웨덴의 브루노 매드슨 (Bruno Mathson)의 “페르닐라 (Pernilla)”(1941년)는 스칸디나비아 가구의 고전작들이다.

같은 시기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챨스 에임즈 (Charles Eames)는 스칸디나비아 가구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합판목을 이용한 “LCW” 안락의자 (1946년)를 디자인했다.

 

스웨덴 모더니즘의 거장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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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브루노 매트손의 작업 모습.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20세기 스웨덴이 낳은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 브루노 마트손이 건축디자이너로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소개되어 서구 모더니즘 건축 디자인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평가받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디자인 여정 동안 마트손이 이룩했던 디자인 작업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항상 최첨단을 시험하는 혁신의 가도를 주도했지만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 더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는 시공을 뛰넘는 모더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1970년대에 서구 근대 디자인사에 기여한 그의 작품 세계를 기리는 뉴욕 근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서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기하여 『뉴욕 타임즈』 지가 “브루노가 우리 미국인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돌아왔다!”라며 반가워했을 정도로 브루노 마트손이 그의 모국인 스웨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국제 근대 디자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북유럽 목공예 전통과 모더니즘의 혁신주의의 만남
4대째 캐비넷을 만드는 목가구공 카를 마트손 (Karl Mathsson)의 아들로 태어난 브루노 마트손 (Bruno Mathsson, * 1907년 – ✝ 1988년 )도 타고난 목공장이였다. 예로부터 목공예로 잘 알려져서 지금도 디자인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베르나모 (Värnamo)에서 태어난 그는 스웨덴 남부 지방의 자연을 벗한 나무 소재와 친숙한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목공예 전통을 어릴적부터 깊이 호흡하며 목공예에 관한 세세한 노하우와 기법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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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의자, 1931년 작품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 기간 동안 전유럽을 뒤흔들고 있던 기능주의 모더니즘 미학에 깊이 매료된 그는 당시 구할 수 있었던 문헌들과 정간물을 탐독하며 모더니즘과 기능주의 이론을 독학으로 섭렵했다.

그렇게 해선 탄생한 브루노 마트손의 디자인 명작 제1호는 그가 1930년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를 방문하고 한껏 영감을 얻어 말 안장 모양으로 디자인 한 1931년작 일명 “메뚜기 의자 (Gräshoppan)”였다.

“메뚜기 의자”는 그의 고향에 있는 베르나모 병원의 접수실 공간용 의자로 설치되었는데 그의 혁신성은 당시의 스웨덴인들의 눈에 낯설어 보인 나머지 기괴하고 흉칙스러워 보인다는 불평을 받고는 창고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그같은 미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더 의욕을 느꼈던 그는 목재를 가열하여 굽히는 기법 (이 기법은 이웃나라인 핀란드에서 알바 알토가 이미 1920년대에 실험했다.)을 활용하여 등받이가 있는 긴 안락의자 시리즈를 계속해서 실험했다.

그 결과 1937년 파리 박람회에서 그의 작품들은 대륙권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온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게 되었고 급기야 뉴욕 근대 미술관으로부터 방문객용 의자를 디자인해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공의 유기적인 융합
브루노 마트손 디자인의 핵심어는 자연과 디자인을 연결하는 인체공학적 해법, 공간적 사고, 그리고 건축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관심사가 그랬듯이 그 역시 가구, 인테리어, 건물 디자인 상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정한 문제점을 규명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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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뢰자쿨 자택의 거실 광경 (Sitting-room in Frösakull).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새로운 생활 환경, 근대적인 라이프스타일, 과학기술의 진보에 걸맞는 새로운 표현 언어를 찾기를 원했던 그는 그래서 건축 외부와 실내 공간 및 개별 가구 아이템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총체적인 공간을 실험했다. 자연과 잘 조율되는 날렵하고 유기적인 가구 형태는 프뢰자쿨 (Frösakull)에 지은 주말 별장의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양차 대전과 파시즘의 대두 등 격동과 소용돌이의 근대사를 거쳐 오는 가운데 브루노 마테손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랑스러운 모더니스트이자 국제주의자 (internationalist)였다. 그의 국제주의적 활동 반경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에서 한창 전개되던 공공 주택 사업과 미래지향적 비젼과 관련하여 상당수 미국과 함께 이루어졌다.

