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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정글] 현대 건축 – 형태는 법규를 따른다?

‘Form Follows Rule’ – Contemporary Architecture Design 

우리는 안전한 건축과 건물관리가 필요하다.

WIG 74, Kurpark Oberlaa. Image: MA 42 – Wiener Stadtgärten. Courtesy: 〈Form follows Rule〉 exhibition at Architekturzentrum Wien (23.11.2017–04.04.2018)

우리나라에선 올 겨울철 유독 큰 화재와 건설현장 안전사고가 많다. 크리스마스 직전 충북 제천시에 있는 한 큰 피트니스 스파 건물에서 난 화재에서 30명 가까이 생명을 잃었고, 크리스마스 당일 수원 광교의 한 대형 건물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붕괴와 화재가 일어나 건설인부들이 부상을 당했다. 엊그제 밀양의 한 종합병원에서 화재가 일어나 40명 가까이 숨졌고 전국 전통시장 여러 곳에서도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질 않는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기온이 급강하하자 수도관 동파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인간에게 유익하게 활용되어야 할 불과 물이 재앙의 불씨가 되는 것은 왜일까? 『디자인정글』 FOCUS 2017년 12월 28일 자 Future of Design: 디자인 현재 창조적 미래 칼럼 제24탄 전체 기사 계속 보기. Continute reading this article on Design Jungle magazine

[디자인 정글] 재난을 위한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넘어 회복가능한 디자인으로

Design for Disasters

justincase

2012년 세계종말이 올 것이라는 고대 마야 문명의 달력의 예견에 대비해 멕시코의 디자인 회사 MENOSUNOCEROUNO가 디자인한 재난시 응급구호품 세트.

‘한반도 최근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 일어나 아수라장!’, ‘지진 안전지대라는 한반도 규모 5.0 이상 지진 가능성 커져’. 올여름 울산 동쪽 해안에서 일어나 울산과 부산 시민들을 놀라게 한 지진이 지난 9월 경주에 다시 발생했다. 규모 5.8의 강진이었다. 최근 빈발하는 우리나라 동남쪽 지진 현상은 수년 내 큰 지진이 발생할 전조 증후라는 지질학계의 예측도 나온다.

21세기 떠오르는 새로운 사회문제, 재난 최근 지진 활동이 잦아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0년 1월에는 아이티 섬 포르토프랭스 대지진이 일어났고, 2015년 4월에는 네팔에서 규모 8 안팎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또한 올 초에는 타이완과 에콰도르에서 각각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가장 최근인 8월 말 중부 이탈리아 지진은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사상자가 많아서 대서특필되었다. 『디자인정글』 FOCUS, 2016년 9월 27일 자 Future of Design: 디자인 현재 창조적 미래 칼럼 제11탄 전체 기사 계속 보기. Go to article in Design Jungle magazine

스타[아]키텍트의 興.亡.盛.衰.

THE RISE AND … STUMBLE OF A STARCHITECT

스타키첵쳐는 지난 20여 년에 걸친 승승장구 끝에 드디어 몰락을 맞고 있는 것일까? 최근 국제 건축평론계에서는 거물급 유명 수퍼스타 건축가가 전세계 건축붐과 건설산업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스타키텍쳐(starchitecture)’ 추세가 드디어 저물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타키텍쳐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리즘 물결을 타고 이른바 프랭크(프랭크 게리), 렘(렘 코올하스), 자하(자하 하디드) 같은 몇몇 소수의 스타키텍트들이 설계한 기상천외한 모양의 건물들이 전세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여러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하게 된 최근 건축 트렌드에 대한 찬반 논쟁은 특히 최근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지 오피니언 면의 토론실(Room for Debate) 컬럼에서 절찬리에 펼쳐지며 문화계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자하 하디드 스캔들로 인해서 수많은 유능한 건축가와 건축사무소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 스타키텍쳐 시스템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Hadid_portrait

건축가 자하 하디드 (1950-2016)

이같은 현상의 계기에 불을 지핀 결정적인 사건은 8월 25일, 미국의 건축 평론가 마틴 필러(Martin Filler)가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지에 출간될 예정이던 한 편의 건축도서 신간 서평에 담긴 내용이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법정 고소했다는 건축계 소식으로부터 점화되었다.

하디드 측은 명예 실추로 인한 명예 훼손 피해를 들어 일개 잡지사로서는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고액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소했다. 이튿날인 8월 26일,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지가 8월 28일 자 이 평론글을 웹사이트에 출판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이 글을 쓴 평론가 필러가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당분간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Continue reading

신조형과 실험주의 – 1990년대의 건축 [제1부]

New Forms and Experimentalism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90s

20세기 후반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유산을 이어받아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공존
인본주의에 기반한 이상주의적 예술관에서 출발한 20세기초 모더니즘이 세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따분하고 천편일률화된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무릎을 꿇고 나자, 1960년대부터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이 등장하며 건축을 본령을 삼아서 현대인들의 시각 환경과 미적 감수성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Continue reading

일본적이어서 세계적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

Arata Isozaki. Japan Architect 지, 제61호, July 1986년 7월호, 9쪽.

Arata Isozaki. Japan Architect 지, 제61호, July 1986년 7월호, 9쪽.

ARCHITECTURE OF ARATA ISOZAKI

동서가 만나는 공간
고희(古稀)가 넘는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라타 이소자키(Arata Isozaki 磯崎新,  1931년 7월 23일 생)는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일본적인 생존 건축 디자인의 대가다. 이소자키는 뉴욕의 유명한 팔라디움 디스코텍 (Palladium, 1985년)와 같은 포스트모던풍의 현란한 공간에서부터 지극히 일본적 정적감이 감도는 스위드 파월 (Swid Powell) 가구사 본사 건물(1984년)과 1992년 바르셀로나 몽쥬익 올림픽 주경기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축 디자인을 소화해 낸 바 있다.

또 그런가 하면 건축계에서는 깔끔하면서 단정하면서도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아라타 이소자키의 건축 스타일이 가장 전형적으로 구현된 작품으로서1986년에 완공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컨템포러리 아트 미술관 (LA MoCA: Los Angeles Musuem of Contemporary Art)을 꼽는다. 적색 벽돌, 대형 유리, 금속을 주소재를 이용해 지어진 LA MoCA 건물은 그가 “…창조성, 형태와 색채의 대담성, 용의주도하게 계산된 디테일링”을 탁월하게 이룩해낸 일본 출신의 국제적 건축가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대중 사회를 위한 건축

Kitakyushu City Museum of Art (1972–4)

키타규우슈우 시립 미술관 (Kitakyushu City Museum of Art) 건물은 아라타 이소자키의 메타볼리즘 양식 시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1972–4년)

일본 큐슈에서 태어나서 동경 대학에서 겐조 단게 밑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1954년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스승을 뒤이어 일본의 국가 대표급 건축 대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0대의 이소자키가 활동하던 1960년대, 미래에 본격화될 대중 사회를 대비하여 대규모의 융통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자생가능한 건축 및 도시 설계를 주창한 일본의 메타볼리스트 건축 운동 (Metabolist Movement)에 잠시나마 영향을 받았던 그는 1963년에 독자적인 건축 사무소인 아라타 이소자키 앤 어소시에이츠 (Arata Isozaki & Associates)를 개업하고 현대적인 첨단 건축 기술과 건축적 실용주의를 겸한 건축을 설계하는데 심취했다. 1966년에 일본 오이타 현(縣)에 완공된 시립 공공 도서관과 시립미술관 건물들은 바로 1960년대 메타볼리스트 건축 운동의 영향이 강하게 엿보이는 사례로 꼽힌다.

일본식 포스트모던 건축 구축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이소자키는 일본 바깥으로 눈을 돌려 자신의 작업 반경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추구해 오던 일본적인 미감과 공간적 해법과 다소 정형화된 박스형 건물 형태를 내던지고 보다 불규칙하고 실험적인 형태를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적황회색의 자유분방한 형태를 자랑하는 도바타 소재 기타 큐슈 시립 미술관(1974년)과 중간이 불룩한 배럴형으로 설계된 오이타 현 후지미 클럽하우스 건물(1974년)은 첨단 건축 시공 기술에 힘입어 시도된 이소자키의 형태적 실험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오카노야마 그래픽 미술관 (1982-84년)과 츠쿠바 시민 센터(1983년)는 각각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전을 현대화한 듯한 차용적 요소와 서양의 역사적 건축 양식을 두루 뒤섞은 듯한 절충주의가 두드러진 포스트모던풍 건축물들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자칫 이소자키의 건축은 장식이 절제되고 엄격한 미니멀리즘으로 느껴질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의 건축 실물을 직접 접해 본 관객은 예상치 못한 친근감과 아늑함을 느끼곤 한다. 최대한의 공간감을 연출하기 위하여 높은 천정과 탁트인 실내 공중 공간을 확보하고 유리창을 활용하여 인공 조명등 보다는 외부로부터 자연광이 내부로 들이치도록 하여 따뜻하고 친근한 실내 분위기를 창조하기 좋아하는 이소자키 특유의 유희 감각 덕분이다.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한 미국 마이애미 시에 있는 배스 미술관(Bass Museum of Art) 건물. 2001-2005년. Image: Bass Museum of Art.

아라타 이소자키가 설계한 미국 마이애미 시에 있는 배스 미술관(Bass Museum of Art) 건물. 2001-2005년. Image: Bass Museum of Art.

이소자키가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가리켜서 스스로 명명한 ‘순수 양식화된 일본풍화 (japanesquization)’ 스타일이 그 특유의 유머 감각과 잘 어우러진 예는 1989-90년에 완공된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란도 소재 팀 디즈니 빌딩(Team Disney Building)을 꼽을 만하다. 초대형 원통형 건물 위에 해시계를 얻어 놓은 듯한 이 디자인은 대담한 색상과 형태는 물론 즉흥적인 유희 감각 면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의 대표작임에 틀림없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다시 태어난 건축가 이소자키
이소자키는 실내 디자이너 겸 제품 디자이너로서도 탁월한 색채 의식과 유머 감각을 발산하여 특히 구미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최근, 19명의 초국제급 스타 건축가 및 실내 디자이너들이 저마다의 공간 창조력을 무한대로 발휘한 “꿈의 호텔 프로젝트”로 화제가 된 스페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 실내 디자인에 참여한 바 있는 그는 자신의 본령인 일본풍 현대 인테리어를 다시 한 번 실현해 보였다.

그가 담당한 이 호텔 10층의 객실 인테리어는 미묘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안겨주는 전통 일본식 실내를 환기시킨다. 특히 욕실은 전통 일본식 욕실에서 볼 수 있는 통나무로 된 욕조가 은근한 미색을 발휘하며 명상적인 분위기로 연출되었고, 침실 공간은 적백흑 3색 위주의 공간 및 액세서리와 쇼지(障子) 공간 분리대로 장식된 것이 인상적이다.

구미권 건축계를 일본에 교육시켜 온 건축 이론가 겸 사상가로서뿐만 아니라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서 가장 일본적인 현대 건축을 구미권에 소개하고 있는 아라타 이소자키의 열정은 80세 산수(傘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루이스 칸의 기념비적 건축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LOUIS KAHN: THE POWER OF ARCHITECTURE

20세기 미국을 대표한 가장 뛰어난 건축가중 한 사람이었던 루이스 칸(Louis Kahn, 1901✴︎필라델피아 -1974✝ 뉴욕)이 심장마비로 1974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뉴욕 타임즈』 지 부고 기사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위력적인 형태를 창조하며 수많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미국 최고의 생존 건축가로 학자의 인정을 받았던 루이스 I. 칸이 일요일 저녁 [뉴욕] 펜실바니아 역에서 73세의 나이로 하직했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칸이 사망했을 즈음, 이 건축가는 한 아내와 두 애인을 포함한 세 집 살림의 가장이었으며 정력적인 건축 설계 활동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설계가 살아생전 실현되었고 약 5억 달러 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다카 소재 국회 건물. 1962년 시공 -83년 완공.

Alfred Newton Richards Medical Research and Biology Building, Philadelphia, Pennsylvania, 1957-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Malcolm Smith.

Alfred Newton Richards Medical Research and Biology Building, Philadelphia, Pennsylvania, 1957-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Malcolm Smith.

본래 에스토니아의 한 외떨어진 섬 오셀에서 태어났지만 1904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와 동부의 역사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한 루이스 칸은 마음 속 깊이 필라델피언이었다. 한창 일하며 경력을 키워야 할 시절이던 초년병 시절, 때가 1920-30년대 경제 공황기였던 탓에 루이스 칸은 독립 건축가 일과 예일 대학 강사일을 하며 간신히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1950년대 이후 패권국 미국의 경제 재건과 함께 칸은 보다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 수주를 받기 시작했다.

살아 생전 칸은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과거 미술과 건축의 미학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출했던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광적인 스케치 메모광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가 추구하던 구성적 합리주의와 세기전환기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에서부터 독일의 바우하우스 모더니즘을 두루 합성한 독특한 모더니스트이기도 하다. 그 자신 르 코르뷔지에의 초기 모더니즘 건축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으나 고대부터 근대기까지 시대과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양한 요소를 취했다. 예컨대 칸은 자신이 설계해 완공시킨 소크 연구소(캘리포니아 주 라 졸라 시 소재)는 ‘피카소도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라며 떵떵댔던 대표적인 역작이었다.

겉보기에는 전통적이고 때론 원초적인 형태를 띠되 시공 기술 면에서는 최첨단 재료와 공법을 동원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혁신성을 발휘했다. 또 한 작품 착수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과 숙고를 거쳤던 여간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으며 건축가는 중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녔다 믿었던 사명감찬 직업인이었다. 오늘날 건축학계에서 루이스 칸 건축을 모더니즘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의할 것인가 여전히 그 언쟁이 분분하다. 그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수주받아 수도 다카에 지은 육중해 보이는 국회 건물은 한 편의 건축물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영원한 기념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걸작이다.

오늘날, 건축학계에서 루이스 칸의 건축 세계는 그가 이룩한 걸작 건축에서부터 초기 도시 토목설계와 소형 개인 주택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있다. 칸이 설계한 모든 건축물을 관통하는 일관된 미적 특징을 정의하라면 단연 면밀한 공간구성과 세심하게 연출된 빛처리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들은 고요엄숙하면서도 동시에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보는이를 압도하는 위력을 발산한다. 미국 텍사스 주 포트 워드 시에 있는 명소 킴벨 미술관은 빛을 다룰줄 알았던 칸의 탁월한 재능이 건물 구석구석에 실현된 작품으로 꼽힌다.

Salk Institute in La Jolla, California, Louis Kahn, 1959 – 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John Nicolais.

Salk Institute in La Jolla, California, Louis Kahn, 1959 – 65 © The Architectural Archiv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oto: John Nicolais.

칸의 아들 나타니엘 칸(Nathaniel Kahn, 1962✴︎))이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건축가(My Arhitect)』(2003년)에 보면, 인터뷰에 응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렌조 피아노(Renzo Piano),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그리고 젊은 건축 소우 후지모토(藤本 壮介, Sou Fujimoto)의 공상과학풍 메타볼리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국제 건축계를 쥐락펴락하는 영향력 있는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루이스 칸의 건축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벽돌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라고 한 루이스 칸의 말은 유명하다. 건설 재료에 담긴 특성이 건축물 자체의 언어를 표현해줌을 뜻한다. 그리고 그는 또 “구조가 빛을 빚어준다”고 했는데 “자연광 없는 방은 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그의 빛 철학도 유명하다. 벽돌과 콘크리트가 빛과 소근거리는 공간을 창조했던 루이스 칸의 건축물들은 한 편의 굳건하고 영원한 기념비처럼 남아있다. Photos courtesy: Vitra Design Museum.

산문시와 같은 건축, 건축과 같은 인생

ARCHITECTURE OF ÁLVARO SIZA

50년 묵묵히 걸어온 거장 건축가 – 알바로 시자의 건축 세계

흔히들 요즘에는 ‚건축가는 21세기의 록스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유명세와 사회문화적 의미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사 행세를 톡톡히 한다. 그중에서도 알바로 시자는 누가 뭐라해도 글로벌 문화를 이끄는 이 시대의 스타 건축가들의 대열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거장 현대 건축가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아랍 무어족의 대표적 기념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 스페인 그라나다의 1천년 된 알함브라 궁전과 광장 모습. 알바로 시자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 후안 도밍고 산토스와 협동으로 알함브라 궁전 방문센터를 설계했다. Topographical Architecture. Image from the Alhambra Project by Álvaro Siza Vieira and Juan Domingo Santos © António Choupina.

알바로 시자가 설계해 현재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포르투갈 파비온(Pavilhão de Portugal)은 1998년 리스본 세계박람회를 기해 완공되었다.

그러나 알바로 시자는 화려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꺼린다. 지난 십여년 구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기라성 같은 여타 ‚스타 건축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최첨단 건축 시공 기술과 신소재를 한껏 활용하여 때론 기괴하고 때론 극단적이기까지한 극도의 실험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 알바로 시자는 단순한 형태와 미묘한 빛의 조화를 공간 미학으로 승화시킨 그만의 독특하고 일관적인 건축 양식을 구축해 왔다.

알바로 시자는 지금까지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건축 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1933년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무역과 상업이 성행한 북부 포르투갈 지방에서 제일 큰 도시로 알려져 있는 오포르토(Oporto) 근방에서 태어났다. 오포르토에 있는 미술 대학(Escola de Belas Artes)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50년대 후반기에 선배 건축가이자 시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 페르난도 타보라(Fernando Tavora)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며 건축 실무를 익힌 후 1960년대 후반기부터 고국에서는 물론 스위스, 미국, 베네주엘라, 일본 등에서 대학 강의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이미 1970년대 중엽부터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알려온 알바로 시자는 특히 1982년과 1990년의 파리 퐁피두 센터, 1983년 런던 인스티튜트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 1988년 하버드 건축대학 등 고국 보다는 해외 무대에서 더 유명해 졌다. 작년 초 뉴욕에 있는 디자인 전문 갤러리(Ohm Design)에서 열린 <시자-5:50전>은 알바로 시자가 자기 작업을 직접 정리한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담담하며 자신의 건축과 디자인 인생 50년을 총정리한 종합전시로서 전세계 대도시들을 돌며 순회전으로 부쳐지기도 했다.

공간과 형체의 일체를 추구한 알바로 시자의 건축적 가치가 국제 건축계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때는 시자가 1988년 미스 반 데어 로헤 건축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였다.

깔끔하고 단수하면서도 강하고 통일감을 자랑하는 건축으로 시자는 이후 1992년에 건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축계의 아카데미상격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받았고, 이어서 2002년에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최고의 건축 프로젝트에 수여하는 금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2년 판, 13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2012년 8월29일-11월25일)는 알바로 시자에게 평생공로 금사자상을 선사했다.

„내가 건축에서 가장 눈여겨 보고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명료성(clarity)과 단순주의(simplism)다.“ 고 한 알바로 시자의 고백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서구 건축계에서는 상자각을 연상시키는 그의 반복적이고 잠재적인 단순미를 가리켜서 그를 미니멀주의자(Minimalist)로 즐겨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단순주의란 복잡함을 제거시킨 단순성(simplicity)이 아니라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여러가지 복잡성을 명료한 형태로 한 편의 건축물 속에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건축 철학을 두고 보아 노바 티 하우스(Boa Nova Tea House)과 세투발 대학(Setubal College) 건물이라든가 산티아고 미술관(Santiago Museum) 등 같은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들 속에는 고요한 표현주의가 잠자고 있다고 포르투갈의 건축 비평가인 페드로 비에이라 데 알메이라는 평가한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이 고요하고 단순해 보이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표현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자연 태양광을 자유자재로 다룰줄 아는 건축가의 탁월한 재주 때문일 것이다. 빛의 달인인 알바로 시자는 건축물의 안팎을 들이치는 태양광을 단순히 실외를 구분하고 사물을 분별하기 위해 대상에 떨어지는 빛줄기에 불과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을 통해서 들이치는 빛은 과거 르 코르뷔지에식의 „단순한 빛덩어리“가 아니라 조형화되고 만져질 것 같은 빛처럼 느껴지곤 한다. 지중해 까까이 위치한 태양과 여유의 나라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점 때문일까. 이른바 „키아도(Chiado)“ 감흥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빛 조형 감각은 고국 포르투갈의 고도시 키아도의 두꺼운 돌벽 고건축물들에 달린 유리창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가공된’ 빛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해안도시 세투발에 1993년에 건립된 세투발 교육대학 건물은 U형 대지 기반 위에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시공기간: 1986-1993년.

시자의 작품 세계가 내뿜는 또다른 특징은 요즘 국제적인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하기 즐기는 대규모 건축물을 고집스럽게 거부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그런 그의 건축 스타일을 가리켜서 우쭐하지 않는 겸손의 수사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제아무리 거창한 이름의 클라이언트의 주문과 프로젝트의 규모와는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일정한 스케일을 고수하는 그의 건축 철학의 결과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주변 환경에 어울리도록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 20세기초 독일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 건축 원리가 강조했던 것처럼 사용자의 신체적 편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 „휴먼 스케일“의 원칙,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열정은 건축 설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변함없는 않는 최우선적 요건들인 때문이다. 이상주의 건축을 이행한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자동차는 없고 보행자만 있는 도시 베네치아, 교통수단과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도시 나폴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의 건축적 철학과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시자의 설계로 1993년에 완공된 포르투갈 오포르토에 있는 건축 대학 건물은 주변 환경에 대한 섬세한 이해, 덩치 큰 건축을 거부하는 반(反)거물형 건축에 대한 지향, 그리고 정교한 디테일 마감이 잘 어우러진 예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스타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와 나란히 캘리포니아 파사디나에 있는 아트 센터 오브 칼리지의 확장 건축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는 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건축 설계라는 천직을 ‚일생에서 제일 중요한 취미’라고 믿으며 계속하고 있다.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지  2005년 11월호에 실렸던 것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팝업 호텔 체험 시대

POP-UP CHIC

2012년 8월 열린 런던 올림픽에 맞춰 개장을 기획한 A Room for London은 퀸 엘리자베스 홀 지붕 위에 위치해 경관이 특별하다. Photo courtesy: Living Architecture.

팝업 레스토랑, 팝업 가판대, 팝업 부티크. 예상치 않은 장소에 불쑥 나타나 독특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이른바 팝업숍(pop-up shop)들이 최근 몇 해 구미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이제는 팝업 리테일(pop-up retail)로 불리며 최신 소매 트렌드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에 걸친 한정된 기간 동안 소비자들을 만나고는 사라져 버리는 임시성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하고 깊은 기억을 새겨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의류와 외식업계 마케터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 리테일 전략이다.