특히 1940년대에 뉴욕 근대 미술관의 에드가 카우프만 큐레이터의 주선으로 아내 카린과 함께 한 기나긴 미국 여행 동안에 브루노 마트손은  전후 시대 미국 건축과 디자인의 개척자 찰스 이임즈 (Charles Eames), 나치의 예술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온 독일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뉴욕의 고급 사무용 가구 생산업체 크놀 (Knoll), 그리고 미국의 거장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라이트 (Frank Lloyd Wright) 같은 건축디자인계의 거물인사들과 친분을 구축하는 행운도 맞았다.

이 여행을 계기로 마트손은 지금도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해 준 일명 “유리 주택 디자인 (Glass House)”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실제로 마트손은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짧은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서 기후가 따뜻한 남유럽 포르투갈로 건너가서 유리로 된 자택을 직접 디자인하여 그곳에서 겨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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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닐라 1 (Pernilla 1) 안락의자. 1943년 작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또 그는 개방적인 사고와 도전적인 창의력이 높은 인정을 받는 나라 덴마크를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흠모했던 그는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였던 피에트 하인 (Piet Hein)과 협동으로 그 유명한 “이클립스 테이블 (Eclipse table)”을 디자인했으며, 1970년대에는 일본과도 디자인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도 일본의 가구생산 업체인 히오스 (Hios )디자인 사의 라이센스로 가구 용품들이 생산판매되어 오고 있다.

그가 줄기차게 옹호해 온 이른바 “마트손의 궁극적 의자 문화 (ultimate sitting)” 철학은 그가 디자인한 의자와 테이블에 세심하게 고려된 곡선 감각에서 잘 반영되어 있다. 자연히 그는 현대인들이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공간을 위한 환경과 가구를 디자인하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누운 자세로 일을 하면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일처리에 임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사무실이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당시의 노동 문화의 견지에서 볼 때 두 말 할 것 없는 혁신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1940년대 초엽에 차례로 선보인 “페르닐라 (Pernilla)” 의자 시리즈와 1960년대의 “젯슨 (Jetson)” 의자는 뒤로 누을 수 있는 긴 안락형 작업 의자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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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제작생산된 “아니카 (Annika)” 테이블.

주관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영리한 머리를 소유자 마트손은 단순하면서도 꼼꼼한 우아함이 돋보이는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함과 기능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은 유리 주택을 비롯한 50차례에 넘게 수행했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들과 나무를 가열하여 굽혀 만든 라미네이트 목재 가구 용품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가구 아이템들에 그는 여성의 이름을 달아주곤 했는데, 예컨대 에바 (Eva), 미나 (Mina), 미란다 (Miranda), 페르닐라 (Pernilla) 등은 각 의자 모델마다 지닌 독특한 개성을 한층 강조해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환경주의 미래를 위해 또다시 평가받는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 세계
마트손이 건축을 통해서 생전 자연과 인간 사이의시각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에 쏟은 열정은 지금도 미래의 건축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혜안을 제시해 준다. 최근들어 지속가능한 (sustainable) 환경친화적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는 젊은 세대의 전문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년 전에 마티슨의 철학과 건축 디자인에 응용했던 기법을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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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뇌 (Tånnö)에 있는 브루노 마트손의 자택, 1964-65년. Photo: Åke E:son Lindman.

그는 미국 여행을 다녀 온 후 1950년대에 고향 메르나모의 한 가구 전시장에서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바닥 전기 히터가 설치된 콘크리트재 유리 주택을 지어 선보였었다. 그는 사방벽 중에서 한 면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나머시 세 면은 질소가 주입된 3중 유리창을 벽대신 설비해 넣는 마트손 고유의 “브로노 유리창 공법 (Brunopane)”을 선보이고 특허인가까지 받았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성향과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우수한 미하적 경제적 디자인 해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법은 안전상의 이유로 건축허가청의 관료적 난관에 부딛히곤 해서 결국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중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웁살라의 파르마시아 (Parmacia) 실내 장식(1973년), 단더리드의 핵가족용 주택(1955년), 쿵쇠르의 가족 주택(1954년), 브루노의 자택들에 간직된 다시금 자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환경친화성과 기법적 혁신성이 한데 융홥된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건축 디자인 50년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모색하는 보편적 건축 디자인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노 마트손 건축 디자인 (Bruno Mathsson – Designer and Architect)』 전시회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건축박물관 (Arketektumuseet)에서 [2006년] 2월9일부터 8월27일까지 전시된다. Photos courtesy Copyright © Arkitekturmuseet 2006.