천편일률적인 대형 쇼핑몰 보다는 거리의 아담하고 일시적인 팝업숍이 소비자의 감성과 기억에 깊이 어필한다면, 미지의 도시나 자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빤한 호텔 체인 보다는 팝업 호텔에서 보다 각별하고 추억깊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색다르고 독특한 호텔에서 하루중 가장 소중한 시간 – 휴식과 프라이버시 – 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그같은 팝업 호텔(Pop-up hotels)들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어 트래블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2007년 파리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된 팝업 에벌랜드 호텔의 모습. Photo © Lang/Baumann.

설치미술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팝업 호텔 컨셉은 벌써 십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 에벌랜드 호텔(Everland Hotel)이 2002년에 시도한 팝업 호텔 실험은 사비나 랑(Sabina Lang)과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두 미술가의 설치미술 프로젝트였다.

2002년 첫 설치장소는 스위스 이벌든(Yverdon)에 자리한 에벌랜드 호텔로, 컨테이너 개조하여 노이챠틀(Lake Neuchâtel) 호수를 내려다보도록 설계한 원룸 호텔방을 소개했다. 두 미술가는 이어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Leipzig) 지붕 위에 이 팝업 호텔 객실을 설치해 전시(2006년6월-2007년9월)했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팔레드도쿄 현대미술장(Palais de Tokyo) 건물 지붕 위에 설치 전시(2007년10월-2009년 봄)했다.

한편 해외 관광객이 많아진 글로벌 시대에 발맞추어, 프랑스 건설업체 아빌모(Abilmo)가 2008년에 처음 소개한 조립식 팝업 호텔방 컨셉은 특히 여름휴가철 유럽 페스티벌 애호가들과 배낭족들을 겨냥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팝업 호텔을 본격 상업화한 업체는 영국 트래블로지(Travelodge UK) 호텔 체인. 트래블로지는 2008년에 영국 런던 교외 억스브리지(Uxbridge)와 히스로(Heathrow) 두 도시 역세권에 선박용 컨테이너를 층층히 쌓아 객실로 전환한 팝업 호텔을 개장했다.

비즈니스 컨퍼런스, 페스티벌, 휴가철 등 방문객 수가 집중적으로 느는 성수기에 임시적로 건설해 임시 숙박업소로 운영하고 비수기가 되면 철거한다는 컨셉이다. 조립식 컨테이너 객실을 층층히 쌓아 한 채의 호텔 건물로 완성하는데에는 길어야 12주. 기존 식건물 시공에 비하면 공사기간이 짧고 건설비와 에너지 소비비용도 절감된다는 장점 때문에 에코 디자인에서 눈여겨 보는 대안 건축 모델이기도 하다. 트래블로지 호텔측은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동안에도  팝업 호텔을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잭스 캠프 럭셔리 사파리 호텔. Photo courtesy: Uncharted Africa Safari, Co.

전세계를 여행하며 모바일 캠퍼들에게 올림픽, 월드컵, 문화 페스티벌 애호가들을 위해서라면 호텔 모빌(Hotel Movíl)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짐을 풀었다 쌌다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고속도로와 시골길을 달리며 호텔방의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물 트럭과 호텔방이 하나로 합쳐진 호텔 모빌은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에 친숙하고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안성마춤이다. 스페인 업체가 개발한 이 ‘움직이는 호텔’은 총2층에 11개 객실을 수용할 수 있으며 객실별 욕실, 대형평면 TV, 무선인터넷, 럭셔리 인테리어 액세서리가 완비된 5성급 부티크 호텔 기준을 갖췄다. 호텔 모빌의 대당 단가는 미화 5천만 달러, 1주일 대여료는 미화 8,000달러다.

건설과 철거가 손쉬운 팝업 호텔 특유의 장점에서 영감받아 반영구적인 호텔로 지은 곳들도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엠호텔(M-Hotel)은 선박용 컨테이너와 붙박이식 조립가구로 만들어져 현재 단기거주를 원하는 비즈니스맨이나 여행객들이 머무는 레지던스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출신 건축가인 팀 파인(Tim Pyne)이 설계한  엠호텔은 널찍한 침실과 오피스 공간이 하나로 융합된 스페이스 컨셉에 기초하고 있다.

각 방은 20피트 컨테이너 한대에 해당하는데, 전형적인 20피트 컨테이너는 길이 약 5.9미터 폭 약 2.3미터 높이 약 2.4미터 크기다. 킹사이즈 침대와 럭셔리 내장재와 악세서리로 갖춰져 있는 욕실, 그리고 고급 간이주방까지 충분히 소화하고 있어 작은 공간도 잘만 설계하면 얼마든지 넉넉한 공간으로 연출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규모있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그런가하면 최근들어 팝업 호텔은 럭셔리화되고 있는 추세다. 잭스 캠프(Jack’s Camp)는 바로 그런 수퍼딜럭스 팝업 호텔의 대표적인 예다.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 근처  칼라하리 사막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잭스 캠프는 최고급 럭셔리 캠핑 텐트 경험을 선사한다. 럭셔리 호텔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언차티드 아프리카 사파리 사(Uncharted Africa Safari Co.)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회 행사를 맞아 개장한 후 현재는 아예 영구적으로 지속 운영하고 있다.

칼라하리 사막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자연 경관과 초호화 가구와 카페트, 46인치 플라즈마 스크린 TV, 24시간 남아공산 고급 와인과 바베큐 다이닝 서비스, 전용 헬기 서비스, 고고학 탐험과 사파리 워크 산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눈 많은 스위스 레 세르니에(Les Cernier) 마을에 위치한 화이트파드(Whitepod) 샬레는 이글루를 연상시키는 텐트와 현대식  인테리어를 결합시킨 숙박시설로 알프스 대자연과 호화 레스토랑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최근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The Merlion Pop-up Hotel)은 현대미술과 호텔을 접목시킨 새로운 숙박 경험을 시도한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싱가포르 비엔날레(2011년 3월13일-5월15일)는 싱가포르 국립미술관과의 협동으로 미술과 호텔 객실이 하나로 합쳐진 메를리온 임시 팝업 호텔을 공개했다.

2011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행사에 맞춰 일본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가 설계해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머라이온 팝업 호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니시 다쯔(Tatsu Nishi)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 상징동물을 건축자재로 포장하여 럭셔리 호텔 객실로 변모시켰다. 객실은 2인 이하 투숙만을 허용하며 하룻밤만 묵고 체크아웃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엔날레가 개막되기도 전부터 숙박 예약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호응이 컸는데, 비엔날레를 위한 미술전시작이기 때문에 이 행사 마감과 함께 철거될 예정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를 활용했다하여 벌써부터 화재가 되고 있는 팝업 호텔도 있다. 내년 개장을 앞두고 잇는 룸 포 런던(A Room for London) 팝업 호텔은 바로 그런 경우다. 다가오는 런던 2012 페스티벌(2012년 6월21일-9월9일)에 대비한 품 포 런던은 사우스뱅크 센터에 자리한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의 지붕 위에 2인용 원룸 객실로 지어질 예정이다. 데이빗 콘(David Kohn) 건축사무소가 건물설계를 맡고 현대미술가 피오나 배너(Fiona Banner)가 실내장식과 미술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어서 전세계서 방문할  건축디자인 애호가들의 순례 발길을 재촉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유리피데스는 “행복의 순간은 짧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정치가 로이 굿먼은 “행복이란 여행과 같아서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 담겨있다”고 했다. 범람하는 정보와 하이스피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현대 소비자들의 주의력은 나날이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팝업 호텔은 색다르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영원한 추억을 안겨줄 특별한 여행경험을 선사해줄 수있지 않을까.

* 이 글은 본래 『Chronos』 Korea 2011년 5/6월호 vol. 14 206-7에 실렸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크로노스』코리아판 보기.

모더니즘 도그마는 저리 비켜라!

198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 뉴아방가르드로서 포스트모더니즘 (제1편 – 건축)

POSTMODERNISM AS NEW AVANT GARDES –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80’s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해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형상과 스토리가 제거된 추상미술은 관객과 소통하는가? 관객은 추상미술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추상미술은 종국에 누구를 위한 미술인가? 이 작품은 독일의 사진가 토마스 슈트루트 (Thomas Struth, 1954 생)의 「뉴욕 근대미술관, 제1번 (The Museum of Modern Art I)」, ‘The Museum of Modern Art I New York 1994년, 총 인화된 사진 10장중 10번째 사진, Thomas Struth 1994’ 컬러 커플러 인화, 71½ x 94¾ in. (181.5 x 240.5 cm.)

1980년대 미철학 – 규율과 기능주의의 교조주의를 접고 순수 이상과 조형의 유희를 추구하다. 진정 모더니즘은 실패한 예술 실험이었는가?
영국의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조차도  그의 변치않는 모더니즘 이상(理想)에 대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예술과 미학은 대중들에게 호소하고 사랑받는데 철저히 실패했다’고 거침없이 지적했다. (참고: 에릭 홉스봄 저 『시간의 뒤안길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쇠퇘와 몰락 (Behind the Times: The Decline and Fall of the 20th-Century Avant Gardes)』 (London, Thames and Hudson, 1998년) [이 책의 우리말 번역판은 조형교육에서 나와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언어학과 진화 인류학 분야에서 현대 최고의 권위와 대중적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그의 최근 저서들인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나 (How Mind Works)』(1997년 간)과 『빈 서판 (The Blank Slate :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2002년, 한국어판 사이언스북스 간)에서 모더니즘 미술은 출발부터 인간의 근원적인 미적 감지력과 취향에 거스르는 미학을 추구한 결과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보다는 오히려 외면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결론지었다.

누구를 위한 모더니즘이었는가? 20세기 모더니즘은 인류 역사상 전 지구상의 국가와 언어와 문화권 할 것 없이 도처에 인간의 환경과 사고방식에 철두철미하고 전면적인 변혁을 불어 몰고 온 문명의 대(大)분기점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 역사 반세기 이상을 넘는 세월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같은 거창한 체제 영역으로부터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루다 설명할 수 없이 파고든 모더니즘의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여간해서 요령부득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철학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 1978년 설계.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치펜데일풍 지붕과 포스트모던한 몸체로 건축계와 여론의 찬반논란을 일으켰던 뉴욕 AT&T 사 사옥 건물 모형과 함께 한 건축가 필립 존슨의 모습. AT&T 건물은 1984년 완공되었다. 2007년 이후 AT&T 빌딩은 소니 플라자 빌딩이 되었다. Photo: Bill Pierce/Time & Life Pictures/Getty Images.

독일 바우하우스 학파를 비롯하여 20세기 전반기를 주름잡은 여의 건축 및 디자인 분야의 거장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만인의 생활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보편적인 휴머니즘 미학을 이룩한다는 이상을 뒤쫒았음에도 불구하고, ① 건축과 디자인은 결국 한편으로는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대기업과 정부 관료 기관에 봉사하는 시녀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으며, ② 또 한편으로는 대중을 소비자라는 유행과 소비의 노예로 만든 대량 소비주의 지향적 마케팅 전략이 가장 즐겨 활용한 기업들의 부가가치 창출용 수단으로 변신변질 되었다.

1960년대말 서구 사회 곳곳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돌발적으로 불거진 반문화 운동 (Counter-culture Movement)과 인문학계 내 지성인들 사이에서 전개된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모더니즘의 바로 그같은 변질을 지적하며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런 한편,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면서 서구 사회와 일본에서의 경제 성장은 계속되는 가운데 평범한 대중들은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가 안겨준 풍요와 안락을 누리고 있었다.