 

의자 과거와 오늘, Part 1

의자 –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한 앉기의 문화

CHAIRS OLD & NEW

당신은 생각해 보았는가? 의자에 앉으라고 권유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해 땅바닥이나 층계에 걸터앉아야 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를? 중요한 손님을 반겨야 하는 사업가나 개인은 찾아온 객인에게 편히 앉을 것을 권유하며 의자를 제공한다. 반면 쇼핑센터를 거니는 익명의 쇼퍼나 관광객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나 상업적 커피숍에서 돈 쓰지 않고 다리를 쉬고 싶어하는 지나치는 사람은] 은 지친 다리와 허리에 쌓인 피곤을 잠시나마 다스리기 위해서 땅바닥이나 계단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린다. 지친 인간의 몸과 마음에 순간적인 휴식 혹은 다소간이나마의 안락과 권력의 순간을 안겨주는 인간 신체와 빈 공간 사이의 매개물체 – 그것은 다름아닌 ‘의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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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궁중에서 사용되던 요강 © 2013 Schloß Schönbrunn.

오늘날 서구 장식 미술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 오브제도 바로 의자이며, 디자인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애송이 디자인 학과 학생으로부터 거장 디자이너들이 제각자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압축해 보여주고 평가를 기다릴때 가장 우선 내보이는 표준 잣대가 또 바로 이 의자다.

의자란 엉거주춤 무릎을 90도로 구부려 둔부를 바닥에 대고 앉으면 등을 뒤에서 받쳐 주는 가구. 해서 엄밀히 정의하자면 엉덩이가 바로 닿는 시트(seat)와 등받이(back rest)가 갖추어진 것이 의자(chair)이다. 누워서 잠자고 몸을 직접 움직여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을 하는 순간을 제한다면 인간은 쉬고, 먹고, 일하고, 심지어 배설하는 순간까지 의자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니 의자라는 가구 품목이 우리 일상생활과 얽힌 관계는 심히 뿌리 깊다 아니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의 의자가 처음 탄생한 때는 기원전 3세기경 고대 이집트. 아마도 인류의 조상들이 실내의 딱딱한 바닥과 벽에 보다 안락감있게 앉고 쉬기 위해 나무 줄기를 깎거나 켜서 꼬고나 엮어 만든 일종의 쿠션이나 방석을 얻어 만든 원시적인 형태에서 출발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던 의자들은 그같은 방석 내지는 쿠션 형태에서 한 걸음 발전해 동물 형상을 한 의자 다리에 시트와 쿠션을 붙인 석식 의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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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말경 미국의 실내 장식 디자이너 테렌스 해롤드 롭스존-기빙스(Terence Harold Robsjohn-Gibbings)가 유럽에서 불어닥쳐 온 모더니즘 미학과 18-19세기 고전주의 양식을 결합해서 고안한 동명의 명품 의자 클리즈모스 의자는 바로 이 고대 그리스 의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클리즈모스(Klismos) 의자는 의자 디자인 역사상 가장 우아한 형태를 자랑하는 인류 초기 의자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은 더 이상 진품을 구경할 길이 없지만 고대 그리스 도기 그림에서 그 모양새의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시트는 얇게 켠 나무골로 가로세로로 짜서 만들고, 등받이는 몸의 곡선에 맞도록 굴곡시킨 가로판과 세로판을 붙여 만들었으며, 다리는 *사브르 모양으로 앞과 뒤로 날렵하게 휘어진채 의자 시트와 등받이를 떠받들어주는 모양새를 지녔다.

오늘날 낚시꾼들과 캠핑족들이 잊지 않고 가져가는 X-자 모양의 휴대 의자의 탄생 시기는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일명 *가위 의자(Scissors Chair) 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의자의 기본 원리는 서로 앞뒤 또는 좌우로 교차되는 다리의 힘으로 시트를 받쳐주어 사용자가 그 위에 앉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기본성과 단순성 때문에 등받이가 있는 의자용으로 그리고 등받이가 없이 시트만 있는 걸상(stool)용으로 공히 널리 사용되었던 기발성있는 의자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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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나롤라 의자(Savonarola Chair) 또는 단테 의자(Dante Chair)로 불리는 가위형 다리 의자.