“No more ‚Less is more’ but ‚Less is a bore” 단순한 것이 더 심오하다고?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 – 건축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봉 미스 반 데어 로헤 (Mies van der Rohe)가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의 미학적 근본 기치로 내걸었던 „Less is more.“(단순한 것이 더 의미있는 것이라는 의미)는 미학 모토는 어느새 부터인가 „Less is a bore“ 즉, ‘단순한 것은 따분한 것’이라며 빈정어린 비판의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그같은 분위기는 1980년에 접어들면서 이성 (rationality)보다는 감성 (emotion) ,보편적인 ‚고급 취향 (good taste)’ 보다는 대중문화와 저급 주변 문화에서 영감 받은 ‚저속 취미 (bad taste)’, 엘리트 취향의 규율 보다는 불특정의 다양성 및 재미 (fun)와 재치 (wit), 대량생산 (mass production) 보다는 소량창조 (small-scale creation)를 추구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시대의 출발을 고하는 것이었다.

예술계와 학계 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알파벳 앞의 두글자를 따서 줄인 ‚포모 (PoMo)’라는 속칭으로도 불리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당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1960년대 중엽부터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1960년대말 부터 1980년대까지 전개된 새로운 건축 디자인의 유행을 통해서 더 구체화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인가 아니면 모더니즘과 단절인가? 학계는 논쟁을 멈추지 않으며 ‘포모’의 정체를 밝히려 애썼다.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미국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설계하여 1982년에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 현재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시 소재.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1세대 20세기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학계에서만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었다. 문화계 전반에서도 유럽과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특히 미국에서, 1950-60년대 대도시의 대기업 사무실 건물 설계를 맡았던 미국 마천루의 건축 제왕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은 이미 1970년대말에 근대식 건축 골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영국 18세기 귀족풍 치펜데일 양식이 오묘하게 뒤섞인 AT&T 사 건물을 뉴욕에 지어 올리는 것으로써 판에 밖힌 모더니즘풍의 국제 건축 양식의 답습에 대항한 일탈의 제스쳐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6년에 미국에서는 건축가 로버트 벤추리 (Robert Venturi)가 『건축에 있어서 복합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라는 책을 써서 박스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이며 일체의 장식성이나 의미가 제거된 무미건조하고 청교도적인 모더니즘식 건축의 시대는 이제 물러갈 시기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1972년에 『라스 베가스의 교훈 (Learning from Las Vegas)』라는 책을 내고는 쇼비즈니스 오락과 도박의 인공인조 도시 라스 베가스의 거리 도처와 고속도로 주변에 널려있는 절충적인 상업 건축물과 저속한 빌보드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미학이야 말로 다가올 미래의 신건축이 가야할 길이라고 선언했다.

또 콜린 로우 (Colin Rowe)와 프레드 쾨틀러 (Fred Koettler) 공저 『콜라쥬 도시 (Collage City)』(1973년 간)와 렘 코올하아스 (Rem Koolhaas)의 저서 『들뜬 도시 뉴욕 (Delirious New York)』(1978년 간)에서 마천루의 천국 뉴욕에서 급속히 출현하기 시작한 새로운 포스트모던풍 건축물과 거리 풍경을 지적하면서 과거의 건축 양식들의 복귀와 다양한 건축 요소들의 재출현을 높이 찬양했다.

그 기원과 발원지가 무엇이었든지 상관없이 1980년대의 건축가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은 단순간결과 무장식성을 추구했던 ‚경직된 모더니즘 도그마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anti-thesis to Modernist aesthetics)’과 ‚과거 및 기존 이미지들의 재발견-혼합-절충’이었다.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로버트 벤추리가 어머니 바나 벤추리를 위해 설계한 가정집 (“Mother’s House”, Vanna Venturi House), 단순함과 모순성이 한데 결합된 포트스모던 건축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다. Philadelphia, 1964 © Photo: Heinrich Klotz Bildarchiv der HfG Karlsruhe

포스트모더니즘 미국 건축 제2세대 뒤이어서 1980년대 중엽에는 필립 존슨의 제자들이 대거 특히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주도했다. 로버트 스턴 (Robert Stern)과 존 버지 (John Burgee) 등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과 19세기 신고전주의 건물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가미한 건축물들, 예컨대, 텍사스 휴스턴 대학 건축 학교 빌딩(1982-85년 완공), 버지니아 대학 천체관측소 부설 식당 건물(1982-84년 완공), 캘리포니아 라 홀라 프로스펙트의의 오피스 빌딩(1983-85년 완공)을 통해서 과거 건축 양식과 현대적 요소들이 뒤섞인 절충적인 건축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건축 설계를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건축가들 가운데에서 특히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는 강렬한 색과 과장되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첨가된 건축물로, 그리고 리쳐드 마이어 (Richard Meier)는 한결 젊잖고 보수적인 경향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기인 1970년대 말엽부터 1980년대 동안 대서양 건너편 유럽 대륙에서도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反모더니즘적 경향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포트스모더니즘 건축이 팝아트, 광고나 만화 같은 저급 대중 문화 이미지, 미국 건립 초기의 식민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 등과 같은 다양한 원천에서 두루 차용하여 절충 결합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면, 유럽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한결 정치적・이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는 추세였다.

“유럽의 미래는 과거에” – 유럽의 전통 복고주의 유독 유럽에서 포스트모던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1980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상 최초로 건축 비엔날레가 조직되면서 „현재 속에 잔존하는 과거 (The Presence of the Past)“라는 대제목으로 열린 건축 전시회를 통해서 불거졌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이 책은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일찍이 1966년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도 로씨의 포스트모던 건축론 『도시 건축론』의 표지.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인류학 같은 인문학을 건축과 도시토목설계에 반영시킨 기념비적 저서다.

이 전시에는 로버트 벤추리, 찰스 모어 (Charles Moore), 파올로 포르토게지 (Paolo Portoghesi), 알도 로시 (Aldo Rossi), 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리카르도 보필 (Ricardo Bofill), 레옹 크리에 (Leon Krier) 등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이끌던 국제급 건축가들의 작품 세계가 소개되어 개인주의 (individuality), 친밀성 (intimacy), 복합성 (complexity), 유머 감각 (sense of humor)을 건축요소로 삼아 이전 모더니즘 건축과는 퍽 색다른 건축 정신을 선언했다.

무려 반세기가 넘게 승승장구한 제1차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의 끝으로, 현대적인 건축과 도시 설계로 급격히 현대화된 주거 생활 환경을 경험한 이탈리아인들은 새삼 과거로 눈을 돌려서 19세기와 20세기초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를 재발견하여 건축으로 재해석하려는 ‚역사주의 (Historicism)’ 운동을 되살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 걸쳐 그동안 방치되어 왔거나 허물어져 가는 고건축물을 복원하는 고건축 재건축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시기도  바로 1980년대 부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알도 로씨 (Aldo Rossi)는 일찌기 1960년대에 과거 고전주의가 지닌 엄격한 건축 원칙을 높이 찬양하는 건축서 『도시 건축론 (L’architettura della città)』(1966년 간)을 발표하고 이탈리아 지방 마다의 맥락에 맞는 고전주의 건축을 제안하였다. 역사주의을 취한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들 가운데에는 마이클 그레이브스, 로버트 벤추리 등이 대표적이며 디자인 회사들 가운데에는 크놀 (Knoll), 알레시 (Alessi), 포르미카 (Formica) 등이 그같은 계열 속에서 기능 보다는 과거의 시각적 장식성과 환상적인 이미지를 되살린 가구 및 가정용 제품 디자인에 주력했다.

또 1980년대는 이탈리아어권 스위스에서도 유난히 많은 건축디자이너들이 탄생하여 국제 무대로 명성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현대 건축계의 스타 마리오 보타 (Mario Botta)를 비롯해서 마리아 캄피 (Mario Campi), 브루노 라이흘린 (Bruno Reichlin), 파비오 라이하르트 (Fabio Reinhardt)는 모더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이른바 ‚신합리주의 (Neorationalism)’ 건축을 정착시킨 장본인들이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에 있는 조르쥬 퐁피두 센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Photo: Michel Denancé

모더니즘의 무자비하다시피한 엄격주의와 규율에서 탈피하되 근대적인 소재와 건축 기술을 백분활용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인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휴머니즘적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여 계승하자는 건축 디자인 철학을 골자로 하고 한 이 신합리주의는 곧이어서 독일의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thias Ungers),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 벨기에의 롭 크리에 (Rob Krier) 등과 같은 건축가들이 동참한 1980년대 유럽의 핵심적인 건축 경향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파리에서는 이미 1970년대말에 급속히 발전한 건축 기술과 소재의 발전을 한껏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파리 퐁피두 센터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 공동 설계)를 지어 선보였다. 건축사 최초로 건물의 철골 골조와 구조적 내부설치물이 바깥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도록 설계된 퐁피두 센터 건물은 처음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그 파격성과 도발성으로 비난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이 건물이 파리의 역사적 자리에 들어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물로서 선언한 과감한 제스쳐와 유희적 유머 감각은 지금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맨 위 이미지 설명: 오즈발트 마티아스 웅거스 (Oswald Mathias Ungers)의 건축 설계 스케치, Deutsches Architekturmuseum, Frankfurt am Main, 1980년 (Coloured drawing, ca. 40,0 x 30,0 cm) © DAM

※ 이 글은 본래 LG 인테리어 『공간사랑』지 2005년 8월호 “History of …” 연재 컬럼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1970년대 국제 건축 양식

소수의 걸작과 다수의 졸작의 시대

ARCHITECTURE OF THE 1970s – Masterpiece vs Mediocrity : The Second International Style

1970년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
아방가르드가 주류로, 이상주의가 상업주의로
자본주의적 기성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이념적인 이상주의(idealism)가 사회와 예술문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1960년대가 막을 내리고 1970년대가 출범했다.

1960년대 말, 유럽과 미국 사회를 한바탕 혼란과 자각적 환기로 몰아 넣었던 플라워파워 세대를 향해 반격의 일타를 가하기라도 하듯, 197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고 이어서 1960년대말 저항 록음악의 대명사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가 줄지어 그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으며 전설의 록밴드 비틀즈가 해체했다.

전세계의 냉전 구도는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 기업들은 나날이 대규모화되고, 지속적인 경제 부흥을 유지하기 위해서 광고와 마케팅은 그 언제보다 정교하고 세련되어 졌으며,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나날이 윤택하고 편리해 졌다. 우주 공상과학 영화 《스타워즈 (Star Wars)》와 TV시리즈 《스타 트렉 (Startrek)》은 정치적 냉전시대를 반영이나 하듯 선악(善惡) 모럴과 목적론적 낙관주의로 미국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동안에, 전에 없이 많아진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귀를 거스르는 60년대풍 록음악 대신 한결 듣기 편한 소프트록과 디스코가 대중들의 정서를 차분하게 길들이고 있었다.

1970년대, 저항 및 주변 세력의 주류화 (mainstreaming)와 아방가르드의 상업화 (commercialism)는 건축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세기 전반기 구축된 모더니즘 건축을 주류 건축의 표본으로 삼아 대규모로 상업화하기란 건설업자들 측에서도 효율적이었다. 단순간결하기 때문에 측정 표준과 기준 치수를 표준화하기에 매우 쉬우며 따라서 무한대로 반복사용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장점 때문이었다.

그 결과, 건축물 바깥 모습은 대체로 철골과 유리판으로 뒤덮힌 따분한 육방체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고, 건축 실내는 상상력이나 변조적인 공간이 불가능한 천편일률적이고 뻔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시대 건물들에서 발견되는 무미건조하고 커다락 상자 미학은 디자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는 20세기 초엽부터 1930년대까지지 무렵에 형성된 바우하우스 (Bauhaus) 건축 양식에서 비롯된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의 겉모양새를 본따서 쓰되 그 외형을 대중 주택 건설 프로젝트, 학교, 병원과 보건소, 도시 설계 등과 같은 공공 건축 건설 사업에 널리 두루 활용된 ‘모더니즘 건축의 무더기 대랑 생산의 시대’로 정의된다. 혹은 건축 디자인사에서 흔히 도는 평가에 따르면,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의 시대 특히 1970년대에 서구 구미 세계 도처에서 창궐한 모더니즘풍 건물과 고층 빌딩은 1930년대 즈음부터 서서히 보편화되기 시작한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의 답습과 반복’의 결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는 건축 사진의 조작과 연출의 시대이기도 하다. 《아키텍쳐럴 다이제스트 (Architectural Digest)》 (줄여서 《AD》라고 부른다.) 같은 건축 전문 잡지를 통해서 보여지는 건축 사진 이미지가 현실 속에서 실제 건축물을 보고 느끼는 일반인들의 시각적 판단력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AD》誌가 자랑하는 특유의 사진 촬영 기법과 편집 방식은 건축 실내외 공간에 활기차고 실험적인 느낌을 잘 부각시킨 예로 꼽힌다.

이 시대의 건축 연출 사진은 또 1960년대 말부터 서구 사회에 만연해진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적이고 이국적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각색해 다채롭게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부터 비롯된 미적 감각 곧 뒤이어 1970년대 말엽 부터 고개를 들어 1980년대를 호령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건축의 등장을 앞서 예고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으로도 부르는 197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은 보다 일찌기 세워진 거장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의 외형만을 이리저리 적당히 배끼고 변형해 대량으로 공급한 ‘모사 건물 (imitation architecture)’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30년대 전후,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을 주축으로 해 근대적 유토피아 세상 건설이라는 야심찬 이상(理想)이 건축을 통해서 단발적으로 지속되다가, 20세기 중엽에 이르자 이른바 ‘국제 건축 양식 (International Style in Architecture)’은 대학과 건설업계에서 점차 일종의 건축 관습의 하나로 굳어져 갔다.

특히 1970년대에 접어들자 전세계는 구미권과 제3세계권 할 것 없이 도처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든 규모에 상관없이 온통 사각형 모양을 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철근을 심은 콘크리트 벽과 강철 건물 골조에 유리나 금속판을 끼워 넣거나 매어 다는 시공 기법은 20세기 전반기만 해도 신소재와 형상의 잠재적 미학을 극한으로 밀어 부친다는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실험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혁신적인 사상도 세월이 지나면 타성의 산물로 변하는 법이던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그같은 요소들은 건물짓기의 표준 공식 내지는 표준 시공 요소로 보편일반화 되기에 이르렀다.

혁신적인 모더니즘 건축의 계승 그리고 타성화
사실상 따지고 보면 1970년대 즈음이 되어서 모더니즘 건축을 전보다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경지로 더 밀어붙이겠다는 야심은 그러나 말처럼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 20세기 전반기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건축 명인들은 모더니즘 건축이 이룰 수 있던 결실 면에서 이미 높은 성취도에 이르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1940년대 전후 이후로 본격화된 전세계 건축붐을 타고 전에 없이 많은 건설 주문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모더니즘풍 건물을 선호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또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의 1970년대는 유럽에서 온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들이 미국 유수의 건축 대학에 자리를 잡고 후배 건축가들을 키워낸 신세대 건축가 대거 배출의 시대이기도 했다. 1930년대 독일 나치 정권이 유태인들은 물론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들을 대거 배척했던 이유로 해서 그 결과 다수의 재능있는 건축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오면서 미국은 단숨에 건축과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는 수지를 맞았던 것이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나치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1934년에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1937년에 하버드 대학의 건축학과 학과장직을 임명받고 미국으로 가 정착했다. 독일의 건축가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도 뒤따라 하버드에서 그로피우스와 나란히 대학 강단 생활을 했다. 20세기초 다다이스트 겸 초현실주의자 모홀리-나지 (Moholy-Nagy)는 새 바우하우스를 미국에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1937년에 미국 시카고로 건너갔으며, 요제프 알버스 (Josef Albers)는 브랙마운틴 칼리지(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라우셴버그, 재스퍼 존스 등 1940-50년대 전후 미국 추상 미술의 주도적인 미술가들을 배출했다)와 예일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가르쳤다.

1970년대 건축계의 군계일학들
건축 구조 공학 전문가로서 더 빛을 발한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로베르 마이야르 (Robert Maillart), 프랑스의 외젠느 프레시네 (Eugéne Freyssinet), 이탈리아의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 (Pier Luigi Nervi)는 자칫 차갑고 무미건조한 모양으로 전락하기 쉬운 콘크리트 소재에다 상상력과 합리적인 감각을 결합한 독특한 미학적 인상을 남긴 건축가들로 꼽힐만 하다.

특히 네르비는 일찌기 1940년대 부터 이탈리아 투리노 전시장 건물(1948-49년), 파리 유네스코 빌딩(1953-58년, 마르셀 브로이어와 베르나르드 체르푸스 (Bernard Zehrfuss) 공동 설계), 호주 퍼스 뉴 노르시아의 교회당 건물(1960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육중한 콘크리트 안에 강철망을 심는 그만의 기법을 고안해서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마치 자유롭게 흐느적거리는 듯한 유연미끈한 곡선을 연출할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의 명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Sidney Opera House, 건설 기간 1957-73년)는 덴마크의 간판급 모더니즘 건축가인 요른 웃존 (Jørn Utzon, 1918년 생)의 대표적인 역작이며,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에에로 사아리넨 (Eero Saarinen)은 1962년도에 완공된 미국 워싱턴 D.C. 덜레스 국제 공항 (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을 설계를 맡아서 전에 보지 못한 전격적으로 새로운 구조 공사 해법을 발휘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역시 핀란드 출신의 거장 모더니즘 건축가인 알바 아알토 (Alvar Aalto)는 20세기가 낳은 주류 모더니즘 건축가들과는 차별되는 색다른 모더니즘 철학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0년대 중엽 이후부터 1970년대로 접어들 때까지 40여년에 걸친 건축 생애를 살면서 여타 건축가들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 않았던 산업용 소재들 예컨대, 강철, 콘크리트, 대형 통자 유리판, 알루미늄 등을 건축물에 도입하는 것을 끝까지 부인했다. 그리고 그대신 아알토는 핀란드 특유의 광활하고 친자연주의적 미학과 공간 개념에 기초하여 친숙하고 감각적이면서도 과장이나 일편의 가식이 제거된 순수미의 신경지를 개척했는데, 그래서 그는 주로 자연석, 원목, 구리 이음새 만을 사용하여 실내 공간 전체에 햇빛을 최대한 들이고 분배할 줄 안 세련된 공간 창조의 명수로서 20세기 건축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1970년대 건축계에서 빛의 조율사 라고 하면 또 떠올릴 수 있는 이름으로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 (Louis I. Kahn)을 들수 있는데, 미국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가로지르며 활약한 그는 루이스 설리번 (Louis Sullivan)이 선언한 그 유명한 모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를 새롭게 해석하여 기능이 건축물의 모양을 결정짓는 건축을 추구했다. 특히 그가 설계하여 1972년에 완공을 본 텍사스 포트 워스의 킴벨 미술관 (Kimbell Art Museum)은 건물 내부의 긴 통로의 천정 공간에 빛을 오묘하게 조절하는 대들보를 설치하는 방법을 통해서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 1970년대 국제 건축 양식이 널리 보편화되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건축가는 미국의 필립 존즌 (Philip C. Johnson)이었다. 하버드 대학 건축학교 발터 그로피우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그는 모더니즘 건축계 최고의 카리즈마적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 (Mies van der Rohe)와도 친분을 나누었는데, 일찌기 1951년에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함께 시키고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고층 아파트 건물 설계를 함께 담당하기도 했다. 곧이어 1956-7년, 존슨은 뉴욕 시그램 양주 제조사 본부 건물 설계 프로젝트를 따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바우하우스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헤와 함께 공동 설계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 2005년 1월에 98세의 나이로 타개한 것으로 보도된 필립 존슨은 독일 나치주의에 가슴 깊이 동조했다는 어두운 내면의 소유자로서 건축사 뒤안길에 남아 있지만, 또 한편으로 생전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뺨치는 적극적인 자기홍보가였으며,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을 능가할 만큼 명성과 글래머를 일관적으로 추구했던 맹렬한 건축계 커리어리스트로도 기억되며, 오늘날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에서 자하 하디드 (Zaha Hadid)에 이르기까지 현대 건축계의 수퍼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A급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20여년간 뉴욕 근대미술관 (MOMA) 의 건축담당 디렉터직을 맡으면서 바우하우스 건축 미학의 열렬한 옹호자로 활약했던 필립 존슨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마천루의 본고장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창조하는데 큰 획을 그은 장본인이었다.

1950년대 이후 전후 미국 대도시에서 전격적으로 전개된 마천루 (Skyscrapers) 건설붐은 오늘날 1970년대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을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을 가능케 했다. 1970년대보다 앞서 1950년도에 완공된 뉴욕 국제 연합 기구 빌딩 (United Nations Building)은 미국 빌딩붐을 선포한 최초의 전후 미국 건축의 르네상스를 예고한 상징물이다.

“Less is more” 라는 건축 철학을 토대로 본래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헤가 1930년대 초엽에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학교에서 착상해 두었던 단순 간결한 실용주의적 기능주의 (utilitarian functionalism) 컨셉을 기초로 설계된 이 국제 연합 빌딩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헤가 제외된 국제 건축가 팀의 단체 협력으로 설계를 마쳤다. 그런가 하면 최근들어 건축계의 재조명을 받고 있는 브라질의 이상주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 (Oscar Niemeyer)는 한 건축가의 비젼이 어떻게 유토피아 국가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놀라운 예로 꼽을 만하다.

흔히 197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은 대기업과 대형 정부 조직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일반인들로부터는 외면당한 반쪽의 건축 양식이었다고 평가되곤 한다. 20세기 전반기의 제1차 국제 건축 양식이 중소형 규모의 공공 건물이나 거주용 개인 주택을 통해서 모더니즘 시대의 새로운 건축과 실내 공간을 실험했다면, 20세기 후반의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은 모더니즘의 모태와 뿌리로부터 단절되어 냉냉하고 비인간적인 한 편의 거대한 기념탑으로 변질되었다.

제2차 국제 건축 양식은 대기업이나 정부 조직체의 재력이나 행정력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아이콘이었으나 반면에 건축의 외형이나 실내 구조는 인간에 대한 배려(예컨대 핀란드 건축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휴먼 스케일 (human scale)은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1960년대 이후 건축 생애의 말년에 접어든 르 코르뷔지에가 유독 인간의 영혼과 건축의 조화에 관심을 두었던 사실이나, 벅민스터 펄러 (Buckminster Fuller)가 환경주의 건축과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그쳤던 점,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무자비한 고건물 건축붐에도 아랑곳 않고 건축물의 상징성을 일관적으로 표현했던 에에로 사아리넨의 건축 정신이 유독 소중하게 재검토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 지 2005년 6월호 “History of …” 컬럼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다시 게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 1950년대의 건축과 디자인

“I Consume, therefore I am.”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1950s

재건과 풍요의 1950년대 건축과 디자인 – 소비주의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바바라 크루거 – 현대미술가

현대 사회를 꼬집는 예술가나 문화논평가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에게 소비활동이란 숨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의 하나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다. 예나지금이나 인간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의식주 환경은 현금이나 신용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 (commodity)이 되었다. 주유비가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안락을 내세운 탱크같은 SUV 자동차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으며,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운 아파트 신건축물과 인테리어 디자인은 보다 귀족적이고 고귀한 생활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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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디자인 미학의 창시자 레이먼드 로위가 1947년에 디자인한 코카콜라 디스펜서는 다가올 50년대 디자인을 예고했다.