다리를 가위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유럽 초기 중세 시대에는 교회나 수도원에서 기도용 접개식 걸상으로 널리 활용되었으며, 이후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을 해야했던 직공 장인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특히 르세상스 미술 문화가 더 널리 드높이 보편화되어 꽃피우던 16-17세기 시대가 되자 이 가위자 모양의 의자 디자인인 자못 화려해지고 소재면에서도 가죽이나 고급 직물을 사용해 만드는 등 고급화되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인문주의자들의 이름을 딴 사보나롤라 의자(Savonarola Chair) 또는 단테 의자(Dante Chair)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생산되었다.

이 가위 의자의 실용성 만큼이나 우아한 자태 덕분에 이후 18세기 신고전주의 시대에는 고전 미술로의 복귀 운동에 힘입어 가구 디자인에서 가위 의자가 여러 변형된 형태로 재탄생했으며, 19세기 중엽부터는 강철 소재의 발견 덕택에 본래 온전히 목재로 만들어졌던 가위 의자에 강철 부품과 부속이 덧가해져 디자인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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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가구 제작업체 켄셋 (Kensset) 에서 생산한 이 턴드 의자는 16세기 유럽에서 제작되기 시작했던 다리 세 개의 삼각 의자 모형에 기초하고 있으며 영국 서머셋 웰스 비숍 팰리스에서 생산되던 의자를 원형에 충실하게 재건한 것이다. Copyright © V&A Images.

그러나 한 집안의 가장에서 부터 교회나 왕실 등 주요 직책을 맡은 가중있는 신분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가위 의자 보다는 등받이가 높고 크며 묵직한 소재로 제작된 위엄있는 의자에 앉아서 업무에 임했다.

16세기 튜더 왕조가 지배하던 영국에서 사용된 의자는 대체로 박스 모양의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가 기본을 이루던 사각 틀 모양의 턴드 의자(Turned Chair)였다. 단순엄격한 박스형 골격은 유지하되 벨벳같이 각종 값비싸고 귀한 직물천, 가죽, 브로케이드와 프린지 장식물, 금동 못으로 현란하게 장식한 의자가 품위있는 가정에서 앉을 용도와 빈공간 장식용으로 널리 유행했다.

그같은 화려한 의자 장식 유행은 17세기 이르면서 그 정교한 직물과 장식물을 각종 고급 목재를 재료 삼아 목조각으로 재현한 정교한 목공 의자가 목공예 재간의 극치를 이룩했다. 같은 시대 프랑스에서도 의자 시와 등받이를 값비싼 직물로 감싸고 부와 안락을 상징하도록 시트와 등받이를 두툼하게 채워 넣는 모양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대명사이자 태양왕 루이 14세에 와서 의자 등받이는 전에 없이 높고 시트의 폭은 넓어 졌으며 복잡화려한 굴곡과 세심한 직물 및 목공 기량과 값비싼 금박과 칠 공예가 눈에 띄는 장황한 모양새의 의자가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 역할을 톡톡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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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엽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존 리넬(John Linnel)이 디자인한 윈저 의자 연필 드로잉 Copyright © V&A Images.

그같은 유행은 대륙권 유럽에서만 아니라 바다 건너 영국으로 전해져 왔지만 프랑스에서 행해지던 화려장대한 취향과 고도록 숙련된 목공 기술은 다소 침착하고 소박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오늘날 흔히 *카브리올 다리(cabriole leg)로 불리며 영국식 앤티크 책상과 의자에 즐겨 활용되고 있는 젊잖은 곡선 형태의 다리가 바로 이 카브리올 다리이다.

영국에서는 중심 도시에서 벗어난 농촌 지방에서 17세기 말경부터 윈저 의자(Windsor Chair)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의자는 카브리올 다리 의자를 한결 실용적이고 단순화시켜 만든 대중용 의자였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이 윈저 의자는 18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곳에서 수공 제작되는등 미국식 의자로 재탄생하여 대중적으로 애용된 의자가 되었다. 오늘날 일반인들이 미국 서부 영화의 살룬이나 한가로운 저택 발코니에 놓여있는 목공 의자와 흔들의자는 바로 윈저 의자가 미국화된 것들이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등받이 부분이 리본처럼 엮이고 꼬인 형태를 따서 얽히고 설키듯 복잡다단한 패턴을 따 만든 리본등받이 의자 (Ribbonback Chair)가 유행하는 동안, 영국에서는 이 젊잖은 카브리올 다리에 옛 고딕식 패턴이나 중국식 동식물 문양 직물 패턴이 가미된 의자가 큰 인기를 끌었다.