고급 브랜드를 내세운 의류와 악세서리 같은 최고급 디자이너 제품들은 물론 미용실과 병원 같은 서비스 산업에 이르기까지 명품 열기는 가실줄 모르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때 사회 최고부유층 만이 가질수 있던 고가 명품은 점차 대중 소비자들도 지불만 하면 소유할 수 있는 일용품으로 대중화 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코넬 대학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프랭크의 개념을 빌자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럭셔리 열병 (luxury fever)’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Continue reading

스페인 21세기 현대 건축 순례

DESIGN NATION | NEW ARCHITECTURE IN SPAIN

현대 건축 | 스페인편(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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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HO-MADRIDEJOS ARCHITECTURE OFFICE에서 설계한 시우다드 레알 알마데네호스의 발레아세론 예배당. 2000년 완공 Photograph courtesy of Roland Halbe.

현대 건축 – 왜 스페인인가? 언제부터인가 건축에 관심있는 전세계의 건축가들과 건축 개발 기획자들은 가장 앞선 건축의 현주소를 경험하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건축업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20세기말여부터 가장 최근까지 국제 건축계에서 널리 화재가 된 건축적 성공 사례들의 다수가 스페인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건축 개가가 언론 매치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90년에 접어들어서였지만 그를 위한 기초는 그보다 이전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옳다. 유럽 북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을 맞고 난 1940년대 중엽부터 이후 35년 동안 프란시스코 프랑코 (Francisco Franco)의 민족주의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허덕이던 스페인은 드디어 1975년이 되어서야 프랑코의 사망 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왕의 자유주의 노선 정책으로 전환하고서 부터야 비로소 유럽과 국제 사회의 정당한 일원이 되었다.

프랑코 시절의 억압적이고 암울한 고립에서 벗어난 스페인은 1986년에 유럽 연합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향후 이웃 유럽 회원국들이 20년에 걸쳐 지원해 준 1천여 억원이라는 거액의 공공 자금 후원금을 받아서 본격적인 신국가 건설 및 스페인의 문화적 정체성 구축 프로젝트로 속속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화 차별화의 전략으로서의 건축 건축 및 시각 예술을 비롯한 공간 미학만큼 유럽인들이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판가름짓는 차별 요소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또 있을까. 스페인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현대 건축의 강국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중세시대에는 아랍 건축의 절정을 이룩했다고 일컬어 지는 암할브라 궁전 (8-10세기)이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 지금도 그 절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11-12세기)은 중세 로마네스크 형식의 대표적인 교회 건축물의 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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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로스 & 헤레로스 건축사무소 (스페인)가 설계한 비토리아-가스테이즈 시의 바이오클리매틱 타워. 완공 예정년도 2006년. Photo © José Hevia.

이어서 르네상스 후기에 엘 그레코의 기괴한 매너리즘풍 미술 전통과 뛰다라 17-18세기에 걸치는 동안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행해졌던 것과는 또 색다른 환상주의적 요소가 담긴 바로크 건축 세계를 이룩했다. 환상적인 상상력의 바르셀로나 출신의 근대 건축의 대가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와 현대 스타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도 바로 스페인 출신이다.

그 후로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들은 스페인 특유의 지형적 감성과 겸손함과 진지함을 주축으로 한 국민적 특성이 잘 어우러진 독특하고도 깊이있는 건축 세계를 창출해 왔다. 1980년대 중엽 이후로 1990년대에 걸쳐 지속된 전세계적인 경제 호황과 미술관 건축붐과 덩달아서 스페인에도 전에 없이 많은 국제적 건축가들이 모여들어 신건축붐 각축에 동참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신건축물들은 스페인 여러 대도시들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변화된 건축으로 인한 풍경에 못지 않게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도 급격하게 변화해서 스페인의 대도시들은 관광, 교통, 도시 인프라 그리고 문화 생활 전반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에 없는 호황과 번성을 맞기도 했다. 스페인은 이제 민주주의 정부에 의한 정치적인 재정립과 함께 지속적으로 활성화된 경제와 시민들의 문화 환경에 있어서도 국제성, 다양성, 활력을 특징으로 한 전과는 다른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스페인이 추진해 온 건축 개발 사업은 이 나라가 1960년대 이후부터 줄곧 주요 국가 산업으로 지탱해 온 관광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반영해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새로운 박물관 및 미술관, 공연장, 회담 및 회의 센터, 운동 경기장 등과 같은 문화 시설 건설 활동은 관광 산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스페인을 중요한 현대적 신건축 건설의 실험장으로 전환시키게 해주는 촉진제가 되어 주었다.

그같은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92년에 동시에 열린 세비야 세계박람회와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였다. 이후 1997년에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 (Frank Gehry)가 디자인 구겐하임 빌바오 (Guggenheim Bilbao) 미술관이 개관되어 실업과 절망으로 무기력에 허덕이고 있던 바스크 지방의 옛 철강 및 조선업 항구도시 빌바오는 문화의 순례지로 단숨에 거듭났다.

또 그런가 하면 스페인 정부는 젊은 유망 건축가들의 발굴 육성책의 일환으로 40대 이하의 건축가들을 위한 건축 프로젝트 공모전을 개최해 오고 있는데, 예컨대 푸엔산타 니에토 (Fuensanta Nieto) & 엔리케 소베하노 (Enrique Sobejano)  건축사 설계로 2002년 세비야에서 완공된 SE-30 공공주택 프로젝트와  에두아르도 아로요 (Eduardo Arroyo) 설계로 2003년 빌바오 시 외곽에 완공된 축구경기장이 그런 예들이다.

스페인의 블랑카 예오 에스투디오 데 아르키텍투라와 네덜란드의 3인조 건축사무소 MVRDV가 공동 설계한 거주용 아파트 아데피시오 미라도르는 마드리드에 있다.

대중의 주거를 위한 공간 – 주택, 호텔, 관광 시설 스페인에서 숫적으로 가장 많이 건설되어 온 건축물들은 단연 주거용 주택과 숙박 관광객 수용을 위한 호텔이었다. 현재 빅토리아-가스테이즈 (Victoria-Gasteiz) 시에 준공중에 있는 4개짜리 바이오클리매틱 타워 (Bioclimatic Tower, 스페인의 아냐키 아발로스 (Inaki Abalos), 후안 헤레로스 (Juan Herreros), 레나타 센트키비츠 (Renata Sentkiewicz) 공동설계)는 태양열을 이용한 냉난방과 통풍 시설을 완비한 친환경 건축물이다.

2007년에 완공을 앞둔채 바르셀로나의 디자인 호텔로 탄생될 호텔 하비탓 (Hotel Habitat)은 에리크 루이즈-젤리 (Enric Ruiz-Geli), 클라우드 나인 아콘치 스튜디오 (Cloud 9 Acconci Studio), 루이 오타케 (Ruy Ohtake) 등 국제 건축 디자인팀들이 동원된 국제적 건축 프로젝트로서 현란한 조명 디자인 효과에 못지 않은 화재를 모으고 있다.

바스크 지방의 전통적이고 풍부한 와인 및 음식 문화를 극적으로 대조적 현대적인 분위기에서 음미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호텔 앳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 (Hotel at Marqués de Riscal Winery)는 프랭크 게리의 최첨단식 티타늄 건물 외장을 갖춘채 올가을에 개장을 앞두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2005년에 완공을 본 에디피시오 미라도르 (Edificio Mirador)는 스페인의 블랑카 예오 에스투디오 데 아르키텍투라 (Blanca Lleo Estudio de Arquitectura)와 네덜란드의 3인조 건축팀인 MVRDV가 공동으로 설계했다. 이 건물은 건물 하반부를 공공 시민용 야외 전망대로 상반부는 거주용 아파트로 설계하여 사적 주거 공간과 공공 대중 공간을 한 건축물 속에 잘 융합시킨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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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쳐드 로저스 건축사무소와 에스투디오 라멜라의 협력으로 설계된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터미널 내부. Copyright © 2013 Rogers Stirk Harbour + Partners LLP.

주택용 건축을 공동체적 공간으로 탄생시킨 또다른 좋은 예로는 중저급 시민들을 위해 개발한 셰어링 타워 (Sharing Tower)를 들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발렌시아의 셰어링 타워는 15인의 건축가들이 각각 한 건물씩 도맡아 총 15개 아파트 건물로 지어지게 될 아파트 단지로서 주민들이 텔레비젼, 세탁소, 컴퓨터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주요 생활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엘리베이터는 건물 외벽에 설치하고 취침, 수세, 탈의 등을 위한 사적 공간은 아파트 주변 공간 구석구석에 배치해 넣은 건축 컨셉은 능히 미래주의적이라할 만하다.

움직이는 도시인을 위한 건축 – 도시 설계 건축 스페인이 도로 대정비와 교통 노선 인프라 구축 사업을 대대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 때는 유럽 연합이 이 나라의 재건을 위해 예산금을 보조해 주기 시작한 1986년부터였다. 특히나 해외 관광객 유치와 국제 교통 활성화를 위해서 국제 공항은 지난 6년 동안의 공사 끝에 올초에 리쳐드 로저스 파트너십 (Richard Rogers Partnership)과 에스투디오 라멜라 (Estudio Lamela)가 공동으로 설계한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 공항 터미널 제4관이 개통되어 하루에 4천만명의 탑승객들이 오가는 남유럽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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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 미랄레스와 베네데타 탈랴부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재래시장, 2005년에 완공되었다. Photograph courtesy of Roland Halbe.

또 건축은 도시 토목 설계상의 풍광 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04년에 테루엘 (Teruel)에 완공된 파세오 델 오발로 (Paseo del Ovalo) 도보 통로 (영국의 데이빗 치퍼필츠 아키텍츠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와 스페인의 b720 아르키텍토스 공동 설계)는 마드리드를 감싸고 있는 옛 성터벽 위에 산책거리 공간을 개통하여 도시 보행자들이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내려다 보며 시내 안팎을 오갈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카스타냐, 카탈로냐, 바스크 등 서로의 지방적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스페인에서는 최근들어 그 지방 마다의 독특한 문화성을 반영된 신건축 트렌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주택, 사회 복지, 의료, 스포츠 오락 등과 같은 공공 기관의 덩치를 최소화하고 비중앙화하는 전통을 변함없이 고수해 오고 있는 카탈로냐 지방 답게 그 대표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중앙집권화된 병원이나 복지 시설 대신에 41개 소지역으로 세분화된 구별마다 보건 및 복지 센터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마리오 코레아 (Mario Corea)와 루이스 모란 (Lluis Moran) 설계의 보건 센터 (2003년 완공)이나 산타 카테리나 재래 시장 (Santa Caterina Market, 베네데타 탈랴부에 (Benedetta Tagliabue)와 엔리크 미랄레스 (Enric Miralles) 공동설계로 2005년 완공)은 카탈로냐 특유의 무지개풍 색채 감각과 문화의식을 반영한 물결치는 타일 지붕이 도시의 광장 공중에 웅장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런가 하면, 테네리파에 올 겨울 완공을 앞두고 있는 운동경기장은 스페인 남부의 돌과 도기공예품을 연상시키는 투박한듯 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미를 표현한 것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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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텔리에 쟝 누벨 건축사무소와 알베르토 메뎀 건축사무소가 협동 설계한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박물관 확장관. 2005년 완공. © Roland Halbe.

문화 인프라와 미술관 건축 지난 2005년 연말, 스페인의 수도이자 역사 도시에서 이 나라가 제일 큰 문화적 자랑거리로 여기는 프라도 박물관/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센터/티센-보르네미자 박물관 등 마드리드 3대 박물관들이 약 8천여억 달러의 정부 문화부 예산의 지원으로 건물 새단장과 확장을 하고 재개관했다는 보도가 전해져서 전세계 건축계 인사들과 문화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을 적이 있다.

국가의 얼굴과도 같다고 할 만큼 한 나라의 문화적 외양과 내면을 동시에 과시하는 국가적 차원의 박물관 건축 사업인 만큼 이번 ‘마드리드 뮤지엄 마일 (Madrid’s Museum Mile)’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쟝 누벨 (Jean Nouvel), 스페인의 라페엘 모네오 (Rafael Moneo)와 알베르토 메뎀 (Alberto Medem) 등과 같은 초호화급 국제 건축가들에게 설계를 의뢰해 완성되었다.

특히 18세기에 지어진 옛 병원 건축물에 알루미늄 및 아연을 이용한 세련된 초현대적 건축 요소를 융화시켜 명실공히 세계 최대 규모의 근현대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은 신구의 조화가 기대되는 건축 프로젝트가 되어 짜임새 있는 소장품과 최신식 건축적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스페인의 여러 지중해권 문화와 상업의 접점 도시인 발렌시아에서 건설중에 있는 발렌시아 근대미술관 IVAM (Institut Valencia d’Art Modern) 확장 프로젝트는 일본의 가주요 세이지마와 류에 니시자와 (Kazuyo Seijima + Ryue Nishizawa)가 설계를 담당했다. 백색 강철 스크림 소재의 헐렁한 조개 모양의 지붕을 기존 미술관 건물에 덧씌워서 새로운 전시 공간과 사무 및 카페 공간을 창출한 것이 특징적이다.

카트타제나의 국립 해상고고학 박물관 (기예르모 바즈케즈 콘수에그라 (Guillermo Vazquez Consuegra) 설계, 2007년 완공 예정)등을 비롯한 박물관 및 미술관 건축 이외에도 스페인의 민족적 전통을 재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책으로서 카디즈 시 (Cadiz)에는 라 시우다드 델 플라멩코 (La Ciudad del Flamenco) 플라멩코 댄스 센터 (스위스 건축가팀인 쟈크 헤르초그와 피에르 드 뮈론 (Jacques Herzog + Pierre de Meuron) 설계, 2008년 완공 예정)와 산탄더 (Santander) 시에 칸타브리아 지방 역사 박물관 (Museum of Cantabria (에밀리오 투뇽 (Emilio Tunon)과 루이즈 M. 만시야우 (Luis M. Mansilla0) 공동설계, 2009년 완공 예정)이 차례로 개관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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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 (Jürgen Mayer H. Architects)가 설계한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 
(Metropol Parasol)은 나무를 소재로 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구조물이다. 완공 예정일: 2007년 경.

스페인 건축계의 지형을 변화시킨 건축가들로는 유럽의 위르겐 마이어 (Jürgen Mayer), 일본의 도요 이토 (Toyo Ito), 미국의 프랭크 게리 파트너스 (Frank Gehry & Partners) 등에서 해외 수입해 온 기라성 같은 현대 건축계의 수퍼스타들도 있지만 역시 그들의 대다수는 거장들과 젊은 세대를 포함한 스페인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프랑시스코 레이바 이보라와 마르타 가르시아 같이 이제 갓 30대를 넘긴 신세대 건축가들의 건축에는 20세기 후반 스페인에 그늘처럼 드리웠던 정치적 억압과 암울함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노장 거장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전통적인 미학과 최첨단 초스타 건축가 자하 하디드풍의 미래주의적 감수성을 결합하여 그동안 고립되어 있던 스페인의 공간 문화를 현대적인 건축 공간으로 전환하는데 주력한다.

스페인에서 지칠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현대 건축붐은 앞으로 얼마나 더 승승장구할 것인가? 문화가 국가적 정체성 확립과 경제적 기회 창출의 핵심 추진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대가 계속되는 한 국제급 스타 건축가들과 스페인의 자생적 건축인들이 벌이는 창조적 폭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 [2006년] 2월부터 뉴욕 근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서 전시중인 『스페인의 신 건축 (On-Site: New Architecture in Spain)』(2월12일-5월1일) 전은 지난 20여년 동안 스페인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된 현대 건축의 현주소를 53편의 건축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점검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Photos courtesy: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이 글은 본래 『공간사랑』 2006년 6월호 “DesignNation” 연재 컬럼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스웨덴 모더니즘의 거장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과 디자인

BRUNO MATH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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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브루노 매트손의 작업 모습.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20세기 스웨덴이 낳은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 브루노 마트손이 건축디자이너로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소개되어 서구 모더니즘 건축 디자인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평가받고 있다. 50여년이라는 긴 디자인 여정 동안 마트손이 이룩했던 디자인 작업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항상 최첨단을 시험하는 혁신의 가도를 주도했지만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 더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는 시공을 뛰넘는 모더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1970년대에 서구 근대 디자인사에 기여한 그의 작품 세계를 기리는 뉴욕 근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서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기하여 『뉴욕 타임즈』 지가 “브루노가 우리 미국인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돌아왔다!”라며 반가워했을 정도로 브루노 마트손이 그의 모국인 스웨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국제 근대 디자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북유럽 목공예 전통과 모더니즘의 혁신주의의 만남
4대째 캐비넷을 만드는 목가구공 카를 마트손 (Karl Mathsson)의 아들로 태어난 브루노 마트손 (Bruno Mathsson, * 1907년 – ✝ 1988년 )도 타고난 목공장이였다. 예로부터 목공예로 잘 알려져서 지금도 디자인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베르나모 (Värnamo)에서 태어난 그는 스웨덴 남부 지방의 자연을 벗한 나무 소재와 친숙한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목공예 전통을 어릴적부터 깊이 호흡하며 목공예에 관한 세세한 노하우와 기법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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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의자, 1931년 작품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 기간 동안 전유럽을 뒤흔들고 있던 기능주의 모더니즘 미학에 깊이 매료된 그는 당시 구할 수 있었던 문헌들과 정간물을 탐독하며 모더니즘과 기능주의 이론을 독학으로 섭렵했다.

그렇게 해선 탄생한 브루노 마트손의 디자인 명작 제1호는 그가 1930년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를 방문하고 한껏 영감을 얻어 말 안장 모양으로 디자인 한 1931년작 일명 “메뚜기 의자 (Gräshoppan)”였다.

“메뚜기 의자”는 그의 고향에 있는 베르나모 병원의 접수실 공간용 의자로 설치되었는데 그의 혁신성은 당시의 스웨덴인들의 눈에 낯설어 보인 나머지 기괴하고 흉칙스러워 보인다는 불평을 받고는 창고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그같은 미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더 의욕을 느꼈던 그는 목재를 가열하여 굽히는 기법 (이 기법은 이웃나라인 핀란드에서 알바 알토가 이미 1920년대에 실험했다.)을 활용하여 등받이가 있는 긴 안락의자 시리즈를 계속해서 실험했다.

그 결과 1937년 파리 박람회에서 그의 작품들은 대륙권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온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게 되었고 급기야 뉴욕 근대 미술관으로부터 방문객용 의자를 디자인해 달라는 주문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공의 유기적인 융합
브루노 마트손 디자인의 핵심어는 자연과 디자인을 연결하는 인체공학적 해법, 공간적 사고, 그리고 건축이다. 모더니즘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관심사가 그랬듯이 그 역시 가구, 인테리어, 건물 디자인 상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정한 문제점을 규명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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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뢰자쿨 자택의 거실 광경 (Sitting-room in Frösakull).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새로운 생활 환경, 근대적인 라이프스타일, 과학기술의 진보에 걸맞는 새로운 표현 언어를 찾기를 원했던 그는 그래서 건축 외부와 실내 공간 및 개별 가구 아이템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총체적인 공간을 실험했다. 자연과 잘 조율되는 날렵하고 유기적인 가구 형태는 프뢰자쿨 (Frösakull)에 지은 주말 별장의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양차 대전과 파시즘의 대두 등 격동과 소용돌이의 근대사를 거쳐 오는 가운데 브루노 마테손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랑스러운 모더니스트이자 국제주의자 (internationalist)였다. 그의 국제주의적 활동 반경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에서 한창 전개되던 공공 주택 사업과 미래지향적 비젼과 관련하여 상당수 미국과 함께 이루어졌다.

특히 1940년대에 뉴욕 근대 미술관의 에드가 카우프만 큐레이터의 주선으로 아내 카린과 함께 한 기나긴 미국 여행 동안에 브루노 마트손은  전후 시대 미국 건축과 디자인의 개척자 찰스 이임즈 (Charles Eames), 나치의 예술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온 독일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뉴욕의 고급 사무용 가구 생산업체 크놀 (Knoll), 그리고 미국의 거장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라이트 (Frank Lloyd Wright) 같은 건축디자인계의 거물인사들과 친분을 구축하는 행운도 맞았다.

이 여행을 계기로 마트손은 지금도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해 준 일명 “유리 주택 디자인 (Glass House)”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실제로 마트손은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짧은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서 기후가 따뜻한 남유럽 포르투갈로 건너가서 유리로 된 자택을 직접 디자인하여 그곳에서 겨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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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닐라 1 (Pernilla 1) 안락의자. 1943년 작 Photo: Bruno Mathssons arkiv, Värnamo.

또 그는 개방적인 사고와 도전적인 창의력이 높은 인정을 받는 나라 덴마크를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흠모했던 그는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였던 피에트 하인 (Piet Hein)과 협동으로 그 유명한 “이클립스 테이블 (Eclipse table)”을 디자인했으며, 1970년대에는 일본과도 디자인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도 일본의 가구생산 업체인 히오스 (Hios )디자인 사의 라이센스로 가구 용품들이 생산판매되어 오고 있다.

그가 줄기차게 옹호해 온 이른바 “마트손의 궁극적 의자 문화 (ultimate sitting)” 철학은 그가 디자인한 의자와 테이블에 세심하게 고려된 곡선 감각에서 잘 반영되어 있다. 자연히 그는 현대인들이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공간을 위한 환경과 가구를 디자인하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람들이 누운 자세로 일을 하면 훨씬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일처리에 임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사무실이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당시의 노동 문화의 견지에서 볼 때 두 말 할 것 없는 혁신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가 1940년대 초엽에 차례로 선보인 “페르닐라 (Pernilla)” 의자 시리즈와 1960년대의 “젯슨 (Jetson)” 의자는 뒤로 누을 수 있는 긴 안락형 작업 의자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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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 제작생산된 “아니카 (Annika)” 테이블.

주관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영리한 머리를 소유자 마트손은 단순하면서도 꼼꼼한 우아함이 돋보이는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함과 기능성이 결합된 아름다움은 유리 주택을 비롯한 50차례에 넘게 수행했던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들과 나무를 가열하여 굽혀 만든 라미네이트 목재 가구 용품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가구 아이템들에 그는 여성의 이름을 달아주곤 했는데, 예컨대 에바 (Eva), 미나 (Mina), 미란다 (Miranda), 페르닐라 (Pernilla) 등은 각 의자 모델마다 지닌 독특한 개성을 한층 강조해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환경주의 미래를 위해 또다시 평가받는 브루노 마트손의 건축 세계
마트손이 건축을 통해서 생전 자연과 인간 사이의시각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에 쏟은 열정은 지금도 미래의 건축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혜안을 제시해 준다. 최근들어 지속가능한 (sustainable) 환경친화적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는 젊은 세대의 전문가와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년 전에 마티슨의 철학과 건축 디자인에 응용했던 기법을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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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뇌 (Tånnö)에 있는 브루노 마트손의 자택, 1964-65년. Photo: Åke E:son Lindman.