  • 사브르 다리(sabre leg)란? 별다른 굴곡이나 장식 없이 사각 모서리를 그대로 살려서 매끈하고 우아하게 앞뒤 혹은 좌우로 살짝 휘며 뻗은 의자 다리.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졌던 클리모스 의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후 고전주의 복귀 운동이 전개되었던 18세기 신고전주의 시대의 직선위주의 절제된 의자 디자인에 다시 응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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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기 영국 글래스턴버리 수도원장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X자형 의자는 고대 그리스풍을 본따 다리를 X자형으로 디자인했으나 접히지는 않는다. 어거스터스 웰비 노스모어 퍼진(Augustus Welby Northmore Pugin) 공방 제작 Copyright © V&A Images.

  •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X-자 의자란? X-자 의자는 서양 중세기 부터 주로 교회당에서 사용된 의자 형태로 그 우아한 모양새와 종교적 권위의 상징성 때문에 이후 르네상스 시대까지 귀족과 종교 권위자들이 즐겨 사용했다. 특히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사보나롤라 의자 또는 단테 의자는 이 시대부터 특유의 가위자 다리 구조를 발전시켜 접었다폈다 할 수 있도록 처음 고안되기 시작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가위자 다리 모양은 실제로 접개 기능을 하지 못했던데 비해서 의자의 부피를 손쉽게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동에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 이후 귀족들 사이에서 야외 피크닉, 사냥 또는 야외 정원용 의자로 각광받았던 X-자 의자는 20세기 근현대 의자 디자인에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돼 주었다.

  • 카브리올 다리(cabriole leg)란? 카브리올 다리란 의자나 걸상을 포함해서 책상이나 탁자 처럼 다리가 달린 가구를 떠받치는 다리 부분 중에서도 2중으로 곡선을 그리며 내리뻗은 다리 모양을 의미한다. 윗부분의 곡선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아랫부분의 곡선은 안쪽에서 바깥쪽 방향으로 곡선을 형성하는게 일반적이며 본래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으로부터 유럽으로 소개되었으나 유행을 끌지 못하다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들어 비로소 특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실내장식용 가구에 즐겨 사용되는 양식이 되었으며 18세기 중엽부터 다시 퇴조하였다. [제2부 계속]

 

의자 과거와 오늘, Part 2

근대와 20세기 – 의자의 보편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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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을 계속 이어서] 의자 디자인의 두 큰맥이랄 수 있는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전까지 자랑하던 화려장대한 디자인 양식을 폐기하기 시작했다. 17세기 대륙 유럽과 영국을 휩쓸었던 바로크와 로코코의 열병을 뒤로 하고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유럽은 온통 신고전주의 운동(Neocalssical Movement)이 본격화 되었다. 고전주의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 속 미술이 이룩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이를 18세기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 신고전주의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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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과 마호가니 목을 소재로 하여 19세기에 제작된 엠파이어 스타일 팔걸이 의자. 당시 파리의 고급 가구 생산을 장악했던 목공소 명인 쟈콥-데스말터(Jacob-Desmalter)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 Sotheby’s.

신고전주의 양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의자 디자인을 보면, 바로크와 로코코의 복잡다단하고 번잡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그 대신에 직선 위주의 다리와 시트 디자인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 곡선은 타원형 정도의 절제된 원형으로 자제하는 추세를 보였다.

예컨대 영국의 리전시 스타일의 의자나 프랑스 나폴레옹 제정 시대를 주도했던 제국양식(Empire Style) 의자는 각각 고대 이집트 시대 파라오의 권좌를 연상시키는 팔걸이 의자와 고대 그리스 시대의 클리즈모스 의자의 기본 형태를 본따 만들어진 의자들의 대표작들이다.