그는 미국 여행을 다녀 온 후 1950년대에 고향 메르나모의 한 가구 전시장에서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바닥 전기 히터가 설치된 콘크리트재 유리 주택을 지어 선보였었다. 그는 사방벽 중에서 한 면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나머시 세 면은 질소가 주입된 3중 유리창을 벽대신 설비해 넣는 마트손 고유의 “브로노 유리창 공법 (Brunopane)”을 선보이고 특허인가까지 받았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성향과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우수한 미하적 경제적 디자인 해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법은 안전상의 이유로 건축허가청의 관료적 난관에 부딛히곤 해서 결국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중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웁살라의 파르마시아 (Parmacia) 실내 장식(1973년), 단더리드의 핵가족용 주택(1955년), 쿵쇠르의 가족 주택(1954년), 브루노의 자택들에 간직된 다시금 자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환경친화성과 기법적 혁신성이 한데 융홥된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건축 디자인 50년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모색하는 보편적 건축 디자인의 문제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노 마트손 건축 디자인 (Bruno Mathsson – Designer and Architect)』 전시회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건축박물관 (Arketektumuseet)에서 [2006년] 2월9일부터 8월27일까지 전시된다. Photos courtesy Copyright © Arkitekturmuseet 2006.

 

우리 시대 계단 디자인은 어디에?

REQUIEM FOR THE STAIRCASE

우리 시대 계단 디자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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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폴링워터 © Scott Frances / Exra Stoller.

유모차가 긴 계단을 걷잡을 수 없이 굴러내려가는 장면을 담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고전 영화 『전함 포템킨 (The Battleship Potemkin)』. 여주인공이 층계 난간을 잡고 끝없이 아래로 펼쳐지는 사각 소용돌이 계단 아래로 내려다 보는 장면을 담은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현기증(Vertigo)』.

그리고 화가 달리와 미로의 초현실주의 그림, 레오노라 캐링턴의 흑백사진, 르 코르뷔지에의 사진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계단은 영화 외에도 이미 인류 고래부터 독특한 미학적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건축 디자인의 주요 요소였다.

계단의 종말
 인간 문명사에서 계단 (stairs) 혹은 층계 (staircase, stairway)라는 건축 구조가 탄생한 시기에 대한 정설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태산 산기슭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화강암 돌계단과 기원전 2천년전에 지어진 고대 이집트 사원의 탑문은 그같은 인류 최고(最高)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내부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건축상의 연결구조로서의 기능을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단은 종교적 정치적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권위와 권력 표현의 상징물로 사용되어 왔었다. 서양 고대와 중세 시대 중심도시 곳곳에 세워져 귀족들의 권력을 상징하던 기념비, 중세 교회 건물 안 계단 통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실내 건축을 장식하던 위풍당당한 층계들은, 첫째, 건축의 기념비적 외관을 강조하고 둘째, 그로 인해 보는이를 압도하는 경외감을 자아내려는 상징적인 구조물들이었다.

하지만 근대기로 접어 들면서 건축 기술이 발전하고 특히 전기로 작동하는 이른바 ‚움직이는 계단’ 즉,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계단은 점차 그 자취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계단 안전에 관한 장기적인 논란 끝에 관련 연방 안전 법률이 1992년 제정되면서, 계단은 더이상 건축 미학의 표현 수단이라기 보다는 안전상의 장애물로 전락하였다. 계단 설계에 관한한 전에 없이 융통성없는 법적 제한 덕분에 건축가들은 계단을 이용한 건축미 표현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계단은 과거지사의 사물로 전락하여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 … 계단은 건축가의 „미적 과단성을 표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대신 계단은 표준 규격을 준수해야 하는 순수히 기능적, 주변적, 소외된, 보일러실과 다름없는 서비스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지적하는 이 전시의 기획자 겸 디자이너 오스카르 투스케츠 블랑카 (Oscar Tusquets Blanca)는 한탄한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의식은 이 전시의 컨셉을 제공한다.

디자이너도 큐레이터일 수 있다
 대다수 디자인 전시회와는 다르게 이 전시를 기획한 장본인은 건축미술사 전문가도 평론가도 아닌 디자이너이다. 스페인 카탈로냐 지방의 중심 도시 바르셀로나 태생이면서 이곳에서 줄곳 활동해 온 건축가 겸 디자이너 겸 취미 화가 오스카르 투스케츠 블랑카는 평소 건축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아오면서 응축시켜온 계단 디자인의 도전을 『계단에 대한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디자인사를 포함한 미술사는 물론 주변 인문학에 이르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비평 능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요즘, 그같은 디자이너들의 주도로 각종 디자인 전시회 및 비엔날레 행사가 기획되고 있는 최근 추세는 디자이너도 시각 예술계의 거시적인 시각 (big picture)을 제시하고 평가할 수 있음을 선언하는 신조류이다.

평소 계단의 미헉에 유난히 관심을 가져온 한 디자이너가 스스로의 디자인 과정에서 얻은 감상과 통찰력을 총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이론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다. 계단에 대한 종말을 고하듯 붙여진 이 전시의 제목 „계단을 위한 레퀴엠“ 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계단이라는 장황하고 상징적인 형식미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근현대 건축계를 일면 한탄하는듯 한 극적인 느낌을 암시하고 있다.

전시의 구성 
„계단의 위한 레퀴엠“전은 다른 전시들이 흔히 택하는 시대적 나열법 대신 계단이 취할 수 있는 13가지 형식적 모형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전시를 기획한 투스케츠 블랑카 자신이 탐구해 본 계단에 대한 여정이 느껴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그래서 이 전시를 방문한 관객들이 구체적인 지식 보다는 계단을 독특한 건축 구성물의 하나임을 감성적으로 느끼고 동감한 후 전시장을 나서기를 바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오늘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로 대체됨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계단의 종말 현상은 안전이라는 이름하에 제정된 융통성없는 계단 안전 법률이 큰 몫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단을 미학적 건축 요소로 활용할만큼 안목을 지닌 건축 디자이너들의 수가 나날이 급감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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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고 성 (Castel Drogo) 중 (영국 소재, 원 건축가: Edwin Lutyens ) 오스카 투스케츠가 디자인한 계단 사진: CCCB.

이 전시의 큐레이터 투스케츠 블랑카가 제시하고 있는 13가지 형식적 계단 모델들 (직선형 계단, 곡선형 계단, 반원형 계단, 다중 계단, 공중 계단, 불가능한 계단 등..)은 축소 모형품, 평면설계도, 사진 자료, 관련 문학 및 시구절이 적힌 판넬 설치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계단 모델마다의 실제 규모 실물을 특수 설치하여 관객들이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직접 „물리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전시 효과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 직선형 계단은 2단 층계(step)로 이루어진 아주 겸손한 형태로부터 서양 고대 신전이나박물관, 궁전, 재판소같이 위엄을 중시하는 고전적 양식 계열의 건축물에서 흔히 발견되며, 폭이 유난히 넓게 설계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스 반 데로 로헤가 40년대 후반 일리노이주 플라노에 설계한 판스워드 하우스와 알도 로시의 세그라테 기념비 이미지를 담은 사진 자료 외에도 유화, 판화, 드로잉 작품들이 포함
  • 벽으로부터 돌출된 계단은 한 쪽 벽면을 의지해 지탱되도록 설계된 계단으로 가장 원시적인 계단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알바 알토와 요셉 마리아 소스트레스 (Joseph Maria Sostres)의 작품 사진을 비롯해서 스페인이 자랑하는 초현실주의 미술가 호안 미로의 목탄 그림 『계단을 오르는 나체의 여인』(1937)이 선보인다.
  • 4분 회전 계단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직선형 계단을 180도 회전시켜 올린 계단 형식이나 독립적인 조각 오브제같은 예술적 인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흔히 사용되었다. 전시에 포함된 알바 알토와 카주요 세지마의 디자인은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다.
  • 2분 회전 계단은 공간 절약에 가장 효율적이며 건축이 쉬운 계단 형식이라는 장점 때문에 일반 아파트나 정원 설치용으로 널리 활용된다. 시각적인 무난함 때문에 특출난 건축 디자이너의 설계를 필요로 하는 계단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펜실바니아 베어런 하우스(1936-39)는 그런 예이다.
  • 다중 회전 계단은 보기에 복잡다단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조나 통로로 전환하는데 즐겨 활용되어 환상적인 분위기 조성에 효과적이다.
  • 황실 궁전 계단의 주요 특징은 평면도, 높이, 측면도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며, 계단 밑바닥과 바로 위층 표면이 항상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건축사는 이같은 형식의 계단 설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 삼바 스텝 계단은 인류 가장 오래된 층계 구조이며 발을 내디딜때 마다 엉덩이를 교대로 좌우로 움직이게 한다고 해서 이 전시는 삼바 스텝 계단이라고 부른다.
  • 공중 계단은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영원한 욕망이 드러나는 이 계단 형식은 공중에 뜬 것과 같은 특수 효과를 거두기 위해 금속이나 유리를 재료로 현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 난간을 거부하는 계단은 손잡이 난간없이 층계 자체만의 미를 강조하려는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해 온 형식이나, 안전상의 이유로 최근에는 실용적 건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레오노라 캐링턴, 루이스 바라간
  • 무작위 계단은 지형에 적응하려다보니 일정한 형태없이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의미하며 일부 디자이너들은 반기학적, 유기적 형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이 형태를 사용했다.
  • 회오리형 계단은 구심점을 중심으로 용수철처럼 휘감듯 연속되는 계단이며 아주 단순한 형태로부터 이삼중의 복합구조까지 다양하며 극적이고 다중 시각 효과를 노리고자 하는 건축물에 사용되어 왔다.
  • 상승하강 계단은 서양 중세 필사본이나 드릴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이며 상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상승 방향은 천국, 하강 방향은 지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바빌론 탑의 계단은 바로 이 상승하강 계단 구조를 하고 있다.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단은 문자의미 그대로 불가능한 계단으로 인간의 환상과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설계와 건설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그림으로만 가능하다.

이상 13가지 계단 모형을 차례로 보고 경험한 관객은 마지막으로 투스케츠 블랑카가 설계한 비례 계단 (Proportioned Staircase)에서 그가 제안하는 완벽한 기능의 계단을 보고 오르내릴 수 있다. 사용자가 지치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오르고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비례 계단은 이상적인 수치의 계단 높이와 폭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그 비밀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불법 계단 (illegal staircase)라는 소제를 단 전시장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최근 여러 선진국가들이 계단 설계에 대한 안전 수칙과 이동식 계단 대체로 순수하게 미적인 계단 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동시에, 그같은 기술적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현대적 계단 디자인이 멸종되지 않고 계승되길 간절히 염원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투스케츠 블랑카의 지적대로 „진정한 계단 디자인은 주어진 기술적인 제약 가운데에서도 기능성과 공간미의 마술적 결합체“임으로.

전시명 : 계단을 위한 레퀴엠 (Requiem for the Staircase)
 | 전시 장소 :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 문화 센터 (Centre de Cultura Contemporania de Barcelona)
 | 전시 기간 : 2001년 10월 25일-2002년 1월 27일까지.

* 이 글은 2001년 『디자인 정글』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