19세기, 구 귀족들이 점점 경제적으로 몰락해가는 동안, 신흥 부르조아 계층이 급부상하면서 사회적인 신분상승과 자기 과시를 하는데 있어서도 새로운 유행이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문화 영역에서는 이른바 역사주의(Historicism)가 유럽을 강타했는데, 이 시대 역사주의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종족의식 같은 지엽적 성향의 민중적 감성에 기초하고 있다보니 자연히 처연한 감상주의(感傷主義, sentimentalism),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치는 감각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주로 일반 대중들의 평범하고 통속적인 감성에 어필하는데에 기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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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넷 형제가 1865년경 디자인해 생산한 토넷 의자 제1번. 빈 황제가국박물관 소장 Photo: F. Simak © Kaiserliches Hofmobiliendepot, Wien.

프랑스의 제국 양식(Empire Style), 영국의 치펜데일(Chippendale)과 빅토리아 양식(Victorian Style)이 계속되는 동안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유럽에서는 신흥 중산층 사이에서 비더마이어 양식(Biedermeier Style)이 크게 유행했다.

비더마이어 양식으로 만들어진 의자 디자인의 영원한 고전으로 꼽히는 토넷(Thonet) 의자는 목재를 엮고 굽히는 고유의 제작 방식 만큼이나 단순 간결한 완성도를 이룩한 19세기 의자의 고전작이다. 오늘날까지 의자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토넷은 이후 20세기 근현대 여러 디자이너들의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기에서 20세기로 치달아가는 약 20년 간은 유럽에서 모더니즘이 폭발적인 창조적 분출을 경험했던 시대였다. 영국의 미술과 공예 운동, 프랑스의 아르누보, 독일어권 국가의 유겐스틸 운동은 바로 그 대표적인 움직임들이었는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 스코틀랜드의 찰스 레니 매킨토시, 벨기에의 앙리 반 데 벨데, 프랑스의 가이아르, 오스트리아의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호프만 등은 식물에서 도출한듯 묘하고 아름다움 곡선미와 근대적 직선미를 결합한 최초의 근대적 의자 디자인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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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디자인해 생산된 바실리 의자 위에 앉아 있는 바우하우스 건축가 겸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 Photo courtesy: Thomas Breuer.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양차 세계 대전이 유럽을 휩쓰는 환경 속에서 유럽 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더 이상 의자 디자인의 유행을 선도하는 유일한 대륙이 아니었다. 제1차 대전후, 독일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는 철관이라는 아주 근대적인 재료를 사용해 캔틸레버 구조로 의자 디자인의 혁신을 이루었다.

독일 출신의 근대 디자이너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가 디자인한 철재 의자 받침구조와 가죽 시트의 바르셀로나 의자(Barcelona chair)는 지금도 비트라에서 꾸준히 생산판매 되고 있는 근대 의자의 고전이 되었다. 또 스위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철제 팔걸이 의자, 핀란드의 거장 알바 아알토(Alvar Aalto)의 라미네이트 굴곡목 의자, 전후 미국의 산업디자인을 재정의했던 찰스 에임스(Charles Eames)의 철제와 플라스틱 소재 의자 등은 근대 디자인의 국제성을 대변해 주는 명작들이다.

대량생산과 소비주의와 후기 산업사회가 무르익기 시작한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독특한 컨셉과 스타일, 20세기초 바우하우스식의 기능주의에서 탈피한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가 의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들의 핵심적 창조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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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미아 운동의 선구자 알레싼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프루스트』 의자(Poltrona di Proust)는 1978년에 생산되었다. Photo courtesy: Pinakothek der Moderne München.

1960년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대가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에서 표현된 미래주의 시대정신과 인체공학의 유행, 1970년대의 팝 디자인, 1980년대 이탈리아의 스튜디오 알키미아(Alchimia)와 멤피스(Memphis) 아방가르드 디자인 운동을 거쳤다.

이어서 경제와 문화의 세계화(Globalization) 정책으로 인류 역사상 경기 호황과 윤택하고 안락한 소비주의 문화가 최고조를 이루었던 1990년대가 되자 전세계적 건축붐을 타고 전에 없이 많은 스타 건축가들이 건축 외형과 부합하는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 후기 산업시대 포스트모던 의자 디자인의 각축 시대를 목도했다.

첨단 신소재와 공학에 의존해 의자 본유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독특한 개성, 재미와 개념적 위트를 과시하고 표현할 수 있는 조형물로 된 현재 21세기, 다가올 10년 동안의 의자 디자인과 인류의 앉게 문화는 또 어떻게 진화해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